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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12년의 가르침 "대충하면 빚이 돼 돌아온다" /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아마존 생존기' 펴낸 박정준씨

영국신사77 2019. 4. 15. 15:12

[아무튼, 주말] '아마존' 12년의 가르침 "대충하면 빚이 돼 돌아온다"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 입력 2019.04.13 03:00 | 수정 2019.04.13 10:07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아마존 생존기' 펴낸 박정준씨

    빡빡한 최대 기업 아마존 생존기
    정답 잘 맞힌 서울대 출신 소통 부족해 면접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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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에서 뛰쳐나와 초원을 달리는 심정이랄까요.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상에 신나 있는….” ‘아마존’이란 살벌한 정글에서 터득한 생존법으로 1인 기업에 도전한 박정준씨는 매일 설렌다고 했다. 춤추듯 일하러 갔다는 베이조스 회장처럼.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화이트보드로 사방이 둘러싸인 방이었다. 밀폐된 방에 한 인생을 압축해 놓고 면접관 다섯 명이 돌아가며 한 시간씩 그 인생을 정교하게 해부했다. 장장 5시간의 면접이 끝났을 때 면접관이 복음 같은 한마디를 뱉었다. “내가 졌어(You beat me).”

    그렇게 스물세 살 한인 청년 박정준(38)씨는 2004년 ‘아마존’ 시애틀 본사에 입성했다. 전자상거래로 출발해 클라우드·의료·우주개발 등 다방면으로 확장한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기업. 지난 1월 시가총액 세계 1위(당시 7967억달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회사는 아니다.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회장의 쥐어짜는 경영 스타일 탓에 ‘빡센’ 회사로 악명 높다. 평균 근속 연수가 겨우 1년. 사표와 이직이 일상인 곳에서 박씨는 12년간 견뎠다. 대형서점 반스앤드노블과 동급이었던 인터넷 서점 시절부터 애플·구글·MS와 어깨 겨루는 ‘IT 업계 빅 4’로 군림하는 과정을 함께했다. 2015년 회사를 관둘 때는 가장 오래 근무한 한국계 직원이었다.

    그가 지난달 아마존 생존기를 담은 책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한빛비즈 刊)를 펴냈다. 아마존 본사에서 근무한 한국계 직원이 쓴 첫 책이다. 요즘은 시애틀에서 1인 기업 ‘이지온글로벌’을 운영하며 아마존을 통해 한국산 유아용 놀이 매트를 미국 시장에 판다. 아마존에서 배운 ‘미래’와 놀이 매트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우리가 한 결정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We are our choices)’. 베이조스 회장이 즐겨 쓰는 사르트르의 명언인데, 아마존 정신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깨닫자 아이러니하게도 아마존을 떠날 수 있었어요.” 지난 8일 서울에서 만난 그가 말했다. 세 아이 아빠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그가 아마존의 혹독한 경영 철학을 자기 삶에 대입해 퇴사하고 ‘나’를 찾은 과정을 들었다.

    ‘겜돌이’, 아마존의 문을 열다

    시애틀의 차고에서 아마존을 시작한 베이조스 회장은 문짝으로 책상을 만들었다. 이른바 ‘도어데스크(door desk)’. 아마존의 도전과 절약 정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직원은 모두 이 ‘문짝 책상’ 에 앉아 ‘IT 업계 사관학교’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강도 업무를 한다.

    ―아마존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내로라하는 천재가 몰리지만 천재라고 해서 무조건 뽑는 곳도 아니다. 적당한 인물이 없으면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워 놓기도 한다. 나는 일본 친구 추천으로 면접을 봤다. MS 같은 유명 기업에 줄줄이 떨어져 자신감이 바닥일 때였는데 면접 당일 운이 참 좋았다. 실력이 아니라 운으로 들어갔기에 힘들다고 내 맘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래 다닌 원동력이었다.”

    ―면접 때 어떻게 했기에 합격했나.

    “당돌하게 ‘나와 아마존의 상호 이익을 위해 나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 능력을 사라는 얘기였다. 다른 면접에서 매달리듯 뽑아 달라고 했다가 떨어진 경험 때문에 애걸복걸하지 말고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려 했다. 개발자로 지원해 면접관이 말로 묻기보다는 문제를 던져 줬다. 한 시간마다 퍼즐이나 코딩 관련 한두 문제를 내주고 풀라고 했다. 그날 따라 문제가 술술 풀렸다.” 답변이 현실이 됐다. 아마존에 있을 땐 아마존이 그의 프로그래밍 능력을 썼고 아마존 플랫폼으로 사업하는 지금은 아마존이 그를 돕고 있다.

    ―미국에서 쭉 자랐나.

    “아버지(제일모직 임원 출신)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태어나 미국 국적이다.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가 중학교까지 한국 학교를 다녔다. 나보다 똑똑한 형이 한국에서 대입 재수하는 걸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고심 끝에 유학을 결심하고 서울국제학교에 진학했다. 어릴 때 게임광이었다.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 워싱턴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는데 게임이 자칫 여러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 수 있겠더라.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아 IT 기업 프로그램 개발자를 선택했다.”

