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外 聖地순례/★聖地성화歷史[종합]

[사도바울행전] 41-45

영국신사77 2018. 2. 4. 20:54


전도 동역자 마가
III. 바울의 전도 여행(41)
[2777호] 2010년 11월 03일 (수) 16:34:58 [조회수 : 738]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복음 선교의 전초 기지 수리아 안디옥의 현재 모습.
안디옥 교회는 열심 있고 활기가 넘치는 교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 전도 활동의 전진 기지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라는 주 예수의 명령에 날이 갈수록 사명감을 느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주의 뜻을 알기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선교사 후보는 바나바, 흑인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니엔 그리고 사울(바울)이었다. 성찬식이 끝나고 투표함이 준비되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방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였다.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선지자 중 한 명이 성령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선거할 필요가 없었다. 안디옥 교회의 장로들과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바나바와 바울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보냈다. 주후 48년의 일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외에 있는 농장을 가로질러 실루기아 항구로 내려갔다. 실루기아의 유적은 안디옥 서남쪽 20km 거리에 있다. 두 선교사는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 서남쪽 90km 지점에 있는,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키프로스) 섬에 갔다. 구브로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의 회당도 있었다.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 활동은 구브로 섬의 동쪽 항구 살라미에서 시작되었다.

고향에서 전도를 시작한 바나바는 전도 동역자로 요한을 임명하였다.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의 열심 있는 신도 마리아의 아들로서, 로마식 이름인 마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이었다(골 4:10).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행 12:12)의 집은 오순절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던 곳이다(행 1:13~14). 그 집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신 유서 있는 곳이다(막 14:15).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마가 요한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던 듯하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51~52).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다. 그가 만년의 예수의 모습과 교훈, 더 나아가서 사도들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 동역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증인이었다(몰턴).

그러나 마가 자신은 복음 전도 사역을 하는 일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구브로에서만 두 사람과 동행하고, 다음 행선지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하는 길로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마가가 떠나간 때부터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행 13:9)을 '바울'이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하던 것을 '바울과 바나바'라고 순서를 바꾸어 표기하고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
III. 바울의 전도 여행(42)
[2777호] 2010년 11월 11일 (목) 11:34:59 [조회수 : 70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바울 일행은 로마의 국도를 지나가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구브로 섬을 서쪽으로 가로건너 수도 바보에 이르렀다.

바보에는 로마의 지방 총독 서기오 바울이 있었다. 로마 귀족인 그는 교양이 있는 인물로서, 자연과학의 권위자이며 진리의 탐구자였다. 여느 지방 총독과 마찬가지로 그의 관저에는 로마 귀족의 자제들이 훗날에 대비하여 정치학을 배우러 모였다.

서기오 바울은 학자와 시인과 신비학자들을 초대하여 학술 연구를 하였다. 그 중에 바예수라고 하는 저명한 유대인이 있었다. 바예수는 엘루마 곧 유대인 마술사로서, 애굽과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비법을 배우고, 각 지방을 여행하고 있었다.

   
▲ 구브로에 있는 바울교회.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가 바보에서 화제를 일으키자, 서기오 바울은 두 전도자를 관저에 초대하여 이야기를 들으려 하였다. 마술사 엘루마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총독을 신앙의 길에서 떨어지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현명한 총독의 높은 식견에 호소하여, 하나님에 관한 자연적인 지식과 유일신 및 사람의 마음에 내재하시는 하나님과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였다. 또한 우리 인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설명하였다.

화제가 일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르게 되자, 새로운 정열이 바울의 얼굴에 감돌았다. 더구나 이가 주 예수의 부활과 다메섹 도상에서의 자기 체험에 미치게 되자, 바울의 뜨거운 웅변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서기오 바울은 사도 바울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도, 로마 법률가의 입장에서 엘루마의 의견도 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마술사의 눈을 쏘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것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려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바울의 말이 떨어지자 곧 안개와 어둠이 엘루마를 내리덮었다. 그는 눈이 멀어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은 자기 눈 앞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구브로에서의 이 사건은 로마 고관이 주 예수를 믿게 된 최초의 일이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엘루마는 바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는 훗날 유대인을 선동하여, 고향인 구브로(키프로스) 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바나바를 돌로 쳐서 죽였다고 한다. 바나바의 조카 마가는 바나바의 시신을 살라미 부근에 있는 유대인 묘지에 안장하였다.

