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다니엘서

★다니엘서 7장 이상 중에 본 네 짐승<박상훈 목사>

영국신사77 2009. 1. 8. 22:54

                 ★다니엘서 7장 이상 중에 본 네 짐승<박상훈 목사>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

83     제82강 세 때 반의 고난(7:26-28)     관리자     2006.05.2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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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제80강 하나님이 신원하시리라(7:19-22)     관리자     2006.05.21     24  
  80     제79강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7:15-18)     관리자     2006.05.2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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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제77강 작은 뿔에 대한 심판(7:11-12)     관리자     2006.05.21     24  
  77     제76강 하늘 나라의 법정(7:9-10)     관리자     2006.05.21     24  
  76     제75강 네째 짐승(7:7-8)     관리자     2006.05.21     23  
  75     제74강 셋째 짐승(7:6)     관리자     2006.05.21     19  
  74     제73강 둘째 짐승(7:5)     관리자     2006.05.21     22  
  73     제72강 첫째 짐승(7:4)     관리자     2006.05.21     27  
  72     제71강 세상은 요란하나(7:1-3)     관리자     2006.05

      

                         제70강 다니엘이 받은 첫번째 이상(7:1)

 

  단 7:1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서는 모두 1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1장에서 6장까지입니다. 역사편(history)입니다. 이미 되어진 일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후반부는 7장부터 12장까지입니다. 예언편(prophecy)입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미 되어진 일들도 있지만 다니엘과 그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되어질 일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다니엘서의 전반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우리가 후반부를 한절 한절씩 읽어가면서 말씀의 의미를 좀더 깊이 깨닫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다니엘은 다니엘서의 후반부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네 개의 이상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상은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번째는 8장에 나타납니다.

    세번째는 9장에 등장합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10장에서 12장까지 세 장에 걸쳐서 기술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7장 1절의 말씀은 다니엘이 첫번째 이상을 받았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때는 언제였습니까?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그가 부왕 나보니더스의 섭정을 시작한 BC 553년경: 이 당시 다니엘은 67세]에." 벨사살이 바벨론을 통치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벨사살[재위 BC 553~539, 14년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느부브갓네살 임금의 아들, 정확히 말하면 외손자였습니다. 대단히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벨사살이 벌렸던 술잔치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그는 일천명의 귀인들을 술잔치에 초대했습니다. 그때 그가 어떠한 행동을 취했습니까? 그는 자기의 부친, 정확히 말하면 자기의 외조부인 느부갓네살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성스러운 기명에 술을 담아서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왕궁촛대 맞은편 분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무엇이라고 글을 썼습니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다니엘이 그것을 무엇이라고 풀이했습니까? "메네." 이제는 왕의 시대가 다했습니다. "데겔." 왕의 행동이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를 못합니다. "우바르신." 그리고 왕의 나라가 이제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풀이한 그대로, 바로 그날 밤에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벨사살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벨사살 왕은 대단히 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왕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벨론을 다스리게 되었으니까,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다니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저들은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이상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이신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과 나라의 흥망성쇠를 홀로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권은 세상 나라 임금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사악한 임금이 나라를 통치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움직여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비록 핍박과 시련을 당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 어떠한 환난에서도 멸하지 않고 생존할뿐더러, 이스라엘은 마지막 때에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문으로 돌아갑니다. 이상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니엘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장부터 6장까지가 다니엘에 대한 설명입니다.

 

1장에 보면 다니엘은 유다의 귀족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정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만 충성하리라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런 다니엘을 하나님은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임금의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했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 대신이 되었습니다.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포로출신이 자기가 끌려간 그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또 어떤 사람이었는가? 우리가 다니엘서 전체를 다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은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충성되고, 사람 앞에서도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그만큼 의지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언제나 기도했습니다. 어려울 때도 기도하고, 또 평안할 때도 기도하고, 늘 변함없이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나오는 몇 말씀들을 찾아보십시다.


 

  6장 4절 말씀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가 충성되어." 다니엘은 충성스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일에 게으르지 아니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그릇함도 없고."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 자기에게 맡겨진 세상적인 일에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도 충성스런 사람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진정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되 그 극심한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어떠한 태도를 취했습니까?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극심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대로 다니엘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니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니엘을 가리켜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다니엘을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은혜로운 사람이야, 그 사람은 신실한 사람이야, 정말 하나님의 일꾼이야." 우리도 이처럼 남에게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다니엘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실하고, 충성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받은 이상을 다니엘서 후반부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신실한 다니엘이 받은 이상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충성된 종 다니엘이 기록한 이상입니다. 그러니 그 이상들은 정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되돌아옵니다. 이상을 받았던 장소는 어디입니까? "침상에서." 다니엘은 침상에 누워서 잠을 자는 가운데 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그에게 이상이 임했습니까?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꿈을 꾸는 가운데, 꿈속에서 이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본 이상은, 그 어떤 심리적인 현상으로 그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상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이상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에게 이상을 주신 하나님은 과연 어떠하신 분이십니까? 다니엘서 전반부에서 우리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은밀한 것을 밝히십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주신 꿈을 통해서,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을 밝혀주셨습니다. 이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한 그의 종 다니엘에게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이상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이상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장차 틀림없이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니엘서 전반부인 1장부터 6장까지는 다니엘서의 서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론은 이제 7장부터 시작됩니다.

