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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 -<6> /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해보라? 온전히 드렸더니 물질의 복 넘쳐

영국신사77 2019. 12. 4. 23:09


눈물·헌신으로 건축한 성전 내주어야 하다니…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6>

입력 : 2019-12-04 00:05/수정 : 2019-12-04 00:36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2014년 8월 충북 청주 청원진주초대교회에서 열린 아바드리더콘퍼런스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그랬을까. 1988년 11월 성령세례를 받은 남편은 그토록 좋아하던 세상 것들을 단번에 끊고 주님께 돌아섰다. 과거 남편은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세상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런 남편이 변화된 것은 성령세례의 힘이다. 남편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운동을 하는 순복음 교단을 선택했다.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가 신학교를 가기로 했을 때, 가족들은 비웃었고 시아버지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욱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금식하고 전도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는 찬양가사와 똑같았다. 예수 사랑에 미쳐 매일을 보냈다.

우리 부부는 이미 교회의 허락하에 따로 개척교회를 세워 평신도로서 그곳을 섬긴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주의 길을 가는 것은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다잡고 남편의 목회 길에 돕는 배필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1991년 3월, 남편이 신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지 않아 한 목사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기도원에서 함께 금식하며 알게 된 목사님이었다. “전도사님, 제가 아는 목사님께서 안식년이 돼 히브리어 공부를 하러 가신답니다. 그 교회 담임 전도사로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교회는 당시 사천읍에 있던 두량삼오교회라는 작은 시골 교회였다. 한 달 사례비가 5만원밖에 되지 않아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신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말도 둔해서 말씀을 전하는 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순복음 교단 신학생이 장로교 교회 목회자라니…. 그래서 “절대 갈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입에선 정반대 말이 나오고 말았다. “네, 제가 가겠습니다.”

그야말로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추천한 그 목사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두 분이 그 교회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 목회해도 성공할 겁니다.”

교회는 마구간을 개조해서 지은 것이었다. 말이 좋아 교회지 한숨이 절로 나올 만한 환경이었다. 마구간 특유의 냄새에, 나무 서까래를 타고 빈대가 쉼 없이 떨어졌다. 구정물이 고인 하수구에 손을 넣어야 수도꼭지를 틀 수 있었다. 에어컨은 꿈도 꿀 수 없고 달달 거리는 선풍기 하나에 의지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와 이경은 목사가 1990년 6월 평신도 시절 경남 사천에 교회를 개척한 뒤 해변에서 세 자녀와 함께한 모습.

그래도 좋았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매일 성도들을 심방하며 섬겼다. 밤에는 성도들과 함께 매일 “불로! 불로!”를 외치며 뜨겁게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치유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도사 주제에 뭘 얼마나 하겠어’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성도들도 점점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그때 동네 무당이 밤에 자려고 눕기만 하면 “불이야, 불이야”하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밤마다 성도들과 함께 “주여, 주여”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무당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결국, 그 무당은 밤마다 들리는 “불이야”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다.

무더운 여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기도하고 찬양했다. 그러노라면 성전 창문에 붙은 청개구리도 팔딱 뛰고 등에 붙은 빈대도 팔딱 뛰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우리도 들썩들썩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마저도 추억이 된다.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성전은 한계가 있었다. 악취와 빈대로 고생하던 성도들은 늘 몸을 긁었다. 어린 세 자녀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긁어서 난 생채기로 작은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성도들은 성전 건축을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성전 건축에 필요한 물질이었다.

사명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남편에게 요구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여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부모·형제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요. 만약 그렇게 하면 절대 이 길을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맏아들인 남편은 시아버님의 막대한 유산을 포기한 상태였다. 어차피 하나님께 드릴 것, 형제지간의 우애를 위해 시동생이 원하는 대로 다 넘겨줬다. 우리에게 있던 전 재산도 다른 개척교회에 헌금으로 드리고 이 길을 왔다.

당시 우리는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믿음으로 성전 건축을 선포했다. 하나님은 기적처럼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또 채워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바치라는 마음의 음성을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또 한 번의 음성을 주셨다. “너한테 결혼 패물들이 있지 않으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 예물까지 마지막으로 바치게 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으셨다.

