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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에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넣으면…

영국신사77 2008. 5. 19. 01:22
[Why] 영화 '킹콩'에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넣으면…
[클래식 토크]
김성현 기자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
 
▲ 영화 킹콩의 한 장면.
김성현: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평전을 내셨죠. 반응은 어떻습니까.

정준호: 제가 세상 물정을 몰랐던지, 영~. 아무래도 현대음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은 것 같아요.

김: 멜로디가 없다, 낯설고 거북하다, 난해한 음악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면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돌려버린다…. 이런 선입견인가요.

정: 1913년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 초연 당시에도 파리 청중들이 "집어치우라"며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했죠. 그런데 이 음악을 영화 〈킹콩〉과 함께 들으면 재미난 조합이 만들어집니다.

김: 해골 섬의 원주민이 여주인공 앤을 킹콩에게 바치는 대목이네요.

정: 앤은 포승줄에 묶인 채 희생양으로 바쳐집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사운드를 모두 없애고, 대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가운데 〈희생의 춤〉을 틀면 완벽한 조합이 됩니다.

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영화 사운드트랙처럼 들리는 걸요.

정: 실제 《봄의 제전》에서도 이 장면은 풍요를 기원하는 뜻으로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교도들의 제의(祭儀)를 다루고 있어요. 〈킹콩〉과 같은 맥락이죠.

김: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Fantasia)〉에도 이 음악이 나오지요.

정: 그래요. 현대음악을 콘서트 홀에서 들으면 골치 아픈 게 사실이지만 영상이나 이미지와 함께 보면, 생각보다 더 친숙하다는 걸 알 수 있죠.

김: 스트라빈스키도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 같은 발레 음악으로 데뷔했지만, 훗날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을 썼죠.

정: 클래식 음악과 가장 가까운 장르가 영화입니다. 러시아 초기 영화 거장 에이젠슈타인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와 손잡고 〈이반 대제〉나 〈알렉산더 네프스키〉를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냈죠. 20세기 음악 어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작곡가 버나드 허먼은 히치콕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하고요.

김: 영화 〈사이코〉에서 살인마가 욕실에서 여주인공을 살해하기 위해 칼을 치켜들 때 끽끽거리며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현악 말이죠. '미니멀리즘' 계열로 분류되는 작곡가 필립 글래스도 〈디 아워스(The Hours)〉나 〈일루셔니스트(The Illusionist)〉 같은 영화음악으로 친숙하죠.

정: 작곡가의 저작권 동의 없이 가져다 썼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삽입된 덕분에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리게티도 유명해졌죠.

김: 리게티는 불법 도용의 피해자였지만, 거꾸로 수혜자이기도 하군요.

정: 오페라와 교향곡, 협주곡은 시대의 요구 때문에 태어난 역사적 산물이죠. "영화음악은 클래식의 주류가 아니다"며 꺼리지만, 콘서트 홀이나 오페라하우스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닙니다.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생계 때문에 영화음악에 뛰어든 게 사실이지만, 청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다 나온 고민이기도 합니다.

김: 멀게 보이지만 실은 가까운 게 현대음악이라는 거죠.





입력 : 2008.05.16 13:48 / 수정 : 2008.05.17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