 

다니엘서 12장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 바로 다니엘서 7장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는 다니엘서의 서론을 공부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상을 보고 난 뒤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 꿈을 기록하며." 그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꾼 꿈이 예사로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해서 다니엘은 자기가 꾼 꿈을 기록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기록했습니까?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대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충 기록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사전에서는 "substance"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것, 가장 중요한 것을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2절부터 27절까지 모두 26절에 걸쳐서 다니엘이 그가 본 이상을 기술했으니까, 비교적 상세히 기록을 한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깨닫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벨사살 임금 때문에 걱정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찾아주셨습니다. 다니엘에게 보이신 이상을 통해서 그들을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41:10의 말씀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굳세게 하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오른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다니엘처럼 신실한 사람, 다니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십시다. 그리할 때 오늘 하루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제71강 세상은 요란하나(7:1~3)

  단 7:1∼3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다니엘서 7장은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입니다. 1절은 다니엘이 이상을 보았을 때의 상황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때는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이라고 했습니다. 벨사살은 아주 사악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걱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상을 받은 사람은 다니엘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전반부에 있는 1장에서 6장까지 다니엘이 어떠한 사람인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다니엘에게 이상이 임했습니다.


다니엘이 이상을 받았던 장소는 침상이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이상을 받았습니다. 이상이 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꿈속에서 이상이 그에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한편 다니엘은 이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상을 주신 분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다니엘에게 이상을 주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서 이상으로, 묵시로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상을 받고 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대략은 대충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진술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2절부터 14절 말씀까지는 다니엘이 본 이상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15부터 27절까지는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상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이 2절부터 27절까지 기록이 되었으니까 모두 몇 절입니까? 26절입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닙니다.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을 했습니다. 마지막 28절은 다니엘이 이상을 통해서 받은 영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그의 얼굴빛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2절과 3절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제가 2절과 3절을 읽을 때 다니엘이 본 이상 가운데 중심이 되는 세가지 요소를 여러분이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바람과 바다와 짐승입니다. 먼저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양 사방에서 부는 바람을 의미하겠지요. 그런데 이들 바람이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부는 것이 아니고, "몰려 불더라"고 했습니다. 폭풍처럼 세차게 불어닥친다는 뜻입니다. 어디로 불어닥칩니까? "큰 바다로" 불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이 평온하고 조용한 장면입니까? 아니면 소란스럽게 요동하는 장면입니까? 소란스러운 장면입니다.

  사57:20을 찾아봅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바다는 요동한다고 했습니다.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소란스러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계 21:1에 보면, 이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다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때 무엇이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습니까?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없을까요? 계 13:1을 찾아봅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짐승"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다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대적하는 악한 짐승이 사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는 죄와 악의 원천이 되는 바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평화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만 있을 뿐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되돌아옵니다. 3절 말씀입니다.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큰"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생긴 모양도 클 뿐더러, 힘도 크다는 뜻이겠지요. 짐승의 수는 모두 "넷"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17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큰 짐승 넷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꿈이야기가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속에서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신상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머리," "두 팔과 가슴," "배와 넓적다리," 그리고 "종아리와 발"이었습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 임금이 본 신상의 머리는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바벨론"이었습니다. 두 팔과 가슴은 "메대와 바사,"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 그리고 종아리와 발은 "로마"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신상이 뜻하는 바가 지금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 가운데 나타나는 네 짐승이 상징하는 바와 서로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본 첫번째 짐승은 무엇입니까? "사자와 같은" 짐승입니다. 사자와 같은 모양인데, 사자와는 다릅니다. 독수리의 날개가 달린 사자입니다.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짐승은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곰과 같이" 생긴 짐승입니다. 그런데 그 곰이 잇 사이에 무엇을 물었다고 했습니까? "세 갈빗대." 다니엘이 본 이상 가운데 두번째 짐승은 세 갈빗대를 잇 사이에 물고있는 곰입니다. 여기에서 뜻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입니까? 메대와 바사입니다.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은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리디아를 멸망시켰습니다. 또 애굽도 멸망시켰습니다. 이 세 나라가 곰의 잇 사이에 물린 "세 갈빗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번째 짐승이 6절에 나옵니다. "표범과 같은" 짐승입니다. 이 짐승의 등에는 무엇이 달려 있습니까? 네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또 이 짐승의 머리는 몇 개입니까? 네 개입니다. 머리도 네 개이고, 날개도 네 개인 표범처럼 생긴 짐승입니다. 표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빠른 것입니다. 이 짐승은 헬라 제국을 상징을 한다고 했습니다. 헬라 제국의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전세계를 정복을 했습니까? 젊은 나이에 전세계를 정복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는 빠르게도 죽었습니다.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의 부하가 네 명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헬라 제국은 네 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네 개의 머리와 네 개의 날개가 그것을 묘사합니다.