주후 489년, 가슴에 마태복음이 놓여 있는 바나바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바나바의 고향 살라미는 구브로 섬 동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당시에 다른 곳에는 유대인 회당이 보통 한 군데이지만, 이곳에는 회당이 아주 많이 있었다.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행 13:5).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밤빌리아 버가에서의 사건
III. 바울의 전도 여행(43)
[2778호] 2010년 11월 16일 (화) 19:26:49 [조회수 : 55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버가에 있는 바울 시대의 성문.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행 13:13).

바울 일행 세 사람이 소아시아를 향하여 바보를 출항한 것은 주후 45년, 또는 주후 48년 늦가을로 고증되고 있다. 바울은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를 외면하였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요 4:44).

그들을 태운 배가 항구에서 떠나자 뾰족뾰족한 산들의 윤곽이 마치 금단의 벽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바울은 마가에게 앞으로의 전도 계획을 밝혔다.

바울은 얼음과 눈이 덮인 저 산을 넘어서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마가는, 바울이 저 산 너머에 살고 있는 이교도들의 흉포함을 알지 못하는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그 무렵 소아시아는 여러 인종이 살고 있었고, 사투리와 미신과 이상한 제사를 지내는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다. 도시마다 고유한 수호신이 있었고, 해안 지대에는 동방의 제사 의식과 비법(秘法)을 행하는 밀교(密敎) 제사장들이 득실거렸다.

밤빌리아는 로마 제국의 군정(軍政)이 시행되던 곳으로서, 집정관 또는 군정관이 통치하고 있었다. 다른 각 주와 마찬가지로 밤빌리아에는 로마 제국이 파견한 제사장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 황제와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거액의 기부금을 모으고 있었다.

바울 일행은 앗달리아 만 케스트로스 하구에 상륙하였다. 앗달리아 시에 있는 해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채가 오렌지와 레몬빛을 쏟으면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행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앗달리아 북쪽 40킬로 지점에 있는 버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길은 점점 험해지고 자갈밭이 이어졌다.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찌르는 듯 차가웠다. 마가는 투덜거렸다. 왜 자기들은 이렇게 험한 산을 넘어야 하는가. 행선지에는 시나고그도 없을 것이고, 유대인 지구에 이르러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는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버가의 여인숙에 이르러 마가는 삼촌인 바나바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바나바는 가이사랴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항구로 가는 조카 마가를 붙들지 못하였다. 전도 여행은 위험이 따르는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도 여행을 시작하자 마자 떠나간 마가의 행동은 바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바울은 주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였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눅 9:62).

바울은 오랫동안 마가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제2회 전도 여행에 즈음하여, 마가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는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해 후에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마가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 4:10). 전설에 따르면 마가는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설립하고 전도하다가 순교하였다.

현재 앗달리아 항구는 예전과 같이 밤색 바위에 둘러싸여 있다. 동북쪽에 위치한 버가의 유적지는 성문과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과 교회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
III. 바울의 전도 여행(44)
[2779호] 2010년 11월 23일 (화) 17:22:25 [조회수 : 826]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 북쪽을 향하여 전도 여행을 계속하였다. 때로는 낭떠러지와 벼랑진 험한 산길을 걸었고, 때로는 골짜기를 넘고 거센 물줄기의 여울을 건너, 케스트로스 강을 따라 걸어갔다. 두 전도자는 나흘째 되는 날 눈 앞에 아름다운 호수를 보았다. 산 속에 있는 그 호수는 오늘날의 에게르딜 호수로서, 해발 8백40미터에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에베소에서 안디옥을 지나 다소에 이르는 로마 국도를 걸어 호수 동쪽의 산과 산을 넘었다. 그리고 우뚝 솟은 술탄 다하 산자락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2백킬로미터의 험한 산길을 걸은 것이다. 