드디어 성전 건축을 마무리하고 헌당식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마음 아픈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올 남편 목사님의 자리가 없을까 사모님이 걱정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건축한 성전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떠나기로 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완공된 성전의 모습을 보고 그곳을 떠났다. 1991년 가을이었다. 그렇게 언약의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신앙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 선이 악을 물리치려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시작한다.(민 10:11~12) 그들의 광야생활은 영적으로 오늘날의 교회 생활을 의미한다.(행 7:38) 이스라엘 백성의 40여년 광야생활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훈련받는 과정이다. 아바드리더시스템은 그 광야생활을 토대로 오늘날 교회생활 가운데 만날 수 있는 문제와 그 문제를 만났을 때 승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광야 같은 삶에서 신앙생활은 싸움이다. 어떤 싸움인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 곧 선과 악의 전쟁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마귀가 온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복 받을 뿐 아니라, 저 맹세한 땅에 들어가 영생 얻는 복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다 천국 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요 6:39) 이에 하나님은 순종을,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불순종하게 한다. 신앙은 이렇듯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우리는 왜 순종하기가 어려울까.

첫째,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울왕에게 보내 명하신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그러나 사울은 어떻게 했는가.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멸하였으나 아말렉 왕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고 진멸하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울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친히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셨다. 하지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그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

그러나 사르밧의 한 과부는 어떠했는가.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유하라고 말씀하신다. 엘리야는 성문에 이르러 한 과부를 만나고 그에게 물과 떡 한 조각을 청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과부는 먹고 죽을 만큼의 양식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먼저 그것으로 자신을 위해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한다.

그때 사르밧 과부는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마지막 먹을 양식을 그에게 주면 나와 내 아들은 어떻게 될까.’ 분명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르밧 과부의 집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복을 받는다.(왕상 17:16)

사울왕은 두려움에 불순종했지만 사르밧의 이름 없는 한 과부는 순종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딤후 1:7) 두려움은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려고 주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일성수하면 물질적 손해나 핍박이 있지는 않을까’ ‘십일조를 드리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김으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30대 나이에 회장님 소리 듣던 남편 “주의 종 되겠다”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5>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가 1989년 가을, 부산 달맞이 공원에서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와 함께했다. 당시 지역 유지였던 전 목사는 성령체험을 받고 전도에 앞장섰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넘치도록 부어주신 복으로, 남편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회장님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다. 치기공소와 택시회사, 대형 횟집 등 여러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교회에 출석하며 집사 직분은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믿음을 갖지 못한 남편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이곳저곳 부르는 곳이 많아 굵직한 직책들을 많이 맡고 있었다. 자연스레 하루가 멀다고 술자리에 참석했다. 한창때는 1년 365일 중 술 안 마시고 온 날이 3일밖에 없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내 속은 여름 가뭄 논바닥처럼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웬만하면 그런 일에는 눈을 감아 주었다. 대신 딱 한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한 달에 두 번만 교회 가면 술 마셔도 아무 소리 않을게요. 다른 거로는 절대 바가지 긁지 않을 테니까 이 약속만 꼭 지켜 주세요.”

‘큰 것은 이기고 작은 것은 져주자.’ 육적인 것은 져주는 대신 영적인 것은 이기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주일만큼은 꼭 지키게 하려고 다른 것에는 모두 져주기로 했다.

그 약속 때문인지 남편은 억지로라도 한 달 두 번은 꼭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던 것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네 번이 돼 주일 예배는 꼭 참석했다. 그마저도 느지막하게 사도신경 외우는 시간에 들어가, 축도 시간에 일찌감치 나와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하나님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 남편을 위해 제가 기도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이면 충분할까요. 저 아들을 위해 제가 20년을 작정하고 기도하겠으니 주님 품으로 속히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고 새벽기도, 밤샘기도를 하며 기도의 제단을 쌓았다. 내 눈물의 기도를 다 보고 계셨던 하나님은 오래 지체하지 않으셨다. 20년을 마음먹고 기도했더니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확실한 응답을 주셨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남편이 삼천포 성화 봉송주자로 뛰었다.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도회 도중 성령께서 남편에게 강하게 역사하셨다. 성령세례를 받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몇 시간 동안 회개 기도를 한 그날 이후,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아니,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으셨다.

세상을 단번에 끊은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변했다. 남편은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청소하고 봉사하고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도하는 데 전념했다. 삼천포 시내 사람이 다 안다는 재력가가 시장통 콩나물 파는 아주머니에게 90도로 굽혀 인사하면서 “예수 믿으세요”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한순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린 남편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전 사장이 예수를 믿더니 어떻게 됐는가 봐.” 엉망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는 술에 취해 교회를 와도 “아이고, 그래도 교회를 찾아오니 얼마나 믿음이 좋아”하며 칭찬하던 성도들조차도 변화된 남편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저러다 언젠가는 그만둔다고.” 뒤에서는 이렇게 비웃고 조롱하기도 했다.

