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숙 권사(첫줄 오른쪽 세번 째)가 홀리네이션스선교회 직원,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
캐나다 의료 선교사인 셔우드 홀 박사 묘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홀리네이션스선교회 제공
‘모두 조건 없이 전액을 돕는다.’
2000년 홀리네이션스선교회를 창립해
2000년 홀리네이션스선교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고수하는 원칙이자 행동 지침이다.
돌이켜보면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 환자들을
‘모두’ ‘조건 없이’ ‘전액’ 원칙으로 돕기로 한 것은 성령이 주신 특별한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주셨기에 기적과 은혜가 넘치는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
만약 교회에 나온 사람이나 교인 등록자에 한해
치료비 일부만 돕고 수술비나 입원비는 지원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필요를 풍성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직접 겪을 축복의 기회는 놓쳐버렸을 것이다.
사역 초기 중환자들은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사역 초기 중환자들은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온 몸에 고름이 흐르는 희귀병에 걸린 외국인, 간농양 환자, 손가락이 잘린 환자,
뇌출혈 환자, 폐결핵 환자 등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선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병원에 입원비 대신
우리 선교회의 전화번호를 주고
병원으로부터 그의 입원비를 대신 낼지를 전화로 물어 온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도 우리는 그 환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영혼으로 받아들였고
기꺼이 치료비를 내주었다.
소문은 빨랐다.
소문은 빨랐다.
우리의 도움을 받은 외국인들은 아픈 동료들에게 선교회의 존재를 알렸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국으로 퍼졌고,
선교회 문 앞에는 아픈 외국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 환자라면 누구든 만났고 어디든 찾아갔다.
조지 뮬러는 동역자를 위해 기도할 때 이렇게 했다고 한다.
조지 뮬러는 동역자를 위해 기도할 때 이렇게 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저 혼자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좋은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별해 주셔서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 주십시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렇게 기도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렇게 기도했다.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였던 사람이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원해 선교사가 되어 홍콩에서부터 섬긴 지 30년이 지났다.
우리가 돕는 대상은 모두 엄청난 물질과 인력을 필요로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한마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섬겼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행진했다.
우리는 이 사역의 장소를 ‘행복동’이라 불렀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신실했고 사실이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신실했고 사실이었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마 28:20)을 구체적으로 채우셨다.
그동안 행복동에서 필요로 했던 재정은 5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도 재정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셨고
10원의 빚도 지지 않게 해결해주셨다.
사람에게 구하지 않아도 채우셨다.
행복동을 통해 수백 명의 외국인들이 입원 수술을 받았고
행복동을 통해 수백 명의 외국인들이 입원 수술을 받았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세례를 받았다.
30명의 외국인 신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몽골과 러시아 네팔 중국 파키스탄 영국 등지에서 또 다른 열매를 맺고 있다.
현재 홀리네이션스선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50명 정도다.
현재 홀리네이션스선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50명 정도다.
교사와 설교자, 찬양인도자, 의료진, 식당 봉사자, 차량봉사자, 통역 담당자,
미용 봉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긴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정리=신상목 기자
약력=△1948년 서울 출생 △중앙대 졸업 △85년 홍콩에서 선교활동
약력=△1948년 서울 출생 △중앙대 졸업 △85년 홍콩에서 선교활동
△95년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어 성경공부 교재 번역 등 선교활동
△2000년 경기도 일산에 홀리네이션스선교회 설립 △고양 삼위교회 권사
△저서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 ‘주님, 오늘도 부탁해요’
[역경의 열매] 김상숙 <2> 전도 위해 두드린 홍콩 정부병원… 복음의 문 열려
남편 발령 따라 홍콩서 8년 거주 금식기도 끝에 병원 허가 얻어내
입력 : 2017-02-10 00:01
김상숙 권사가 1980년대 중반 홍콩에 거주할 때 전도하며 만난 필리핀 이주자들이 김 권사의 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고 있다.
미국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근무하던 남편이
홍콩으로 발령을 받은 것은 1985년 4월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때부터 두 번이나 홍콩에 가면서 만 8년을 살았다.
홍콩에 거주한 지 1년 쯤 지나 한인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그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마치 확성기를 귀에 대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고
나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고
그때부터 회개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현실로 다가왔다.
집회가 끝난 뒤에도 통회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이어갔다.
성령은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를 철저히 씻어 내길 원하셨다.
그 뒤로 나의 생각과 관점이 달라졌다.
그 뒤로 나의 생각과 관점이 달라졌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솟아올랐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이 타올랐다.
억지로가 아니었다.
그저 주님을 아는 기쁨과 자유를 전하고 싶었다.
처음엔 전도 방법을 몰라 무작정 중국어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처음엔 전도 방법을 몰라 무작정 중국어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홍콩 중심가 스퀘어파크를 지나던 중에 여성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 보니 그들은 가사 도우미를 하기 위해 홍콩으로 온 필리핀 이주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다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다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소개했다.
몇몇은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곤 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여성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생일이면 집에 초대해 식사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녀들이 털어놓은 홍콩에서의 삶은 미움과 불평으로 가득했다.
그녀들이 털어놓은 홍콩에서의 삶은 미움과 불평으로 가득했다.
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주인을 미워하기보다는
미워하는 마음 자체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자고 권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밝아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미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더니 주인이 친절해졌어요.”
“미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더니 주인이 친절해졌어요.”
“성경을 읽으며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었어요. 노트 좀 보세요.”
나는 스퀘어파크에서 소외된 자를 부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해외선교를 계속할 수 있도록
남편을 다시 외국으로 발령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내가 외국에서 복음을 계속 전할 방법은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홍콩을 마음에 두고 기도했다.
홍콩은 처음 선교를 시작한 곳이지만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남편이 일하던 BOA의 아시아지역본부에서 홍콩 일을 제안했다.
놀랍게도 남편이 일하던 BOA의 아시아지역본부에서 홍콩 일을 제안했다.
얼마 후 은행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남편은 사직서를 냈으나
홍콩지점이 남편을 현지 채용하면서 홍콩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홍콩에서는 한인들과 함께 집에서 성경공부를 했다.
홍콩에서는 한인들과 함께 집에서 성경공부를 했다.
홍콩 정부병원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병원 전도를 위해 금식기도와 산 기도를 반복했다.
한국도 아니고 외국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허가를 얻기까지 몇 주를 기다렸고 기적적으로 통과됐다.
성악도 신학도 모르는 가정주부 5명은 그렇게 찬양을 부르며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찬양과 율동을 할 때마다 말씀을 붙들었다.
막레이호스병원과 퀸메리병원의 문은 이렇게 열렸다.
나중에 홍콩을 떠날 때 헤아려 보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받은 사람만 1000명이 넘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