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근처의 요나3일영성원은 나의 저서를 읽은 독자들의 발길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매일 집회를 인도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장소를 더 넓혀야 한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곧바로 새 성전을 예비해 주셨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역한 시간은 불과 두 달뿐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묘했다. 인왕산 기슭 아파트 상가에 세워진 교회가 후임자를 찾고 있다는 국민일보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얼마든지 모른 채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인데 우연히 광고를 보게 하시고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요나3일영성원에 걸려 있는 요나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그린 대형 성화 앞에서 그림 내용을 설명하는 이에스더 원장(왼쪽)과 장덕봉 원목.
당장 전화를 걸었다. 강남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재직하다가 이곳 상가건물 1층의 반쪽을 분양받아 교회를 개척했는데 2년이 지나도록 성도가 없어 새 목회지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의 목사님이셨다.
그런데 인왕산 아파트 상가를 가 본 순간 ‘기도의 요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파트 위에서 보면 지하 2층이라 아무리 크게 기도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도로상에서 볼 때는 1층에 위치해 출입이 자유로운 특이한 건물이었다. 게다가 옆에 인왕산 등산로가 있어 산의 풍취와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는 환경조건은 나를 아주 흡족하게 했다. 더구나 도심 한복판이어서 이만한 기도처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이제 책임져 주십시오.”
기도의 용사들을 모아 집중 비상기도에 돌입했다. 며칠 후 그 교회 목사님께서 1년 동안이나 약을 달인 것이라며 내게 보약을 전해주는 꿈을 꾸었다. 이것은 ‘벧엘의 약속’과 같은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지나치게 서두를 때가 많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도 내 원대로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이 일치될 때 축복의 문은 활짝 열린다. 준비된 것은 없었어도 마음이 평안했다.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선지자를 대접함으로 받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잔금을 다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집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목사님 덕분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지 열흘 만에 모든 잔금을 순조롭게 지불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입당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최적의 장소를 예비해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 사역은 결코 탄탄대로만 있지 않았다. 어디선가 돌을 던지는 무리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바로 세상에 속한 이들이다.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선지자를 대접함으로 받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잔금을 다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집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목사님 덕분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지 열흘 만에 모든 잔금을 순조롭게 지불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입당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최적의 장소를 예비해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 사역은 결코 탄탄대로만 있지 않았다. 어디선가 돌을 던지는 무리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바로 세상에 속한 이들이다.
복도를 경계로 38선이 그어진 것처럼 안쪽은 요나3일영성원이었고, 바깥쪽은 무도체육관이었다. 이전 교회에서는 낮 예배라고는 주일뿐이었기 때문에 자기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난데없이 영성원이 들어오면서 매일 낮 집회를 하게 되니 이 광경이 체육관 입장에서는 몹시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한번 만나자는 체육관 관장의 청에 따라 사위인 장 목사가 만나 보았다. 처음부터 영적인 싸움이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여러 반을 운영하는 그들로서는 얘기할 자격이 없는데도 이전 상황만 거론하며 우격다짐으로 우리를 몰아세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찬송과 기도 소리가 시끄러운 소음으로만 들린다. 그래서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하면 기도 소리보다 더 큰 기합을 질렀다. 설교 시간에도 고의로 큰 음악을 틀면서 예배를 방해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한번 만나자는 체육관 관장의 청에 따라 사위인 장 목사가 만나 보았다. 처음부터 영적인 싸움이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여러 반을 운영하는 그들로서는 얘기할 자격이 없는데도 이전 상황만 거론하며 우격다짐으로 우리를 몰아세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찬송과 기도 소리가 시끄러운 소음으로만 들린다. 그래서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하면 기도 소리보다 더 큰 기합을 질렀다. 설교 시간에도 고의로 큰 음악을 틀면서 예배를 방해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1998년 큰아들이 침신대를 졸업하던 날 두 딸, 두 손녀와 모처럼 자리를 함께했다.
체육관과의 갈등은 악화일로였다. 매일 총성 없는 전쟁터에 선 느낌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며 그저 기도만 하던 어느 날 “저곳마저 네가 요나3일영성원 성전으로 삼으면 되지 않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속에서 불타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는 무릎 꿇는 것뿐이었다. 기도하면 기쁨의 샘이 흘러 넘쳤고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는 약속의 주머니가 풍성하게 채워져 있음을 느꼈다.
“하나님이 조만간 체육관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있는 동안이라도 잘 있다 가기 바랍니다.”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특별비상기도를 선포하고 단식하며 기도했다. 승리의 화살은 문제의 과녁 중앙을 관통했다. 5개월간의 지루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성령님께서 아파트 조합 사무실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셨다. 그들과의 끈질긴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매각할 것을 약속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었다.