당시 남편은 기도하기 위해 기도원을 찾는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는 기도원 원장님마다 남편에게 주의 종의 길을 가야 한다며 권유했다. 남편은 성격이 급했다. 말도 급해서 더듬을 때가 많았다. 세상에서 감투 쓸 일이 많았지만,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니, 교회에서 구역장으로 세우려 해도 구역 공과로 말씀을 전하는 일이 두려워 피하던 사람인데… 그런 남편이 주의 종이 돼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 돼야 한다니.’

남편의 모습을 너무 잘 알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나 역시 사모의 길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를 두고 작정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사모의 길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두신 길은 거부할 수 없었다. 내게는 그럴 힘도 없었다. 하나님은 기도 중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하셨다. 초등학생 딸아이가 숙제로 내어 최우수상을 받았던 ‘요술쟁이 인두 다리미’였다. ‘인두야 인두야/ 요술쟁이 인두야/ 구겨진 샤쓰도/ 구겨진 치마도/ 깨끗하게 다려주는/ 인두야 인두야/ 요술쟁이 인두야/ 내 구겨진 마음도/ 다려 주려무나.’

하나님께 부름 받은 남편이 걸어가야만 하는 사명의 길이였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였다. ‘그래 내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더러우면 씻어주고, 구겨진 것이 있으면 다려주자. 남편이 걷는 사명자의 길에 인두 다리미가 되자.’ 

하나님의 선명한 메시지 앞에 그렇게 결심했다.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담대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출애굽기 32장에 이를 잘 보여 주는 사건이 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셨던지 모든 백성을 진멸하려 하셨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했다.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 땅에서 친히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제발 화를 그치시고 마음을 돌이켜서 이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소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너희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허락한 땅을 자손들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출 32:11~13)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백성을 위해 간구했다. 이런 모세의 간구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멸하려던 뜻을 돌이키셨다. 모세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 안에서 그대로 행하시는 여호와, 곧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한 성도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보험사에 혜택을 부탁한 일이 있었다. 한 설계사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며 단돈 5만원의 혜택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설계사가 500만원의 혜택을 제시했다. 그래서 많은 혜택을 제시한 설계사에게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보험 약관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는 우리가 복 받을 방법이 정확히 기록돼 있다. 그 언약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언약이란 무엇인가. 국가와 국민 사이에 준행해야 할 약속으로 ‘법’이 있듯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된 우리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 곧 법이 있다. 성경은 그 법을 일컬어 언약이라 한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출 15:2) 고백한 그들을 시내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시내 산 불 가운데 강림하셔서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 언약의 말씀은 다름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 곧 십계명이다.(신 4:10~1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포한 이 말씀에 대해 준행하기로 피로써 언약을 맺었다.(출 24:6~8)

기억해야 할 것은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님은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시 89:3)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반드시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신다. 첫 사람 아담과도 언약을 맺으셨고(창 2:17) 이스라엘 백성과도 언약을 맺으셨다.(신 5:2~3) 나아가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뿐만 아니라 앞으로 예수 믿을 우리의 후손들과도 언약을 맺으신다.(신 29:14~15)

이 언약 안에는 두 길이 있어서,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의 길을 우리 앞에 두셨다.(신 30:19) 언약을 지키면 이 땅에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생명에 이르게 되지만, 반대로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이 땅에서는 저주를 받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신 28) 그러므로 우리는 복과 생명의 길로 가기 위해 반드시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은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높은 하늘에서 별을 따 달라거나, 달을 따 달라는 허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며,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 우리가 결단하기만 하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이다.(신 30:11~14)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순종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과 생명을 받아 누려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신부도 아니면서 옷 빼입고”… 설교 중 지적 당하고 교회 옮길까 고민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4>

입력 : 2019-11-20 00:05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오른쪽)가 1987년 5월 평신도 시절 경남 사천 삼천포교회에서 목회자 및 성도들과 함께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6~7)

1980년 교회에 출석하면서 주님의 성전에 물질을 채우는 일뿐만 아니라 주의 종을 섬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말씀을 떠나서라도 목사님과 사모님을 뵈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저 두 분이 가시는구나. 나는 새벽 기도 한 번 나오는 것도 힘든데….’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나오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목사님 가정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늘 세심히 살피며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게 채워드렸다. 급기야는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집사님, 인제 그만 가져오세요.”