   
▲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신전 유적.
비시디아 안디옥은 비시디아와 브루기아 경계에 있던 중요한 도시로서, 원주민 외에 헬라인과 유대인이 있었고, 안티오스 강변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을 복음 전도의 장소로 정하였다.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행 13:14).
그들이 회당에 들어가자 회중은 율법 학자인 바울과 레위인인 바나바를 주목하였다. 성경 봉독을 마치고 회당장은 바울을 불러 회중에게 말하라고 하였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행 13:16).
무릇 유대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고 하는 긍지를 가진 백성으로서, 자기들은 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 메시지는 첫째로 일신교의 교리, 둘째로 숭고한 도덕의 계율, 셋째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과 소망이었다.

바울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바대로 하나님이 유대 민족의 지도자이며, 그 예정과 섭리는 메시아를 향해 인도하는 것이라는 것부터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구약의 역사는 그 목적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것이며, 모든 것은 주 예수를 향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행 13:42).
바울의 설교는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회당에 모였다.

그 이방인 무리를 보고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유대인들과는 달리 이방인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모두 다 주 그리스도를 믿었다. 유대인들은 이 부흥의 불길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인 헬라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다. 두 사람은 발의 티끌을 털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재위 주전 301~280)가 세운 도시이다. 8세기 초에 아라비아인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고, 1833년, 영국인 종군 목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이고니온의 처녀 테크라
III. 바울의 전도 여행(45)
[2780호] 2010년 12월 01일 (수) 09:19:51 [조회수 : 592]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박해를 받고 떠난 바울과 바나바는 동쪽을 향해 갔다. 비시디아 안디옥 동쪽 1백60km 지점에는 소금기가 많은 대초원과 습지 너머에 이고니온(현재의 콘야)이 있었다.

두 전도자 앞에는 곧 화산에 에워싸인 고원 지대가 나타났다. 여름이면 이곳은 사막이 되어 무더위 가운데 먼지 바람이 불고, 겨울이면 여러 달 동안 깊은 눈이 쌓이며, 봄이 되면 습지가 되어 사람의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 이고니온의 테크라 산(왼쪽)과 빌립보 산.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이고니온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 도시가 건설되었고, 홍수 이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주후 60년대에는 네로의 아내 포피아가 여신으로서, 이고니온의 화폐에 새겨졌다. 시민은 주로 갈라디아인과 로마의 관리들 및 퇴역 군인 그리고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2년 이상 머물며, 갈라디아인과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 14:1).

이고니온에는 훗날 바울의 여제자가 된 테크라라는 처녀가 있었다. 이 테크라에 관해서는 주후 2세기에 기록된 신약 외경 '바울과 테크라 행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난 테크라는 이층 창문 너머로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 테크라는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귀족 청년과의 약혼을 해소시켰다.

테크라의 부모는 분노하여 바울을 고소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바울을 구출하려고 하던 테크라는 행정관에 의해 독사의 굴에 던져졌다. 그러나 테크라는 무사히 독사의 굴에서 빠져 나왔다.

그 후 테크라에게 찾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려 하는 사람과 그 덕을 본받아 회개하고 신도가 되는 사람이 날로 더해졌다. 테크라는 길리기아의 실루기아로 가서, 동굴 속에서 기도 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여든 살 때 임종하였다.

'바울과 테크라 행전'에는 바울의 모습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얼마 후 바울이 찾아왔다. 작은 키에 머리는 대머리였고 발은 굽었으나, 몸은 아주 건강하였고, 얼굴은 약간 찡그린 모습이었고, 코는 큰 편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사랑에 넘쳐 있었다. 바울은 그 위엄으로 해서 때로는 인간처럼 보였으나, 어떤 때는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여러 가지 표적(이적)과 기사를 행하였다. 이고니온에는 이교도인 마술사와 거짓 선지자가 있어서, 주민들을 유혹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른 모든 이교의 마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행 14:4).
바울과 바나바는 시민을 선동하였다는 혐의와 마술을 행한 혐의로 고소를 받아 감옥에 갇히었다. 이고니온의 주민은 바울을 편드는 사람과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리들은 한패가 되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을 떠났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