“네가 밟는 곳마다 네 땅이 되리라.”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공격자들이 마지막 분풀이를 위해 꼬리를 칠 때 철저하게 대비하지 아니하면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최종 시한이 다가올수록 험악한 인상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문을 부수고 협박을 하며 도전해 와도 기도로 당당히 이길 수 있었다.
462.8㎡(140평)의 성전을 기도로 얻었지만 이곳을 최대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또 기도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최고의 인테리어 전문가를 동원해 모든 시설을 최고로 지을 수 있는 은혜와 물질을 허락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는 무릎 꿇는 것뿐이었다. 기도하면 기쁨의 샘이 흘러 넘쳤고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는 약속의 주머니가 풍성하게 채워져 있음을 느꼈다.
“하나님이 조만간 체육관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있는 동안이라도 잘 있다 가기 바랍니다.”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특별비상기도를 선포하고 단식하며 기도했다. 승리의 화살은 문제의 과녁 중앙을 관통했다. 5개월간의 지루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성령님께서 아파트 조합 사무실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셨다. 그들과의 끈질긴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매각할 것을 약속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었다.
“네가 밟는 곳마다 네 땅이 되리라.”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공격자들이 마지막 분풀이를 위해 꼬리를 칠 때 철저하게 대비하지 아니하면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최종 시한이 다가올수록 험악한 인상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문을 부수고 협박을 하며 도전해 와도 기도로 당당히 이길 수 있었다.
462.8㎡(140평)의 성전을 기도로 얻었지만 이곳을 최대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또 기도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최고의 인테리어 전문가를 동원해 모든 시설을 최고로 지을 수 있는 은혜와 물질을 허락하셨다.
고생한 끝에 얻은 성전에 아름다운 예배실과 숙소, 방음장치를 한 기도실, 카페 분위기의 식당, 청결한 화장실과 휴게공간을 만들었다. 2000년 12월 28일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을 모시고 헌당예배를 드렸다.
행동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1층에서 멈추지 않으셨다. 1, 2층으로 나눠진 건물의 1층을 확보한 다음 이제 2층 학원가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듯이 매일 돌기 시작했다. 1층 전체를 주실 때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기대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이후 5년간 계속됐고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2층을 소유했던 공동 주인 세 사람이 서로 갈등이 생기면서 건물을 빨리 팔았으면 하는 상황이 됐고 오히려 내게 사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계약이 이루어진 후 입주해 있던 학원의 항의에 잠시 곤혹을 치러야 했다. 자기네가 임차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이 계약은 성립되지 않는다며 방해라도 놓을 태세였다. 게다가 연말까지 잔여 계약 기간으로는 학원을 운영할 수 없기에 충분한 기간 연장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기적이 일어났다. 그토록 강력하게 항의하던 미술학원 원장이 찾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어요. 축하해주세요. 우리 학원이 독립 건물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루하게 끌어 오던 분쟁이 모두 마무리되자 긴장이 풀렸다. 게다가 숨 가쁘게 잔금을 치르고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지불한 상태라 이제 좀 쉬고 싶었다. 물질도 바닥난 상태였기에 좀 더 때를 기다리면서 여유를 가지고 다음 일을 준비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행동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1층에서 멈추지 않으셨다. 1, 2층으로 나눠진 건물의 1층을 확보한 다음 이제 2층 학원가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듯이 매일 돌기 시작했다. 1층 전체를 주실 때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기대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이후 5년간 계속됐고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2층을 소유했던 공동 주인 세 사람이 서로 갈등이 생기면서 건물을 빨리 팔았으면 하는 상황이 됐고 오히려 내게 사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계약이 이루어진 후 입주해 있던 학원의 항의에 잠시 곤혹을 치러야 했다. 자기네가 임차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이 계약은 성립되지 않는다며 방해라도 놓을 태세였다. 게다가 연말까지 잔여 계약 기간으로는 학원을 운영할 수 없기에 충분한 기간 연장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기적이 일어났다. 그토록 강력하게 항의하던 미술학원 원장이 찾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어요. 축하해주세요. 우리 학원이 독립 건물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루하게 끌어 오던 분쟁이 모두 마무리되자 긴장이 풀렸다. 게다가 숨 가쁘게 잔금을 치르고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지불한 상태라 이제 좀 쉬고 싶었다. 물질도 바닥난 상태였기에 좀 더 때를 기다리면서 여유를 가지고 다음 일을 준비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심혈을 기울인 영성원 내부 인테리어 공사는 1년이나 걸렸다. 이에스더 원장이 벽에 걸린 김용성 화백의 대형 성화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기도처가 빨리 세워져 기도에 목말라하는 영혼들을 만나길 원하셨다. 2006년 7월 1일부터 영성원 내부 설계를 하고 인테리어 자재를 사들였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건축을 재촉하실까 하는 큰 의문이 들었다. 푹푹 찌는 한여름 무더위 속에 서둘러 내부 공사를 하도록 밀어붙이시는 의도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난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임에도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손질하지 않아도 될 최고의 기도 시설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단식하며 기도하는 분들의 건강을 생각해 새집증후군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재료를 사용했다. 하나님께서는 게르마늄 광산을 운영하는 한 권사님을 보내셔서 어마어마한 양을 실어오게 하셨다.