그렇게 섬기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끔 주의 종에게 좋은 것으로 섬기고, 그것이 자기 생각과 다른 곳에 쓰이면 불평하고 간섭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 저런 모습은 차라리 드리지 않음보다 더 못한 행동이다. 오히려 주의 종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목사님께 무엇을 드린 후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시든 절대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한차례 고비가 왔다. 다름 아니라 그렇게 섬기던 목사님으로 인해 시험에 든 것이다. 1983년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의 차림을 보면 혼주의 수준과 형편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우리 교회 성도들의 평소 차림새로는 도무지 혼주의 면도 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질질 끌리는 플라스틱 슬리퍼에, 알록달록 월남치마가 과연 결혼식에 어울리겠는가. 

그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단장했다. 일부러 미장원에 가서 올림머리도 하고 화장도 곱게 하고 최대한 멋 부린 차림새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결혼식 다음 날인 주일, 설교 중에 목사님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혼식에, 자기가 신부도 아니면서 신부처럼 머리에 힘을 주고, 옷을 빼입고….” 누구라고 지칭은 하지 않지만 분명 나를 콕 집어하시는 말씀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었다. 목사님은 또다시 강조해서 같은 말씀을 반복했다.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오고 갔다.

‘목사님, 너무하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목사님이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그거 제 이야기잖아요. 제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시면서. 그렇게 두 번이나 강조하시지 않아도 다 알아들었어요. 아, 이 교회는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어디로 갈까. 장로교로 가볼까, 침례교로 가볼까. 삼천포에 이 교회 말고 교회가 없겠어?’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순간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도적을 피하려다 강도를 만난다.” 그랬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상해 교회를 옮기면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을 또 만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때마다 교회를 옮기면 나는 결국 교회 옮겨 다니는 사람으로 남지 않겠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예배가 끝난 후, 곧장 목사님께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할렐루야, 목사님. 오늘 말씀에 정말 은혜받았습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인사까지 하자 목사님의 얼굴이 벌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은혜는커녕 시험만 잔뜩 들었지만 빨리 추슬러야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목사님 말씀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목사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맛있는 음식이며 과일 같은 것을 들고 더 열심히 찾아뵀다. 목사님은 내게 미안하셨던지 처음에는 얼굴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런 날이 계속 이어지자, 어느 순간 목사님과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됐었다. 아마도 내가 그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신앙생활에 찾아온 시험에 거뜬히 합격했다. 주의 종으로 인한 그 시험을 통과한 후, 더욱더 목사님을 섬기는 일에 힘을 다했다. 신명기 28장의 축복을 다 받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대로 신앙생활 하기 위해 애썼고, 해가 거듭될수록 하나님은 육적인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88년 어느 날, 목사님께서 지나치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이 집사, 이제 복 좀 그만 받으소!” 목사님 말씀은 예언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믿던 나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0여분을 따라 다니며 애원했다. “목사님, 그 말씀은 제발 취소해 주세요.”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그럼, 이제 무슨 복 받고 싶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희는 육적인 복이란 복은 다 받았습니다. 이제 영적인 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툭 던지셨다. “그러면 이제 영적인 복 받으소!” 그다지 진중한 말씀은 아니었지만, 그 말씀도 ‘아멘’으로 받았다. 그리고 머잖아 우리 가정에 영적인 복을 허락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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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과 대신 싸워 주실까

우리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면 그 계단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다. 
첫 번째 계단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다. 한꺼번에 여러 계단을 성급히 오르려다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올라야 한다.

우리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천국에 이를 그날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이런 신앙 여정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 신앙생활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다.(엡 6:12) 그러므로 우리 힘으로는 절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애굽 후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에서 호전적인 아말렉 군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만난다.(출 17:8)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아말렉 군과 전쟁을 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대적 아말렉, 곧 마귀와의 영적 전쟁임을 교훈하시기 위함이다.

이때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의 대적 아말렉과 대대로 싸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17:16)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와, 곧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대로 행할 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 언약은 무엇일까.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과 대신 싸워 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첫째, 강한 기도를 할 때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신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출 17:10~11)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했을 때, 즉 강한 기도를 했을 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강한 기도’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다.

둘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신다.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의 대적은 사단 곧 마귀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마귀에게 원수가 돼 주시고 대적이 돼 주신다.

셋째, 찬양할 때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신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대하 20:22~24)

모압과 암몬 족속이 남유다를 치러왔을 때 유다 왕 여호사밧은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고 여호와께 간구한다. 여호사밧 왕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선지자의 말을 신뢰했다.(대하 20:15) 이에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예복을 입히고 군대에 앞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한다.

