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다니엘서

★다니엘서 12장 강해<박상훈 목사>

영국신사77 2009. 1. 9. 00:37

126     제125강 끝날에 받을 축복(12:11-13)     관리자     2006.05.21     61  
  125     제124강 환란에 임하는 자세(12:10)     관리자     2006.05.21     30  
  124     제123강 현실을 무시하지 말라(12:8-9)     관리자     2006.05.21     26  
  123     제122강 시련의 의미(12:5-7)     관리자     2006.05.21     25  
  122     제121강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자(12:4)     관리자     2006.05.21     33  
  121     제120강 부활과 영생(12:2-3)     관리자     2006.05.21     24  
  120     제119강 큰 환란(12:1)     관리자     2006.05.21

 

 

                             ★다니엘서 12장 강해<박상훈 목사>

 

                                              (1)제119강 큰 환란(12:1)  

12:1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그 때에"라고 했습니다. 한 절 가운데 "그 때"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종말론적인 단어로서 마지막 때를 가리킵니다.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높여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하나님처럼 숭배할 것을 강요합니다. 

여기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당할 것입니다. 

아울러서 그 때에는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대군 미가엘"이라고 했습니다. 

큰 대(大)에 임금 군(君)을 썼습니다. 

유다서 9절에 보면 미가엘을 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대군 미가엘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네 민족을 호위하는." 

천사장 미가엘은 다니엘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합니다.


  10:13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대군 미가엘이 천사 가브리엘을 도와서 악한 영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로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20∼21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나아온 것을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 미가엘 뿐이니라."

   대군 미가엘과 천사 가브리엘이 힘을 합쳐서 악한 세력을 모두 몰아낸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있으리니."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숭배하지 않는 자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급기야 그에 대항하는 자들이 힘을 합쳐 그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지구상에는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큰 환난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환난이 어떠한 환난인지 보십시다.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나라가 세워진 이래로 수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면서 애굽 왕 바로로부터 얼마나 큰 핍박을 당했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칠십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바사 나라 시대에는 수상 하만이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꾀하기도 했습니다. 

또 북방 왕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는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을 죽였습니까? 

또 주후 70년에는 로마 장군 티투스와 그의 군병들이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모두 무너뜨렸습니다. 

금세기에는 독일의 폭군 히틀러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600만 명이나 살상을 당했습니다.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이처럼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환난을 당해왔지만,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에 그들이 당할 환난은 

이 모든 것들보다도 더욱 엄청나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감람산에서,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4:21∼22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큰 환난이 있고 난 뒤에는 어떤 사건이 나타난다고 했습니까?

  마 24:29∼30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주께서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날, 

바로 그 앞에는 큰 환난이 있게 될 것을 우리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환난인지 스가랴도 이미 그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슥 13:8∼9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지구상에 삼분지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죽을 만큼, 

엄청난 환난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12:1의 하반부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여기서의 책은 생명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씻음을 받아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자는 남김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택한 백성이라고 해서 환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 16: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것임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다니엘도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사 미가엘을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막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또 다니엘의 세 친구도 풀무불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 미가엘을 보내셔서 불꽃이 그들을 사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 야곱의 아들 요셉도 애굽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나중에는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난 가운데 있는 요셉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겪은 시련들이 합력해서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못해 쓰러질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은 우리를 순교의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11:35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패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핍박을 받아서 쇠패하였다고 했습니다. 

순교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강하게 연단시키는 계기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환난 가운데서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들이 합력해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를 순교의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우리에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큰 믿음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순교를 한 사람은 하늘 나라에 가서 그것에 해당되는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 7:9∼17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주께서 승리의 빛난 면류관을 씌어주시고 

주 안에서 세세 무궁토록 보좌에 앉아서 왕노릇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믿음을 저버리고 배역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계 20:15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택한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학대하던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모든 세력들은 불못에 던지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귀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장 미가엘은 우리를 충실하게 호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힘찬 걸음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제120강 부활과 영생(12:2~3)  

