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동석 교수는“고전 번역은 꽃과 열매를 거두기 위해 묘목을 심는 작업”이라고 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정관정요·십팔사략… '중국사상 100선' 낸 임동석 교수
30년 세월 몸바쳐 이뤄내 "고전 번역은 쌀농사와 같아밥·떡 나오는 학문의 기초"
탁자 위에 책을 쌓아 올렸더니 어른 키를 훌쩍 넘었다.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로 통하는 《정관정요》(貞觀政要), 태고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역사를 모은 《십팔사략》(十八史略), 고사성어의 보고(寶庫)인 《전국책》(戰國策)이 삐죽 보였다.《논어》《맹자》《대학》《중용》같은 유가(儒家)의 기본경전을 비롯해서 《노자》 《장자》 《열자》 같은 제자백가(諸子百家)도 망라했다. 책 수로 54권. 종수로는 21종을 망라한 임동석 건국대 교수(중문학)의 '중국사상 100선'(동서문화사) 1차분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다음 달에는 33종, 70권이 더 나온다. 출판사에 넘긴 원고만 모두 60종, 150권에 이른다. 200자 원고지 20만장을 훨씬 넘는 분량으로, 대만 유학 때부터 30년에 걸친 작업의 결실이다.
임 교수 번역본의 특징은 충실한 참고자료다. "정몽준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를 비판하면서 했다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말이 요즘 신문에 오르내리지요. 이 말은 《장자》도척(盜��)편에 처음 나옵니다. 《전국책》, 《사기》,《한서》에도 잇따라 등장합니다. 제 번역본에는 다른 문헌에 나오는 고사(故事)의 출전을 하나하나 밝히고 있습니다." 임 교수는 "번역에 들인 시간만큼이나 노력과 품이 많이 든 것은 이처럼 충실한 참고자료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방대한 중국 고전을 한 사람이 번역하고, 주를 달고, 다른 문헌에 등장하는 본문을 확인하는 게 가능할까. 임 교수는 매일 오전 5시에 도시락 2개를 싸서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학교 연구실에 출근한 뒤, 저녁 7시 20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번역에 쏟아왔다. 연구실에 불을 켠 채 퇴근한 줄 알고 학교 수위가 새벽에 마스터키로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 적도 여러 차례다. 작년에는 척추가 휘는 바람에 다리를 제대로 못써 수술까지 했다. 의사가 "그렇게 몸을 상하면서까지 번역에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며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정작 태연하다. "학문의 기초는 고전(古典) 아닙니까. 누군가 기초를 닦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내가 고전 번역을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임 교수는 고전 번역을 '쌀 농사'에 비유한다. "누군가 쌀 농사를 짓지 않고 어떻게 밥이며, 술이며, 떡이 나올 수 있습니까." 그는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만 따 먹으려는 세태가 우려스럽다"고 했다.
임동석 교수는 소백산 화전민 출신이다. 어릴 때 마을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고 커서는 한학자 신호열(辛鎬烈) 선생에게 한학을 익혔다. 고교 3년간 새벽 신문배달로 생활비를 댔고, 서울교대를 다니면서도 고학하다시피 했다. 대만 국립사범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충북대를 거쳐 1985년부터 건국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어릴 때 '지게 목발 밑에는 제 한 입 풀칠하기 어렵지만 붓끝 밑에는 열 식구 먹고산단다'고 늘 공부하는 것을 격려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이빨과 머리털이 빠져 성글어진다는 '치발소'(齒髮疎)의 나이까지 고전 번역에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임 교수는 "앞으로 20종 정도의 중국 고전을 더 번역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