  마지막 네번째 짐승이 7절 말씀에 나옵니다.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네째 짐승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치 쥬라기공원에나 나오는 듯한 무시무시한 짐승입니다. 그 짐승에게는 열 개의 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는 철로 되어 있습니다. 네째 짐승은 로마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나타났습니다. 그 돌은 거대한 신상을 부숴뜨렸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고, 산에서 뜨인 돌은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7:9이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또 넘어가서 13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고 산에서 뜨인 돌은 메시야 왕국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이 꿈에서 보았던 이상의 내용은 우리가 내일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늘 소란합니다. 우리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요 16:33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아무리 세상 나라의 권세가 사자 같고, 곰 같고, 표범 같고, 쥬라기 공원에 있는 무시무시한 짐승 같지만, 다 소용없습니다. 결국은 모두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스도 왕국만이 영원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다 세신 바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우리 머리카락 하나라도 그 누구도 상하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늘 명심하십시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오늘 어디 가십니까? 누구와 함께 가십니까? "아닙니다. 저 혼자 갑니다." 이와 같은 대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와 함께 가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집에 누가 계십니까? "아닙니다. 다 나가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와 같은 대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와 함께 있는 것입니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늘 소란하고 요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십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강, 즉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평안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72강 첫째 짐승(7:4)  

  단 7: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다니엘이 밤에 침상에서 잠을 자는 가운데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뇌 속으로 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서 불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큰 네 짐승들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던 짐승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17절 말씀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천사가 다니엘이 본 이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내용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세상의 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단 7:4은 다니엘이 본 이상 가운데 나타나는 첫째 짐승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모습이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자와는 달리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날개처럼 큰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이 사자는 어느 나라의 어느 왕을 상징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꿈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꿈에서 한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정금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금으로 만든 머리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사자로, 또는 독수리로 종종 비유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구절만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렘 4:7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아는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서 슬퍼하며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문맥상 여기서 "열방을 멸하는 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열방을 치러 출정한 것을 상징적으로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다"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 렘 49:19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사자가 요단의 수풀에서 올라오는 것같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로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뇨."

  여기서 "그가 와서"라는 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넘어가서 22절 말씀을 봅니다.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그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여러분 사자 또는 독수리라는 말씀이 자주 나오지요?  문맥상 사자와

독수리가 누구를 가리킵니까?

 

  28절 말씀을 보십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공격된바."

  모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곳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합 1:8의 말씀입니다.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하박국 선지자가 갈대아 사람들, 곧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서 쳐들어온다는 두려운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의 군사들이 유다를 치러오는 모습을, 마치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다고 묘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사자나 독수리로 묘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대궐의 문전에 보면 돌로 만든 짐승의 모양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해태, 거북이 등등의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옛날 느부갓네살 임금 당시의 바벨론 신전(Ishtar Gate)앞에도 짐승의 상이 있었습니다. 무슨 상이었겠습니까? 사자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은 사자로 종종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다니엘이 첫번째 본 짐승, 곧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와 같은 짐승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묘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봅니다.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있어서 이것이 좋은 징조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흉한 징조이겠습니까? 날개쭉지를 잃어버렸으니까 당연히 흉한 징조이겠지요

.

  다니엘서 4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두번째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까 땅 중앙에 한 큰 나무가 서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점점 더 자라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까지 닿았다고 했습니다. 가지도 무성하고 열매도 많았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뒤에 하늘에서 한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왔습니다. 그 순찰자는 그 나무의 그루터기만 제외해 놓고는 몽땅 베어버렸습니다.


