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성지순례/이스라엘[종합]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1) - (18)

영국신사77 2016. 4. 13. 23:14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1)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이스라엘의 왕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벳새다서 보여준 위엄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7-25 02:21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있는 벳새다의 어부집(위)과 눈 덮인 헬몬산을 오르는 리프트. 

                                                   이스라엘은 작은 땅이지만 남과 북의 기온차가 뚜렷하다. 

                                                   벳새다는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자 벳새다 근처 빈 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사웨 골짜기를 묘사한 성화. 이로써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창세기 14장의 예표가 성취된 것이다.


‘나사렛 사람’ 예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이 인간의 삶에 들어온 원점으로 찾아가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그가 회복의 길을 찾는 방법은 ‘말씀’을 바탕으로 한 ‘기도’와 질문이었고, 그에 대한 응답은 언제나 ‘두드림’으로 얻어냈다. 그렇게 이어진 ‘두드림’의 결과로 받은 명령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의 길을 가라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사 53:10)

그러나 양을 속건제물로 드릴 때의 절차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번제물을 잡은 곳에서 속건제의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그 기름을 모두 드리되 곧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고 제사장은 그것을 다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건제니라.”(레 7:2∼5)

그렇게 드려짐에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분에게 그것은 너무 참혹하여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사야는 제물로 드려지는 것에 대한 위로의 말씀도 덧붙여 놓았다.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그러나 과연 한 사람이 속건제물로 드려져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천하 만민이 죄에서 사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게 세례를 주었던 요한이 참수당했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복음서가 기록해 놓은 그 ‘빈 들’의 위치에 대해서 다소 혼선이 있다. 마태와 마가는 그냥 ‘빈 들’이라 했고 요한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이라 했으나 누가는 ‘벳새다라는 마을’이라고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본래 ‘고기잡이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북쪽의 상부 요단강 하구에서 가버나움과 마주보고 있는 자리에 있고, 드라고닛 지역에 속한다. 

마태와 베드로가 모두 그곳에 함께 있었고 특히 베드로, 안드레 형제와 빌립은 모두 벳새다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에게 당시의 일을 전해 준 베드로나 그 자리에 있던 마태가 ‘벳새다’란 이름을 빼놓았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유대인 출신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에서 갈릴리 호수의 북쪽과 동쪽에 두 벳새다가 있었음을 기록해 놓았다. 

“헤롯 안디바는 벧아람브타를 요새화한 후에 황제의 아내 이름을 따라 율리아스라고 이름 지었다. 또 분봉왕 빌립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위치한 벳새다 마을로 시의 면모를 갖추도록 만든 후 가이사의 딸 이름을 본떠 율리아스라고 명명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8-2-1) 

두 곳이 모두 ‘율리아스’가 되었으므로, 그에 따라 두 곳이 역시 같은 벳새다로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세푸스는 다시 ‘유대전쟁사’에서 헤롯 안디바가 세운 율리아스는 가다라 지역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했다.

“가다라에서 도망친 반역자들을 섬멸하라는 베스파시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로마군은 인근의 아빌라, 율리아스, 베세못에서 아스팔티티스 호수에 이르는 모든 지역을 함락시켰다.”(요세푸스 ‘유대전쟁사’ 4-7-6) 

그러므로 예수께서 배를 타고 건너간 ‘빈 들’은 베드로의 고향 벳새다가 아닌 ‘가다라의 벳새다’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빈 들에서 날이 저물었으므로 모두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제자들이 말씀드리자 그분이 말씀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제자들이 당황하여 다시 고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마 14:18)

그가 다시 ‘두드림’의 질문을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속건제물로 드려지면 천하 만민이 다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다짐이 필요했다. 이사야는 ‘그의 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게 했다. 마가의 기록에는 백명씩, 오십명씩 앉혔다고 되어 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명이나 되었더라.”(마 14:19∼21)

여자와 어린이를 합하면 만명이 넘었다. 아버지의 확인이 떨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마 6:45) 

요세푸스의 기록대로 두 곳의 ‘벳새다’가 있어야 이 대목이 성립된다. 예수께서는 ‘가다라 지방 벳새다’의 빈 들에서 이 일을 행하시고, 다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 벳새다’로 먼저 건너가게 하신 것이다.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막 6:46)

