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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이야기] 법정밖에서 '화음(和音)'내는 판사·검사·변호사

영국신사77 2009. 4. 27. 12:50
           [사람과 이야기] 법정밖에서 '화음(和音)'내는 판사·검사·변호사

                                          40대(代) 법조인 중창단 '레몬 셔벗 싱어즈' 13명

                                                                                          2009.04.27 05:38 조선일보 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21일 오후 8시1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연습실에서 변호사 7명이 두툼한 복사물을 손에 쥐고 소곤거렸다. "굉장히 어려운데…. 우리 실력으로 될까?"

잠자코 듣고 있던 음대 교수가 손뼉을 쳤다. "자, 여러분 실력으로 충분히 부를 수 있는 곡이에요. 걱정 말고 피아노 반주에 따라 불러봅시다."

이날 모인 변호사들은 40대 법조인들로 구성된 남성 중창단 '레몬 셔벗 싱어즈(Lemon Sherbet Singers)' 멤버들이다. 음대 교수는 이들의 '스승'인 서울 비전예술신학교 장근정(48) 교수다.

'레몬 셔벗 싱어즈'는 김상우(48) 삼성전자 전무, 'BBK 특검' 특별검사보를 지낸
최철(49) 변호사, 윤종수(45) 대전지법 논산지원장, 이재경(41) 건국대 교수 등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 13명으로 구성됐다. 황인규(48)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장검사가 단장이다. 이들은 2005년부터 5년째 매주 화요일에 모여 가요와 국내외 가곡, 오페라 아리아를 연습 중이다. 매년 두 차례씩 서울 강남 일대의 소극장을 빌려서 정기 공연도 한다.   

 

 
     ▲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40대 법조인들로 구성된 남성 중창단‘레몬셔벗싱어즈’단원들이 스승3 장근정(왼쪽에서 네번째)씨와 여 성 반주자(왼쪽에서 여섯번째)와 함께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연습실에서 화음을 맞춰보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이들은 대학 시절 집에서 가까운 한남동 단국대학 도서관에서 함께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한남학파'를 자처하며 모이기만 하면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른 나머지, 가족들에게 "법대에서 음악시험도 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변호사·판사·검사로 활동하다가 2005년 초 "추억을 되살려서 노래 한번 제대로 불러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중창단 이름은 김상우 전무의 딸(15)이 좋아하는 간식 '레몬 셔벗'에서 따왔다. '레몬 셔벗처럼 상큼하게 노래하자'는 뜻이다.

출발은 그다지 '상큼'하지 않았다. 일과 술자리 때문에 단원들의 출석률이 저조했다. 법무법인 두우 대표 최정환(48) 변호사는 "다들 바쁘다 보니 지금도 10명 이상 모이기는 힘들다"고 했다. 간신히 스케줄을 맞춰서 여러 명이 모여도 좀처럼 화음이 맞지 않아 흥이 안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제대로 된 화음이 나왔다. 박진순(47) 한국씨티은행 법무본부장은 "그때 서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며 "날이면 날마다 치열하게 법정다툼을 벌이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후 단원들은 '사시 공부'하듯 중창 연습에 몰두했다.

이들의 정기 연주회에 오는 청중은 주로 가족과 지인들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박성엽(48) 변호사는 "아내가 처음엔 '노래 부른다는 핑계로 술 마시러 다니는 모임 아니냐'며 핀잔을 줬는데 공연을 본 뒤 열렬한 팬이 됐다"고 했다.

"더 열심히 연습해서 우리 아이들의 결혼식에서 직접 축가도 불러주고, 기회가 되면 불우이웃돕기 거리 공연을 펼치고 싶습니다."

노래를 통해 얻은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레몬 셔벗 싱어즈' 멤버들의 소박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