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영웅 조조가 간웅이 된 경계는
수많은 백성 학살한 서주행군부터
‘권력의 민간 살해’ 무관용 기억해야
권력자 불순한 야욕 경계할 수 있어
실제로 조조는 대담한 용기, 합리적 사고, 지적 우월성 등에서 후한 말의 인물들 중 ‘경쟁력 갑’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남쪽의 오와 서쪽 변방의 촉을 제외하곤 중원 대부분을 평정해 후한말의 혼란을 정리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1800여 년이나 그에 대한 혐오감을 내려놓지 않았다.
원래 청년 조조는 황건적의 난 당시 세운 탁월한 공적과 반동탁연맹 18로 맹주들 중 손견과 함께 실제 전투를 벌인 두 명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담대한 용기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청년영웅에서 간웅으로 갈리는 경계는 서주 행군부터다. 이는 아버지가 서주목 도겸의 부하로부터 살해당한 데 대한 복수의 행군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조는 백성의 시체가 쌓여 강의 흐름을 막았다고 할 정도의 학살을 저질렀다. 당시 모두가 외면했던 서주를 구하겠다며 천둥벌거숭이처럼 달려왔던 인물이 유비(劉備)다. 이로부터 짚신장수 출신 용병대장 유비는 구원자의 아이콘으로, 조조는 학살자의 아이콘으로 엇갈리면서 평생의 경쟁관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