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만들던 클린룸에서 친환경 채소 키우는 까닭
[화학·전자회사들 "농업이 미래의 먹거리" 진출 줄이어]
온난화 따른 가뭄·홍수 등으로 고품질 식량 안정적 공급 중요
2020년 농식품산업 6兆달러
전자 기술 농업에 적용하거나 제3국에 대규모 농장 직접 경영
신기술 활용 농산물 가공해 의약품·화장품으로 재탄생시켜
지난해 12월 LG전자의 H&A(생활가전) 사업본부 산하에 '그린 하우스'라는 태스크포스(TF)가 새로 생겼다. 이 조직의 주 업무는 에어컨과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 태양광 등 LG전자 제품을 농업 분야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LED 조명을 활용해 식물을 키우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며 에어컨으로 온실 속 온도를 조절하는 식이다.
LG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LG화학은 지난달 이사회에서 종자(種子) 회사인 '동부팜한농'을 5152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승인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세계적 화학 기업들은 농화학 사업을 미래 주력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며 "LG화학도 농화학 사업 진출을 통해 선진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1차 산업인 농업이 국내외 기업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 농식품 관련 산업 규모는 5조3000억달러(약 5904조원·2014년 기준)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자동차 산업 규모(1조6000억달러)의 3.3배다.
최윤희 산업연구원(KIET) 미래산업팀장은 "기후온난화에 따른 가뭄·홍수 등으로 안정적 식량 공급이 중요해지고 중국·아프리카에서 고급 식자재 수요가 증가해 2020년에는 세계 농식품 산업 규모가 6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채소 재배, 농장 조성…
포스코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은 현재 미얀마에서 연간 10만t 규모의 미곡 종합 처리장을 추진중이다. 곡창 지대인 미얀마에서 직접 쌀을 가공해 해외에 내다 파는 트레이딩 사업용이다. 이 회사는 이미 인도네시아에 3만4000㏊(헥타르) 규모 오일팜 농장을 조성해 지난해 6월 생산을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철강과 석유가스에 이어 농업 분야를 새 전략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곡물을 전년보다 37% 정도 많은 110만t 거래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일본 가전(家電) 기업들은 직접 채소 재배에 나섰다. 파나소닉은 2014년 싱가포르에 무와 배추 등을 재배하는 실내 농장을 짓고 생산에 착수했다. 여기서 생산한 채소를 싱가포르 현지에 공급한다. 2017년까지는 재배하는 채소 종류를 30가지로 늘릴 계획이다. 후지쓰는 후쿠시마에서 상추 농장을, 샤프는 중동 두바이에서 실내 딸기 농장을 운영 중이다. 반도체 등을 만들던 클린룸에서 고부가가치의 친환경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다. 바바 히데키 파나소닉 이사는 "세계적으로 경작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질 좋은 식품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CJ제일제당 생명공학 부문은 2조1964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15% 넘게 성장했다. 매출 증가의 일등 공신은 가축 사료용 단백질인 라이신이다. 1991년 인도네시아에서 라이신 생산을 시작한 CJ제일제당은 2012년 중국 선양에 라이신 공장을 세웠다. 중국에서 가축용 사료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소득이 높아지면서 중국인들이 우유·치즈 등 유제품을 본격 먹기 시작하면서 젖소 사육도 덩달아 증가했다"며 "이 덕분에 중국 내 라이신 판매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융·복합化로 高부가가치 창출
스위스 제약 회사인 베링거인겔하임은 2013년 자국의 건강식품 기업인 '진사나'를 52억스위스프랑(약 6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진사나'가 생산하던 인삼 가공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자체 제약 기술을 활용해 인삼을 알약 형태로 만들어 전 세계에 유통시켰다. '진사나'의 제품은 세계 인삼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다.
기업들은 신기술을 활용해 농산품을 의약·화장품·영양제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도 중국의 토종 식물인 팔각회향에서 추출한 물질을 활용한다.
최지현 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의약·화학·정보 기술을 농식품 산업에도 적용함으로써 새 시장이 계속 창출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융·복합 차원에서 농·식품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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