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희한하게도 성도 수는 줄어드는데 목사와 장로의 수는 늘어난다. 분명 비정상이다. 진정한 목자가 많아진다면 성도 수가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왜 이처럼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올까. 삯꾼 목사가 많이 양산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을 위해 죽는 자는 목자이고 양을 통해 배를 불리려는 자는 삯꾼이라고 하셨다. 요즘 세상에는 모조품이 판친다. 진품은 장인의 정성으로 만들기 때문에 다량 생산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모조품은 불법적으로 다량 생산을 한다. 그래서 값이 싸고 품질이 떨어진다.
이제 한국교회도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갖게 됐다. 수많은 신학교가 생겨났고 거기서 배출되는 목사는 한 해 수천 명에 달한다. 모조품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흘린 눈물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해진 절차를 따라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고시에 합격해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다 참 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목자가 되고 안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신학이 발전하고 목사 수는 늘어나는데 왜 교회는 죽어가고 있는가. 왜 교인 수가 줄고 있는가. 이유는 한가지다. 참 목자보다 삯꾼이 더 많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목사가 되는 과정은 훨씬 까다로워졌다. 학문도 더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참 목자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개척하고 지하상가를 전전하다가 1996년 경기도 수원에 땅을 사서 교회건축을 했을 때 일이다. 그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된다.’ ‘내 교회가 생겼다.’ 그것은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얻은 기쁨이 아니라 내 건물이 생겼다는 기쁨이었다. 그 속엔 ‘이제 나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세속적 안도감이 꽉 차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삯꾼으로 목회를 하다가 훗날 처절한 실패를 하고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인지 알게 됐다.
나는 교회를 삶의 터전으로 삼으려 했다. 교회를 내 소유라고 생각했다. 성도와 교회를 위해 죽으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내가 잘살려고 했다. 그래서 삯꾼 목사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후 알게 됐다. 그것은 나의 열심과 충성이 아니라 야망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성도들이 변화될 것을 기대하며 외치던 나의 열심은 먼 산을 향해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며칠 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과거에 비하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이전에는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나를 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 분명한 선이 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이며 종놈이라는 것이다. 절대로 소유에서 기쁨을 찾지 않는다.
이것은 어디서 오는 변화일까. 바로 성령님이시다.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누구나 삯꾼이 될 수밖에 없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 속에 새로운 가치가 들어온다.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이 믿어진다.
송도가나안교회에 한 여자 집사님이 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나갔으나 기쁨 없이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벌 받는다는 두려움에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좋은 남편을 만났지만 두 번의 유산과 심한 장염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키 164㎝에 몸무게 41㎏으로 아침에 먹지도 못하니 병원에 가서 수액 맞는 게 일이었다.
그러던 그가 ‘50일의 기적’ 기도회에 참여해 성령을 받았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무슨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던 질병 문제가 사라지고 지금은 너무 살이 쪄서 살을 뺀다. 물론 가정에도 놀라운 변화가 임했다.
이것을 하신 이가 성령님이시다. 사람에 의해 목사가 되면 모조품이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목사가 되면 목자가 된다. 성령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가식이고 위선이 된다. 짝퉁이 된다. 모든 것이 세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된다. 종교를 이용한다. 한국교회는 어디에서 해답을 찾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우리 인격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