그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서 도망치듯 급히 빠져나온 것은 그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 6:15)

그는 이제 완전한 순종의 길에 들어섰다. ‘이스라엘의 임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가야 할 길을 결연히 택한 것이다. 그는 먼저 배를 타고 출발한 제자들이 풍랑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바다 위를 걸어 그들에게로 갔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위엄을 보여준 것이다(마 14:33). 그로부터 그의 힘찬 선언이 시작된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그리고 다시 ‘생명의 포도주’에 ‘생명의 떡’이 추가되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48)

그것으로 살렘 왕 멜기세덱을 통해 미리 보여주신 예표가 성취된 것이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2)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①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 베드로의 믿음을 들은 예수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언급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8-01 03:14

 


이스라엘과 두로 지경(페니키아)의 경계인 ‘악고’ 항구. 고대 가나안의 항구도시인 악고는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가이사랴로 가는 도중에 하루를 묵었던 곳이다. 유적지로는 십자군 시대의 성채와 오토만 시대의 회교 사원이 있다.


마가단 지경에 있는 헤롯 빌립의 성읍 ‘빌립보 가이사랴’. 이곳은 헬몬산(2815m) 남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라엘 최북단 성읍으로 갈릴리 바다에서 40㎞ 정도 떨어져 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바네아스 계곡. 이곳에 있는 작은 폭포를 한국 성지순례객들이 찾았다.


빈 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붙잡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삼고자 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확인했으나, 사람들은 ‘표적’만 본 것이다. 그러나 가버나움에서 다시 만난 그분의 말씀은 기대와 달랐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56) 

결국 ‘이스라엘의 임금’될 분이 아닌 것으로 알자,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 또 이때부터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줄 ‘임금’을 기대했던 가룟 유다 역시 ‘아들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망하기 시작했다.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며 대답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음을 아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70∼71)

예수께서 ‘손만 대어도’ 병자 낫는 것을 보면서 유대인의 안식일 시비, 장로들의 비난이 계속되자 그분은 다시 이사야서의 말씀을 떠올리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한글개역판) 

이제 ‘아버지의 뜻’은 유대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이방’과 ‘땅 끝’까지 이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곧 이스라엘 지경을 넘어 가나안의 두로와 시돈으로 들어가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들과 어떤 관계도 맺지 말라고 엄히 명한 땅이었다.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신 7:2∼3)

예수께서 그곳에 간 것은 말씀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려는 ‘두드림’이었다. 그곳에 들어가자 한 가나안 여인이 부르짖으며 간청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마 15:22)

예수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므로 제자들이 사정을 고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러나 그분의 대답은 차가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여자가 끈질기게 간청하자 한 번 더 쌀쌀하게 대꾸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에게 ‘개’라고 말하는 것은 최대의 모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읽으신 그분이 비로소 말씀하셨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마 15:28)

딸을 고침 받은 이 여인이 헬라계에 속하는 ‘수로보니게’ 출신(막 7:26)이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두로와 시돈을 넘어 더 넓고 먼 ‘땅 끝’까지 이르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리로 돌아와 저는 자를 걷게 하고 소경을 보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고쳐 주신 후 다시 한번 많은 사람을 먹이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마 15:36∼38) 

그 후에 다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와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장래 일을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 16:4) 

예수께서는 다시 제자들과 함께 분봉왕 빌립의 관할로 되어 있는 드라고닛 지역의 마가단 지경으로 올라간다. 분봉왕 빌립의 성읍 빌립보 가이사랴 인근에 요단강의 수원이 되는 바네아스 계곡이 있었다. 헬라와 가나안 여러 신의 신당들이 들어차 있는 그 아름다운 계곡에서 그분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세례 요한,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선뜻 나서며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그 대답은 그의 입을 통한 아버지의 격려이기도 했다. 그 대답에 예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말씀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베드로의 아버지는 ‘요한’(요 1:42)이고, ‘요하난’(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에서 온 것이었다. 예수께서 왜 ‘요한의 아들’을 ‘요나(비둘기)의 아들’로 말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께서는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의 표적’을 깊이 생각하고 계셨을 것이다. 아삽의 마스길에서 ‘멧비둘기’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시 74:19) 