  12:2~3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역사상 지금까지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지금까지 출현한 모든 적그리스도들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의 실체가 등장할 것입니다.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가 되면 적그리스도의 실체는 나타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높일 것입니다. 모든 신보다 자기를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에게 자기를 하나님처럼 숭배하도록 강요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을 당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핍박을 두려워하면서, 결국은 적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호령과 천사장 미가엘의 소리와 천군천사가 부르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잠자는 자들이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저버리고 적그리스도의 편에 선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부활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2절과 3절 말씀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2절은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3절은 믿는 이들이 받을 상급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땅의 티끌로 돌아갑니다. 무덤에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자는 자 중에."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잠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깨어날 것을 기약하는 말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뒤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을 잠을 잔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많이 깨어." 지구상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주께서 구름 타고 오실 때에는 무덤 속에서 깨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은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한복판에는 생명수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또 생명수 시내의 좌우편에는 생명나무가 자랍니다. 생명나무에는 실과가 달마다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매달 돌아가면서 각기 다른 열두 가지 실과가 열리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성도들은 생명수를 마시면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악인들은 수욕을 받아서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부끄러움을 좀더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던지움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지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무궁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지움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의 이모저모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모든 육체는 예외 없이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의인에게 있을 생명의 부활과, 악인에게 있을 심판의 부활입니다. 의인은 주와 더불어서 영생 복락을 누리겠고, 악인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5:28∼29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무덤 속에서 잠자는 자들은 주께서 구름타고 오시는 그날에 다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3절 하반부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라고 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11:32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면서 강하여 용맹을 발하였다고 했습니다.
11:33의 말씀을 보십시다.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

  지혜로운 자는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강하여 용맹을 발할 뿐만 아니고,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신앙을 굳게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많은 핍박을 당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순교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12:3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12:3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늘은 지극히 높은 곳입니다. 믿음을 굳게 지킨 의인들은 장차 하늘 보좌에 앉아서 금 면류관을 쓰고서 세세 무궁토록 주와 더불어서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낮의 해와 같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그들의 영광은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하루는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숲속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어둑어둑해지니까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루살이야! 오늘 참 재미있게 놀았어. 이제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서 놀자."
그 소리를 듣고 하루살이가 깜짝 놀랐습니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내일이라고 했니?"
하루살이는 하루밖에는 못사니까 내일이라는 것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메뚜기가 내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캄캄한 밤이 지나고 아침에 동편에서 태양이 다시 떠오르면 그것이 바로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아무리 들어도 내일을 체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메뚜기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메뚜기가 자기를 놀린다는 생각이 든 하루살이는 기분이 나빠져서 돌아가 버렸습니다. 메뚜기가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합니다.
"내일은 틀림없이 오는데 왜 저러지?"

  메뚜기는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다시금 숲속으로 놀러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메뚜기는 몇 일 동안을 개구리와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몇 일 놀고 난 뒤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메뚜기야! 그 동안 재미있게 놀았어. 그런데 이제는 날씨가 추워지니까 그만 놀고 내년에 다시 만나서 놀자."

  이번에는 메뚜기가 이해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메뚜기는 일년 생 곤충이니까 내년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구리가 설명을 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서 따뜻해지면 내년이 되는 거야."
그러나 메뚜기는 내년을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개구리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메뚜기는 기분이 잔뜩 상해서 자기 갈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체험해 보지 못했다고 해서,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하루살이처럼 또 메뚜기처럼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영생은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모든 예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철저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자 같은 짐승의 시대가 지나가고, 곰 같은 짐승의 시대가 왔습니다. 또 표범 같은 짐승의 시대가 오고, 나중에는 쥬라기 공원에서나 나오는 무서운 짐승의 시대가 왔지 않습니까? 바벨론 제국의 시대가 지나가고 헬라 제국의 시대가 왔습니다. 메대와 바사가 오고 그 뒤에 로마 제국이 왔습니다. 또 다니엘이 이상을 보고 나서 400년 뒤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잔악한 폭군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큰 시련을 당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상 가운데 보여주신 그대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부활과 영생도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5:58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도 부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주의 일에 더욱더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우중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의 향기를 올리는 것도 절대로 헛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주님의 손을 든든히 붙들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일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제121강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자(12:4)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모두 네 개의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첫번째 이상은 7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다에서 나오는 네 짐승을 보았습니다. 네 짐승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그리고 로마입니다.

 

   두번째 이상은 8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수양과 수염소의 이상을 보았습니다. 수양은 메대와 바사를 상징하고, 수염소는 헬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이상은 9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칠십 이레에 관한 이상이었습니다.