바닥은 천연 대나무로 깔고 모든 벽면은 태평양 심해에서 캐낸 규조토인 산호석으로 처리했다. 복도와 천장에는 예수님 그림으로 유명한 김용성 화백이 대형 성화를 그려 단식관의 이미지가 전달되도록 했다. 한두 달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1년이나 걸렸다.
우유배달에서 석재공장 경영자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집사님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좋은 돌을 찾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조각해 외벽에 붙였다. 모든 자재는 최상의 품질로, 공사자는 최고의 명장을 부르다 보니 재정적 부담이 밀려왔다.
그러나 휠체어에 의지한 채 부산에서 서울까지 봉고를 타고 한밤중에 도착한 여전도사님이 나의 두 번째 책 ‘3일 기도의 영적파워’를 보면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명령으로 ‘옥합 300만원’을 가져왔던 일, 약국을 경영하면서 딸의 혼수예물 준비를 위해 모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더 필요하시기에 가져 왔다며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권사님 등 어려운 가운데서도 뜨거운 은혜와 감동으로 자신의 작은 것을 주님의 손에 올렸던 과부의 두렙 돈과 어린아이의 도시락처럼 오병이어의 역사가 계속 따랐기에 공사는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임을 완공 후에 깨닫게 된다. 2007년 7월 14일. 감격스러운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미국발 금융위기로 건축회사가 도산하고 모든 원자재 값이 폭등했다. 하나님이 공사를 서두르도록 하신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현실이 어렵다고 피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없다. 고난을 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치밀하신 섭리 앞에 무릎 꿇고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위기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이 위기 때 사람은 위로하거나 도울 힘이 없기 때문에 동정할 뿐이다. 그러나 능력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자이시다. 그것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원제작자이시기에 인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꿰뚫어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선을 고정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이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보인다. 단식은 나를 드리는 또 다른 예배의 표현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몸을 드려 부르짖는 기도를 귀담아 들으시는 것이다.
최고의 친환경적 시설을 갖춘 요나3일영성원은 숱한 신앙인들의 영적 성장의 산실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단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숱한 이적과 기적의 간증이 쏟아졌다. 특히 도심에 자리한 기도의 요새로 인식되어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응답을 받고 치유를 경험한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머리에 떠오르는 두 분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난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임에도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손질하지 않아도 될 최고의 기도 시설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단식하며 기도하는 분들의 건강을 생각해 새집증후군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재료를 사용했다. 하나님께서는 게르마늄 광산을 운영하는 한 권사님을 보내셔서 어마어마한 양을 실어오게 하셨다.
바닥은 천연 대나무로 깔고 모든 벽면은 태평양 심해에서 캐낸 규조토인 산호석으로 처리했다. 복도와 천장에는 예수님 그림으로 유명한 김용성 화백이 대형 성화를 그려 단식관의 이미지가 전달되도록 했다. 한두 달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1년이나 걸렸다.
우유배달에서 석재공장 경영자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집사님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좋은 돌을 찾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조각해 외벽에 붙였다. 모든 자재는 최상의 품질로, 공사자는 최고의 명장을 부르다 보니 재정적 부담이 밀려왔다.
그러나 휠체어에 의지한 채 부산에서 서울까지 봉고를 타고 한밤중에 도착한 여전도사님이 나의 두 번째 책 ‘3일 기도의 영적파워’를 보면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명령으로 ‘옥합 300만원’을 가져왔던 일, 약국을 경영하면서 딸의 혼수예물 준비를 위해 모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더 필요하시기에 가져 왔다며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권사님 등 어려운 가운데서도 뜨거운 은혜와 감동으로 자신의 작은 것을 주님의 손에 올렸던 과부의 두렙 돈과 어린아이의 도시락처럼 오병이어의 역사가 계속 따랐기에 공사는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임을 완공 후에 깨닫게 된다. 2007년 7월 14일. 감격스러운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미국발 금융위기로 건축회사가 도산하고 모든 원자재 값이 폭등했다. 하나님이 공사를 서두르도록 하신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현실이 어렵다고 피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없다. 고난을 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치밀하신 섭리 앞에 무릎 꿇고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위기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이 위기 때 사람은 위로하거나 도울 힘이 없기 때문에 동정할 뿐이다. 그러나 능력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자이시다. 그것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원제작자이시기에 인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꿰뚫어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선을 고정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이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보인다. 단식은 나를 드리는 또 다른 예배의 표현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몸을 드려 부르짖는 기도를 귀담아 들으시는 것이다.