예수께서는 그 ‘요나의 아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그것은 ‘혈육’의 베드로가 아니라 그분을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그 ‘믿음’을 가리켜 말씀한 것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아버지의 격려를 받은 그분의 ‘중대발표’가 이어진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3)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내가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이르지 말라’ 제자들 입단속한 예수님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8-08 03:32


 성경에 등장하는 다브랏의 현재 모습. 다볼산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스볼론 자손이 기업으로 받았다(수 19:12)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사랑하는 상대가 필요하셨기 때문이다. 참된 '사랑'의 절대적인 조건은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 자유가 매우 '위험'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참된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고, 사람은 결국 그 자유 때문에 금단의 열매를 먹게 되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그러나 하나님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되겠다며 그것을 먹은 사람은 결국 자유가 아닌 죽음의 함정에 빠져 그 두려움에 결박되는 신세가 된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선지자 이사야도 그것을 위해 아들이 오실 것을 예고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 

그러므로 ‘아들의 고난’은 처음부터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 5:8∼10)

이스라엘 자손은 절기마다 양과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고 속건제를 드렸으나 아들의 제사는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루게 되어 있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그러나 혈과 육을 지니고 오신 그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 마음을 전하고, 줄곧 다짐하고, 격려했다. 요단강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마 3:17)이라 하셨고, 나다나엘의 입을 통해 그것을 확인했고(요 1:49), 마귀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수긍했으며(마 4:3), 귀신도 그것을 인정했다(마 8:29). 그리고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다시 그것을 들려주신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속건제물이 바쳐질 곳은 결국 예루살렘이었다. ‘평화의 성읍’이 ‘아리엘’ 즉 번제단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발표했을 때 베드로가 그러지 말라고 탄원하자 이번에는 그를 꾸짖으신다. 그의 연약함이 아니라 사탄의 미혹을 꾸짖은 것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예수께서는 마침내 ‘다짐의 산행’을 준비하고, 아버지도 아들이 올라오게 될 곳에서 그와 만날 일을 준비하신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마 17:1) 

로마 교회의 전승에는 이 산이 갈릴리 호수 남서쪽 16㎞ 지점에 있는 ‘다볼’산으로 되어 있다. AD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가 다볼산 꼭대기에 성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그리스 정교회가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고,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산상변화 회당을 지었다. 그러나 높이 568m밖에 안 되는 이 산을 ‘높은 산’이라 하기 어렵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시 89:11∼12) 

해발 2804m인 ‘헤르몬(거룩한 산)’은 ‘하늘’을 의미하고 ‘다볼’은 ‘땅’을 의미하는 산이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헤르몬’의 정상은 세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상부 요단강을 거슬러 올라가 헤르몬 산자락의 바네아스 계곡에 갔던 예수께서 다시 요단강 남쪽으로 내려와 ‘다볼’산에 올랐다는 어색한 경로보다는 엿새 걸려서 ‘헤르몬’에 올랐다는 쪽이 더 어울린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마 17:2)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모세’의 후계자는 ‘여호수아(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였고, ‘엘리야’의 계승자는 ‘엘리사(하나님이 구원하신다)’였다.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와 치유, 구휼의 이적을 보여준 엘리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눅 9:31)

그날의 대화를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신 것도 아주 적절한 조치였다. 모세와 엘리야는 모두 이 땅에 그들의 무덤을 남겨 놓지 않은 선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베드로가 감동하여 예수께 아뢴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

홀연히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두려워서 엎드려 있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다.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없었고, 예수만 거기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단속하셨다. 예수와 세 제자가 산에서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고, 한 사람이 나와 엎드렸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고치지 못하더이다.”(마 17:15∼16)

예수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마 17:17)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낫게 되었다. 제자들이 예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느냐고 물으니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4)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②

‘인자가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고난과 부활 세번 예언하신 예수님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8-15 02:29

 


                                                  엘리사가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수넴 지역의 최근 모습.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에 승선한 욥바항의 최근 모습. 욥바는 솔로몬 시대부터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항구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는 베드로가 머물렀던 집과 베드로기념교회가 있다.