 

   네번째 이상은 10장부터 우리가 지난번까지 살펴본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큰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이상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상을 잊지 말고 잘 보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기가 본 이상들을 그대로 다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고 자기가 어린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1장부터 6장까지에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또 당부합니다. "이 글을 봉함하라."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메대 사람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이 왕명을 어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하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 사자굴 입구를 큰 돌로 막고서 왕이 어인을 찍었습니다. 귀인들도 자기의 인들을 찍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아무도 임의로 그 돌을 굴려내지 못하도록 봉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을 봉함하라고 하는 것은, 그 책 가운데 있는 한 말씀이라도 사람들이 임의로 바꾸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읽고, 내일도 읽고, 아침에도 읽고, 저녁때도 읽을 것입니다. 그것을 "빨리 왕래한다"는 말로 생동감있게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니엘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하나씩 둘씩 성취되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앞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더욱더 부지런히 그 책을 읽게 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오늘 성취되었구나! 내일은 이 말씀이 성취될 차례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라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대로 다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제8대 담임 목사님이었던 김익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이 분은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황해도 안악시장을 주름 잡는 아주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난폭했던지 사람들은 시장에 가면서 시장 길목에 있는 성황당에 가서 빌었다고 합니다. "제발 오늘은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런데 하루는 김익두가 안악시장에서 한 어린 아이가 전해주는 전도지 한 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지에는 안악교회에서 미국의 선교사 스왈런 목사님이 사경회를 인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전도지를 보던 김익두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대체 서양 사람이 와서 집회를 한다고 하는데 무슨 연설을 할까?" 호기심이 생겨서 남몰래 슬그머니 가서 제일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스왈런 선교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은 영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과, 사람에 따라서는 생명의 부활도 있지만 ,심판의 부활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김익두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믿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김익두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가 10개월 뒤에 세례를 받기까지 신·구약 성경을 모두 몇 번 읽었는지 아십니까? 백 번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열 번을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일년에 한번 정도 읽는 것으로 목표를 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김익두는 한 달에 열 번씩 읽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하면 김익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나 지금 약 먹기 때문에 술 못 마셔."
그러자 친구가 묻습니다.
"무슨 약을 먹는데?"
"좋은 보약먹지."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인데?"
여기서 김익두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먹고 있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과 구약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빨리 왕래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지식을 우리가 더욱더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대로 무엇이든지 성취되어 지니까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D. L. Moody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청년이 하루는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늘 붙들고 살아 계시는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 실례이지만, 선생님이 보시는 성경을 제게 한번 보여주실 수가 있습니까?"

  무디는 자신의 성경을 그 청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성경은 새까맣게 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들이 여백에 빽빽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곳곳에 영어로 T와 P가 적혀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곳곳에 T자와 P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무디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T는 Tried, 곧 시험을 해보았다는 뜻이고, P는 Proved, 곧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디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말씀에 순종해봄으로써,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지를 시험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니까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현실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부지런히 읽으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분명히 깨달아가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역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이 하루도 승리하는 복된 삶들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제122강 시련의 의미(12:5-7)  

  12:5-7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이제 우리는 다니엘서의 총 결론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받은 바 이상이 다 끝났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여기에서 두 사람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천사를 가리킵니다. 지금 다니엘 앞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그대로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사 가브리엘은 "강 이편 언덕에" 섰고, 다른 천사는 "강 저편 언덕에" 섰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천사는 미가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다니엘은 어느 강 언덕에 서있습니까? 다니엘이 마지막 네번째 이상을 본 것이 고레스 왕 삼 년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칙령을 반포했던 왕입니다. 모든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명을 내렸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나이가 많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뒤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좋은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기름도 바르지 아니하고, 세 이레 동안 조용히 기도하기 위해서 어디로 갔습니까?

  10:1∼4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정월 이십 사 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데."

  힛데겔 강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티그리스 강입니다. 다니엘 앞에는 가브리엘이 서있고, 또 저쪽에는 미가엘이 서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천사의 모습을 눈으로 볼 뿐만 아니고 천사들이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합니까?


  6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는 천사보다는 상위의 존재가 분명합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가 되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엄청난 핍박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급기야 큰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천사의 질문은 엄청난 핍박과 택한 백성들이 당해야 될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 시련 당할 때 천사가 함께 염려해 주고 걱정해 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 있을 때 천사는 우리를 대신해서 함께 염려하면서 마음 아파해 줍니다.

