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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조조를 용서하지 않는 중국인의 정신적 역량

영국신사77 2019. 4. 1. 19:31

[선데이 칼럼] 조조를 용서하지 않는 중국인의 정신적 역량

                                        


청년영웅 조조가 간웅이 된 경계는
수많은 백성 학살한 서주행군부터
‘권력의 민간 살해’ 무관용 기억해야
권력자 불순한 야욕 경계할 수 있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내 소설 『여류(余流)삼국지』를 놓고 사회적으로 꽤 성공한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지적은 조조(曹操)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었다. ‘조조 간웅(奸雄)론’을 견지한 내게 위대한 영웅인 조조의 면모를 보지 못한 단견을 질책한 분도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리더층 남성들이 가진 조조에 대한 큰 호감에, 실은 좀 놀랐다. 한편 이해는 한다. 조조는 실로 2세기에 살았던 20세기형 인물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치열했던 그 세기는 경쟁의 가치를 숭상했고, 경쟁에서의 승리를 선(善)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조조는 대담한 용기, 합리적 사고, 지적 우월성 등에서 후한 말의 인물들 중 ‘경쟁력 갑’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남쪽의 오와 서쪽 변방의 촉을 제외하곤 중원 대부분을 평정해 후한말의 혼란을 정리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1800여 년이나 그에 대한 혐오감을 내려놓지 않았다.
 
원래 청년 조조는 황건적의 난 당시 세운 탁월한 공적과 반동탁연맹 18로 맹주들 중 손견과 함께 실제 전투를 벌인 두 명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담대한 용기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청년영웅에서 간웅으로 갈리는 경계는 서주 행군부터다. 이는 아버지가 서주목 도겸의 부하로부터 살해당한 데 대한 복수의 행군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조는 백성의 시체가 쌓여 강의 흐름을 막았다고 할 정도의 학살을 저질렀다. 당시 모두가 외면했던 서주를 구하겠다며 천둥벌거숭이처럼 달려왔던 인물이 유비(劉備)다. 이로부터 짚신장수 출신 용병대장 유비는 구원자의 아이콘으로, 조조는 학살자의 아이콘으로 엇갈리면서 평생의 경쟁관계가 시작된다.  
     
선데이칼럼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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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조는 민생을 우선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한번은 행군을 하며 보리밭을 지날 때 자신의 말이 보리밭을 밟자 말을 참수하고, 자신도 자결하겠다며 수선을 피운 뒤 머리카락을 자르는 퍼포먼스로 ‘민생 코스프레’를 벌였다. 『삼국지연의』에선 ‘밟아줘야 잘 크는 보리밭 좀 밟았다고 이런 쇼를 하다니, 쯧쯧’하는 조롱의 서사로 그의 허황한 민생의식을 꼬집었다.
 
중국 고전문학이나 사극에선 ‘용서 못 할 권력자’를 표현하는 일관된 공식이 있다. 백성을 약탈·학살하거나 전쟁 중 백성을 방패 삼아 성 앞에 세우는 권력자다. 후한말 최대 세력이었던 원소 진영 멸망의 필연성을 상징하는 묘사도 기성의 마지막 전투에서 백성들을 군대 앞에 방패막이로 세운 장면이다. 숱한 전쟁의 역사로 점철된 중국에선 백성 학살에 가담한 간웅을 기억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권력자들을 경계하며 ‘어떤 경우에도 백성의 생명에 손을 대선 안 된다’는 경고의 표지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서도 지난 세기 조조 재평가 작업이 일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조조를 용서하지 않는 끈질김이 중국인의 정신적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법정에 선 이후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다시 한창이다. 5월 21일 발포 명령자를 둘러싼 공방은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끝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 20여 년 전 나는 12·12 및 5·18 사건 법정을 취재기자로 지켰다. 그 법정에선 때로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묘사한 아우슈비츠 전범 아이히만을 세운 예루살렘의 법정, 피고의 죄상보다 유대인의 비극에 몰입했던 그 형사재판을 보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아렌트처럼 이를 비판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내게도 5·18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해 그 실체를 밝히는 일과 함께 피해자들의 한도 표출되어야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권력의 민간 살해’라는 역사적 사건이 형사 판결로 갈무리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여전한 의문인 5·18 피해에 대한 진실 규명은 동시대인인 우리의 숙제이고, 살해에 가담한 권력자들에 대한 단죄의식과 무관용의 기억을 천년 이상 지속해야 이후 나타날지 모를 권력자들의 불순한 야욕을 경계할 수 있을 거다. 다만 지금 여야정치권 혹은 일부 정략적 세력들이 5·18을 현재의 정치적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차시환혼(借屍還魂)’의 정략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없는지 철저히 경계하면서 말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