호세아의 포도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브라임 지역. 호세아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살필 수 있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당하실 것을 세 번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는 헤르몬 산 자락의 바네아스 계곡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높은 산’에서 내려와 간질에 걸린 아이를 고쳐주신 후 갈릴리로 돌아온 후에 다시 말씀한 것이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마 17:22∼23)

그러나 마가는 이때부터 예수께서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조심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가 속건제물이 될 것은 이미 정해졌고, 그 장소도 예루살렘으로 예비되었으나 아버지의 ‘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지정하시는 ‘때’를 신중하게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막 9:30∼31)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막 9:32)

예수께서 자신이 고난당하실 것을 미리 제자들에게 일러주신 말씀 가운데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예수께서 늘 아버지의 뜻을 물으며 기도하고, 두드려서 응답받아 알아낸 자신의 사명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속건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삼일’에 살아난다는 말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요 8:26)

들은 것을 말하셨다는데 그렇다면 ‘제삼일’에 살아난다는 말씀을 언제 들으셨을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 모르나 적어도 네 복음서의 기록에서 그런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만일 그분이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셨다면 겟세마네의 고뇌와 ‘이 잔을 옮겨’ 달라는 간절한 탄원은 성경 밖에 있는 ‘제삼자’들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성경에 사람이 죽고나서 다시 살아난 경우가 있는가?”

아담 이후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었다. 아주 특이한 사례로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히 11:5) 에녹과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왕상 2:11) 엘리야가 있고, 죽었으나 무덤을 찾지 못한(신 34:5∼6) 모세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선지자의 기도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례가 있다.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왕상 17:23)

그 아이는 시돈 지방의 사르밧에 사는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냈다.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왕하 4:36) 

예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신 적이 있다. 나인성에서 관 속에 있던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고, 가버나움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그러나 다시 살아난 자들은 영생한 것이 아니라 후일 다시 죽었다. 그와는 다르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부활’에 관한 소망을 전하셨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한글개역판)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겔 37:13)

그렇다면 성경이 들려주는 ‘제삼일’이란 무엇인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제삼일’에 요단강을 건넜다. 성경에서 광야는 하나님의 성막과 함께 가는 행군을 의미하고, 요단강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출발선이었다.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수 1:11)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이었고, ‘예수’는 ‘여호수아(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의 헬라식 이름이었다. 예수께서도 ‘가나안 진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비유하여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1:12). 여호수아의 본명은 ‘호세아(구원)’인데(민 13:16) 선지자 중에도 ‘호세아’가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2, 한글개역판)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말씀을 읽으며 예수께서는 이 ‘제삼일’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나는 날이 될 것임을 깊이 생각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보여 줄 것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고 하신 것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 16:4)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앗수르의 큰 성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욥바 항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 항해 중에 큰 풍랑이 일어나 승객들이 모두 죽게 되었을 때에,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다 이렇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자 곧 풍랑이 그쳤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9)

그러자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했고, 그가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자 니느웨의 왕과 대신들과 백성이 일제히 금식하며 부르짖고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의 몸이 썩지 않고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요나가 승객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바다에 던져지기를 자원했다는 것과 그의 기도가 예수께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5) 초막절 끝의 땅끝에 서서

폭동의 바람 불던 유대 땅 메시아 기다리는 명절날 흔들리지 않았던 예수님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8-22 04:30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지켜야 하는 절기였다. 

온 민족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간단한 초가집을 짓고 일주일 동안을 그곳에서 지낸다. 초막을 짓기 위한 가지를 파는 곳.


                                         지어진 초막의 모습. 광야에서의 고생한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AD 6년 ‘갈릴리의 유다’가 반란을 일으켰던 찌포리. 당시 찌포리에는 유대교 율법을 가르치는 

                           최고의 아카데미가 있었다. 5∼6세기에는 자체 감독을 소유할 정도로 기독교가 융성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BC 4년, 청년 시위대가 헤롯이 성전 문에 세운 금독수리상을 끌어내려 부수었다. 헤롯은 그 주동자인 유다와 마티아스를 잡아 화형에 처했다. 그해에 헤롯이 죽었는데 그가 죽기 전에 유대 왕의 자리를 아들 아켈라오에게 물려주고 안디바를 갈릴리와 베뢰아 분봉왕에, 빌립을 드라고닛 분봉왕에 임명했으나 유대는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마티아스와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반역을 일으킨 유대인들은 그들이 항상 하던 방식으로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7-9-3)