최고의 친환경적 시설을 갖춘 요나3일영성원은 숱한 신앙인들의 영적 성장의 산실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단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숱한 이적과 기적의 간증이 쏟아졌다. 특히 도심에 자리한 기도의 요새로 인식되어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응답을 받고 치유를 경험한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머리에 떠오르는 두 분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요나3일영성원 스텝과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에스더 원장을 중심으로 기도가 메말라 찾아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도록 돕고 있다.
요나3일영성원 설립 초기에 오신 K집사는 회사가 적자 속에 허덕이고 부동산과 증권의 부실투자로 크게 고심하던 중 갑자기 군 시절 다친 뇌 후유증까지 발생했다. 몸과 마음, 물질이 모두 힘든 상태에서 우리 영성원을 찾아오게 되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온 K집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50대 후반이라 새 일을 시작하기엔 무모해 보였다.
나는 1000일을 기도하라고 했고, K집사는 순종했다. 그는 매일 출근하듯 집회시간에 맞춰 나와 뜨겁게 기도했다. 어렵던 회사는 IMF를 거치면서 결국 문을 닫았고 투자했던 자산은 모두 반토막 났으며 매일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에 아찔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입이 심하게 돌아가 입원을 했다. 담당의사는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면 더 악화된다고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 처방을 내렸다. 그에게 찬송가 100곡을 암송해 예배의 찬양 인도자가 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를 역시 ‘아멘’으로 순종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0여년이 지나도록 그는 요나3일영성원의 찬양 인도자로서 평신도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상대를 나온 대학 동기들이 정·재계의 화려한 직장을 은퇴한 후에 설 자리가 없어 고민하는데 73세의 나이에 건강을 회복하고 200여곡의 찬송을 암송, 매일 10곡씩 이곳서 찬양을 인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감격해 하며 기뻐한다.
매일 열정적으로 찬양을 인도하는 그를 보며 은혜 받은 성도들이 ‘찬양 전도사’라는 별명을 더해 준 것은 덤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 한 젊은 가장이 영성원에 왔다. 그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상태라 내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맞벌이를 하던 아내마저 남편의 과도한 부채 때문에 회사를 쫓겨나듯 그만 두게 되었고 월세 집마저 쫓겨나 길바닥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부모님께 부탁하고 대리운전, 인터넷전화 영업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무모하게 전기절감기 연구에 몰두했다. 아들의 처지를 보며 참다못한 그의 어머니가 요나3일영성원을 소개했고 쫄딱 망한 신세인지라 강압에 못 이겨 따라 오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3일 단식과 7일 보호식까지 온전히 열흘의 기도를 시킨 후 상담을 했다. 나는 어머니의 원대로 형편에 맞게 통신과정의 신학교에 입학할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전력 절감 장치 개발 연구를 계속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무모한 연구를 말려줄 것을 기대했는데 그 반대가 된 셈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도하면서 활기를 찾아 마침내 기대하던 제품을 개발, 특허를 받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30여개국에 특허 등록을 마쳤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기업은 중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서 판로가 열렸다. 2008년도에는 융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한 지 6개월 만에 대출자금을 모두 상환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국내선 비행기도 타보지 못했던 그가 이제는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주님이 세우신 회사 ‘이엔포스 홀딩스’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키워가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에 100% 응답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오직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을 찾는 것뿐이다. 아멘.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온 K집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50대 후반이라 새 일을 시작하기엔 무모해 보였다.
나는 1000일을 기도하라고 했고, K집사는 순종했다. 그는 매일 출근하듯 집회시간에 맞춰 나와 뜨겁게 기도했다. 어렵던 회사는 IMF를 거치면서 결국 문을 닫았고 투자했던 자산은 모두 반토막 났으며 매일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에 아찔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입이 심하게 돌아가 입원을 했다. 담당의사는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면 더 악화된다고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 처방을 내렸다. 그에게 찬송가 100곡을 암송해 예배의 찬양 인도자가 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를 역시 ‘아멘’으로 순종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0여년이 지나도록 그는 요나3일영성원의 찬양 인도자로서 평신도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상대를 나온 대학 동기들이 정·재계의 화려한 직장을 은퇴한 후에 설 자리가 없어 고민하는데 73세의 나이에 건강을 회복하고 200여곡의 찬송을 암송, 매일 10곡씩 이곳서 찬양을 인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감격해 하며 기뻐한다.