 

  이 꿈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과연 느부갓네살 왕은 7년동안 정신병에 시달렸습니다. 그에게서 사람의 마음이 떠나버리고, 그 대신 그에게 짐승의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7년동안 그는 소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하늘의 이슬을 맞으면서 들짐승과 함께 거했습니다. 소처럼 풀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의 털처럼 되었습니다. 또 그의 손톱은 새의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는 "그 날개가 뽑혔고"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다.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7년이 지난 뒤에 느부갓네살 임금이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때에 그의 총명이 그에게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 동안에는 짐승처럼 네 발로 걸었지만, 이제는 사람처럼 두 발로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잃어버렸던 권세도 다시금 되찾게 되었습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던 짐승의 마음이 떠나가고, 본래의 사람의 마음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섰고"가 아니고, "서게 함을 입었으며"라고 했습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찾았고"고 아니고,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누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람의 마음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다시금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임금을 낮추게도 하시고, 다시 높이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느부갓네살 임금을 낮추셨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낮추셨습니다.

  단 4:30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 위를 거닐면서 큰 바벨론 성을 내려다 보고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내 능력과 내 권세로 건설해서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그는 자기를 최대한 내세웠습니다. 교만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그를 낮추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신병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넘어가서 3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그 전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하늘을 우러러 볼 줄을 몰랐습니다. 자기가 제일 높은 줄 알았습니다. 그가 꿈에서 본 나무는 그 끝이 하늘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늘 높은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겸손하게 하늘을 우러러 볼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겸손해 지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34절을 계속 읽어봅니다.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

  느부갓네살 임금을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셨던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교만하지 맙시다.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시채를 뒷발질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바리새인 때에는 자기가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자기가 제일인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 잡아서 죽이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멸하는 정도로 만족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사 나라의 하만이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생각을 한 것처럼,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약 160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입니다. 걸어서 6∼7일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곳으로 가던 도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 네게 고생이구나!"

  소나 말을 움직이게 할 때 쓰기 위해서 가시처럼 뾰족하게 깎은 나무가 가시채입니다. 뾰족한 가시채를 향하여 뒷발질을 하면, 뒷발질하는 그 당사자만 더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요, 곧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깨닫고 회심을 했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자기야말로 율법에는 흠이 없고, 자기가 제일 잘 믿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가 죄인일 뿐더러, 그것도 죄인 가운데서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 만큼 바울이 겸손해졌습니다. 그리해서 바울은 남달리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낮추십시다. 오늘 이 하루도 겸손하게 우리의 마음을 낮추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모두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73강 둘째 짐승(7:5)  

  단 7: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던 두번째 짐승의 구체적인 모습이 본문에 설명되고 있습니다.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곰과 같이 생긴 짐승입니다.


 

  두번째 짐승은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다니엘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 임금은 꿈에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두번째 부분은 두 팔과 가슴으로 된 부분이었습니다. 은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였습니까? 두 곳이 연합해서 되어진 메대와 바사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첫번째 짐승은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자가 덩치가 큽니까? 곰이 덩치가 큽니까? 곰이 훨씬 덩치가 큽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메대와 바사가 바벨론보다도 훨씬 더 영토가 넓었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은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레바논,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방 정도의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은 바벨론을 점령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애굽까지 점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현재의 터키 지방까지 점령했습니다. 심지어 동쪽으로는 인도 지방까지 점령을 했습니다. 그러니 나라의 판도가 바벨론보다는 훨씬 더 커졌을 것입니다. 곰처럼 나라의 덩치가 아주 커졌습니다.

  그런데 그 짐승이 무엇을 들었다고 했습니까? "몸 한편을 들었고." 앞편의 두 발을 들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오른편의 두 발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 한편을 들었다"고 했으니까, 들리지 않은 다른 한편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나라가 두 편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어느 나라입니까? 메대와 바사입니다. 이 두 편 가운데 한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8:3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눈을 들어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수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두 뿔을 가진 수양이 강가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한쪽 뿔이 더 길다고 했습니다.

  넘어가서 8:20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그러니까 한쪽 뿔은 메대이고 한쪽 뿔은 바사인 셈입니다. 그런데 두 뿔이 똑같은 길이가 아니었습니다. 한 뿔이 다른 뿔보다 더 길었습니다. 이것은 메대와 바사의 두 나라가 똑같은 세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가 더 강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바사왕 고레스때 칙령을 반포해서 포로들을 모두 자기들의 본토로 돌아가게 했지 않습니까? 바사왕 고레스가 천하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메대보다는 바사가 더 강했습니다. 곰 같이 생긴 짐승이 "몸 한편을 들었다"고 하는 말씀이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중근동 지방의 곰은 덩치만 클 뿐 아니라, 대단히 잔혹합니다. 그 모습을 보십시다.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잇 사이에 갈빗대 세개가 물릴 정도니까 그 입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그 덩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잔인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선지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여자 선지자가 7명, 남자 선지자 48명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이 선지자들 가운데 대머리로 알려진 선지자가 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엘리사입니다. 왕하2:23 말씀을 봅니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대머리였습니다.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립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어떻게 했습니까?