아켈라오가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 3000명을 살해하고 폭동을 진압했으나 이때부터 크고 작은 폭력 집단들이 각기 자기네 두목을 메시아라고 하며 전국을 횡행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집단 ‘셀롯’ 즉 ‘열심당’의 지도자인 ‘갈릴리의 유다’는 AD 6년, 찌포리를 거점으로 큰 규모의 반란을 일으켰다. 사도행전에도 가말리엘이 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행 5:37)

반란의 규모는 수리아 총독 바루스가 로마군 2개 군단과 4개 기병부대와 분봉왕들의 지원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을 정도로 컸다.찌포리 성을 함락시킨 바루스는 반역자들을 잡아 무더기로 처형했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자의 수는 2000명에 달했다.”(‘유대고대사’ 17-10-10)

이 사건으로 로마는 유대 왕 아켈라오를 해임하고 코포니우스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심당’이 완전히 소탕된 것은 아니었다. 유다의 세 아들 야메스, 시몬, 마나헴 등이 살아남아 열심당의 잔존 세력을 규합하여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유대고대사’ 20-5-2).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후 나사렛 출신의 한 목수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열심당은 자기네 당원 ‘가나나인 시몬’을 예수의 휘하로 들여보냈고, 그는 측근 열두 명 중 하나로 뽑혔다. 그를 통해 예수를 주목하던 열심당은 그 능력과 표적으로 보아 자기네 지도자로 추대할 만하다고 판단, 수차례 영입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수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살피고, 모친과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강조한 것도 그 문제였을 것이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요 7:2)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한 세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탈출한 해방 기념일이고, 칠칠절은 가나안에서 거둔 첫 열매를 드린 날부터 49일 되는 날이고, 초막절은 곡식을 수확하고 드리는 감사와 잔치의 절기였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레 23:42)

초막에 거주하는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성막과 동행하던 것을 기념한다는 의미였으나 또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초막에서 기다리는 소망의 절기였고, 수확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공의의 ‘심판’을 기대하는 절기이기도 했다. 그 절기가 다가오자 평소에 예수를 따르지 않던 동생들이 그에게 권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요 7:3)

왜 갑자기 유대로 가라고 했을까? 다시 봉기할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던 열심당이 심판의 ‘초막절’을 ‘D데이’로 정해 놓고 동생들을 통해 예수를 끌어들이려 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뜻’을 내세워 피하는 그를 예루살렘으로 가게 해 놓고, 열심당이 그를 밀어 선두에 내세우는 것이다. 다음 대화가 그것을 암시한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4)

그러나 이미 ‘아들의 길’을 정해 놓은 그분의 답변은 단호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요 7:8) 

이미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준비되고 있음을 그가 아셨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이 일에 말려들지 않도록 민첩하게 준비하신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눅 10:1∼2)

그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초막절의 의미를 정립하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분도 긴장하고 계셨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눅 10:3) 

그 ‘이리’란 칼이나 창으로 위협하는 박해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막으려는 사탄의 계략이었다. 제자들을 다 보내 놓고 예수께서는 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하나님의 때’를 묻기 위한 ‘두드림’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요 7:10) 열심당은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다가 그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자기들끼리 성전에서 폭동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다.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눅 13:1)

빌라도 총독이 진압에 나섰을 정도로 폭동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2∼3)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도 이때였을 것이다(눅 13:4). 사태가 진정된 후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 7:17∼18)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냈으나 그가 갈릴리의 반역자들에게 가담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므로 아직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요 7:33∼34) 

그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수군거렸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요 7:35)

초막절의 마지막 날 곧 예루살렘 사람들이 실로암 못의 물을 길어다가 성전에 붓는 ‘큰 날’에 예수께서는 성전에 서서 큰 목소리로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6)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진흙을 이겨 소경 눈에 발라 못에 씻고 눈 뜨게 해 하나님 하시는 일 나타내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8-29 04:58


                         베다니는 나사로 형제 외에도 문둥병 환자 시몬이 살았던 곳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날 묵었던 곳이며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올리브산 남동쪽 자락에 있다.



