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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막혀 숨 넘어가는 폐병 청년, 입으로 핏덩이 빨아내 / 홍예숙 사모의 성경적 신유의 은혜 <11>

영국신사77 2019. 9. 19. 16:35


기도 막혀 숨 넘어가는 폐병 청년, 입으로 핏덩이 빨아내

홍예숙 사모의 성경적 신유의 은혜 <11>

입력 : 2019-09-19 00:06
서울 송파구 대망교회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금요치유집회 참석자들이 두 팔을 벌려 찬양하고 있다.

아버지가 개척한 함양 반석성결교회는 밀물같이 밀려드는 환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90% 이상은 세상에서 답이 없는 불치병자들이었다. 나는 부흥회를 다녀오면 열심히 아버지의 목회를 도왔다. 교회는 밀려드는 환자들과 나은 환자들로 북적였다.

1987년 어느 금요 철야기도회 때였다. 여러 환자가 있었지만, 한 남자 청년이 눈에 띄었다. 꼬챙이처럼 말라버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폐병 환자였다. 각혈도 많이 한다고 했다.

환자라는 환자는 다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청년이 가진 폐병이 큰 질병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급박한 문제였다. 게다가 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는 외로운 형편이었다. 부모님이 계셨는데 절에 다니는 시골 어른이었다.

청년은 살기 위해 부모님 모르게 하나님을 선택했고 교회에 나왔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했다. 삶의 의욕과 믿음이 점점 커졌다. 인상도 좋아졌다.

확신을 갖고 말씀을 전하는 아버지와 예수 사랑으로 섬기시며 밥까지 챙겨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청년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변해 갔다. 두 분은 ‘늦게 부름을 받았으니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사명감으로 교회를 섬기셨다.

부흥회에서 일찍 돌아올 때면 가끔 금요 철야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날도 많은 무리가 예배당에 나와 찬양하며 기도했다. 폐병 청년도 앞자리에 앉아 찬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안 좋아졌다. 평소 핏기없는 얼굴이었지만, 기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찬양하는데 괴로움만 가득해 보였다. 뜨겁게 찬양 인도를 했다. 참석자들도 화답하듯 뜨겁게 찬양했다.

그때였다. 청년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입에선 각혈이 흘러나왔다. 심장이 점점 빨라졌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교회당 안이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미국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왔던 현장이 떠올랐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딸아, 담대하라”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가 놀란 나의 마음을 붙잡아주었다.

각혈을 한 청년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폐에서 터져 나온 피가 덩어리로 변해 기도를 막았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그 청년의 입에 들어있는 핏덩어리를 뽑아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교회에서 이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우리 아버지의 목회는 그날로 끝이다.’

상황이 급박했다. 청년은 껄떡껄떡하며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핏덩어리를 빨아내고 또 빨아냈다. 어머니는 대야를 가져다가 옆에서 내가 뱉어내는 핏덩어리를 받고 계셨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여”라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20분 넘게 핏덩어리를 빨아냈다. 내 입에 핏덩어리가 들어와 씹힐 정도였다. 피비린내가 코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났다.

어느 순간 청년의 입에서는 더 핏덩어리가 나오지 않고 침이 솟아났다. “하나님, 나 이제 그만할래요. 죽어도 못하겠어요.” 하나님께 호소했다. 속이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깨어났고 폐병에서 깨끗이 치료됐다. 그 사건 후부턴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앞으로 제 생애에 어떤 환자를 붙여주셔도 감사히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나 각혈 환자만은 만나지 않게 하시고, 이런 상황이 다시는 기억나지 않게 하옵소서.”

그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 밥맛이 뚝 떨어졌다. 금식할 때 그리도 먹고 싶었던 밥 국 반찬 간식들이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날씨가 좋지 않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날 이후 선짓국은 먹지 못한다. “피는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

죽음에서 청년은 살아났지만, 부모의 핍박은 여전했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청년의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 그 완고한 부모님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우리한테는 예수 믿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대신 아들은 예수를 믿게 하겠습니다.”

청년은 집으로 들어갔고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됐다. 이후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청년이 건강을 되찾고 직장까지 잡아 새로운 삶을 살자 부모의 태도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철마다 고구마도 갖다 주고 농사지은 채소와 과일을 갖다 줬다.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펄펄 뛰던 분들인데, 시간이 지나자 누그러졌다. “저희도 마음으론 믿습니다. 제 아들이 장손인데, 예수 믿었으니 저라도 대신 제사를 지내야죠.” 그러면서도 고마운 마음은 항상 갖고 있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 가족이 지금 어디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을 잘 믿는 분들이 되셨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홍예숙 사모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부흥회에 몰려온 소록도 사람들, 방문 집회해 달라 호소

홍예숙 사모의 성경적 신유의 은혜 <12>

입력 : 2019-09-26 00:04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 대망교회에서 개최된 금요치유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두 팔 벌려 신유의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

1987년 6월 바닷가에 있는 기도원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다. 전남 보성군 율포였던 것 같다. 나는 부흥회를 인도할 때 찬양을 많이 한다. 찬양이 은혜롭기도 하지만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께 붙들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임하셔서 붙들어주시고 집회 참석자들이 한마음이 된다.

