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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궁중 예언자 나단(Nathan)/[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영국신사77 2017. 4. 12. 20:57

2011.01.20 20:44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29) 궁중 예언자 나단(Nathan)

예언자 ‘나단’(Nathan,‘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은 통일왕국시대의 두 왕(다윗과 솔로몬)을 보필하며 정치 종교적인 중대사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여 역사 발전에 공헌했다는 점에서, 직전의 사무엘 선지 같고 유비의 칙사 제갈공명 같은 위대한 멘토링의 모델이었다. 

나단의 멘토링 사례는 성경에 세 번 언급된다.

 

첫째, 다윗의 즉위 7년 예루살렘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숙원이었던 성전건축까지 추진하고자 나단에게 제안했을 때, 의도는 선하지만 그 계획은 후계자(솔로몬)에 의해 실현될 것을 나단이 말해 결국 성전건축이 좌절된다(삼하 7).

 

둘째, 다윗이 중년에 밧세바를 범하여 임신하자 이 일을 은폐하려 충신 우리아까지 죽였을 때, 나단은 다윗과 독대하여 직언함으로써 왕 스스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도록 중재하였으며(삼하 11∼12;시 51), 다윗은 가까스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왕권을 상실하는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셋째, 통치 말년까지 다윗 왕이 후계자를 선포하지 않음으로써 계승서열 1위였던 아도니야가 쿠데타를 시도하자 나단은 밧세바를 움직여 왕으로 하여금 솔로몬의 왕위계승을 명하게 하고 제사장 사독과 함께 솔로몬의 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왕상 1∼2)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통일왕국을 부흥시키고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한다(왕상 6). 위대한 멘토였던 나단이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솔로몬 말년의 신앙타락으로 인한 국력의 쇠퇴와 분열은 나단 같은 위대한 멘토의 공백을 실감케 한다.

예언자 나단이 어떤 정치종교적 동기에서 다윗의 성전건축 계획을 처음에는 전격 동의하다가(삼하 7:3) 잠시 후 말을 바꾸어 이 계획을 거두도록 제안했는지 묻는다. 역대기 기자(대상 22:8)는 야웨께서 피를 많이 흘린 다윗보다는 평화의 사람 솔로몬이 거룩과 평화의 신(神), 곧 야웨의 성전 건축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에 따르면 전통적 목축문화의 소산이요 지파동맹의 상징인 성막, 곧 이동(조립)식 성전을 폐기하고 급진적 개혁조치로서 신도시 예루살렘에 영구적 정착 성전, 곧 가나안 왕정체제의 소산이요 농경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석조성전을 건축할 경우 보수주의자들의 반대에 직면할 것을 예견한 예언자 나단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밧세바 사건으로 중죄를 범한 다윗을 찾아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형죄를 인정하도록 유도하는 데 사용된 나단의 비유(삼하 12:1∼4)는 ‘솔로몬 재판’(왕상 3:16∼28)과 함께 이스라엘 지혜문학의 또 다른 최고봉이다. 가난한 이웃집의 애지중지하는 양 새끼를 빼앗아 요리하여 자기 집 손님을 대접한 악질 재벌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한 다윗 왕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삼하 12:7)라고 직언할 수 있었던 예언자 나단의 용기 또한 멘토링 역사의 최고봉이다. 왜냐하면 왕이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제사장 및 예언자가 왕을 비판할 때는 생명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 중동의 궁중에서 주로 활동했던 예언자(Nabi, 신언(神言) 선포자)는 신과의 접촉 경험을 통해 역사를 내다보는 혜안을 얻어 왕과 백성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며 시대를 선도했다.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에 나단 같은 선지자가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장영일 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