다윗성의 중요한 수원지(water source)이자 간헐천(間歇川)이었던 기혼 샘. 예루살렘의 동쪽, 기드론 골짜기가 있는 곳에 있다.




마리아가 예수를 대접했던 곳의 우물

'갈릴리 사람들' 즉 열심당이 계획한 초막절 폭동에 끌려들지 않도록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을 흩어 보내신 후 절기의 중간에 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절기의 마지막 날 예수께서는 서서 크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이미 폭동이 진압되었으므로 예수께서 그 폭동에 가담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고,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의 하속들이 그를 잡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오자 상전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요 7:46)

상전들이 노하여 하속들을 꾸짖었다.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예수께서는 성 밖의 감람산으로 가셨다(요 8:1). 각 지역으로 보냈던 70인의 제자들과 거기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돌아온 제자들이 그분께 보고했다.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예수께서 고개를 끄떡이며 이르셨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

사탄의 계략은 ‘하나님의 아들’을 열심당의 폭동에 끌어들여 체포되게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지혜롭게 대처하여 그와 제자들은 올무에 걸리지 않았고, 실패한 사탄은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진 것이다.

“옳소이다. 그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그와 제자들이 유숙할 곳을 찾기 위해 감람산을 넘어 베다니 마을 쪽으로 갈 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자신의 외로운 신세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외로우시니 그 아들도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그분을 따라오는 사람들 속에서 한 율법교사가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여러 계파 중에 그래도 바리새인 쪽에 관심이 있으셔서 그들과 식사도 자주하고 대화도 나누셨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는 것은 ‘말씀’이 아닌 ‘율법’이었고, 그들의 관심은 ‘사랑’이 아닌 ‘권위’에 있었다. 율법교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신 6:5) 이웃을 사랑하라(레 19:18)는 말씀을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 행하라고 하시자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그러자 예수께서는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하고 싸매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제사장과 레위인의 ‘위선’을 따르지 말고 이웃을 치료해 준 사마리아 사람의 ‘착함’을 따르라고 권하셨다. 그 후에 그분의 일행도 베다니 마을을 지나가다가 한 ‘착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눅 10:38)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 앉으신 예수께서는 그분을 대접하기 위해 마음이 분주한 마르다보다는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동생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

그분의 ‘외로움’은 거처할 곳이나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그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두개파는 그를 경계했고, 율법을 중요시하는 바리새파는 그를 비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은둔하는 수도 공동체 ‘엣세네’파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엣세네 공동체는 노동이 끝나면 찬물에 목욕을 하고 흰옷으로 갈아입은 후 감사를 드리고 함께 식사를 했다. 외부인들에게 이들의 정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다.”(요세푸스 ‘유대전쟁사’ 2-8-5)

그러나 예수께서 세상과 격리된 은둔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눅 11:33)

그분에게 등불이란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자신을 태우는 것이고, 소금이란 세상에 들어가 자신을 녹이는 것이었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필요 없어 내버리느니라.”(눅 14:34∼35)

베다니에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유숙한 예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그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빛이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마침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요 9:2, 한글개역판)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 한글개역판)

그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셨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원 ‘기혼’ 샘은 성 밖에 있었다. BC 701년 앗수르군의 포위를 당하기 전에 히스기야 왕은 바위 속으로 굴을 뚫어서 지하 수로를 건설하고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여 ‘실로암’ 못에 저장하도록 했다(대하 32:30). 실로암의 물은 예루살렘 백성의 생명수였던 것이다. 소경은 가서 그 물에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요 9:14)

바리새인들이 다시 그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자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요 9:39, 한글개역판)

그러자 무리 중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떠들었다.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소경되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7)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유대인들의 위협 불구 하나님의 위로 받은 예수님 나사로 무덤 찾아가 “나오라”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9-05 03:00


이스라엘에서 현재도 지켜지고 있는 ‘하누카(修殿節)’ 행사. 하누카는 제2차 예루살렘 성전이 

야훼에게 재봉헌된(BC 165)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로 이때 의식용 촛불을 밝히고 선물도 교환하며, 

                         어린이들은 명절놀이를 한다.