노래와 찬송이 시작되자 여호와께서는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온 암몬과 모압 자손이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게 하신다. 그 후에 저희가 피차에 살육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그 전쟁을 남유다의 승리로 이끄신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행할 때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해보라? 온전히 드렸더니 물질의 복 넘쳐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3>

입력 : 2019-11-13 00:03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와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1983년 1월 경남 사천 자택에서 첫아이 돌잔치를 열었다.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간직해온 바람대로 1980년 결혼 후 시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됐다. 경남 사천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측 삼천포교회에 출석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신앙생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며 나름 눈치껏 배워 교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궁금증 하나가 있었다.

‘금붙이에 불과한 부처를 믿는 사람들도 잘살고, 한낱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도 잘산다. 그런데 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같이 궁색한 생활을 하는 걸까.’

주변에선 교회에 가면 목사님들이 감언이설로 성도를 꾀어 헌금을 많이 하게 하고 돈을 빼앗는다는 황당한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 가난하다는 뜬소문을 예전부터 들어왔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주일 헌금 시간이었다. 잠자리채처럼 생긴 기다란 헌금 주머니가 왔다 갔다 했다. ‘도대체 사람들이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기에….’ 순간 궁금증이 생겨 살짝 눈을 떴다. 그런데 옆에 앉은 성도님이 헌금 주머니에 헌금을 넣는 것이 아니라 ‘툭’하고 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대부분은 헌금하면 쨍그랑하고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 헌금도 하지 않으면서 옆 사람 보기에 헌금하는 척하려고 주머니를 치는구나. 그나마 헌금하는 사람도 동전 몇 푼만 하는구나.’ 하나님은 분명히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배웠는데, 인간의 행위가 너무 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머물자, ‘이왕 예수 믿는 것 제대로 믿어보자’는 생각에 성경을 잘 안다는 분을 찾아가 물어봤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잘사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랬더니 그분은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을 가르쳐줬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아니, 인간이 어떻게 신을 시험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성경에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은,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시험해 보라는 이 한 구절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나 좀 믿어봐라, 한 번만 속아봐라’라며 인간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인간이 참 악하구나.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안 믿길래,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기에 이런 말씀을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결심했다. 이 말씀대로 살아서 내가 그 샘플이 돼보자고 말이다.

그 당시 시댁은 내가 갓 시집갔을 때와는 달리, 가세가 회복돼 여러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남편은 지방 소도시였던 삼천포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시아버지를 돕기 위해 치기공소를 운영했다. 남편은 사업 수완이 좋아 택시회사와 횟집, 유도관도 경영했다. 특히 횟집은 삼천포에서 종업원만 40명이 넘는 대형이었다. 남편은 매달 작은 집 한 채 정도는 너끈히 살 수 있는 돈을 생활비 명목으로 내게 맡겼다.

나는 빳빳한 새 돈이 들어오면 무조건 십일조로 드렸다. 수입의 십일조가 아닌 믿음의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자랄 수밖에 없는 생활비는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메워 나갔다. 구멍 난 양말은 꿰매어 신었고 목이 늘어난 양말은 윗부분을 잘라내 덧버선으로 만들어 신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내 옷은 시장 리어카에서 골라 입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집 며느리가 입은 게 일제 주름치마래”라며 내가 입은 옷은 모두 비싸고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사업장에 근무하는 수많은 직원을 위한 식사 도우미를 들이는 대신, 내가 직접 메뉴를 짜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끼고 모은 돈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의 벅찬 감정은 그 모든 수고를 잊어버리게 할 만큼 컸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 확실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의 집에 양식을 채우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그 말씀대로 살아 샘플이 돼보자고 다짐했던 소원대로,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의 복을 부어 주셨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돈에 깔려 죽는 게 아닐까.’

하지만 하나님은 돈에 깔려 죽지 않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그 물질을 하나님께 부지런히 올려 드리고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섬기는 ‘돈 심부름꾼’이 되자는 마음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물질로, 내가 드릴 수 있는 물질로 교회와 목사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교회 재정의 5분의 1을 감당할 정도로 헌금 생활을 열심히 했고, 교회에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없는지 늘 눈 여겨봤다.

