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가 기도에 대한 강연을 마친 후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기도의 응답은 결국 우연의 일치가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연일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기도를 그치고 노력을 그치면 그 우연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어쩌면 우연한 사건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우연한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며 사느냐는 것이다.
나는 성지를 방문할 때마다 정말 우연한 두 개의 사건이 만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한 사건은 1880년 예루살렘 실로암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놀이 중에 일어난 일이다. 물놀이를 하던 한 아이가 더위를 식히고자 지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6m 정도 들어 갔을 때 그 아이는 터널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벽면의 글씨를 보게 됐다. 모두 여섯 줄로 기록된 200자의 비문은 히스기야 터널 공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성서고고학 최대의 신비를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1947년 초 아랍계 베두인 청년 무함메드가 잃은 양을 찾아 길을 헤매다가 바위 산지 동굴을 향해 돌을 던져본 것이다. 무언가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 깨어진 항아리에서 발견된 양피지가 바로 저 유명한 사해사본(쿰란문서)이었던 것이다. 우연이었을까? 정말 우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우연한 사건들의 배후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엿보인다.
하나는 이런 일들을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그 우연은 인류 역사의 비밀을 밝혀내고 고고학의 발전을 이뤄내는 동기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주목할 또 하나의 공통점은 히스기야 터널도, 사해사본도 그 처음 모습을 발견한 것은 학자들이 아닌 순진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통해 역사의 비밀을 세상에 계시하신 것이다.
새삼스럽게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진리의 발견도, 역사의 위대한 순간을 만드는 일들도 대부분 ‘단순한 마음’을 지닌 어린아이들이나,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의 창조적 호기심을 통해 이뤄진다는 말을 기억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신앙이나 교육은 이런 창조적 호기심을 과연 필연으로 개화시키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