감람산 동쪽의 베다니(벳바게) 지역. 베다니란 '무화과의 집'이란 뜻이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지역의 요단강 서편, 현재의 알에이자리아 지역이다.


                                           나사로의 무덤. 좁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옆에 부착된 손잡이를 잡고 

                                 27개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무덤 바로 옆에 회교사원과 첨탑이 있다.


BC 170년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는 제우스 신을 중심으로 세계 종교를 통일하려는 야망으로 애굽 정벌에 나섰다가 애굽과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의 방해 공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BC 168년 다시 애굽으로 출정했으나 이번에는 로마의 견제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안티오쿠스 4세는 귀환 길에 예루살렘을 그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안티오쿠스 왕은 성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을 세웠다.”(마카비상 1:54)

그 성전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이 AD 516년 작은 규모로 재건한 제2성전이고, 안티오쿠스가 세운 것은 제우스의 신상이었다. 안티오쿠스는 그 제단에서 유대인이 금기시하는 돼지를 잡아 바쳤고, 남자 아이들의 할례를 금지했다.

“할례를 행한 제사장들과 부모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고, 아이의 시체를 그 부모의 목에 매달았으며, 율법서는 모두 불살랐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12-5-4)

하스몬가의 제사장 맛다디아가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경건파 ‘하시딤’과 합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BC 165년 성전산을 장악한 그들은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고 개수하여 중단되었던 제사를 회복하고 그날을 ‘하누카’, 즉 수전절(修殿節)로 기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AD 29년 수전절에 예수께서는 헤롯이 중건한 제3성전에 서신 것이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요 10:22∼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이라며 돌을 들어 치려하자 그분이 말씀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 10:36)

예수와 제자들은 달려드는 유대인들을 피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요 10:40)

성경에는 같은 지명을 가진 다른 지역이 있어 혼동할 수가 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이 지역을 KJV(King James Version)는 ‘베다바라’로 번역했으나 실은 그곳도 ‘베다니’였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요 1:28)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일시나마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므로(요 1:35) 그곳의 지명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감람산 동쪽의 ‘베다니’ 마을에 있는 마르다의 집에 머물던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요단강 건너편의 ‘베다니’ 지역으로 피신을 하셨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 13:32)

이 지역에서 가르치신 예수의 말씀마다 마지막 속건제를 준비하는 그분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그 속건제의 날을 ‘잔치’에 비유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잔치를 배설하려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눅 14:13∼14, 한글개역판)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그는 또 잃어버렸다가 찾은 한 마리의 양(눅 15:4), 잃었다가 찾은 한 드라크마(눅 15:9), 돌아온 둘째 아들(눅 15:32)의 비유로 ‘아버지의 마음’을 전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그때 감람산 쪽의 베다니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누이들이 예수께 급히 연락을 보낸 것은 그분이 속히 오셔서 병을 고쳐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나사로를 위해 베다니로 다시 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자 그분이 말씀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1:4)

제자들을 설득할 때마다 ‘하나님의 아들’을 언급하는 그분의 말씀에도 제자들은 이제 별로 감동이 없었다. 그것은 나사로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요 11:5) 

그분을 비롯한 열두 제자, 어쩌면 70명의 제자까지 마르다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마르다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처럼 ‘사랑’보다 ‘권세’ 또는 ‘자리’에 더 마음을 쓰고 있던 ‘갈릴리’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왕이 되실 때에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로 서로 생각이 예민해져 있었다.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막 9:34) 

게다가 예수의 열두 제자는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인데 나사로는 ‘유대 사람’이었다. 열두 제자는 나사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이때쯤일 수도 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눅 16:25)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고도 이틀을 더 기다리시다가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는 그래도 가겠다고 하신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잠들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오히려 비꼬아 말한다.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그때 도마가 나서며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

그러나 요한의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는 혼자 베다니에 가셨던 것으로 보인다. 베다니에 가셨을 때 그곳에 유대인들과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을 뿐, 제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마르다의 입을 통해 다시 아들을 위로하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예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비통한 눈물을 흘리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의 말을 들으신 것에 감사하며 돌로 막아 놓은 무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8)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③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인자가 넘겨지매…’ 죽음과 부활 세 번째 말씀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입력 2014-09-12 03:40


                         예수께서 제자들과 다시 만난 에브라임 땅. 에브라임 지파는 비옥하고 언덕이 많은 팔레스타인 중부 지역에 정착했다. 