그날 기도원 부흥회도 찬양으로 시작했다. 
5분 정도 찬양을 뜨겁게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소록도 사람들이었다. 
갈증이 난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소문을 듣고 몰려온 것이다.

부흥회에 온 소록도 사람들은 이미 한센병이 온몸에 진행된 상태였다. 
그래서 전염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자체가 부흥회의 분위기를 냉랭하게 했다. 
많은 사람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그들 옆에서 비켰다. 
빨리 상황을 수습해야만 했다. 

안수시간이 됐다. 정말 손을 얹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의 머리와 몸에 
일일이 손을 얹어 안수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도 그들을 부둥켜안을 수 있었다. 
눈에서 그들을 향한 안타까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그들의 목을 타고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 사람들도 울었다.

좀처럼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들인데 눈물이 감동시킨 것이었다. 
집회를 마치자 사람들은 소록도 사람들을 벌레 보듯 하며 서둘러 나가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기뻐했다. 
그리고 원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며 나에게 상담 요청을 했다.

원장님은 단칼에 거절했다. 
점심을 먹는데 밥알이 겉돌았다. 
애원하듯 대화를 요청했던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마치 하나님을 외면한 듯 괴로웠다. 

식사 시간의 대화는 그들에 관한 것이었다. 
또다시 오면 쫓아내 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그들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꼭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야외에서 만났다. 
아무리 예수 사랑으로 만나는 자리였지만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그중 한 사람이 마스크를 벗었다. 
입술 색도 분명치 않았고, 코도 다 문드러져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
들의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저희는 이미 이렇게 생겨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록도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병이 한참 진행된 사람들도 있고, 
 다 진행되어서 일반인과 모양만 조금 다를 뿐 
 접촉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와서 집회를 열어주세요.” 
동행한 원장님이 노발대발했다.

“이 사람들이 우리 강사님을 당신과 같이 되게 하려고 작심했군. 당장 나가시오!”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들의 말을 무 자르듯이 잘라버렸다. 
그리고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 길로 숙소에 들어갔다. 
다 잊고 싶어서 잠을 청했다. 

꿈에서 예수님이 나를 어루만져 주셨다. 
내 영과 몸이 아까 본 한센인들보다 더 더러워 보였다. 
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하나님, 제가 한센병이네요. 
 누가 치료해 주겠습니까. 
 현대 의술로도 안 됩니다. 
 돈으로도 안 됩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저녁 식사를 거르고 조금 일찍 예배실에 들어갔다. 
아, 그런데 거기에 그 사람들이 가지 않고 있었다. 
애절한 기도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또다시 그들이 매달렸다.

“강사님, 도와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러겠다고 허락해버렸다. 
가끔 한 번씩 배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원장님이 이 사실을 알고 난리가 났다. 
호통을 쳤지만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부흥회를 마치고 2주쯤 지났을 때 
경남 함양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강사님, 다음 주에 소록도에 오시겠습니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나 약속했기에 “그까짓 거 갑시다”하고 응했다. 
부모님께는 “부흥회 다녀올게요”라고 말씀드렸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간 뒤 부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맞이하는 사람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는 않아 보였다. 
“예수님은 당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라고 외쳤지만, 
처음에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저주받은 몸이라고 자포자기한 것 같았다.

그곳 집회에선 다른 곳과 확연히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찬양을 뜨겁게 인도하자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 사람이 손뼉을 치던 중 손가락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정상인은 손가락이 떨어지면 병원에 가서 바로 접합하면 붙는다. 
그러나 소록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기가 막혀 손가락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찬양하다가 손뼉 치다가 떨어진 손가락이에요. 제발 좀 붙여주세요.” 
기적이 일어났다. 
건강한 사람처럼 떨어진 손가락이 붙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치유가 됐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간증을 두고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분명히 쓰여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죽은 자도 살아난다.

배를 타고 섬에서 나왔다. 
소록도 집회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1년간 소록도를 오가며 집회를 인도했다. 
그 기간 소록도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다른 곳과 달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홍예숙 사모

정리=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