  24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명을 찢었더라."

  중근동 지방의 곰은 이처럼 사납습니다. 잔인합니다. 메대와 바사는 그만큼 잔혹하게 세계를 정복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은 그 당시 크게 세력을 날리던 세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리디아, 바벨론제국, 그리고 애굽입니다. 세 갈빗대는 메대와 바사가 멸망시킨 이들 세 나라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또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짐승은 자기 잇 사이에 물고 있는 세 갈빗대로 만족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채움받지를 못합니다.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그에게 말하는 자"는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분,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번째 짐승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더 많은 나라를 점령해 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대와 바사는 남쪽으로는 애굽을,  동쪽으로는 인도를, 그리고 서쪽으로는 터키까지 넓은 땅을 모두 점령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바라본 두번째 짐승인 메대와 바사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기억하고 넘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두번째 짐승이 거대하고 또 무섭게 보인다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곧이어서 세번째 짐승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메대와 바사가 아무리 크고 또 무섭다해도 세번째 나라인 헬라 제국에 의해서 대체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적인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에 속한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솔로몬이 세상 나라에 속한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어떠한 결론을 내렸습니까?

  전1:2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다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몇일 전에 신문을 보니까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현대자동차 회장이신 정세영씨의 퇴직금이 38억원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퇴직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회사측에서 현대자동차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에 대한 공로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로금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무려 3조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잘못 보았나싶어 몇 번씩 읽어보았습니다. 틀림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옆에 있던 집사님에게 했더니, 그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겠어요." 그 많은 돈을 두고서 어떻게 억울해서 죽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병철씨는 그렇게도 돈이 많았지만, 갈 때는 일원 한푼 들고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세상적인 것들에 집착해서 살다보면, 우리도 솔로몬처럼 헛되다고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해 아래에서의 수고를, 주님 안에서의 수고로 바꾸었습니다.

  고전15:58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어디에 더욱 힘쓰라고 했습니까? "주의 일에." 왜 그렇습니까? 해 아래에서의 수고는 모두 헛되지만, 주님 안에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땅의 것,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맙시다. 신령한 것, 위의 것, 하늘 나라의 것을 사모하면서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십시다.


  사도 바울은 위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자기의 삶을 다 살고 난 뒤에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이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게 주실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도다."

  사도 요한이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밧모 섬에 유배를 갔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위로해주셨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네가 핍박을 받아 고생한 것 만큼 내가 네 자녀들을 잘 살게 해주마. 내가 그들을 위해서 많은 금은보화를 준비해두었단다!" 이렇게 위로를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천국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계21장과 22장에 나오는 천국의 영화스런 모습을 보면서, 사도 요한은 감격가운데 외쳤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너무나도 천국의 모습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귀한 하루를 살아가면서 땅의 것, 일시적인 것에 너무 집착해서 살지 맙시다. 영원하고도 영화로운 천국과 우리에게 허락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시면서 오늘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74강 셋째 짐승(7:6)  

 

  단 7: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니엘이 본 이상 가운데 나타나는 세번째 짐승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무슨 단어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 후에"라고 했습니다. 둘째 짐승이 나타난 후에 셋째 짐승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곧이어서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라는 말씀은 네 짐승이 동시에 바다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차례대로 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제국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 뒤에 메대와 바사가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고, 그 후에 헬라 제국이 나오게 된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라고 했습니다. 세번째 짐승의 모습은 표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서 본 거대한 신상의 세번째 부분인 "배와 넓적다리"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곧 헬라 제국과 알렉산더 대왕을 상징을 하는 것입니다.