제직회에 열심히 참석한 이유도 딱 한 가지였다. 교회에 빚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서 그 빚 갚는 일에 앞장서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나르는 심부름꾼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날로 더해져 갔다. 그 은혜 앞에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하나님, 평생 돈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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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한 삶은 주님의 언약·말씀 안에 있다

누구나 부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부요한 것은 아니다. 오래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문구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밤새도록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다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날마다 외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농부가 수고하고 땀을 흘려도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고 태풍과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시지 않으면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성경은 부요하게 되는 법을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 127:1~2) 
즉 하나님의 언약,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부는 이룰 수 있지만 큰 부자는 하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어렵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는 건조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면서 마라를 지나 엘림에 장막을 치게 하셨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 15:27)

유목민이었던 그들에게 물 샘 열둘은 굉장한 풍요로움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엘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궁핍함에 처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분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무조건 부요하게 해 주시지는 않는다. 정한 언약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하는 자들에게 부요함을 허락하신다. 부요하게 되는 축복 공식은 여섯 가지다.

첫째, 먼저 대접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둘째,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셋째, 주의 종에게 쓸 것을 공급해야 한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8~19)

넷째, 가난한 자를 구제해야 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다섯째, 성전을 건축하고 재건해야 한다.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8~19)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 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3~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허락하셨다.(신 8: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요하게 되는 언약을 정하여 두시고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부요하게 하신다. 
정하신 언약대로 실천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서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시댁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 우상 믿었던 시어머님은 ‘종교 전쟁’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2>

입력 : 2019-11-06 00:03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1985년 결혼 5주년을 맞아 제주도에서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경남 삼천포시청 홍보실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였다. 어느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 전태식 목사를 만났다. 그는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집에 찾아와 부모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 녀석 눈방울 보니 너 굶기지는 않겠다. 됐다!"

남편의 눈빛에서 무엇을 보셨는지 아버지는 단번에 결혼을 허락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가세가 기울어 아주 어려웠다. 남편 쪽 집안 형편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용기가 생겼다. '어차피 가세는 기울어졌고, 내가 시집가서 그 집안이 일어나면 며느리가 잘 들어와서 그렇다고 칭찬하겠지.' 그런 사명감 아닌 사명감으로 1980년 2월 삼천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삼천포 시댁에서 시작한 시집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당뇨가 있던 시아버님을 위해 하루 7번씩 정확히 시간 맞춰 식사와 간식을 올려 드렸다. 집안 식솔 수십 명의 식사를 하루 세끼 꼬박꼬박 준비했다. 그 외에도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졌다. 잠자는 시간은 하루 서너 시간이 전부였다.

시댁 어른들의 말 한마디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단숨에 달려가며 절대 흠이 잡히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하루하루가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했다. 게다가 예수를 만나기 전 남편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며 나다니는 것도 좋아해 내가 힘들 때 하소연하거나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친정도 마찬가지였다. 시집오기 전, 칠거지악을 세뇌하듯 강조한 부모님이셨기에 친정에 가서 하소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참고 또 참는 것이 전부였다. 손수건을 입에 물고 울었던 날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내 남편이 인정받지 못한다, 내 자녀가 사랑받지 못한다.' 그 일념으로 시댁에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게 했더니 2년여 만에 시아버님께서 식구들 앞에서 선언했다. "우리 며느리는 100점짜리다. 우리 며느리 건드리면 아무도 가만 안 둔다." 그렇게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신 시아버님은 늘 내 편이셨다.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사음식을 만들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우리 부부가 목회 길에 들어섰을 때는 하나님께 자식들을 빼앗겼다면서 그것을 제일 서운해 하셨다.

결혼 후 어릴 적 그토록 가고 싶었던 교회에 나가게 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집에서 현대판 갈멜산 대결이 일어난 것이다. 시집을 왔을 때, 시어머니는 위암으로 병환 중에 계셨다. 그 병시중 역시 내 몫이었는데, 하루는 시이모부님께서 어머님을 찾아오셨다. 그분은 도사가 되겠다며 산에 들어가 17년 동안 도를 닦으셨는데, 한순간에 회심하고 예수를 믿게 되셨다고 했다.

"처제, 섬기는 그 신 버리고 나랑 같이 교회 갑시다!" 당시 다른 신을 섬기는 데 열심이었던 시어머니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제! 남자가 한 우물을 파야지 우째 그러요? 아제가 섬기는 신이 참 신인지, 내가 섬기는 신이 참 신인지 어디 내기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그날 우리 집에서는 엘리야와 아합의 선지자들이 대결했던 갈멜산의 기도 전쟁이 재현됐다. 두 분 다 종교심이 깊어서인지 대결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었을 때, 갑자기 시어머니께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사요나라, 사요나라. 내가 이 좋은 곳을 떠나는구나!" 그 일을 계기로 시어머니는 우상을 버리고 결혼 전에 믿었던 하나님을 다시 믿게 되셨다. 그날 이후 나는 시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드리려고 신유 은사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기도원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시어머니는 이런 유언을 남기셨다. "교회 나가 하나님을 잘 믿어라."

