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성지순례/이스라엘[종합]

[스크랩] 키르벳 켸이야파 성지 발굴에 대한 보고서

영국신사77 2010. 5. 15. 19:27

이스라엘 엘라 계곡 부근의 키르베트 퀘이야파에서 발굴작업을 벌이던 하던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도자기 파편에 잉크로 쓰여진 이 고대 히브리어 문서를 발견하였는데, 이 문서가 이스라엘 다윗왕 시절인 기원전(B.C) 10세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문서를 발견하였다고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
키르벳 케이야파는 해발 328미터지대의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20마일 떨어진 엘라 골짜기 북쪽 언덕에 위치한 장소로, 통일왕국 다윗왕 시기에 전략적인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블레셋 지역, 해안 평야 지역에서 산지 지역의 예루살렘, 베들레헴, 헤브론으로 가는 주요로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곳입니다. 소고로 전해지는 키르벳 압바드(Kh. Abbad)와 아세가로 알려진 텔 즈카리야 (Tell Zechariah) 중간에 위치하며 엘라 골짜기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위치하며. 서쪽 10킬로 근방에서는 블레셋 다섯도시 중의 하나인 가드 (Tell es-Safi)가 있습니다.[지도 참조]


발굴 결과 주전 10세기 초 즉, 통일왕국 시대 초기 시기의 성문과 성벽을 가진 도시가 드러났습니다. 성문은 지금까지 4빙 성문 구조(four chamber gate) 이며 성벽은 성냥곽 모양 (casemate wall) 입니다. 성문 북쪽, 성벽 안쪽으로 네 개의 거주 집이 발견되었습니다. 좀 더 북쪽에 있는 건물을 발굴 결과 다른 가옥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네 개의 큰 계단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게 있다는 점 말고는 첫 두 개의 가옥이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북쪽으로 드러난 건물들은 헬라 시대 때 파괴가 심하여 철기 시대 건물이 많이 손상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사진:키르벳 케이야파 읍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의 발굴을 통하여 수십 여 점의 복원 가능한 토기들이외에 그 당시의 약 2만 여개의 토기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주전 10세기 초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즉 다윗 시대의 것으로 대접, 항아리, 외손잡이 단지, 요리용 그릇, 제의용 대접 등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항아리가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키르벳 케이야파가 통일왕국 초기 어떤 기능을 하였는지 추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항아리는 주둥이의 모양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이 항아리들의 손잡이는 손가락으로 한 번 또는 두 번, 어느 경우는 세 번까지 누른 자국이 있습니다.손가락으로 누른 자국이 있는 항아리 손잡이가 다른 장소들에서도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아라드, 브엘쉐바, 하솔, 므깃도, 욕느암, 텔 메보라크 등. 다른 장소들에서는 하나 또는 둘 정도의 매우 소수의 손가락으로 누른 자국이 있는 손잡이가 발견된 반면 키르벳 케이야파에서는 지금까지 200여개 가까이 발견되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발견된 토기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적색 덧입힘 위에 흑색선과 백색선으로 장식한 이른바 “아쉬도드 토기”입니다. 복원 가능한 토기가 다섯 개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약 12킬로미터 떨어진 성경의 갓 (텔 에츠-차피) 지층에서 발견된 아쉬도드 토기 형태보다 1세기 정도 더 앞선 것으로서 장식면이나 형태면에서도 다릅니다.


키르벳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것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서 주전 10세기 초 또는 그 이전 의 글자로 쓰여진 비문입니다. 이 비문은 성경의 에벤에셀로 동일시된 이즈벳 차르타 지층에서 발견된 돌 위에 새겨진abecedary (주전 약 1100년)와 게젤 달력 중간 정도에 위치한 것입니다. 이 비문에 대하여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 비문은 토기 조각 위에 쓰여진 것으로 다섯 줄이 그어져 그 위에 글자를 썼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주전 10세기의 비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둘째, 이 비문은 우측 상단에서부터 읽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좌측에는 어느 정도의 공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비문에서 쓰여진 총 글자는 약 50글자 정도이며 각 줄 마다 10자 정도 쓰여졌습니다. 아직 까지 비문 전체를 해독하지는 못하였지만, 지금까지 해독한 몇 가지 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종”, “왕” “사사” “바알”. 이 글을 해독하고 있는 미스가브 하가이는 이 비문이 그 당시의 이름들을 나열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직 단정 지울 수는 없으나 그는 이 비문을 우측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읽으면 처음이 “하지마라”는 뜻의 אל תעש(ה) 가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넷째, 이 비문 위에 쓰여진 글자의 방향이 일정치가 않습니다. 알렙글자가 세 번정도 나오는데, 각각 알렙이 쓰여진 각도가 다릅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글자 형태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비문 위쪽 상단에 쓰여진 알렙은 이즈벳 차르타의 것과 동일하며 다른 두 개의 알렙은 게젤 달력에 쓰여진 것과 유사합니다.