  표범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날쌘 것입니다. 그런데 표범만 해도 날쌘데, 그 등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러니 얼마나 빠르겠습니까? 헬라 제국이 순식간에 세계를 정복하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20살이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그의 부친 빌립보를 이어 헬라 제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이런 결심을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 모든 땅을 다 정복하리라!"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의 결심을 실행에 옮깁니다. 날개 네 개를 가지고 있는 표범같이 알렉산더는 순식간에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곰"으로 상징되었던 메대와 바사의 그 넓은 영토를 모두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알렉산더 대왕은 목놓아 울었다고 했습니다. 왜 울었겠습니까?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빠르니까 또 좋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33세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죽는 것도 빨리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운전하실 때에는 너무 급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어떤 분이 운전하는 차만 타면 아주 불안합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라는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차를 순식간에 추월해서 앞차와 뒤차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의 수준을 넘어 그때는 "나 주께 왔사오니"입니다. 요즘에는 많이 좋아지셨는데 그래도 차를 빨리 모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차를 모실 때는 좀 여유를 가지면서 모시길 바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표범처럼 급하게 세상을 점령했지만, 또 젊은 나이에 급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역시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짐승에게 머리가 네 개가 있고 날개도 네 개가 달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다니엘이 두번째 본 이상에서 그것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8:8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수염소가 심히 강대했는데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뿔 네 개가 났다고 했습니다.
  21절 말씀 보십시다.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수염소는 알렉산더 대왕을 뜻하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알렉산더 대왕이 33세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의 수하에 네 장군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헬라 제국은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네 나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상에 따라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모두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언한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표범과 같이 재빠르게 전세계를 점령했지만, 그 권세는 결코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나라는 이처럼 다 일시적입니다. 오직 메시야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가운데 멜랑크톤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임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빙 둘러싸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천국을 향하여 출발하셨을 때가 되셨습니다."
 멜랑크톤이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천국을 향하여 출발할 때가 되었다니? 도착할 때가 되었지."

  천국을 향하여 출발하는 것이나, 도착하는 것이나 무슨 시간상의 차이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임종을 앞둔 그 순간까지라도 신앙 안에서 농담을 하면서 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여유롭고 좋습니까?


  여러분은 이 땅에서 건강하시고 오래 장수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백년 뒤에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저 한 사람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못사는 것입니다.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좀 더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사셔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수가 없습니다. 기쁘게 사세요. 즐겁게 사세요. 음식을 드실 때도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한번밖에 없는 삶이 아닙니까? 헛되게 보낼 수가 없습니다. 해야 될 일을 열심히 충실하게 해야지요.


  그러나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히 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이 세상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영화로운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소망가운데 바라보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권사님이 임종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딸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돌아가시면 안돼요. 눈뜨세요. 손주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가셔야지요. 더 사셔야 돼요."

 

  그랬더니 그 권사님이 정색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정말 해도 너무 하는구나. 내가 지금 저 영화로운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왜 못 들어가게 막는단 말이냐? 내가 이만큼 살아서 고생했으면 됐지, 얼마나 더 살아서 고생하란 말이냐? 정말 해도 너무 하는구나!"


  한번밖에 없는 삶을 살 때, 우리가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지요.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영화로운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기쁜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쓰시던 간에, 하나님께 모두 맡겨버리세요. 살아도 좋고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이 하루도 복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75강 네째 짐승(7:7~8)  

  단 7:7~8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소중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 속에는 군더더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마지막 네번째 짐승의 모습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다니엘은 네번째 짐승의 이름을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네번째 짐승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섭고 놀라우며."

 

  다니엘은 본시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 나라의 임금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채식과 물을 먹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왕명을 거절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벨사살 임금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나라는 이제 멸망할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던지움 당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 드렸던 사람입니다. 사자조차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다니엘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네번째 짐승을 보았을 때, 그 짐승이 "무섭고 놀랍더라"고 했습니다. 네번째 짐승은 그만큼 무섭게 생긴 짐승이었을 것입니다.


  네번째 짐승이 무섭고 놀라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몇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또 극히 강하며." 우선 그 짐승은 극히 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네번째 부분은 "종아리와 발"부분이었습니다. 무엇으로 되어 있었습니까?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본 네번째 짐승도 몸이 철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극히 강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입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이빨도 모두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납고 강한 이빨로 "먹고 부숴뜨리고"라고 했습니다. 먹이를 먹으면서 이빨로 그 먹이를 씹어 부숴뜨렸습니다. 그런 후에 다 먹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발로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7:19에 보면 네째 짐승의 발톱은 놋이라고 했습니다. 철 이로 씹어서 부숴뜨리고, 또 놋 발톱으로 밟아 찢어버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무섭고 놀라웠겠습니까?


 

