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外 聖地순례/★聖地성화歷史[종합]

[사도바울행전] 46-48(완결)

영국신사77 2018. 2. 4. 20:56


헬라의 신이 된 바울과 바나바
III. 바울의 전도 여행(46)
[2781호] 2010년 12월 07일 (화) 17:54:58 [조회수 : 59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추방되어 농원 지대를 뒤로 두고 황량한 대초원을 하염없이 걸어갔다. 곳곳에 양과 염소의 목장이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산자락에는 산적들의 소굴이 있었다. 

이고니온에서 다음 목적지인 루스드라까지는 직선 거리로 32킬로미터였다. 길은 가축이나 다닐 수 있는 험한 오솔길이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도시 전체를 헬라의 으뜸신 제우스에게 바쳤고, 성문 옆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 루스드라의 주민이 바울과 바나바를 헬라의 신으로 알고 제사를 바치려 하고 있다.(17세기, 보베대성당)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청년 디모데의 집에 머물렀다. 로마의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타계하였고, 디모데는 유대인인 외할머니 로이스와 역시 유대인인 어머니 유니게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믿음의 가정이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소망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디모데는 성경을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듣고 배웠고, 헬라어를 자유롭게 읽고 쓰며 말할 수 있었다. 바울은 훗날 그를 성직자로 세웠다.

디모데의 안내로 두 사도는 루스드라에서 복음의 씨를 뿌렸다. 제우스의 축제일에 두 사도는 공공 집회장에 가서 군중들 앞에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날 희한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행 14:8) 그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은 두 사도를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인 양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입을 열어 말은 하지 않았으나, 두 사도가 자기를 고쳐 주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바울은 "낫고자 하는" 그의 소망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을 느꼈다. 바울은 설교를 중단하고, 그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을 보며 엄숙하게 말하였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는 마치 높은 곳에서 위대한 힘이 잡아당기듯이 일어나 걸었다. 그것을 본 루스드라의 시민들은 깜짝 놀라 크게 소리 질렀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그들이 말하는 신들이란 그들이 신앙하고 있는 영원한 방랑자 제우스와 그 사자 헤르메스였다. 키가 크고 검은 수염이 난 바나바는 제우스가 되었고, 키가 작고 말을 잘하는 바울은 헤르메스가 되었다.

제우스의 신관들은 제우스 신이 출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피리 부는 사람들과 두 마리 제사용 암소와 화한을 가지고 와서, 무리들과 함께 두 사도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하려 하였다. 사태를 알아차린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렀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루스드라 사람들은 쉽게 열광하였고 또 쉽게 냉정해졌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주 예수의 흔적을 지닌 바울
III. 바울의 전도 여행(47)
[2782호] 2010년 12월 16일 (목) 15:44:48 [조회수 : 688]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며칠 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시민들의 태도가 한없이 싸늘하다고 느꼈다. 주 예수의 적대자인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찾아와 루스드라 시민들을 충동한 사실을 바울은 알지 못하였다.

바울은 어떤 반항적인 공기를 의식하였고, 잇따라 무리들이 야유하는 소리를 들었다. 군중은 바울에게 다가왔다. 돌멩이가 날아와 바울의 얼굴을 때렸다. 바울은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그날 바나바는 다른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바울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바나바와 디모데 일가는 불안한 예감에 싸여 있었다. 그들은 곧 심상치 않은 사태를 알게 되었다.

   
▲ 바울(L. G. 블랑셰,18세기)
유대인에게서 충동을 받은 폭도들이 여전히 시내를 휩쓸고 다녔다. 바나바와 디모데는 폭도들이 집에 돌아간 한밤에야 바울이 버려져 있는 곳에 갔다.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은 살아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10년 전에는 바울 자신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장소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디모데가 바울이 돌에 맞은 장소에 입회하여 초대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먼 훗날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할 때 바울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 3:10~11).

몸이 완쾌되지 못한 바울은 농민의 수레를 타고, 바나바와 디모데의 보살핌을 받으며, 동남쪽 48km 거리인 더베로 갔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은 상처는 평생 동안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상처를 소중하게 여겼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헤롯 아그립바 왕은 신으로 존경받기를 원하며 그것을 요구하다가 주의 사자가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었으나(행 12:23), 바울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중 자기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에게 꾸중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누어졌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 1:13).

바울이 복음을 전한 지 1천8백여 년이 지난 1885년에 미국의 S. 스테레트 교수는 이고니온에서 남서쪽 직선 거리로 28km 지점에서 '루스드라'라고 라틴어로 새긴 두툼한 돌을 발견하였다. 이 돌이 일찍이 이곳이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다.

또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 가는 도중에는 비잔틴 양식의 교회와 수도원의 폐허가 50군데 이상 있으며, 일찍이 이곳은 '일천 하나의 교회'라고 일컬어졌었다. 그만큼 이슬람 시대 이전에는 기독교가 부흥하던 곳이다.

스테레트 교수는 또한 이고니온에서 동남쪽으로 1백km 되는 지점에서 더베를 발견하였다. 더베의 유적은 광막한 카라-다하 산맥의 산자락에 있으며 사방은 광야이다. 이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곳으로 알려진 키비스트라는 동북 약 50km 지점에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더베에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III. 바울의 전도 여행(완)
[2783호] 2010년 12월 22일 (수) 13:24:19 [조회수 : 649]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가사(假死) 상태가 되었던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시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훗날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상경한 "더베 사람 가이오"(행 20:4)는 이때 얻은 열매일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금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방문하여, 전도 여행에서 얻은 새 신도들을 격려하였다. 이 도시들에서 생긴 신도의 무리가 갈라디아서의 수신자인 "갈라디아 여러교회들"(갈 1:2)이다.

바울은 이 여러 도시들에서 살고 있는 신도들을 격려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교회를 지키게 하고 떠나갔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지방에 온 것은 "육체의 약함으로"(갈 4:13)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는지 모른다.

아무튼 병든 허약한 몸으로 이 넓고 넓은 지방을 걸어다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그 기백에 놀라게 된다.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그 정열과 기력에 머리 숙이게 된다.

바울이 방문한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가 있는 지역은 원래 루가오니아 지방으로서, 그 주민들은 루가오니아어를 쓰던 곳이다(행 14:11). 

당시 로마의 행정 구역에서 그 북쪽으로 이어지는 갈라디아 주에 속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이곳을 '갈라디아'(갈 1:2, 3:1)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이곳을 본래의 갈라디아 주와 구별하여 '남 갈라디아 지방'이라 일컫는다.

바울과 바나바는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 버가에 들렀다가, 거기서 20km 거리인 앗달리아 항구로 갔다. 두 사도가 지금까지 걸은 거리는 약 1천1백km. 대부분이 험준한 길이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헐벗었노라"(고후 11:26~27)라고 회고하였다.

두 사도는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이방인 전도의 본거지인 시리아 안디옥에 돌아왔다. 이 귀항로는 해적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진 험한 길이다. 바울이 경험한 '바다의 위험' 중 어떤 것은 이 해역에서 당한 것일는지 모른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돌아오는 길로 교회의 교인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연 것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안디옥에 머물렀다.

바울의 첫번째 전도 여행은 가는 곳곳마다 큰 반응이 있었고, 수많은 유대인과 특히 헬라인들은 바울의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유대교의 완고한 신앙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강한 반감과 적개심을 불태웠다.

갈라디아서에는 유대인의 기독교 반대 운동에 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1:7, 3:1).

김 희 보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 행전'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주신 김희보목사님과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