매일 열정적으로 찬양을 인도하는 그를 보며 은혜 받은 성도들이 ‘찬양 전도사’라는 별명을 더해 준 것은 덤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 한 젊은 가장이 영성원에 왔다. 그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상태라 내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맞벌이를 하던 아내마저 남편의 과도한 부채 때문에 회사를 쫓겨나듯 그만 두게 되었고 월세 집마저 쫓겨나 길바닥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부모님께 부탁하고 대리운전, 인터넷전화 영업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무모하게 전기절감기 연구에 몰두했다. 아들의 처지를 보며 참다못한 그의 어머니가 요나3일영성원을 소개했고 쫄딱 망한 신세인지라 강압에 못 이겨 따라 오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3일 단식과 7일 보호식까지 온전히 열흘의 기도를 시킨 후 상담을 했다. 나는 어머니의 원대로 형편에 맞게 통신과정의 신학교에 입학할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전력 절감 장치 개발 연구를 계속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무모한 연구를 말려줄 것을 기대했는데 그 반대가 된 셈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도하면서 활기를 찾아 마침내 기대하던 제품을 개발, 특허를 받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30여개국에 특허 등록을 마쳤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기업은 중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서 판로가 열렸다. 2008년도에는 융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한 지 6개월 만에 대출자금을 모두 상환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국내선 비행기도 타보지 못했던 그가 이제는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주님이 세우신 회사 ‘이엔포스 홀딩스’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키워가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에 100% 응답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오직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을 찾는 것뿐이다. 아멘.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이에스더 목사가 조용기 목사로부터 홀사모 돕기 사역 후원금을 전달받고 있다.
나 역시 홀로 된 여성 목회자이지만 요나3일영성원을 이끌면서 홀사모 회원들을 즐겁게 도왔다. 사실 그들을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홀사모선교회 회원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지원 금액이 누적되면서 재정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2010년 어느 날 “부비가 더 들면 더 주마”하고 응답하셨다.
2011년 1월, 국민일보에서 출간한 ‘시련의 끝’과 미국 출판사인 Xulon Press의 도움으로 아마존닷컴에 올려진 ‘주님, 한 손만 잡아주소서’의 영문 번역판 ‘Lord, grab me by one hand!’ 출판기념회를 이곳 영성원에서 가졌다. 이 책이 세계 도처에 확산돼 기쁜 소식이 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고 기대로만 끝나고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 나는 국민일보 창간 23주년 기념 행사에 수상자로 부름 받아 이사장인 조용기 목사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조 목사님께서 추천해 주신 제 책이 많이 팔렸습니다”라며 짧게 인사를 드렸다. 조 목사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합니다” 하며 “내가 사람 볼 줄 압니다. 이 목사님의 사역은 위대하고, 당신은 크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며 격려해 주셨다.
아,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 나는 너무 감동해 눈물이 금방 쏟아질 것 같았다. 목사님이 나를 어찌 알고 이런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일까. 목사님은 그리고는 “사역 현장에 한 번 가보고 싶으니 나를 그곳에 초청해 달라” 하셨다.
사실 조 목사님을 영성원에 한번 초청하는 것은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먼저 제안해 주신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목사님, 오늘 대박”이라고 말했다.
2012년 3월 8일 우리는 ‘조용기 목사님 초청 홀사모의 날’ 행사를 열었다. 조 목사님은 사위인 장 목사에게 “스케일 큰 장모를 만나 굉장히 피곤할 거요” 하셨다. 좌중의 분위기는 금새 화사하게 변했다. 그러자 장 목사도 “네, 그래도 장모가 두 분이면 힘들 텐데 한 분이어서 괜찮습니다”하고 화답해 또 한번 웃었다.
이날 조 목사님은 홀사모들에게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후원금도 전해주셨다. 돌이켜 보니 이 격려금이자 위로금은 이미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부비였다. 조 목사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선물이었다.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한 후 지금까지 집회를 인도하면서 이렇게 적은 숫자 앞에서 설교하기는 처음”이라면서 “그래도 너무나 뜻 깊은 일이기에 오고 싶었다”며 은혜의 말씀을 전했다.
이후에 조 목사님을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그 때도 격려금을 주셨다. 마침 침신대학원 채플의 설교 요청을 받았던 터라 조 목사님에게 받은 격려금으로 신대원생 전체가 각자 원하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1인당 두 권의 저서와 함께 1만원씩 넣은 봉투를 전달했다.