이외의 발견물들로는 철로된 칼, 현무암으로 된 맷돌, 홍옥수로 만들어진 목걸이 등도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텔아비브 대학교의 나다브 나아만 교수는 키르벳 케이야파가 성경의 고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삼하 21: 19 등) 그러나 키르벳 케이야파 발굴 단장인 요시 가르핀켈 교수는 키르벳 케이야파는 성경의 샤아라임이라고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경에서 샤아라임은 세 번 언급되었는데 두 번은 쉬펠라 지역의 장소로 한 번은 네게브 지역의 시므온 지파에게 속한 곳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쉬펠라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기록된 곳은 수 15:36, 삼상 17:52입니다.
앞의 구절은 야르뭇, 아둘람, 소고, 아세가 다음에 샤아라임이 기록되어 그 위치가 앞의 두 장소와 근접한 장소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삼상 17장의 기록은 다윗과 골리앗 전투에 대한 묘사로 그 전투의 장소가 있었던 엘라 골짜기와 샤아라임이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키르벳 케이야파의 위치와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지난 2008년도 11월 키르벳 케이야파를 둘러싸고 있는 헬라 시대의 벽을 따라 관찰하는 중 또 하나의 철기 시대 성문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큰 돌들의 위치를 확인하였는데, 이에 2009년도 발굴을 통하여 Area C지역에 주전 10세기 초의 또 다른 성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샤아라임 즉 쌍문 또는 두 개의 성문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이름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주전 10세기 초의 키르벳 케이야파가 샤아라임으로 확정이 된다면 여호수아 15장의 유다 지파 분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야야 한다고 일부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키르벳 케이야파는 주전 10세기에 존재하였다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키르벳 케이야파의 연대는 토기, 오스트라콘 비문등으로 인한 상대 연대 뿐만 아니라 탄소 측정에 의한 절대 연대에 의하여 안정적인 연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성문과 성벽을 갖춘 도시가 주전 10세기 초 즉 통일왕국 시대 초에 존재하였음을 증거하는 것이며, 다윗 왕에 의한 통일왕국에 대한 역사적 재건에 발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장소 가운데 다윗과 관련하여 논의된 고고학적인 발견물이 매우 제한적이었는데, 이번 케이야파 발굴은 다윗 시대에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키르벳 케이야파가 요새화된 도시뿐만 아니라, 아쉬도드 토기를 포함한 발견된 토기군은 현재 열띤 논쟁가운데 있는 주전 10세기-9세기 연대 논쟁에 대한 편년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장문의 주전 10세기 초 다윗시대의 것인 키르벳 케이야파 오스트라콘은 (발견된 문맥이 분명치 않았던) 게젤 달력 이외에 주전 10세기 초의 비문학 (epigraphy) 연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쓰여진 내용이 완전히 밝혀진다면, 통일왕국 시대 초의 행정적, 사회적 모습을 구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중 일부가 해석이 되어 성경의 기록이 주전 10세기 이전에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최초의 구약성경이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견은 성경의 일부가 과거에 추정됐던 것보다 몇 세기 이전에 작성됐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msbc가 인터넷 판이 15일 보도하고 있습니다.그것은 학자들에 의하여 지금까지 히브리어 문자가 B.C 6세기 이전에는 없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성경도 B.C 6세기에 처음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보다 4세기 이전에 쓰여진 히브리어 문서가 발견됨으로써 이런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이 문서를 해독한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성서학 교수인 거숀 갈릴 교수는 "이번 발견은 이스라엘 왕국이 B.C 10세기에 이미 존재했으며 성서의 일부가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추정된 것보다 몇 백년 빨리 쓰여졌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발굴에 참여한 자에 의하면 처음에는 문서에 사용된 글자가 히브리어 문자인자 아니면 다른 지역 문자인지를 판별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이번에 갈릴 교수가 해독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그는 도자기 파편에 쓰여진 글에서 히브리어 고유의 낱말들과 히브리 문화의 특징적인 내용을 찾아내 이 문자가 히브리어 문자라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발굴된 문서의 내용은 노예, 과부, 고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규범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를 번역하면 `당신은 (그것을) 해서는 안되고, (주인)을 공경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과 노예를 보호하고 낯선 사람을 지원하라' 등의 내용이며 이런 내용은 이사야서, 출애굽기 등 구약성격의 일부 내용과 유사하다고 msnbc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크리스챤 해피투어에서는 2010년도에 키르벳 케이야파 성지 발굴단을 조직하여 이 발굴에 참여하고자 히브리 대학의 성지 발굴 책임자와 협의 하여 시행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성지 발굴에 참여한 자는 히브리대학교 성지 발굴 책임자가 발행하는 성지 발굴 참가 확인서를 히브리어와 영어로 발급을 할 것이며 이 발굴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발굴자로서의 명예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부 남이 발굴하였거나 만들어 놓은 성지를 답사하여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발굴에 직접참여 하여 성지에 자신의 이름과 한국 기독교의 자취를 남겨 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도 동감입니다.우리 모두 성지 발굴에 직접참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도 떳떳한 기독교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회자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기도를 부탁드림니다.

 

령천 교회 중동 선교사

데이비드 김목사 제공


출처 : 성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 데비드 김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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