  천사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대답을 하십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보통은 한 손을 들고 맹세를 하는데, 예수님은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향했습니다. 그만큼 확실하고도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큰 환난이 삼 년 동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삼 년 반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여기서 성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전세계 인류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전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입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키신저와 또 지금의 올브라이트 여사가 바로 유대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한 이레가 되면 적그리스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권세를 한동안 더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삼 년 반이 지나고 나면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을 향해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는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유대인들을 향해서 엄청난 핍박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이 그 동안 누리던 권세는 깨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들은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두 손들고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구나!" 저들은 이것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공중에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성도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환난을 주신 것은 모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을 회개하고, 비로소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시련이 있을 때, 그 시련으로 인해서 더욱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는 어떤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 쟁기에 걸리더니 햇빛에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른 손으로 흙을 파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쇠로 만든 아주 오래된 골동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골동품이 녹슬었다가 쟁기의 날에 스치면서, 녹슨 때가 벗겨지고 그것이 햇빛에 반사가 되어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 골동품에도 감각이 있었더라면 쟁기의 날이 골동품의 몸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서, 묻었던 녹이 사라지고 귀한 골동품으로 발견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는 귀한 골동품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골동품이 흙덩어리인지 귀한 골동품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시련이라는 쟁기의 날로 갈아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빛을 내지 못하면, 하나님은 더 세게 시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얼른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또 알 수 있는 것은, 택한 백성들에게 어떤 시련이 있을 때 그것은 세 때 반 동안에 국한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삼 년 반은 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삼 년 반이라는 것은 지극히 짧은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련은 주시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짧은 기간의 시련만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시련은 악이 아닙니다.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조금만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된 자리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잠시 잠깐의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일어나서 찬란히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부지런히 읽으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분명히 깨달아가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역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이 하루도 승리하는 복된 삶들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제122강 시련의 의미(12:5-7)  

  12:5-7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이제 우리는 다니엘서의 총 결론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받은 바 이상이 다 끝났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여기에서 두 사람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천사를 가리킵니다. 지금 다니엘 앞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그대로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사 가브리엘은 "강 이편 언덕에" 섰고, 다른 천사는 "강 저편 언덕에" 섰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천사는 미가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다니엘은 어느 강 언덕에 서있습니까? 다니엘이 마지막 네번째 이상을 본 것이 고레스 왕 삼 년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칙령을 반포했던 왕입니다. 모든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명을 내렸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나이가 많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뒤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좋은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기름도 바르지 아니하고, 세 이레 동안 조용히 기도하기 위해서 어디로 갔습니까?

  10:1∼4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정월 이십 사 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데."

  힛데겔 강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티그리스 강입니다. 다니엘 앞에는 가브리엘이 서있고, 또 저쪽에는 미가엘이 서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천사의 모습을 눈으로 볼 뿐만 아니고 천사들이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합니까?


  6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는 천사보다는 상위의 존재가 분명합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가 되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엄청난 핍박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급기야 큰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천사의 질문은 엄청난 핍박과 택한 백성들이 당해야 될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 시련 당할 때 천사가 함께 염려해 주고 걱정해 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 있을 때 천사는 우리를 대신해서 함께 염려하면서 마음 아파해 줍니다.

  천사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대답을 하십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보통은 한 손을 들고 맹세를 하는데, 예수님은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향했습니다. 그만큼 확실하고도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큰 환난이 삼 년 동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삼 년 반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여기서 성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전세계 인류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전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입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키신저와 또 지금의 올브라이트 여사가 바로 유대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한 이레가 되면 적그리스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권세를 한동안 더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삼 년 반이 지나고 나면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을 향해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는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유대인들을 향해서 엄청난 핍박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이 그 동안 누리던 권세는 깨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들은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두 손들고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구나!" 저들은 이것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공중에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성도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환난을 주신 것은 모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을 회개하고, 비로소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시련이 있을 때, 그 시련으로 인해서 더욱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는 어떤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 쟁기에 걸리더니 햇빛에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른 손으로 흙을 파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쇠로 만든 아주 오래된 골동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골동품이 녹슬었다가 쟁기의 날에 스치면서, 녹슨 때가 벗겨지고 그것이 햇빛에 반사가 되어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 골동품에도 감각이 있었더라면 쟁기의 날이 골동품의 몸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서, 묻었던 녹이 사라지고 귀한 골동품으로 발견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는 귀한 골동품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골동품이 흙덩어리인지 귀한 골동품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시련이라는 쟁기의 날로 갈아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빛을 내지 못하면, 하나님은 더 세게 시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얼른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또 알 수 있는 것은, 택한 백성들에게 어떤 시련이 있을 때 그것은 세 때 반 동안에 국한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삼 년 반은 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삼 년 반이라는 것은 지극히 짧은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련은 주시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짧은 기간의 시련만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시련은 악이 아닙니다.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조금만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된 자리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잠시 잠깐의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일어나서 찬란히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부지런히 읽으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분명히 깨달아가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역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이 하루도 승리하는 복된 삶들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제123강 현실을 무시하지 말라(12:8-9)  

