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이야기
1980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80 세계복음화 대성회- 나는 찾았네’에 참석한 여고생 이국현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약속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선교사로 가겠습니다. 제가 못 가면, 자녀라도 보내겠습니다. 자녀도 못 가면 평생 선교헌금을 하겠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 그는 아프리카 케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선교중보모임을 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바로 반태효 방주교회 목사다. 목사의 아내, 사모로 사는 동안 그는 반 목사가 선교지에 나갈 때마다 짐을 꾸려주면서 “혹시 그곳으로 부르셨는지 확인하고 오세요” 하고 당부했다. 오랫동안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2. 딸 이야기
반다혜(29)씨는 목사인 아빠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 미국에서 지냈다. 한국에 들어온 뒤,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진 그는 뉴욕대에 진학해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 잘나가는 국내 공연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회사와 공연 현장에서의 삶이 신앙생활과 충돌할 때마다 고민이 커졌다. 아빠 반 목사가 말했다. “네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보면 어떻겠니.” 선뜻 결심하지 못하던 그는 한동대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공연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 고민 끝에 2017년 4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로 떠났다. 37년 전, 엄마가 하나님에게 한 약속이 딸을 통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다혜씨는 지난해 7월 귀국할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20대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나이로비의 선교지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보낸 500일간의 기록을 모아 ‘놀라우신 하나님’(국민북스)이라는 책을 펴냈다. 29일 서울 서초구 방주교회에서 다혜씨와 이 사모로부터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혜씨는 케냐 현지에서 학생들에게 영어와 뮤지컬을 가르쳤다. 현지인들도 타기 꺼려하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얼굴이 하얀 저를 케냐 사람들은 ‘무중구’(Mzungu·신기한 존재)라 불렀어요. 문화적 편견의 벽이 높아서 쉽게 친해질 수 없었어요.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힘들었어요.”
그런 딸을 붙들어 준 건 엄마였다. 떠나기 전 편지에 “네가 작은 창문을 통해서도 크고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듯이 네가 가는 곳은 제한돼 있고, 네가 만나는 그 땅의 사람들이 많지 않을지라도 광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고 돌아오려무나”라고 써준 엄마였다. 엄마는 언제든 딸이 전화하면 3~4시간씩 통화하며 딸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엄마의 바람은 실제가 됐다. 다혜씨는 “케냐에서 제가 알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본 것 같다”며 “다른 것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그 크신 하나님과 새롭게 교제하는 기쁨이 컸다”고 했다. 버스를 놓쳤을 때도, 비가 너무 와서 움직이기 어려울 때도 의지할 건 하나님뿐이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로 응답해주셨다.
하나님은 새로운 꿈도 주셨다. 그는 중학생들과 6개월간 연습한 뮤지컬 ‘유린타운’을 학교에서 공연했고, 놀랍게도 그 공연을 케냐 국립극장에서 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이들의 변화를 본 다혜씨는 공연과 교육을 제대로 배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지난 3월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 예술교육 전공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가 떠날 때 “거길 왜 가냐”며 말렸던 친구들, 심지어 크리스천 친구들조차 이렇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놀라워했다. 다혜씨는 “하버드에 붙었다는 사실보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 소망을 품게 됐고 그걸 이뤄주셨다는 게 너무 기쁘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은 그 시기에 따라 하나님을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나에게 가라고 하시는 분”이라며 “케냐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만났던 것처럼, 하버드에서도 그렇게 더 깊게 만나주시려고 보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