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의 이야기다. 1889년 10월2일 호주의 선교사 헨리 데이비스 남매는 정든 땅 시드니를 떠나 40여일간의 항해 끝에 생면부지의 조선 땅 부산항에 닿았다. 항구는 아름답게 보였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남매는 이곳에 복음의 씨앗을 함께 심자는 약속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이듬해 데이비스는 동생을 남겨두고 부산으로 왔다. 하지만 그는 천연두에 걸려 채 꿈도 펴지 못한 채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데이비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1891년 호주장로회 메케이 목사 부부가 여선교사 멘지스, 포세트, 페리와 함께 부산에 도착했다. 그해 12월부터 5명의 선교사는 꿈꿨던 부산과 경남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군사 요충지 병영에도 복음의 씨앗이=울산의 군사 요충지 병영 일대에도 복음이 전해졌다. 부산진교회를 세운 호주 선교사들은 울산 등 경남지방으로 복음의 지경을 넓혔다. 당시 이희대씨는 병영 서리 372 자신의 집으로 호주 선교사들을 초청했다. 그의 어머니, 숙모, 그리고 동네 사람들 3, 4명이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자신의 가옥을 교회 설립을 위해 헌납했다. 마침내 1895년 1월8일 병영교회가 설립됐다.
병영교회 초대 선교사는 호주장로회 애덤슨(A. Adamson)이 맡았다. 이어 왕길지 목사가 애덤슨 목사 후임으로 순회 선교사를 맡는다. 1906년 2월에는 교인 박민윤 이유택 등이 울산읍내 교인들을 위해 분교하여 강정교회(江亭敎會·현 울산제일교회)를 세웠다. 1910년 병영교회 교인 박정하 박종호 형제가 송정 교인들을 위해 분교하여 지당교회(芝塘敎會·현 송정교회)를 설립했다.
나라를 잃은 일제시대에는 교회도 생기를 잃었다. 일부 교인은 신앙 자유와 새로운 생활터전을 찾기 위해 만주 등지로 떠났다. 광복이 된 이듬해 봄 만물의 소생과 함께 교회에는 차츰 생동의 움이 트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 일본과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병영교회 청장년들이 차차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신앙의 터전을 닦았다. 50년대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때는 군인들의 안식처가 됐으며, 60년대 산업화시대 이후에는 도시가 공업도시로 발전함에 따라 전국에서 모여든 산업역군들이 병영교회에 출석해 신앙의 전통을 이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꿈을 키운 교회=병영교회가 설립되기 1년 전인 1894년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이 태어났다. 최 선생은 어릴 때부터 병영교회에서 국문을 가르치는 야간학숙에 다녔다. 최 선생은 청소년 시절 병영교회 교회학교에서 신앙의 기초를 다졌으며 국어국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최 선생의 생가는 병영교회에서 200m 정도 골목길을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지금은 생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사업계획변경을 이유로 중단됐던 복원공사가 재개돼 오는 10월9일 한글날에 문을 열 예정이다. 연면적은 기존 5만8584㎡에서 7만8019㎡ 로 늘어났다. 또한 지상에는 부지 면적 3400㎡에 생가와 기념관, 광장, 주차장 등이 건립된다.
교회는 올해로 9년째 지역 노인 150명에게 목요 급식을 대접하고 있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연 1회 효도관광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 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사랑의 바자회를 추석을 전후해 열고 있다.
병영교회 입구에는 토종 소나무 한 그루가 구부정하게 서서 성도들을 반갑게 맞고 있다. 어른 키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이 소나무가 외솔 최현배 선생이 이 교회 교회학교에 다녔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울산=글·사진 윤중식 기자
[한국의 역사교회―(15) 울산 병영교회] 유석균 담임목사 ‘안개꽃·묵은지’ 목회철학 |
"우리가 안개꽃이면 예수님은 장미꽃입니다. 교회는 묵은지(김치) 같은 깊은 맛을 내야 합니다."
유석균(56·사진) 병영교회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은 좀 독특하다. '안개꽃과 묵은지 목회'. 안개꽃 같은 교회는 화려하지 않지만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안개꽃은 비단결 같이 부드럽고 순결하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안개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남을 드러내고 떠받쳐 주어 남을 돋보이게 하는 미덕이 있는 꽃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유 목사는 안개꽃(성도) 다발 속에 돋보이는 한 송이 장미(예수)를 예로 들었다. 안개꽃으로 인해 장미꽃이 더욱 눈부시게 된다는 것. 온 성도들이 겸손함으로 서로를 세워주고, 주님의 붉은 십자가 보혈만을 드러나게 하는 안개꽃 같은 교회를 항상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고 했다.
유 목사는 또 안개꽃의 매력은 어우러짐의 미덕에 있다고 했다. 안개꽃 한 송이 한 송이를 볼 때는 작고 볼품 없지만 서로 어우러져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비단 이불이 따로 없는 포근함과 기쁨을 안겨 준다고 했다.
유 목사는 앞으로 '묵은지 목회'를 시도할 작정이라며 김치를 잘 담그는 법을 소개했다. 김치는 모든 양념과 배추가 함께 어우러질 때 제맛이 나기 때문에 사람의 손끝이 닿아야 한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숙성된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배추가 소금에 완전히 절여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풀냄새가 난다고 했다. 소금이 녹지 않아 입 안에서 그대로 씹힌다면 문제가 되고 다진 양념이 서로 잘 섞이지 않아 마늘, 고춧가루, 젓갈 중 어느 하나가 드러난다면 이상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유 목사는 김치는 항상 밥과 함께 있을 때 제맛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수님은 우리의 양식 곧 우리의 밥이 되어 주셨다"고 강조했다. "밥과 김치는 항상 배고픈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처럼 영·육으로 갈급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윤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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