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첫 학기 등록금만 대주면 나머지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겠다고 아버지와 약속을 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사실 아버지는 대학에 보내지 말라는 새엄마와 밤새 싸우셨고 우연히 내가 그 소리를 들었다. 거기에 대고 등록금을 요구할 수 없었다. 당장 2학년부터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나는 과 사무실을 여러 번 찾아가 장학금을 신청했지만, 나처럼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 번번이 떨어졌다.
등록기간이 마무리되고 추가 등록을 한 주 앞둔 상태였다. 대강당 큰 채플홀에 엎드려 엉엉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중도에 포기할 순 없었다. 이석곤 과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과 사무실로 가면 조교 언니가 들여보내주지 않기 때문에 직접 동대문에 위치한 선생님 댁으로 갔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 깜짝 놀라셨다.
“선생님, 저는 이번에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짐을 싸들고 고향으로 가야 합니다. 도와주세요.” 그리곤 무조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생님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하나님, 이 학생이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우리 대학을 졸업한 후에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자녀가 되게 축복하소서.”
그렇게 기도를 마친 선생님은 한참을 눈을 감고 계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래, 너는 무언가 될 놈 같다. 정 장학금이 안 되면 내가 사재라도 털어서 이번 등록금을 대줄 테니 걱정 말거라.” “할렐루야!” 순간 그렇게 외쳤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다. 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다시금 체험했다.
큰 산을 넘은 것처럼 감사했다. 그런데 그 다음주 게시판에 방이 붙기를, 문교부에서 대여장학생을 뽑는다는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등록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내린 특례법이었다. 과장선생님은 당연히 나를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사재를 대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문리대 특대상 장학금이 5000원이었고 등록금은 한 학기 8700원이었는데 대여장학금은 1만5000원이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문리대에서 단 2명의 대여장학생 중 내가 들어간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4학년 졸업 때까지 1년에 3만원씩 장학금을 받으며 학비를 내고도 돈이 남아 책을 샀고 생활비까지 보탤 수 있었다.
나는 기도하면 이뤄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게 됐다. 하나님은 입시제도까지 바꿔주셔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고, 등록금이 없는 내게 장학금을 주셔서 무난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해주셨다. 졸업 1년 후 이 장학제도는 폐지됐고 1년 후부터 한 달에 500원씩 환수하겠다는 것도 다 탕감해 주었으니 이 제도야말로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비하신 것으로밖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국가에 빚을 진 사람이다. 나아가 하나님께 단단히 빚잔 자 되었으니 그 은혜를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나는 나라와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조국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갈 의무를 가진 사람이 됐다. 앞으로도 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면서 ‘빚’을 갚도록 할 것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