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시끄럽게 한 일련의 사건으로 한국교회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지고, 덩달아 하나님 말씀도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내외 여건도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비길 정도로 녹록지 않다. 교회도, 시국도 문제가 적지 않은 ‘총체적 난국’이다. 경기도 성남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인 저자는 “하나님은 한국교회와 한국을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을 굳게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믿음의 근거는 ‘요한계시록’ 말씀이다. 저자는 부족함 많은 자신을 하나님이 떠나지 않듯, 문제 많은 한국교회 역시 주님이 떠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또 “나처럼 문제 많은 우리나라도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이것이 믿어져야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며 각 교회와 개인에게 친히 말씀하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 요한계시록은 묵시와 예언, 상징으로 가득하다. 시한부종말론을 퍼뜨리며 혹세무민하는 여러 이단이 종종 이를 왜곡해 인용한다. 이처럼 해석하기 민감한 내용을 저자가 다룬 건 이를 읽고 지키는 사람에게는 복이 약속돼 있기 때문이다.(계 1:3)
책은 저자가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교회 강단에서 설교한 요한계시록 강해를 묶은 것이다. 그는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가 종말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단언한다.(계 1:1)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곧 재림할 주님을 증거하는 책이라서다. 그런 면에서 휴거 666 바코드 베리칩 14만4000명 등 종말의 상징을 풀이하고자 요한계시록을 읽는 건 올바른 독법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재림의 때가 아닌, 교회와 성도가 그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더 무게를 둔다.
저자는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상황과 하나님의 메시지를 비교하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되새길 점을 꼼꼼히 짚는다. 당시 소아시아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핍박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회엔 각종 이단이 난무했다.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믿음을 지킨 일곱 교회의 수고를 인정하고 격려한다. 동시에 질책도 아끼지 않는다. 박해 속에서 옳은 교리를 지켜낸 에베소 교회엔 ‘처음 사랑을 잃었다’고 무섭게 질타한다. 거짓 사도에게 진리를 수호하는 일도 긴요하지만, 그저 판단만 하는 무서운 교리주의자가 되는 것도 경계하라는 것이다.
반면 우상숭배의 중심에서 믿음을 선포해온 버가모 교회엔 지나친 관용을 지적한다. 성도라면 ‘세상에선 세상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유혹에 적당히 타협해선 안 된다고 한다. 처음보다 나중 행위가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두아디라 교회엔 은사의 과도한 숭상을, 겉으로 신앙이 좋아 보였던 사데 교회엔 ‘실상은 죽은 것’이라고 꼬집는다. 라오디게아 교회엔 예수를 믿고도 변화 없는 성도의 미지근한 신앙 양태를 비판한다. 하나님의 연이은 지적에서 저자는 끝까지 교회를 살려보려는 주님의 안타까움과 눈물을 발견한다. 잘못된 길에서 어서 돌이키라고 호되게 질책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적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이 두 교회에서 고난의 영성과 인내를 배울 것을 주문한다. 고난받은 성도는 하늘에서 주님의 보호를 받으며 그간의 눈물을 모두 보상받는다.(계 12:15~17) 훗날의 영광을 생각한다면 고난의 때는 ‘주님 앞에 설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죽을 각오로 신앙을 지켜낼 때 역설적으로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그럼에도 각종 재앙과 마지막 심판에 관한 세밀한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위축시킨다. 한편으론 사랑의 하나님이 불신자를 심판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따를 때야 우리는 100% 정의와 100%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의롭게 살며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아니라서 낙심되는가.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우리에겐 예수란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을 품을 때 비로소 돈 명예 자존심 분노의 멍에에서 벗어나 주님의 재림을 기대할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