    ―아마존에선 어떤 일을 했나.

    “여덟 부서에서 개발자, 마케팅 경영 분석가 등을 거쳤다. 킨들, 아마존 로컬 모바일 앱 개발에 참여했다.”

    ―아마존에서 뽑는 인재상이 궁금하다.

    “한번은 서울대 출신 한국인이 지원해서 내가 면접을 봤다. 나는 합격점을 줬는데 다른 면접관들은 불합격을 줬더라. 답은 풀었는데 과정 설명을 제대로 못 해서였다. 아마존은 골방에서 혼자 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인재를 뽑는다.”

    ―한국 직원도 많은가.

    “아마존 들어갈 때만 해도 거의 못 봤다. 서너 명 있을 때 ‘K런치’라는 모임을 만들어 수요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지금은 100명은 넘는 것 같더라.”

    ―아마존이 직원을 혹사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이다. 가장 잘 뛰는 사람 위주로 축구 국가 대표팀을 꾸리듯 제일 일 잘하는 사람들로 꾸리는 거다. 경쟁과 긴장이 심할 수밖에 없다. 개발자로 있을 때 한두 달에 한 번씩 당번이 돌아오면 일주일 내내 삐삐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긴급 상황이면 삐삐 알람이 울리고 15분 안에 해결해야 했다. 최첨단 IT를 다루는 회사에서 삐삐라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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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모험하겠습니다.” 크지 않지만 각자 자기 몫의 지구를 떠받치는 것, 박정준씨가 아마존 밖에서 찾은 새로운 길이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아마존이 진짜 구두쇠 기업인가.

    “구글 같은 IT 기업은 셰프를 데려와 점심을 준다는데 아마존엔 공짜 점심이 없다. 전기료 아끼려 음료수 자판기 불을 꺼 놓는다. 종이 비용 줄이려 자료를 작성할 때 여백을 최대한 남기지 말라고 한다. 사원들 불만도 있지만 절약한 돈으로 고객을 위해 투자한다. 결국 주주인 사원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아마존다운 독립을 꿈꾸다

    ―독립은 언제부터 생각했나.

    “입사 6년 차쯤 둘째가 생겨 고민이 많았다. 업무 강도는 점점 강해졌다. ‘아마존 안의 나’가 아니라 ‘세상 속의 나’로 시선을 돌려봤다. 세상 전체를 조감도로 보고 대지 위에서 내 위치를 찾아봤다. 아마존이 내 목표가 아니라 삶의 과정이란 게 보였다. 언젠가 독립할 생각을 하니 회사 다니는 시간을 도제(徒弟)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마음을 바꾸니 아마존에서 일하며 배우는 것이 수지맞는 장사 같았다.”

    ―퇴사 계획은 어떻게 세웠나.

    “‘도그푸딩(dogfooding)’ 문화가 도움 됐다. 개밥 만드는 회사에서 자기들이 만든 개밥을 테스트하기 위해 직접 먹은 데서 나온 말인데 기업이 자기 제품이나 서비스를 써보는 걸 말한다. 아마존도 도그푸딩을 강조한다. 2010년 둘째가 태어날 때 무급 육아 휴가 3개월을 쓰면서 아마존 서비스를 통해 부업을 시작했다.”

    ―무턱대고 도전하지는 않았을 텐데.

    “‘성공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돼라’는 아인슈타인 말을 좋아한다. 가치 있는 것은 결국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떠올렸다. ‘한국말’ ‘게임(비즈니스)’ ‘아빠’ ‘아마존’. 넷의 교집합에 나를 두고 보니 한국산 유아용 놀이 매트 사업이 보였다.”

    ―매트 사업이라니 의외다.

    “첫아이 때 한국 친구가 귀국하면서 쓰던 놀이 매트를 줬는데 참 유용했다. 한국 가정엔 필수품이지만 미국에선 구하기 쉽지 않았다. 입식 문화라 아이를 바닥에 잘 안 둔다. 그래서 미국에서 5세 미만 응급실 방문 사유 1위가 낙상이다. 한국 제조사에 연락했더니 마침 미국에 막 진출한 상황이었다. 제조사로부터 미국 아마존에서 팔 수 있는 독점 판매권을 따내 미국 소비자 취향에 맞춰 디자인을 개발했다.”

    ―계속 부업으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부업에 신경 쓰니 아마존 일에 올인하지 못해 심적 부담을 느꼈다. 어느 날 밤 고민하다가 3년 전 일기를 봤다. 경영 분석 일을 배운 다음 3년 뒤 독립하겠다는 목표가 적혀 있었다. 방황을 끝내고 퇴사를 결정하게 한 건 그 누구도 아닌 일기장 속 ‘과거의 나’였다.”

    ―아마존의 고액 연봉을 포기한 거 아닌가.