그날 저녁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개척하면서 공부하는 신학생이라고 했다. 그는 “목사님, 오늘 주신 봉투를 손에 들고 감히 혼자서 점심을 먹기가 너무 가슴 벅차 저녁 때 아내와 함께 자장면을 먹으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베푸신 사랑 늘 기억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받은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 혼자 쓰는 것보다 많은 신학생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더 기뻐하셨다. 우리는 그저 축복의 유통자로 살아갈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을 나눌수록 더 큰 행복으로 돌려주신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2011년 1월, 국민일보에서 출간한 ‘시련의 끝’과 미국 출판사인 Xulon Press의 도움으로 아마존닷컴에 올려진 ‘주님, 한 손만 잡아주소서’의 영문 번역판 ‘Lord, grab me by one hand!’ 출판기념회를 이곳 영성원에서 가졌다. 이 책이 세계 도처에 확산돼 기쁜 소식이 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고 기대로만 끝나고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 나는 국민일보 창간 23주년 기념 행사에 수상자로 부름 받아 이사장인 조용기 목사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조 목사님께서 추천해 주신 제 책이 많이 팔렸습니다”라며 짧게 인사를 드렸다. 조 목사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합니다” 하며 “내가 사람 볼 줄 압니다. 이 목사님의 사역은 위대하고, 당신은 크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며 격려해 주셨다.
아,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 나는 너무 감동해 눈물이 금방 쏟아질 것 같았다. 목사님이 나를 어찌 알고 이런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일까. 목사님은 그리고는 “사역 현장에 한 번 가보고 싶으니 나를 그곳에 초청해 달라” 하셨다.
사실 조 목사님을 영성원에 한번 초청하는 것은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먼저 제안해 주신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목사님, 오늘 대박”이라고 말했다.
2012년 3월 8일 우리는 ‘조용기 목사님 초청 홀사모의 날’ 행사를 열었다. 조 목사님은 사위인 장 목사에게 “스케일 큰 장모를 만나 굉장히 피곤할 거요” 하셨다. 좌중의 분위기는 금새 화사하게 변했다. 그러자 장 목사도 “네, 그래도 장모가 두 분이면 힘들 텐데 한 분이어서 괜찮습니다”하고 화답해 또 한번 웃었다.
이날 조 목사님은 홀사모들에게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후원금도 전해주셨다. 돌이켜 보니 이 격려금이자 위로금은 이미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부비였다. 조 목사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선물이었다.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한 후 지금까지 집회를 인도하면서 이렇게 적은 숫자 앞에서 설교하기는 처음”이라면서 “그래도 너무나 뜻 깊은 일이기에 오고 싶었다”며 은혜의 말씀을 전했다.
이후에 조 목사님을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그 때도 격려금을 주셨다. 마침 침신대학원 채플의 설교 요청을 받았던 터라 조 목사님에게 받은 격려금으로 신대원생 전체가 각자 원하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1인당 두 권의 저서와 함께 1만원씩 넣은 봉투를 전달했다.
그날 저녁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개척하면서 공부하는 신학생이라고 했다. 그는 “목사님, 오늘 주신 봉투를 손에 들고 감히 혼자서 점심을 먹기가 너무 가슴 벅차 저녁 때 아내와 함께 자장면을 먹으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베푸신 사랑 늘 기억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받은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 혼자 쓰는 것보다 많은 신학생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더 기뻐하셨다. 우리는 그저 축복의 유통자로 살아갈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을 나눌수록 더 큰 행복으로 돌려주신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열린 박람회에 김장환 목사(왼쪽 두 번째)와 함께한 이에스더 목사(왼쪽 끝).
나는 수원여고와 영복여고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예능유치원을 두 개나 운영하는 교육사업가로도 일했던 적이 있다. 이때 목사인 남편과 함께 수원중앙침례교회를 한동안 섬기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 목사님과 함께 미국에서 열린 박람회에 내가 이끄는 예술단과 참가했었다. 그 후 김 목사님께서는 남편이 교회 개척을 할 때 당시엔 귀했던 오르간을 선물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복음에 생명 바쳐 일할 여종으로 만들고자 부어주신 축복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라는 바이러스 공포에 질식된 상태다. 서로 만나 다정한 대화 나누기를 꺼리고 극빈 노약층을 돕기 위한 나눔의 장소도 폐쇄되는 지경이다. 오직 내 가족 내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상황이다.
이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너무 부유해진 나머지 가난할 때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할 시간도 없이 말씀의 동산에서 떠난 상태로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는 관대한 반면 상대의 잘못만 후벼 파는 위선적인 신앙 때문에 치료가 더 힘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육체도 면역력이 있으면 병균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듯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신앙의 항체가 생겨 어떤 영적 바이러스와 싸워도 이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니느웨에 선지자를 보내시고 니느웨의 통곡과 회개를 통해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완악함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잘못된 우월감을 깨뜨리기를 원하신다. 사회가 어지럽고 국가가 위태로울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더 많이 말씀의 채찍에 무릎 꿇지 않으면 미래의 희망은 점점 더 희미해질 뿐이다.