                         이 지역에 실로와 베델 등 중요한 종교 중심지들이 있었다. BC 930년 이 지파는 북쪽 지파들을 이끌고 

                         남쪽 지파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여로보암 1세를 왕으로 삼았다.


헤브론에서 모리아까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걸었던 사흘 길. 이 길을 걸어보면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치러 가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키 작은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보려고 올라갔던 여리고의 무화과나무. 뽕나무과에 속하며 2∼4m로 자란다. 

                          소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이집트에서 약 4000년 전에 심은 기록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수로 알려져 있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일은 세 번 있었다. 그 하나는 수가 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한 뒤 갈릴리 쪽으로 올라가시다가 나인 성에서 장례 행렬을 멈춰 놓고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것이고, 다음은 거라사에서 군대 귀신을 물리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건너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이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 그 세 번째였다.

"이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53)

먼저의 두 사건은 갈릴리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유대인들은 그저 풍문으로만 전해 듣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린 것은 감람산 너머 바로 지척에서 일어난 표적이어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식된 것이었다. 즉 나사로 사건은 예수를 죽이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는데 마가복음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구술을 마가가 받아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이 중요한 사건을 마가에게 불러주지 않았을까? 베드로의 생각에, 제자들이 일제히 반대하여 베다니로 따라가지 않았던 것은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은혜롭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이었을까? 마가의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쓴 마태복음 역시 이 일에 침묵하고 있다.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요 11:12)

삼년이나 따라다닌 선생님께 그리도 무엄하게 대꾸했던 제자들을 도대체 누가 선동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자세히 살폈다는 누가도 그것을 쓰지 못하고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만을 조심스럽게 삽입해 놓았다.

“이미 기록된 세 복음서가 널리 유통되고, 그 사본이 요한의 손에도 들어왔다.”(유세비우스 ‘교회사’ 3-24)

결국 요한은 예수께서 떠나신 지 60년이나 지나서 요한복음을 썼고, 나사로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적어서 남겼다. 필자는 소설 ‘제국과 천국’에서 평소 시기심이 강하고(눅 9:49) 야망이 컸던(막 10:37) 요한이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을 선동해 ‘유대 출신’ 나사로를 따돌리게 했던 것으로 설정했었다. 만약 예수께서 혼자 베다니에 가셨다면 언제 그들과 합류했을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에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시니라.”(요 11:54)

이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실족’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눅 17:1∼2)

뭔가 강력하게 나무라고 경고하는 듯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시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4)

그리고 다시 종의 자세로 겸손하고 헌신할 것을 강조하신다.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바리새인들이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질문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주는 대답을 통해서도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회개하면 용서하겠노라고 하셨는데도 제자들은 회개할 생각은 안 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고 예수께서는 오히려 아이들을 불러 안으시며 말씀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6)

그리고 마침내 예수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 18:31)

예루살렘은 이미 ‘아리엘’ 즉 ‘번제단’으로 정해져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고 했던 곳을 생각하고 계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그리고 ‘제삼일’에 그곳이 보였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3)

헤브론에서 모리아 산까지의 사흘 길은 아브라함에게 흑암의 길이었다. 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었다 하나 그의 마음은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제삼일에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 22:11)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 13:32)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그 모리아 산의 바위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 13:33)

그는 아리엘이 된 예루살렘을 안타까워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눅 13:34)

그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세 번째 예고는 전보다 더 구체적이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0:18∼19)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께 나아와 자기네 형제에게 높은 자리를 달라고 청탁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예수께서 여리고를 지날 때에 그분을 만나 인생이 바뀐 사람은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다가 그분을 외쳐 불러서 눈을 뜨게 된 소경 바디매오(막 10:46)와 그분을 보려고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가 부름을 받은 세리장 삭개오(눅 19:5) 뿐이었다.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