어머님의 유언에 따라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됐다. '어른이 돼 신을 믿게 된다면 꼭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겠노라'고 했던 어릴 적 다짐이 그제야 이뤄진 것이다. 그토록 섬기고 싶었던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셨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믿고 싶었다.

교회에 나가니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다 아신다고 누군가가 말해줬다. '살면서 만나는 힘들고 억울한 많은 일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능치 못할 것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알아주신다'는 말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평생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시작했다.

▒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아바드리더시스템'은
말씀이 내 생각과 달라 순종하기 어려워도 낙심·포기하면 안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대로 교회에 오면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교회에 나와 진정한 쉼을 얻고 있는가. 아니면 내 짐에 다른 짐까지 더해져 더 힘겹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400여년 동안 이방 나라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셨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애굽 북부에서 가나안 남쪽을 향해 가는 지름길로 블레셋 사람의 땅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홍해의 광야 길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4~5일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셨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출 13:17~18)

블레셋 사람은 싸움에 아주 능한 민족이었다.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의 땅을 지나는 길이 가까울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 길을 가다 전쟁을 보면 마음을 돌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까 염려하시어 홍해의 광야 길로 그들을 돌려 인도하신 것이다.

애굽 땅에 행하신 10가지 재앙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구원자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블레셋과의 전쟁을 충분히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자기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모세의 인도 아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른다. 그러나 그곳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변화시켜 주셨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출 15:22~25)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쓴 물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교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쓴 물을 만난다. 부부간의 쓴 물, 자녀의 쓴 물, 물질의 쓴 물, 실패의 쓴 물 등 저마다 이런저런 쓴 물로 힘겨워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쓴 물을 달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그 어떤 쓴 물도 달게 할 수 있는 축복 공식 또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기도로 말미암아 이뤄진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도 행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호와 곧 언약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며 그 언약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기도로 구했다면 그 쓴 물을 달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지시하신 말씀이 혹 내 생각과 다르거나 순종하기에 어려운 말씀이라 할지라도 한두 번 순종하고 낙심해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내일이 응답의 순간이라 생각하고 오늘 포기해 응답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끝까지 순종해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교회 가고 싶던 여섯 살 “내 뜻 주장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 섬길게요”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

입력 : 2019-10-30 00:03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2016년 교회에서 개최된 ‘제7회 부흥의 지휘자’ 콘퍼런스에서 두 손 들고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불교와 유교의 영향력이 강한 경남 진주에서 순복음진주초대교회의 성장을 일군 이경은 목사의 목회 스토리는 남다르다. 복음전파를 위해 말씀 중심의 목회철학과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고난의 상황을 돌파한 이 목사의 목회 스토리를 통해 신앙의 기본자세를 찾아본다.

1957년 여름, 나는 경남 고성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양조장을 하는 큰집 덕분에 아버지는 금융업을 했다. 그래서 꽤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과일이 귀한 때였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과일을 실컷 먹이라고 수돗가에 시멘트로 큼지막한 수항을 만들고 물을 가득 채워서 갖가지 과일을 띄워 놓으셨다. 여름철 동동 떠 있던 노란 참외가 기억에 생생하다.

아버지가 가정적이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예의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했다. “사람을 구별하지 말고 누구에게든지 인사를 잘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9남매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집에 전축이 있었는데, 기녀가 노래를 배우러 올 정도였다. 그 천대받던 기녀에게조차 동구 밖까지 나가서 인사를 하지 않으면 호되게 야단을 맞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늘 “우리는 왕족이다. 임금의 성을 갖고 태어났으니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가르침이 인생길과 목회 방향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어머니는 언제나 인자하고 성품이 참 좋으신 분이었다. “아이고, 저 아는 애를 아홉이나 키우면서도 큰소리 한 번 안내고 키운데이.” 할머니는 늘 어머니를 칭찬했다. 어머니는 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녀들에게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는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을 위해 지극 정성으로 소원을 빌었다. 아버지 때문이다. 그 옛날 부의 상징처럼 여기던 첩을 4명이나 거느렸으니 늘 베갯잇을 적시며 우셨다. 그때는 왜 우시는지 몰랐다. 어머니는 슬픔을 삼키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기에… 말 한마디 못하고….”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 ‘나는 엄마처럼 절대 살지 말아야지’라며 다짐했다.

어머니는 시집가는 걸 거부하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꼭 예수 믿는 사람에게 시집가거라. 예수 믿는 사람이 바람은 안 피우더라.” 우리 집은 돈도 많고 부족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늘 눈물지으며 사셨다. 