  7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다니엘은 자기가 앞서 본 세 짐승의 이름을 모두 기술했습니다. "사자 같고," "곰 같고," "표범 같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이름을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렇게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다니엘이 네번째 짐승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이름을 적지 못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이전에 본 그 어떠한 짐승들과도 다른, 독특하고 무서운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짐승의 이름을 기술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예전에 본 짐승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군병들이 철병거를 타고 세상의 여러 나라들을 잔혹하게 점령해 나가는 모습을 7절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머리에는 뿔이 있다고 했습니다. "열 뿔이 있으므로." 보통 짐승들은 뿔이 두 개입니다. 그런데 뿔이 열 개나 달려 있습니다. 특이한 모습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보았던 거대한 신상의 발가락이 열 개였습니다. 그것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그 열 뿔은 다니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특이하게 생긴 열 뿔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라고 했습니다. 열한 번째의 뿔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뿔의 크기는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뿔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뿔은 점점 자랐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그러니까 이 작은 뿔이 점점 자라서 먼저 있던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선 여기에서 말하는 뿔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뿔은 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열 왕이 있었는데, 뒤에 새롭게 일어난 왕이 기존의 세 왕을 무력으로 자기에게 복종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 왕들이 스스로 작은 뿔로 상징되는 왕과 연합한 것이 아니고, 작은 뿔로 상징되는 왕이 무력으로 기존의 세 왕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른 일곱 뿔로 상징되는 왕들도, 이 작은 뿔에게 다 복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같은 눈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두 눈이 달려 있었겠지요. 눈이라는 것은 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작은 뿔로 상징되는 왕은, 모든 것을 환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 간교한 왕임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이 작은 뿔에는 두 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입이 있어 큰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말"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큰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참람한 말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말입니다. 결국 이 "작은 뿔"은, 장차 마지막 때에 나타나서 하나님과 성도를 대적할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열 뿔은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세상 나라들을 총망라해서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적그리스도란 무엇이겠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적그리스도는 사탄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계 17:12-14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승리는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적그리스도의 권세가 무섭고 크다해도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을 넘어뜨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충만할 때에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고, 어떠한 일을 앞에 두고서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살아갑시다. 승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신 있게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76강 하늘 나라의 법정(7:9~10)

  단 7:9~10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다니엘서 2장에는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서 본 거대한 신상의 모습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신상은 광채가 특심하고, 모양이 심히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상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네 부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들이었습니까? 세계의 열 왕들과 또 그의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신상은 계속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곧 이어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나타났습니다. 그 돌은 신상의 발을 쳐서 부숴뜨렸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 돌은 점점 자라서 태산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돌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의 의미는 세상 나라들은 영원하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단 7:9∼14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9∼10의 말씀은 장차 악인들을, 특히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법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여러분, 이 왕좌에는 누가 앉을 것 같습니까? 예수님이 앉으실 것 같습니까? 제가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왕좌가 단수로서 하나인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사실 원문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왕좌들이 놓이고." 여러 개의 왕좌가 있습니다. 이 왕좌들에는 누가 앉을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주와 더불어서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할 자들입니다. 머리에 빛난 면류관을 쓰고서 세세 무궁토록 주와 함께 다스릴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성도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앉을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딱딱한 의자에 앉으셔서 예배를 드리고 계시지만, 잠시 잠깐 뒤에는 왕좌에 앉으실 분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보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누가 좌정하십니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또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보좌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입고 계신 옷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희기가 눈 같고." 눈 같이 흰옷을 입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희다는 것은 흠과 티가 전혀 없는  성결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지요.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하나님의 머리털은 양의 털 같은 백발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백발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머리에 염색도 하고, 가발도 많이 쓰고 다니니까 뒷모습만 보면 나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머리카락이 희다는 것은 그만큼 연세가 많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계신 분이시니까, 하나님의 머리털을 백발로 묘사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봅니다.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옛날 우리 나라의 보좌는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근동 지방의 보좌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던 것이 고고학적으로도 입증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와 그 바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불"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모세가 호렙 산 불붙는 떨기나무 속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 뵙지 않았습니까? 또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아모스 1장에 보면 자주 이런 표현이 나오지요? "내가 ......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불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불로 심판하신다는 말뜻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불이 강처럼 흘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이 강처럼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용암이 강처럼 흘러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왜요? 악인들을 불로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누가 서 있습니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천천은 백만입니다. 만만은 일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천천과 만만은 엄청나게 많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을 수행하고, 성도들을 수종들기 위해서 수많은 천사들이 서 있다는 말뜻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여기에서 말하는 "책들"은 행위의 책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이 행위의 책들에 빠짐없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

  단 12:1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여기에 나오는 책은 무슨 책이겠습니까? 생명책입니다. 우리는 불로써 심판 당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우리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빛난 면류관을 받고서 왕좌에 앉아서 세세 무궁토록 주님과 더불어서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은 생명책 옆에 있는 또 다른 책, 곧 행위의 책에 따라서 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행위의 책에 기록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좋은 생각들을 많이 하시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룩한 행위, 성결한 삶,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많이 하셔서, 이 다음에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 앞에 서셨을 때 큰 상급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77강 작은 뿔에 대한 심판(7:11~12)