성도들이 왜 하필이면 이름이 요나3일영성원이냐고 묻는다. 그 답은 성경에 있다. 니느웨를 회개시키라는 부담스러운 명령 앞에서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살피고 계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요나도 가나안 땅만 벗어나면 여호와의 낯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나의 도망 계획은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욥바로 내려갔을 때 자기를 기다리는 배를 본 요나는 감격하여 얼른 올라탔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아도 타이밍이 맞는 것을 과연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내리막길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악한 니느웨 성의 수많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한 사람을 찾는 일에 그들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신다. 상상할 수 없이 거친 풍랑과 요나를 삼킬 물고기는 그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다. 요나는 뒤집으면 ‘나요’가 된다.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사는 것은 시간문제다.
때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고 도망칠 핑계를 찾게 한다. 사랑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돈을 왜 허비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더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법이다. 그러면 내 문제는 하나님이 친히 돌보아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려는 극약처방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큰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겸비하게 나아가면 다시 한번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1970년대 중반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 목사님과 함께 미국에서 열린 박람회에 내가 이끄는 예술단과 참가했었다. 그 후 김 목사님께서는 남편이 교회 개척을 할 때 당시엔 귀했던 오르간을 선물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복음에 생명 바쳐 일할 여종으로 만들고자 부어주신 축복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라는 바이러스 공포에 질식된 상태다. 서로 만나 다정한 대화 나누기를 꺼리고 극빈 노약층을 돕기 위한 나눔의 장소도 폐쇄되는 지경이다. 오직 내 가족 내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상황이다.
이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너무 부유해진 나머지 가난할 때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할 시간도 없이 말씀의 동산에서 떠난 상태로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는 관대한 반면 상대의 잘못만 후벼 파는 위선적인 신앙 때문에 치료가 더 힘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육체도 면역력이 있으면 병균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듯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신앙의 항체가 생겨 어떤 영적 바이러스와 싸워도 이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니느웨에 선지자를 보내시고 니느웨의 통곡과 회개를 통해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완악함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잘못된 우월감을 깨뜨리기를 원하신다. 사회가 어지럽고 국가가 위태로울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더 많이 말씀의 채찍에 무릎 꿇지 않으면 미래의 희망은 점점 더 희미해질 뿐이다.
성도들이 왜 하필이면 이름이 요나3일영성원이냐고 묻는다. 그 답은 성경에 있다. 니느웨를 회개시키라는 부담스러운 명령 앞에서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살피고 계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요나도 가나안 땅만 벗어나면 여호와의 낯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나의 도망 계획은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욥바로 내려갔을 때 자기를 기다리는 배를 본 요나는 감격하여 얼른 올라탔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아도 타이밍이 맞는 것을 과연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내리막길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악한 니느웨 성의 수많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한 사람을 찾는 일에 그들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신다. 상상할 수 없이 거친 풍랑과 요나를 삼킬 물고기는 그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다. 요나는 뒤집으면 ‘나요’가 된다.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사는 것은 시간문제다.
때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고 도망칠 핑계를 찾게 한다. 사랑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돈을 왜 허비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더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법이다. 그러면 내 문제는 하나님이 친히 돌보아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려는 극약처방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큰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겸비하게 나아가면 다시 한번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서울 홍제동 요나3일영성원 강단에서 3일 단식의 영적, 육적 유익을 설명하는 이에스더 목사.
많은 분이 금식기도는 경험했지만 단식기도는 해보지 않아 잘 모른다며 설명을 부탁한다. 일반적으로 금식은 물을 마실 수 있고 단식은 물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무엇을 금하는 금식이나 끊는다는 단식은 둘 다 완전한 스톱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물도 마시지 않고 떡도 먹지 않은 모세나 물고기 뱃속의 요나, 그리고 3일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에스더와 3일간 식음을 전폐한 바울을 보면 물도 마시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내 몸을 드리는 희생의 기도이기도 한 단식은 영적인 유익은 물론이고 의학적으로도 매우 유익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다. 단식 기간 중 혈액은 점점 알칼리성으로 바뀐다. 산성체질인 사람이 단식 때 구토현상을 보이는 것은 갑자기 몸에 대량으로 생긴 산성을 미처 배설하지 못해서 비상수단으로 산을 내보내며 몸을 약알칼리로 유지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몸 자체가 하기 때문이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생리학 교수인 아이비 박사의 실험에 의하면 암 세포를 약알칼리성 혈액 안에 두면 3∼6시간 이내에 완전히 용해되고 만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단식을 하면 뇌신경 기능을 활발하게 해주어 기억력이 좋아지고 두통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단식을 마치고 생수를 마심으로 배설을 통해 독소와 노폐물이 거의 빠지면 소변의 색이 맑고 깨끗해진다. 그러므로 나는 이사야 58장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급속한 응답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신한다.
