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
말구유는 낮아짐, 십자가는 희생
그 둘이 우리에게 삶의 기준 제시
큰 교회들 ‘포만감’ 빠져 욕먹는 것
“‘덜 논리적이면서 더 사랑하라’. 저의 좌우명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19일 경기도 분당에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58) 담임목사를 만났다. 17년 전 분당의 송림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목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교인 수는 30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2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고 분당우리교회가 성장만 쫓아가는 대형교회는 아니다. 그는 지난 7년간 언론 인터뷰도 아예 하지 않았다. 본지도 수차례 요청했지만 매번 사양했다. 주일 설교를 제외하면 그렇게 ‘묵상과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7년만의 첫 인터뷰였다.
이찬수 목사는 “사랑의교회를 일구었던 고(故) 옥한흠(1938~2010) 목사의 영적 설교와 가장 많이 닮은 후계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주일 설교 때마다 자신의 부끄러움과 욕망, 두려움과 나약함을 교인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털어놓는다. 오죽하면 95세인 어머니와 아내가 “목사가 그렇게까지 벌거벗을 필요가 있나?”라고 물어올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찬수 목사의 설교 영상은 유튜브와 팟캐스트, 각종 SNS상에서도 순위권을 다툰다. 그가 목사의 권위, 남들의 이목, 목회자의 체면을 과감히 뿌리치고 ‘적나라한 고백’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더 깊은 영성의 뿌리라도 있는 걸까. 그걸 묻고자 분당우리교회 드림센터 8층의 교역자실 방문을 두드렸다.
이찬수 목사의 책상 위에는 글귀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스도의 시작은 말구유였으며, 끝은 십자가였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영성가였던 본 회퍼(1906~1945)의 글귀였다. 이 목사는 “이번 성탄에 제가 계속 묵상하는 포인트다”고 했다.
-말구유와 십자가, 무슨 뜻인가.
“본 회퍼는 세상에서 힘 있고 위대한 자들이 용기를 잃는 곳,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장소가 둘 있다고 했다. 다름 아닌 말구유와 십자가다. 그리스도의 시작과 그리스도의 끝을 말한다.”
-예수의 시작과 예수의 끝. 그 둘을 묵상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삶의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말구유는 ‘낮아짐’이다. 십자가는 ‘희생’이다. 이번 성탄에 ‘하나님은 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셨을까?’를 묵상해 보는 건 아주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말구유와 십자가를 묵상해 봤더니 어떤가.
“우리가 가시적인 성공과 큰 교회, 풍족한 물질만 좇아간다면 그 끝이 무엇이겠나. 답은 이미 100% 정해져 있다. 교만,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권태감이다. 큰 교회일수록 그런 ‘포만감’에 빠지기 쉽다. ‘내가 이만큼이나 했는데’‘이 정도나 이루었는데’하는 교만이다. 성경의 다윗은 돌 몇 개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내 유부녀를 범하고 성적인 죄를 짓는 교만과 권태에 빠졌다.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종종 교회가 욕을 먹는 뉴스가 나온다. 나는 그게 ‘포만감’ 때문이라고 본다.”
-분당우리교회도 교인 수가 상당하다. 그런 ‘포만감’이 밀려오지 않나.
“저 자신을 돌아봐도 ‘커질 때’가 위험하더라. 제 안에도 더 유명해지고 싶고, 교회를 더 키우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그런데 나는 ‘목사의 정답’을 알고 있다. 그 덕분에 내 안의 욕망과 싸워볼 수가 있다. 저항할 수가 있다.”
-‘목사의 정답’이 뭔가.
“목사는 이래야 하고, 목사는 이걸 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삶의 기준’이다. 제가 사랑의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옥한흠 목사님이 그걸 가르쳐 주셨다. 목사의 정답은 물질적인 목표를 세우고, 사람 많은 교회 세워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목사의 정답은 ‘예수를 닮아감’에 있다고 하셨다. 옥 목사님은 ‘말구유에서 시작해 십자가에서 끝나는 게 목사의 삶’이라고 일러주셨다. 그게 ‘목사의 정답’이다. 만약 대형교회는 성공했고, 작은 개척교회는 실패한 거라면 예수님이야말로 낙오자가 아니겠는가.”