  12:8-9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다니엘은 이상 가운데 천사로부터 많은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가 되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엄청난 권세로서 뭇사람들에게 마치 자기를 하나님처럼 숭배할 것을 강요하게 되리라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또 적그리스도에 대항해서 남방 왕이 일어나고 동쪽과 북쪽에서 적그리스도를 대적할 군사들이 몰려와서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도 듣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이 지난 후반부에는 엄청난 핍박과 환난이 유대인들에게 있게 되리라는 것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위하는 천사 미가엘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도 듣게 되었습니다. 큰 환난과 핍박이 있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함을 얻게 되리라는 것도 듣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많은 것들을 듣게 되었을 때, 무엇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물론 다니엘은 당시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을 다 깨닫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다니엘은 7절에 나오는 대로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 곧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좀 더 가르쳐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니엘에게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습니까?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현실 세계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하는 일에 되돌아가서,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라."

 

   이러한 뜻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일들은, 다니엘의 당대에 곧 이루어질 일들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인 세상 끝날에 되어질 일들이니까, 다니엘은 그 일에 대해서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에게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앞으로 되어질 일들은 먼 훗날, 곧 세상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들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가 받은 이상의 내용들을 잘 기록해서 보존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비록 다니엘이 그 당시로는 먼 훗날에 되어질 일들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마지막 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2:4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비록 다니엘은 먼 훗날의 일을 깨닫지 못하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부지런히 읽는 가운데 마지막 때에 관한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깨닫지 못했고 또 지금 살아가는 우리들도 깨닫지 못하지만, 마지막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때에 사는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더욱더 마지막에 관한 지식을 많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구나!" 이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왕래하면서 지식을 더할 테니까, 마지막 때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대해서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라고 하는 뜻으로 예수님은 다니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아 갈지어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귀중한 교훈을 한가지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현실의 삶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단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현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날짜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1992년에 다미 선교회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줄여서 "다미"선교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암3:7의 말씀을 즐겨 인용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들은 택한 백성들인 자기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이미 계시해 주셨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1992년 10월 28일로 정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했습니다. 그들에게 미혹된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직장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예수님을 맞이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들은 가족의 일조차도 돌보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깨어지는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미 선교회가 한참 소란을 피울 때, 총신대에서 다미 선교회의 수장격인 이장림이라는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의 강연을 다 듣고 난 뒤에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 말대로 하면 1992년 10월 28일,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은 다 공중으로 휴거될 것입니다. 나는 12월에 결혼을 하도록 날짜를 받아 놓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해서 내가 결혼하더라도 전셋집하나 제대로 마련해 줄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 말대로 하면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주인이 없이 텅비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파트를 지금 내 명의로 미리 이전해 주실 용의는 없으신지요?"

 

  정말 자기가 주장하는 대로 확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장림은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꽁무니를 빼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그들의 주장은 사기극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경찰이 그의 집을 수색한 결과, 그곳에서 엄청난 돈이 발견되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그의 침대 속에서는 많은 채권이 발견되었습니다. 만기일은 그들이 주장하는 예수님의 재림 일자보다도 더 뒤였습니다. 자기 말대로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이 끝난다면, 그 뒤에 만기가 되는 채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단인 다미 선교회는 이런 식으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단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종말론 사상을 계속 강조하면서, 현실에 대해서 무시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빛을 발하고,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지어다." 비록 언제 그날이 오게 될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염려하지 말고 현실로 다시금 돌아가서 주어진 삶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들은 모두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사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일하는 것은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라." 부지불식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부끄럼 없이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영원히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무슨 일을 하시든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땀흘리면서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제124강 환란에 임하는 자세(12:10)  

