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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 -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꽃...<WAY-GLOBAL>

영국신사77 2009. 7. 9. 22:38

마사다 -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꽃...

                                                                                                                                                  2006-02-22 11:43:30

 

                     

마사다에서 바라본 로마군 숙영지

 

 이른 아침부터 예루살렘의 몇몇 기념교회를 돌아본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사마리아 여인숙을 돌아본 후 길게 뻗은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황량한 붉은 벌판과 언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적응이 돼서인지 이젠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얼마를 달렸을까? 변화 없는 모습에 지루해질 즈음,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사다에서 바라본 사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비취빛 아름다움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 동안 차는 어느새 엔게디(Engedi 염소의 샘)를 거쳐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마사다로 향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젖줄이 되는 요단강은 레바논과 시리아 사이에 있는 헐몬산에서부터 발원하여 갈릴리 바다로 흘러든다. 이는 다시 250km를 굽이치며 온 이스라엘을 적시고, 해저 400m아래 위치한 죽음의 바다 사해(死海)로 흘러들어간다.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이스라엘은 서쪽으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으며 동으로는 요르단, 남으로는 이집트, 북으로는 레바논과 시리아를 경계로 하고 있다.

 

                        

마사다에 서있는 이스라엘 국가

 

이처럼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족속들과 나라들의 이름이 그를 증명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많은 국가와 민족들 가운데 로마만큼 강력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전 1세기 말 제정시대를 확립한 아우구스투스 때 부터 시작된 Pax Romana(로마의 평화시대)는 200년간 계속되며 로마의 황금기를 이끌어 간다. 이 시기에 로마는 모든 식민지에 언어적 통일을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모든 나라로 통하는 군사 도로를 정비하고 확충함으로써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속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마사다 성벽

 

 바로 이러한 로마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을 벌이며 싸웠던 유대인들의 장엄하고 숭고한 저항의 현장이 '마사다(Masada)'였다.

 

   이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사해 남서편에 위치하며, 엔게디(대하20:1-2,23,24)에서 남쪽으로 약 20km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그랜드캐년의 조형물처럼 불쑥 솟아있는 이 요새는 약 400m 높이의 긴 마름모꼴을 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얼마나 와보고 싶었던 곳인가!

 

 

마사다 정상의 케이블카 승강장

 

 오기 전부터 마사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들은 터라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달음에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 몸을 실었다.

 

 케이블카가 미끄러지듯 올라가며 보여주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사해 바다의 모습과 주변 경관들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마사다의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국기였다. 마치 이 천년전 이곳을 지키려던 이스라엘 민족의 몸부림 같았다. 바람에 이는 펄럭임은, 이곳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며 지켜낸 이스라엘 땅임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곡물 저장고

 

 요새 한편에 자리한 엄청나게 큰 수십 개의 곡식 저장고, 천 여명이 40년간 먹을 수 있는 4만 톤 규모의 저수시설, 요새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보이는 모든 것마다 이곳이 정말 함락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사다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처음 로마저항운동의 지도자였던 마카베오의 동생 대제사장 요나단이 요새화(주전 161~142)하였던 것을, 후에 알렉산더 안네우스가 진지를 구축(주전 103-76)했으며, 주전 43년 헤롯대왕이 아버지 만타다펠을 암살한 후 주전 37년 유다임금이 될 때까지 유다인을 피해 도피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때 헤롯은 저수장과 별궁, 목욕실, 곡식 저장소, 망루 등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오랜 기간 다듬어진 요새는 후에 로마에 끝까지 대항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게 된 것이다.

 

마사다 모형

 

   주후 66년에 로마제국에 항거하는 제1차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다. 이에 로마는 티투스(Titus) 장군을 앞세워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을 훼파하고 함락시켰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로마에 대항하는 유대인 960명은 엘리아잘 벤 야이르를 따라 이 마사다 요새로 피신했다.

 

   이들은 마사다에 비축된 풍부한 식량과 물을 통해 계속 로마군에 대항할 수 있었다. 당시 로마의 10군단을 이끄는 플라비우스 실바는 처음에 쉽게 정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계속되는 공격과 고립에도 끄떡없자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그것은 마사다로 통하는 물길을 끊고 포위한 채, 마사다 서쪽면의 유대광야 계곡으로 부터 흙을 쌓아, 마사다 정상까지 경사로를 내는 것이었다. 3년 동안의 공사 끝에 드디어 로마군은 마사다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정복의 희열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정적과 침묵,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960명의 시신뿐이었다.

 

 

절벽에 세워진 헤롯별궁의 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마사다 최후 항전의 모습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함락되기 하루 전, 유대인들은 자유인으로서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모든 소유물을 불살라 태우고, 남자들은 각기 거처로 돌아가 여자와 아이들의 목숨을 거뒀다. 그 후 남자들 중 10명을 제비 뽑아 남은 남자들을 죽이게 한 후, 마지막으로 한 명을 제비 뽑아 나머지를 죽게 하고 스스로 자살했다.

 

 

 

 

 하지만 음식이 없어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음식창고는 불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군이 요새 안으로 들어 왔을 때는 시신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숨어있던 2명의 여자와 5명의 어린아이에 의해 이 사건이 알려졌고, 요세푸스에 의해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성지가 되었으며, 군인들의 마지막 훈련코스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사다 로 오드파암!"- 마사다의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바람에 펄럭이는 이스라엘 국기아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비극을 다시 맛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힘이 없어 짓밟혀야하는 설움을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하여 말이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대학살)'라는 단어아래 더 이상은 살육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강하다.

   마사다! 그 결사의 항전지에서 아직도 채 식지 않은 조상들의 뜨거운 피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타고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Way-Glo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