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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이화마을 벽화 갈등 풀려면

영국신사77 2017. 5. 2. 20:22

[기자의 시각] 이화마을 벽화 갈등 풀려면

입력 : 2017.05.02 03:05


장형태 사회부 기자
"벽화 지워지고 일 년, 중국인들 안 온 지는 한 달 됐네. 동네가 조용해지긴 했는데…." 얼마 전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에서 만난 주민 김모(여·68)씨는 "사람들이 작년의 절반도 안 온다"고 말했다. 계단에 그린 그림들이 페인트 덧칠로 없어진 지 1년이 지났다. 계단 주변의 집 벽엔 '제발 조용히 조용'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 등의 빨간 래커 칠 글씨가 적혀 있었다.

작년 4월 15일과 23일 밤 이곳 주민 박모(26)씨 등 5명은 이화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해바라기 계단'과 '잉어 계단'에 회색 페인트를 칠했다. 두 벽화는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낙후된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그린 16점의 일부였다. 공동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씨 등은 "관광객이 많아져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 시와 종로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주민 동의를 받아 벽화를 지웠다"고 항변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이들에게 2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박씨는 항소했다고 알려졌다.

2015년 3월12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이화마을 벽화거리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박상훈 기자
벽화가 그려지길 희망하는 상인·주민과 조용히 지내길 원하는 주민 간 갈등은 2015년 가을 무렵 서울시가 이곳에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 격화됐다. 이전까지는 "벽화를 그린 이후 마을이 깨끗해지고 집값도 2배 이상 올랐다"는 의견이 많았다. 낡은 성곽 마을이었던 이화마을(1만3889㎡)은 재개발 대상지였다. 당초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사업성이 낮아 작년 1월 조합이 해산됐다. 서울시는 대신 골목과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낡은 환경을 정비하기로 했다. 이화동을 3등분해 양쪽 끝엔 상업 시설을 들일 수 있게 하고, 가운데 지역은 주택만 짓도록 하는 지구 단위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자 마을 140여가구 중 주거 지역에 해당하는 20여가구가 "관광객은 동네 가운데로 몰리는데 바깥에만 장사를 하는 가게를 들이는 게 말이 안 된다" "주변 집값은 더 올라가는데, 우리만 손해 본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벽화로 유명해진 전국의 다른 마을들도 크고 작은 갈등을 빚고 있다. 작년 10월 경기도 수원시 행궁동 벽화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문화 시설로 보존하겠다는 시의 결정에 "재산권만 침해된다"며 벽화 50점 중 15점에 붉은 페인트칠을 했다.

이화마을의 잉어와 해바라기는 다시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문체부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벽화를 다시 그리는 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도시 재생 사업 대상인 노후 주거지는 이화마을처럼 오랜 기간 추진해온 재건축이 무산돼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은 경우가 많다. 지자체와 정부는 서둘러 삽을 뜨고 붓을 들기보다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주민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도시 재생으로 인한 이익도 주민이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이 직접 갤러리, 카페, 상점 등을 운영해 관광 수익을 공유하는 통영 동피랑마을이 좋은 상생(相生) 사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1/20170501020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