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청년시기 고생과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거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땅의 청년들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취업준비, 불안정한 주거, 학자금 대출로 인한 부채 등으로 매일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2017년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5명 중 4명이 하루 한 끼 이상을 굶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밥’을 가장 먼저 포기한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청년들이 단돈 3000원으로 한 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상가 2층에 있는 ‘청년밥상, 문간’이다. 식당이름 ‘문간’은 ‘안과 밖 사이,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지난 2일 ‘문간’에는 교복 차림의 고교생들과 30대 청년 손님이 앉아 있었다. 이들이 ‘사장님’으로 부르는 최운형(51) 목사는 1년 전만 해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견 교회를 담임했다. 2010년부터 8년간 세계선교교회에서 시무하던 그는 안정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한국에서 35만원짜리 반지하 월세방에 살며 ‘밥집’ 사장님이 됐다. 앞치마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락없는 ‘주방 아저씨’ 모습이다.
“3년 전부터 문득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예수님의 삶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회를 거듭할수록 연봉도 많아지고 안락해지고 넉넉해지자 삶에 대한 결핍과 회의가 생겼습니다. 그때 제가 설교했던 믿음의 삶, 예수님의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이문수 신부가 운영하는 ‘문간’이란 식당을 알게 됐다.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자리한 이 식당은 3000원에 김치찌개와 밥을 무한리필해주는 곳이다. 이 신부가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난한 이들이 싼 가격에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식당 ‘문간’ 1호점을 개업했다는 내용이었다.
“2호점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고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싶어 바로 신부님을 찾아갔어요. 개신교 목사가 찾아와서 2호점을 내겠다고 하니까 반신반의하더라고요. 평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1)는 말씀을 목회철학으로 삼아왔는데 신부님이 ‘문간’을 만든 목적과 일맥상통한다며 2호점을 허락해 주셨어요.”
지난해 4월 최 목사는 성도들과 가족들 만류에도 사임을 결정했다. 결심은 확고했다. “성도들이 기대하는 바른 목회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여준다면 이 사역을 이해해줄 거라 믿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고백했다.
한국으로 온 최 목사는 ‘문간’ 1호점에서 창업 정신과 조리법, 운영 방식을 전수받았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컸지요. 교인들한테는 늘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설교해 놓고, 막상 이런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 내 믿음이 바닥을 드러내더군요. 교인들에게 참 부끄럽고 미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면 틀림없이 돕는 사람을 붙여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지난해 10월 연신내 한 건물의 오래된 당구장을 보수해 ‘문간’ 2호점을 오픈했다. 개업 소식을 듣고 19년 전 부교역자로 섬겼던 홍제동 홍광교회 성도들이 봉사자로 나섰다. 동료 목회자와 후원자들은 쌀을 보내줬다.
“여러 후원의 손길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좋은 쌀들을 보내줘 청년들이 밥맛 좋다고 말합니다. 모든 분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문을 여는 ‘문간’은 김치찌개 단일메뉴만 판매한다. 사람들이 가장 질려하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3000원짜리 김치찌개는 진한 육수에 돼지고기와 두부 등을 푸짐하게 얹어 직접 끓여 나온다.
식당을 차리기 전까지 요리를 해본 적 없다는 최 목사는 “이제 제법 손맛이 난다”며 웃었다. 이어 “삼각김밥에 라면만 먹던 청년들이 김치찌개에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식당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문간’에는 혼자 밥 먹으러 오는 남자 손님들이 많다. 사장이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청년들은 고민도 털어놓는다.
“청년에 대한 특별한 사명보다 예수님 말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길에 청년들을 만나고 있어요. 우리 주변에 가난한 청년들이 많아요. 단돈 500원이 없어서 달걀을 앞에 두고 갈등하는 청년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목사인 제가 이런 청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개업 후 6개월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퇴직금 등으로 근근이 꾸려 왔는데, 두 달 전부터 커피 판매와 후원금으로 적자를 겨우 면했다.
최 목사는 주일마다 동네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담임목사 할 때보다 현장사역을 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뜻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동네 밥집을 늘려가는 것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