    “2004년 입사 때 연봉 7만달러, 입사 보너스 1만달러, 주식 1000주를 받았다. 이후 연봉을 밝히긴 어렵다. 퇴사 이듬해부터 아마존 재직 당시 월급과 부업을 합친 것보다 수익이 많았다.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팔리는 어린이 매트 중 우리 제품이 가장 잘 팔린다. 오늘도 100개 넘게 팔렸을 거다(웃음).”

    ―그렇게 인기가 좋은가.

    “처음엔 아시아 사람을 타깃으로 했는데 지금은 서양인이 대부분이다. 매트가 잘 팔려 거기 맞는 크기의 보호용 울타리도 판매했다. 최근엔 한국 아이들이 쓰는 접는 공부 상을 들여왔다. 한국식 좌식 육아 문화 전도사가 됐다(웃음).”

    ―후회는 없나.

    “전혀 없다. ‘최고의 기업’은 아마존의 타이틀이지 내 타이틀이 아니다. 이전엔 사람들이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명성으로 나를 본 것뿐이다. 내가 직접 가치를 제공하는 게 더 보람 있다. 베이조스 회장이 한 인터뷰에서 ‘나는 춤추는 기분으로 일하러 간다’고 말한 걸 보고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 내가 그 기분이다.”

    세 아이 아빠의 힘

    인생의 절반은 한국에서 절반은 미국에서 보냈다. 관찰자의 눈으로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게 습관이 됐다.

    ―특히 어떤 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다르던가.

    “한국은 또래 문화를 중시하고 미국은 가족 문화가 발달해 있다. 또래 문화는 수평적이지만 세대 간 교류가 부족하다. 가족 중심 문화는 수직 교류가 많아 위 세대와 아래 세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유대인이 그렇다. 세대 간에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는데 한국은 세대 간에 단절된 듯해 안타깝다. 기업도 그렇다.”

    ―아마존이 공유하는 가치는 뭔가.

    “고객 중심 가치다.”

    ―한국 기업들도 다 그렇게 외친다.

    “리더가 진짜 진심으로 그 가치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 아닐까. 예컨대 ‘소비자 리뷰’를 맨 처음 도입한 게 아마존이다. 안 좋은 평이 달리면 안 팔릴 것 아닌가. 그런데 당장 손해 보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이득이 되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또 하나, 보통 약속 장소에 10분쯤 뒤 도착할 것 같으면 ‘5분이면 도착해’라고들 하는데 ‘15분 걸린다’고 하는 게 아마존 정책이다. 그래 놓고 10분 만에 도착하면 신뢰도가 올라간다. 기술적 채무(technical debt)를 줄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 채무’가 뭔가.

    “어떤 일을 대충 처리하면 나중에 치러야 할 비용이 더 불어난다는 것이다. 당장 귀찮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완벽하게 문제를 처리하고 넘어가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이다. 한국은 대충대충 넘어가는 일이 많다. 모르는 채 대강 넘어가는 것,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 함부로 약속하는 것도 일종의 채무라고 생각한다.”

    ―채무를 쌓지 않기 위해 지금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빠 역할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아마존 합격 때가 아니라 아빠가 된 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세계 최고 갑부 베이조스 회장보다도 나를 더 좋아한다. 지금 시간을 들여 좋은 관계를 안 맺었다간 사춘기에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기술적 채무는 어마어마할 것 같다(웃음).”

    ―한국 뿌리를 종종 생각하나.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가장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언어가 다르면 안 된다고 본다. 책을 쓴 것도 아마존의 성공을 지켜본 한인 목격자로서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출판사에서 영어로 출판하자고 제의가 왔는데 안 하고 싶다. 원래 수신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느낌이 들어서다.”

    ―‘스승’ 아마존이 남긴 가르침은 무엇인가.

    “본질을 파고들라는 것이다. 놀이 매트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안전한 기반을 제공해 모험심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놀이 매트 슬로건을 ‘모든 모험은 안전한 땅에서 시작된다’고 지었다.”

    ―매트 사업이 당신의 도전에 안전한 기반을 제공하는 매트 같다.

    “매트가 최종 목표가 아니다. 안정적 수입원이 있어 책도 쓰고 아마존 상사가 시작한 인공지능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쿵푸팬더1’을 만든 존 스티븐슨 감독 측이 의뢰해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투자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계속 모험하겠다. 매트를 더 잘 파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매트 사업은 그 사람에게 넘기겠고(웃음).”

    롤모델은 아마존의 베이조스가 아니라 온라인 무료 강의 사이트 ‘칸 아카데미’를 만든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출신 살만 칸이라 했다. 금전적 성공보다 모든 이에게 최상의 교육을 하 겠다고 비영리 교육 단체를 만든 사람이다. 그도 “빌 게이츠나 베이조스 회장처럼 큰 회사를 차리기보다 내 분수에서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존 정글을 뛰쳐나온 전직 아마조니언(Amazonian·아마존 직원)이 꿈꾸는 세상.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각자가 자신 몫의 지구를 떠받치는 세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2/20190412023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