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마지막 때에 큰 환난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 뿐만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환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6: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에게 환난이 임할 때 그 환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혜 있는 자"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신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는 시련이 주는 유익을 알기 때문에,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믿음을 굳게 하며 더욱더 축복된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악한 자"입니다. 그들은 환난을 당할 때 환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악한 일을 행합니다.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멸망의 길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우리는 시련이 주는 유익을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대장장이가 쇠를 단련하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풀무불 속에 쇳덩어리를 집어넣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단입니다. 그 다음에는 붉어진 쇳덩어리를 꺼내어서 망치질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불순물을 모두 떨어뜨리고, 쇠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들을 모두 메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주 강하고 순수한 강철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에는 희게 한다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렇듯 연단을 하고, 정결케 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부족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아직도 부족해서 의미 없는 시련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해주시고, 풍성하게 해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높이 올려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비가 온 뒤에 오히려 땅이 굳어지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은 시련을 통해서 더욱더 굳세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 사실을 깨달아 압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환난이 임할 때, 그 환난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계9:20∼21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엄청난 환난이 주어지지만, 저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악행을 계속해서 행한다고 했습니다.

  계22:11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마지막 때에 큰 환난이 임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환난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모습으로 점점 성화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마지막 때의 환난 속에서도 깨닫지 못하고 불의를 그대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당하는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사 백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대단히 험한 길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굶겨 죽이기 위해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잠시 잠깐 광야 길로 인도하셨을 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시련 너머에 있는 축복과 영광을 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 있는 시련만을 보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광야 길로 인도해 주신 목적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깊은 골짜기에 처해 있게 되면 너무나 괴롭습니다.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골짜기에 가려져서 잠시 앞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가 인내하면서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그 순간에, 미처 예기치도 못했던 엄청난 축복과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골짜기에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의미 없는 시련을 주시겠습니까?

  지금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살전5:16∼18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명료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니 조금 어려운 시련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굳세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어려움을 당했다고 해서 혼자서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121:1∼2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고 계십니다.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시련으로 가장하여 우리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더라도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니까, 

시련 속에서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성격이 서로 달랐습니다. 한 아들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다른 한 아들은 정반대였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늘 불평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명절을 맞이해서 그 부모가 두 아들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불평이 많은 아들에게는 아주 값비싼 컴퓨터를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아들에게는 말똥을 잔뜩 넣은 상자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아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값비싼 컴퓨터를 선물로 받은 아들은 귀한 선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불평을 합니다. "이 컴퓨터는 속도가 너무 느려. 색깔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야."


 

 한편 냄새나는 말똥을 선물 받은 아들은 상자를 펼쳐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우리 부모님이 최고야! 부모님은 틀림없이 내게 좋은 조랑말 한 마리를 선물로 주시려고 준비하신 거야. 그러니 내게 이런 말똥을 주셨지. 말이 방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그 대신 이 말똥을 주신 것이 아니겠어? 안 그러면 이 많은 말똥을 어디에서 구하셨겠어." 그러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얼마든지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염려는 믿음 없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요

  염려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라."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믿음이 있으면, 

염려는 절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굳센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7)제125강 끝날에 받을 축복(12:11~13)  

  12:11~13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11절 말씀을 보십시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적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었던 북방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헬라 신인 제우스를 위한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 부정한 짐승인 돼지를 잡아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유대인들은 가차없이 살육을 했습니다.

 

  엄청난 핍박이 유대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천 이백 구십 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기한이 지났을 때,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던 유다 마카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북방 왕의 군대를 성전에서 모두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더러워진 성전을 정결케 한 뒤,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그것이 일천 이백 구십 일에 되어진 일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 일천 이백 구십 일에서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에는 사십 오 일의 기한이 있습니다. 북방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쫓겨나서 수리아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십 오 일이 지나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도 똑같은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 때 반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또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성전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시련을 주실 때,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 동안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단 하루도 초과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엄청난 핍박을 성도들에게 가하게 되겠지만, 일천 이백 구십 일이 지나고 나면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이 땅에 오셔서,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 사십 오 일 동안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대로 주께서 전 인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해서 오른쪽에는 양을, 왼쪽에는 염소를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양 같은 사람들, 즉 의인들은 영생에 이르게 하시고, 왼쪽에 있는 염소 같은 사람들, 즉 악인들은 영벌에 처하도록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의인들은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12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24:45∼51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저 육신의 향락에 파묻혀서 좋지 못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것을 즐기는 자들은 복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늘 기다리며, 

바른 신앙 위에 주를 위해 충성하는 자들이 복있는 자들입니다. 

