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개척한 함양 반석성결교회는 밀물같이 밀려드는 환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90% 이상은 세상에서 답이 없는 불치병자들이었다. 나는 부흥회를 다녀오면 열심히 아버지의 목회를 도왔다. 교회는 밀려드는 환자들과 나은 환자들로 북적였다.
1987년 어느 금요 철야기도회 때였다. 여러 환자가 있었지만, 한 남자 청년이 눈에 띄었다. 꼬챙이처럼 말라버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폐병 환자였다. 각혈도 많이 한다고 했다.
환자라는 환자는 다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청년이 가진 폐병이 큰 질병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급박한 문제였다. 게다가 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는 외로운 형편이었다. 부모님이 계셨는데 절에 다니는 시골 어른이었다.
청년은 살기 위해 부모님 모르게 하나님을 선택했고 교회에 나왔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했다. 삶의 의욕과 믿음이 점점 커졌다. 인상도 좋아졌다.
확신을 갖고 말씀을 전하는 아버지와 예수 사랑으로 섬기시며 밥까지 챙겨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청년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변해 갔다. 두 분은 ‘늦게 부름을 받았으니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사명감으로 교회를 섬기셨다.
부흥회에서 일찍 돌아올 때면 가끔 금요 철야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날도 많은 무리가 예배당에 나와 찬양하며 기도했다. 폐병 청년도 앞자리에 앉아 찬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안 좋아졌다. 평소 핏기없는 얼굴이었지만, 기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찬양하는데 괴로움만 가득해 보였다. 뜨겁게 찬양 인도를 했다. 참석자들도 화답하듯 뜨겁게 찬양했다.
그때였다. 청년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입에선 각혈이 흘러나왔다. 심장이 점점 빨라졌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교회당 안이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미국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왔던 현장이 떠올랐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딸아, 담대하라”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가 놀란 나의 마음을 붙잡아주었다.
각혈을 한 청년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폐에서 터져 나온 피가 덩어리로 변해 기도를 막았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그 청년의 입에 들어있는 핏덩어리를 뽑아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교회에서 이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우리 아버지의 목회는 그날로 끝이다.’
상황이 급박했다. 청년은 껄떡껄떡하며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핏덩어리를 빨아내고 또 빨아냈다. 어머니는 대야를 가져다가 옆에서 내가 뱉어내는 핏덩어리를 받고 계셨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여”라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20분 넘게 핏덩어리를 빨아냈다. 내 입에 핏덩어리가 들어와 씹힐 정도였다. 피비린내가 코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났다.
어느 순간 청년의 입에서는 더 핏덩어리가 나오지 않고 침이 솟아났다. “하나님, 나 이제 그만할래요. 죽어도 못하겠어요.” 하나님께 호소했다. 속이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깨어났고 폐병에서 깨끗이 치료됐다. 그 사건 후부턴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앞으로 제 생애에 어떤 환자를 붙여주셔도 감사히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나 각혈 환자만은 만나지 않게 하시고, 이런 상황이 다시는 기억나지 않게 하옵소서.”
그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 밥맛이 뚝 떨어졌다. 금식할 때 그리도 먹고 싶었던 밥 국 반찬 간식들이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날씨가 좋지 않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날 이후 선짓국은 먹지 못한다. “피는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
죽음에서 청년은 살아났지만, 부모의 핍박은 여전했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청년의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 그 완고한 부모님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우리한테는 예수 믿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대신 아들은 예수를 믿게 하겠습니다.”
청년은 집으로 들어갔고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됐다. 이후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청년이 건강을 되찾고 직장까지 잡아 새로운 삶을 살자 부모의 태도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철마다 고구마도 갖다 주고 농사지은 채소와 과일을 갖다 줬다.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펄펄 뛰던 분들인데, 시간이 지나자 누그러졌다. “저희도 마음으론 믿습니다. 제 아들이 장손인데, 예수 믿었으니 저라도 대신 제사를 지내야죠.” 그러면서도 고마운 마음은 항상 갖고 있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 가족이 지금 어디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을 잘 믿는 분들이 되셨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