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1 은미희 / 소설가
이상하게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무언가 살짝 내 감정선을 건들기만 해도 눈물샘부터 반응한다. 따듯한 말 한마디를 들어도,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도 벌써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나만 그러는가 싶어 슬쩍 눈물을 찍어내며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면 다들 무관심한 얼굴들이다. 그럴 땐 참 머쓱하지만 싫지는 않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은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특히 사람하고 관련된 일일 경우 더욱 그렇다. 하긴 살아가는 일이 어찌 사람과 무관할 수가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일을 접했을 때, 감정의 동요는 느꼈으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함께 기뻐하거나 안쓰러워하고 안타까워했지만 눈물을 흘리는 일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한데 요즘 들어 어찌된 게 쑥, 눈물부터 빠진다. 오지랖이 넓은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감상적이 돼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어찌됐든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모르겠다. 눈물은 여자의 무기라고 했는데, 한 번도 눈물을 무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걸 무기로 사용해 본 적도 없던 나였으니, 새삼 지금에 와 무기로 사용할 일은 없다. 게다가 눈물을 무기로 사용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홀로 씩씩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요즘 들어 걸핏하면 그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최근의 일이다. 전국의 문학인들이 한데 모여 세계 문학계의 동향을 알아보고 서로 인사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문단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 이런저런 행사가 많지만 낯가림이 있는 나는 꼭 가야 할 곳이 아니고서는 잘 가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날은 주최측 일원으로 참가하게 됐다. 심포지엄도 끝나고 지역을 대표해 한 사람씩 나와 시 낭송을 하는데, 차례가 된 대구지역 작가가 무대로 올라와 인사를 했다. 평소 말을 하는 것보다 쓰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어투는 어눌했고 표정은 왠지 쑥스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음성에는 진정이 묻어 있었다. 그 인사말이 가슴을 때렸다. 시인은 앞줄에 앉아 있는 문단의 나이 많은 선배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더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니. 그 인사를 들은 나이 많은 선배는 발그레 얼굴이 붉어져서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표정은 왜 또 그리 아름다워 보이던지…. 시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슴이 뜨거워지더니 어느새 내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 인사말을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혹여 빈말일지라도 얼마나 위안이 되고 따듯한 말인가. 저마다 그악스럽게 터럭손을 내밀어 더 달라고 쇳소리를 내는 데는 익숙해져 있지만 그렇듯 타인의 안부를 걱정하고 윗사람을 챙기는 소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듯했다. 그의 인사가, 그의 수줍은 표정이 내 마음에 비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치레나 의례적일망정 가끔 안녕하셨느냐고,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인사를 들어본 지가 오래된 듯하다. 나 역시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안부전화를 하는 데 인색했으니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정말, 밤새 안녕이라더니 사람 목숨처럼 허망한 게 또 있을까. 벌써 내 주소록에는 고인이 된 사람들이 여럿이다. 마치 눈을 가리고 제비뽑기를 해 순번을 타는 듯하다. 청춘의 생명들은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지쳐 스스로 생을 결딴내 버리거나 지병도 없이 힘차게 살다가 어느날 덜컥 유명을 달리한 지인들도 있다. 그러니 어찌 그 인사가 심금을 울리지 않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챙기는 거, 사람이 사람을 걱정하는 거, 그것만큼 세상에 또 따듯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터.
목숨이 감꽃처럼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시절에 진정으로 남을 생각하고 염려해주는 일만큼 살아갈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세상살이가 팍팍해지고 강퍅해질수록 옆을 돌아보며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힘들면 서로 어깨 겯고 보폭을 함께하면서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시켜 주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사람으로부터 격리돼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사람이 그립고, 따듯한 위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