지금 새벽기도를 드리다가 주님 다시 오셔서 영접하게 되면 

얼마나 복있는 자들이 되겠습니까? 

오른편에 있는 양과 같은 의인들의 반렬에 속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12:13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이, 곧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에게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주께서 다니엘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너는 가서." 예수님은 다니엘에게 이 말씀을 9절에서도 하셨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지금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시금 다니엘의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는 마지막 시간까지,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마28:19∼20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세상은 더욱더 악해지고 어두워집니다. 그 어둠 속에서 일어나 찬란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주님의 아름다운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다니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어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 다니엘은 육신의 장막을 벗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다니엘의 나이가 90세가 넘었습니다. 하루하루 언제 주님께서 부르실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평안히 쉬다가, 주님 부르시는 그날에, 육신의 장막을 모두 벗고서 그 동안에 파란만장했던 삶을 끝내고 평안히 쉬게 될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은, 자기의 조국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멀리 이방 땅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왕명을 거역하면서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다짐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자신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던지움을 당했던 것도 목격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벨사살 왕 때 그는 왕으로부터 심한 모독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힘으로 벨사살을 단호하게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 때는 그가 모함을 받아서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여튼 그는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날,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히 쉬게 될 것입니다.

  "끝 날에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그의 육신은 부활하여 주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2:2∼3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롬8:18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려 하다보면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핍박을 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난은 경한 것이고, 영광은 중한 것입니다. 고난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릴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다니엘과 같이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업을 누리게 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과 같이 더욱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서, 주님 오시는 그날에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게 되시고,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는 우리 승동의 교우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염려는 믿음 없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요, 

 염려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라."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믿음이 있으면, 염려는 절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굳센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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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보상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다.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業) 누릴 것임이니라」(단 12:13).



14~5살 어린 나이에,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의 곁을 떠나, 

80여 평생을 만리 타향 이국에서 살아간 나그네 다니엘, 

민족의 소망과 인류의 구원이 약속되고, 

조상의 얼이 서린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황폐를 

그렇게나 마음 아파하던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사나이, 

위대한 기성 세대 다니엘, 왕과 사자들 앞에서는 태연자약했지만, 

동족의 운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처럼 애절(哀絶)하여 

몸져 눕기까지 했던 인간 다니엘, 

세계 대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어지럽게 교차(交叉)한 세계사의 십자로에서, 

나라들과 왕들의 운명을 좌우하던 늠름한 선지자-정치가 다니엘, 

나는 새도 떨어뜨릴 대제국의 높다란 재상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겸손했던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다니엘, 

포로의 몸으로 포로된 땅에서 살아온 90성상에 

거센 폭풍과 시련이 하루도 쉴 새 없이 휘몰아쳤어도 

꺾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은 뿌리 깊은 거목(巨木), 

지성(知性)과 영성(靈性)의 거인(巨人) 다니엘,

 

팔순(八旬)이 넘기까지, 

하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지녀 온 하늘의 총아(寵兒), 

하나님의 귀염둥이 다니엘,

-그 다니엘의 파란만장(波瀾萬丈)했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위대한 일생도 서서히 저물어 갔다.


그리고 격전의 연속이었던 구속사(救贖史)의 뜨거운 한 낮 동안,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하늘의 아들에게, 

부활의 새 아침을 약속하며, 

기나긴 환난과 죄악의 겨울 밤 동안의 휴식을 가져 올 

깊고 오랜 단 잠을 부르는 자애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평화로운 자장가가 

아련히 들려 온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密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 .......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은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20, 19).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13).


다니엘의 하나님이 곧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에게 인봉된 채 주어졌던 비밀이, 

지금 펼쳐져 우리의 손 안에 있다. 

다니엘을 지키고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의 우리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다. 

다니엘에게 말씀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축복하고 계신다. 

다니엘에게 영원한 하늘과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꼐서,

 그의 기별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하늘과 영생을 약속하신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도 다니엘처럼 사는 일이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이 일에도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 모두로 다니엘처럼 살게 하시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아멘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리라」(단 12:1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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