반면 예수 믿는 친구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아도 참 행복해 보였다.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고 그래서 어머니의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새겨졌다. 어머니의 당부가 마치 예언처럼 들렸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나도 어머니처럼 참고 살아야겠다.’ 고난 앞에 힘들 때면 늘 주님 앞에 가서 울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앞에 가서 우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도 잘 참고 견디며 주님 앞에 모든 걸 내어놓고 운다. 이렇게 참는 법과 슬픔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버지 덕분인지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나면서 가세가 기울어지니 선생님의 사랑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됐다. 어린 나이에 냉엄한 현실을 조금은 알게 됐다. ‘아, 힘이 있어야 하는구나.’

나는 원래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 실력을 키우기로 다짐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하고 예습했다. 책이 없어 친구 것을 빌려 밤새도록 본 뒤 다음 날 아침에 돌려주기도 했다. 그때 밤새워 공부하던 습관 때문에 지금도 밤새워 기도하고 밤을 새우는 일이 일상처럼 됐다. 아버지는 공부를 좋아하고 무엇이든지 똑 부러지게 하는 나를 무척 예뻐해 주셨다.

6살 때 일이다. 크리스마스에 아버지께서 사 주신 예쁜 구두를 신고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 갔다. “예배당에 가니까 눈 감으라 해놓고 신발 돔바(훔쳐)가더라”는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벗어 둔 구두를 훔쳐간다는 말도 안 되는 노래였다. 어린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떡 받아 가라는 교회 선생님의 손길도 뿌리친 채 황급히 예배당을 뛰쳐 나왔다. ‘다시는 교회 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처음 간 교회였지만 어린 마음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살아 계신 것 같았다. ’한 집에서 두 신을 섬기면 망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교회에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이런 고백을 했다. ‘하나님, 언젠가 제가 커서 내 뜻을 주장할 수 있을 때가 되면 하나님 잘 섬길게요.’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신 하나님은 그때부터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신 것 같다. 교회는 다니지 못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순식간에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렇게 은연중에 하나님을 체험케 하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난 후, 하나님께 드린 어릴 때 약속을 지키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경은 목사

약력=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총회신학대학원 부설 박사원 졸업,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원 명예 기독교교육학 박사. 기하성 경남지방회장 역임. 현 아바드리더시스템 교육원장,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담임목사.


▒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아바드리더시스템’은
출애굽 속 이스라엘의 신앙 성장 반영한 양육 과정

2006년을 마무리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주셨다. “2007년을 교육시키는 해로 정하라.” 그래서 그해 표어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해’(행 2:42)로 정하고 아바드리더시스템을 만들어 성도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아바드리더시스템은 아바드 새가족반, 성장반, 핵심반, 청지기반, 비전반, 용사반, 사역반 등 총 7단계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각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신앙의 단계적 성장을 반영한 것이다.

아바드리더시스템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함으로써 성도를 용사로 세우는 데 있다. 그 목적대로 아바드리더시스템으로 체계적으로 교육하자 성도들의 원망과 불평이 점점 사라졌다. 한 사람, 한 사람 주의 종과 교회를 위하는 용사로 변화돼 갔다.

아바드 성장반에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가르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는 어떤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만들어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절하며 섬긴다.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그 이름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 나무나 돌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도 한다. 어떤 나무는 땔감으로 쓰고 어떤 나무는 신상을 만든다. 어떤 돌은 건축물에 사용하고 어떤 돌은 신상을 만드는 데 쓴다. 한낱 수공물을 신으로 섬기며 저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참 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시 115:4~8) 왜 그런가. 우상은 한낱 수공물에 불과할 뿐 그 안에는 생기가 없기 때문이다.(렘 10: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애굽 온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단번에 구원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상천하지에 유일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다.

애굽에 내리신 10가지 재앙 가운데 첫 번째가 ‘피 재앙’이다. 나일강은 애굽인들의 생명의 원천이자 풍요의 원천이다. 하피(Hapi)는 그 나일강의 신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심으로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다스리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애굽의 라(Ra)는 광명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 온 땅을 3일 동안 흑암 가운데 있게 하셨다. 이시스(Isis)는 생명의 신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자 죽음의 재앙으로 애굽의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와 여종의 장자,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는 여호와 하나님임을 나타내셨다.(출 12:12)

신명기 4장 3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내리신 재앙에 대해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는 우상들이 결코 참 신일 수 없다. 참 신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44장 6절의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상천하지에 우리가 섬겨야 할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사 43:10~11)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5024&code=231112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