단식기도 후 회복기간은 단식 날짜 곱하기 2.5로 하면 좋다. 사실 단식기간보다 회복기간에 응답이 오기에 단식만큼이나 회복기간 기도가 중요하다. 30년 이상의 경험으로 보면 3일 단식기도에 7일 보호식 회복이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나3일영성원에서는 단식 기도자들을 온전히 돕기 위해 철저히 예약제를 시행한다. 정규 집회나 기도시간에는 누구나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지만, 단식하며 기도하기 위해 입소할 때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3년 전만 해도 “예약하고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봉사자들을 붙잡고 “뭘 기도하러 왔는데 예약은 무슨 예약” 하면서 언성을 높일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여기는 한 분 한 분이 주님 앞에 요나가 되어 물고기 뱃속으로 기도하러 오는 곳이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시는 분마다 정해진 기도실로 안내를 해드립니다”라며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예약제가 보편화된 시대라 이곳 예약제 역시 정착됐다.
영성원에 입소한 단식 기도자들은 전화연락을 일절 할 수 없다. 요나를 삼킨 물고기 뱃속에서 통화를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예수님도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처럼, 세상의 연락줄을 끊고 오직 주님만을 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단식 기간 중에는 외출도 안 된다. 세상이 그립다고 물고기 뱃속을 찢고 나가봐야 물에 빠져 죽는다. 만약 요나가 감사와 순종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뱃속에서 소화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단식 기도자들은 두 길이 아닌 오직 한 길을 택한 만큼, 영적인 물고기 뱃속 안에서 반드시 주님을 만나기 위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참된 단식은 세상적 의지를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구하는 것이다. 3일 단식기도는 육적인 신자에서 영적인 신자로, 타락과 멸망 직전에서 부활의 새 신앙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3일 단식기도를 통해 인간적이며 육적으로 잠든 신앙과 퇴보하여 넘어진 신앙에서 일으킴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해 볼 것을 권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하나님 앞에 내 몸을 드리는 희생의 기도이기도 한 단식은 영적인 유익은 물론이고 의학적으로도 매우 유익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다. 단식 기간 중 혈액은 점점 알칼리성으로 바뀐다. 산성체질인 사람이 단식 때 구토현상을 보이는 것은 갑자기 몸에 대량으로 생긴 산성을 미처 배설하지 못해서 비상수단으로 산을 내보내며 몸을 약알칼리로 유지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몸 자체가 하기 때문이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생리학 교수인 아이비 박사의 실험에 의하면 암 세포를 약알칼리성 혈액 안에 두면 3∼6시간 이내에 완전히 용해되고 만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단식을 하면 뇌신경 기능을 활발하게 해주어 기억력이 좋아지고 두통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단식을 마치고 생수를 마심으로 배설을 통해 독소와 노폐물이 거의 빠지면 소변의 색이 맑고 깨끗해진다. 그러므로 나는 이사야 58장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급속한 응답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신한다.
단식기도 후 회복기간은 단식 날짜 곱하기 2.5로 하면 좋다. 사실 단식기간보다 회복기간에 응답이 오기에 단식만큼이나 회복기간 기도가 중요하다. 30년 이상의 경험으로 보면 3일 단식기도에 7일 보호식 회복이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나3일영성원에서는 단식 기도자들을 온전히 돕기 위해 철저히 예약제를 시행한다. 정규 집회나 기도시간에는 누구나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지만, 단식하며 기도하기 위해 입소할 때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3년 전만 해도 “예약하고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봉사자들을 붙잡고 “뭘 기도하러 왔는데 예약은 무슨 예약” 하면서 언성을 높일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여기는 한 분 한 분이 주님 앞에 요나가 되어 물고기 뱃속으로 기도하러 오는 곳이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시는 분마다 정해진 기도실로 안내를 해드립니다”라며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예약제가 보편화된 시대라 이곳 예약제 역시 정착됐다.
영성원에 입소한 단식 기도자들은 전화연락을 일절 할 수 없다. 요나를 삼킨 물고기 뱃속에서 통화를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예수님도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처럼, 세상의 연락줄을 끊고 오직 주님만을 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단식 기간 중에는 외출도 안 된다. 세상이 그립다고 물고기 뱃속을 찢고 나가봐야 물에 빠져 죽는다. 만약 요나가 감사와 순종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뱃속에서 소화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단식 기도자들은 두 길이 아닌 오직 한 길을 택한 만큼, 영적인 물고기 뱃속 안에서 반드시 주님을 만나기 위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참된 단식은 세상적 의지를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구하는 것이다. 3일 단식기도는 육적인 신자에서 영적인 신자로, 타락과 멸망 직전에서 부활의 새 신앙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3일 단식기도를 통해 인간적이며 육적으로 잠든 신앙과 퇴보하여 넘어진 신앙에서 일으킴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해 볼 것을 권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