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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국내에 역사가 100년이 넘는 교회가 400여개 되지만 대부분 외국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다. 내국인이 세운 교회는 보기 드물다. 경남 김해시 서상동 김해교회(조의환 목사)는 1894년 부산에서 첫 복음의 씨앗을 받은 배성두 장로가 세웠다. 배 장로를 시작으로 6대에 걸친 신앙여정은 2007년 재미 소설가에 의해 ‘약방집 예배당’(홍성사)이라는 소설로 부활했다. 김해교회는 한 알의 밀알이 얼마나 큰 열매를 맺는지를 보여준다.
◇배성두 장로와 '약방 예배당'=김해교회를 설립한 배 장로의 조부 배수우는 1801년 당시 충주관찰사였다. 그는 신유박해를 피해 아들과 도피하던 중 목숨을 잃는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아들 배광국은 한의사가 된다. 아버지의 의술을 이어받은 배 장로는 부산에서 예수를 영접한 후, 김해교회와 합성학교(합성초등학교)를 세웠다. 믿음의 후손들답게 후손들은 의로운 삶을 살았다.
특히 배 장로의 맏아들 동석은 기미년 3·1 독립만세 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돼 온갖 고문을 받고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동석은 1980년 8월15일에 독립운동의 노고가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2004년에 독립유공자로 추대받아 그 유해가 고향 선산에서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됐다. 배동석 열사의 죽음 후 홀로 남은 아내 김복남 여사는 온갖 고생을 하며 대위, 유위 두 아들을 키워냈다. 차남 배유위씨의 장남인 배기호씨는 71년 미국으로 이민, 약국을 경영하며 한인 지역사회의 시민권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한인교회 장로로 있는 그는 두 아들 성민, 성진 형제를 낳아 신장내과 의사와 약사로 키웠다.
◇행복한 신앙을 만드는 공동체=115년 된 약방집 예배당엔 약방이 따로 없다. 교회는 늘 밝고 활기차다. 웃음이 보약이라는 조의환(53) 목사의 얼굴엔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목회자가 웃으니 교인들도 표정이 밝다. 30대와 40대가 교회의 핵심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영성훈련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사는 스티븐 리스트로, 피지의 영적 변화를 일으킨 인물이다. 또한 치유의 방(힐링룸)이란 치유 사역을 수요일과 주일 두 차례 실시하고 있다.
김해교회는 지역의 청년문화를 자연스럽게 바꿔 왔다. 94년에 부임한 조 목사는 김해 YMCA·YWCA 활동을 주도했다. 이진규 집사는 생명의전화를 개설하는 등 조용한 시민운동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교회는 또 알파코스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교회 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알파코스는 현재 19기가 진행되고 있다. 1년에 세 번 정도 알파코스가 열리고 있는데 한 기수에 70∼80명 정도가 참여한다. 기수마다 40∼50명 정도가 예수를 영접한다. 공천도 받지 못한 김종간 후보가 교회에 나오면서 극적으로 김해시장에 당선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교회 앞마당에는 수령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토종 향나무들이 역사교회의 전통을 말해주는 듯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김해=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한국의 역사교회―(16) 김해교회] 조의환 담임목사,다양한 찬양 행사로 교인 행복·선교 효과 |
"가녀린 숨결로써 목 놓아 울부짖는/내 작은 소망처럼 머리를 헤쳐 풀고/포말로 부서지며 자꾸만 밀려오나…밀려오는 그 파도 소리에/밤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못 다한 꿈을 다시 피우려/다시 올 파도와 같이 될 거나."
31년 전 부산대 그룹사운드 '썰물'이 부른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가사다. 이 노래는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그 매혹적인 화음은 당시 세대들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썰물과 밀물의 파도소리 같은 바이올린 연주에 이어 낮고 중후한 남성들의 목소리. 파도소리가 그렇게 격정적이었을까. 노래는 당시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를 잠시 잊게 해주기도 했다.
경남 김해교회 조의환(53·사진) 담임목사는 당시 보컬 구성원 7명 중 기타를 쳤다. 리드였던 김성근은 솔로로 음악활동을 했지만 조의환은 공학도의 꿈도, 좋아하던 음악도 접었다. 신학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80년 뒤늦게 신학에 빠진 그는 서울 광나루(장신대 대학원)로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목사가 안 됐으면 아마 내 인생은 망가졌을지도 몰라요. 하고 싶은 것도 아주 많았고 꿈도 컸었죠.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세속적인 생각을 눌러주셨어요."
조 목사는 음악활동을 끊었지만 2007년부터 '알파 음악회'를 열고 있다. 김해 문화의전당에서 두 번 열었고, 지난 1월에는 교회 본당에서 개최했다. 요즘은 슬슬 예전의 끼가 살아나고 있다. 재즈 페스티벌을 열어 예수를 믿지 않는 일반인들을 교회로 부를 생각이다.
찬양을 중요시하는 조 목사는 "교인들의 찬양으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열정이 생겼으며 영혼 구원에 대한 마음과 열정이 불타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다"면서 "행복하고 변화된 교인들이 많이 생기고 교회 분위기도 아주 행복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해교회의 표어는 한결같다.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신앙 공동체'. 조 목사는 "교회가 행복해야 하고, 그보다 가정이, 그보다 먼저 내가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조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보다 항상 먼저 웃고 먼저 운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이자 축복이죠."
윤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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