이찬수 목사는 매일 새벽 3시, 혹은 4시에 일어난다. 교회를 개척한 뒤부터 지금껏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홀로 기도와 예수 말씀을 묵상한다. 그에게는 일종의 ‘수도원’이다. 자신의 욕망과 나약함을 고백하는 시간이자, 하늘에 도움을 청하는 시간이다. 이 목사는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추구한다. 그게 죄성을 가진 인간의 한계다. 그럼에도 인간은 둘로 나뉜다. 그 욕망에 저항할 힘이 있는 사람과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이다”고 강조했다.
-욕망에 대한 저항이 쉽진 않다.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첫째 ‘정답’을 알아야 한다. 제게는 ‘시작은 말구유, 끝은 십자가’라는 정답지가 있다. 가령 아내가 아닌,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가정하자. 이 여자랑 밀애를 나누는데 들키지 않으리란 걸 100% 보장받았다고 치자. 그럴 때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딘가 불편하다. 저항을 하게끔 돼 있다.”
-저항을 해도 힘이 모자라면 어떡하나.
“본능은 밀애를 즐기라고 하고, 정답은 저항하라고 말한다. 저항할 힘이 모자랄 때도 있다. 그럴 때 기도를 하는 거다. 둘째, 정답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유혹이 있습니다. 이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한테는 이길 힘이 없으니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이렇게 간구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제게 이 사람을 용서해 줄 힘이 없으니, 그 힘을 주십시오’라고 간구한다.”
-간구하면 어찌 되나.
“정답을 가지고 싸우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실제 기도를 해보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걸 경험한다. 저는 전형적인 새벽형 인간이다. 교회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살려준 게 ‘새벽’이다. 전날 복잡한 일을 만나고, 마음에 상함이 일어나고,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지 않나. 그래도 매일 새벽에 일어난다. 그 새벽에 기도하면 분노의 감정이 치유된다. 그런 신비스러운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마음의 평안, 나는 그걸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이에게 내리는 은혜라고 본다. 그런 뒤에 출근하면 부목사들이 깜짝 놀란다. 하루 전날 힘들어하던 얼굴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밤사이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하고 물어올 정도다.”
-설교할 때 자기 내면을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어할 내용도 많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나.
“내가 적나라하게 죄를 고백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허물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목사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면 성도들이 용기를 갖지 않겠나. ‘목사도 우리랑 다를 게 하나도 없네. 그럼 우리도 목사처럼 적나라한 고백을 하면 되겠네. 그런 용기 말이다.”
25일은 성탄절이다. “예수 오심의 의미가 뭔가?”라고 묻자 이 목사는 ‘내 삶의 기준’으로 답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삶의 기준이 생겼다. 옥한흠 목사님이 말한 ‘목사의 기준’‘목사의 정답’도 예수님에게서 배운 거다. 제게 성탄의 의미는 ‘잃어버린 기준을 복구하는 날’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내가 얼마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인지 점검하는 잣대가 있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아니면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가 아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다. 대신 ‘그리스도가 내 삶의 기준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게 첫째다. 둘째는 ‘그 기준을 내가 닮아가려고 애쓰고 있는가’이다. 이 둘이 건강한 신앙생활에 대한 잣대라고 본다.”
분당우리교회 성탄 트리에는 카드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교회 안에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의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럼 다른 사람이 그 카드를 집어서 도와주는 식이다.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가 실직 상태에 처한 청소년이 있었다. ‘이 아이가 내년에 고3이 되는데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아이패드를 선물하면 좋겠다’는 내용이 카드에 담겼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다. 그렇지만 그 집을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니까 펑펑 울더라. 단지 선물이 고마워서가 아니다. ‘아, 하나님이 제 아픔을 아시는구나.’ 그게 느껴지니까 하염없이 울더라.”
분당우리교회는 5년 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긴급구호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교회 바깥의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웃을 5년째 지원하고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도 결국 힘겨울 때 목돈이 없어서 발생한 것 아닌가.” 긴급구호뱅크는 목돈이 필요한 이에게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껏 1330명에게 17억9400만원을 지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때 벽에 걸린 액자 속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서 15장31절)’ 이 목사는 “기독교는 죽는 종교다. 말구유에서 시작해 십자가로 끝나는 종교”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가웠다. 말구유와 십자가, 그 둘을 이으면 길이 생긴다. 우리가 그 길에 발을 디딜 때 비로소 예수를 만난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