  단 7:11-12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하늘 나라의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법정이 열렸습니다. 왕좌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택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 앉아서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할 왕좌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즉 영원하신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옷은 눈 같이 흰옷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털은 양털같이 흰 백발로 묘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불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서는 불이 강처럼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악인들을 심판할 불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명을 수행하고 성도들에게 수종을 들기 위한 수많은 천사들이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악인들을 심판하기 위한 행위의 책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다니엘은 하늘 나라의 광경을 보는 동안에 잠깐 동안 작은 뿔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뿔은 그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하늘 나라에서 준비되고 있는데, 그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뿔이 하는 "큰 말"이란 무엇입니까?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참람한 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말로 성도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지금 무서운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작은 뿔은 계속해서 큰 말, 참람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작은 뿔을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심판하십니다. 보세요. 드디어 작은 뿔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짐승은 네번째 짐승을 말합니다.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짐승의  몸도 역시 멸망당했습니다.

 

  여기서 짐승의 몸이란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총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표현되는 사단의 세력에 추종하면서 그의 종노릇을 하는 자들을 짐승의 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은 결국 어디에 던진바 되었다고 했습니까? "붙는 불에." 지옥 불에 던짐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막 9:48에서 예수님은 그 불이 영원토록 꺼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 21:8에 보면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유황에서 나오는 독가스가 또한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악인들은 그곳에서 세세 무궁토록 밤낮 없이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끔찍한 곳이 지옥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 남은 모든 짐승은." 이는 네번째 짐승 이전에 있었던 모든 짐승들을 뜻합니다. 즉 사자, 곰, 표범같이 생긴 짐승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먼저 바벨론이 나라의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메대와 바사가 권세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대와 바사도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그 권세가 헬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헬라도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로마가 권세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전의 짐승들은 그 권세를 모두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이 말씀의 뜻은 이러합니다. 바벨론이 그 권세를 빼앗겼지만, 바벨론의 사람들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대로 메대와 바사에 흡수되었습니다. 또 메대와 바사도 나라의 권세는 빼앗겼지만, 그 나라 백성들은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 헬라 제국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장면으로 이 말씀의 뜻을 풀이해 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그 신상을 부숴뜨렸습니다. 그때 돌이 먼저 머리 부분을 부수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팔, 배, 다리 등을 부숴뜨린 것이 아닙니다. 돌은 철과 흙으로 된 발 부분을 부숴뜨렸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머리, 팔, 배, 넓적다리가 한꺼번에 부서져 버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임하실 때 한꺼번에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악인들은 잠시 잠깐동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날, 모든 악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악인들이 형통하다고 해서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준엄한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 살면서 핍박당하고,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잠시 잠깐인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우리가 앉을 왕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빛나는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마다 단잠을 깨우시면서 주님 앞에 나오시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입니다. 힘들고, 어렵다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더욱더 눈물을 흘리시고 주를 위해서 즐겁게 고난 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 12:3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 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어떤 사람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춘다고 했습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즉, 죽어 가는 자를 구원의 길로 이르는 자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춘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스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복음을 듣지 못해서 죽어 가는 심령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쓰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타"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앞 글자를 따서 "스"스로 "타"락한 자가 스타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의 인기스타나 연예인등은 그럴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스타는 다릅니다. 하늘 나라의 "스타"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서 세세 무궁토록 왕노릇 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늘 나라의 스타가 될 것 같습니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구원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전하지 않는데 어떻게 듣고, 듣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천사가 꿈에 나타나 복음을 전해주어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스타와 같이 빛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일입니다. 입을 여십시다. 복음을 전하십시다. 주변에 있는 분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에 힘쓰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78강 인자 같은 이(7:13~14)

  단 7:13-14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입니다. 이상의 절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참으로 감격스럽고, 황홀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내가 또"라고 했습니다. 이상이 계속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밤 이상 중에." 밤이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하늘의 별은 더욱더 선명하게 빛납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이 이상을 볼 때는 밤이었습니다. 주변이 캄캄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본 이상이 얼마나 분명하고, 또 확실하게 나타났겠습니까?


 

  어떤 장면인지 보겠습니다. "인자(人子: Son of man) 같은 이가." 사람의 모습을 하신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람 그 이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사람은 하늘 구름을 타고 다니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분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 분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선 우리 예수님은 스스로를 인자라고 종종 칭하셨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막 10:45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 스스로가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또 우리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신 것처럼, 장차 구름을 타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또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의 모습과, 이전의 세상 나라 왕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나지요? 예컨대 세상 나라의 왕들은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자 같고, 곰 같고, 표범 같으며 네째 짐승은 이름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섭고 놀라운 모습을 한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반면 우리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인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셨습니다.


  또 짐승들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3절에 보면 바다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속하신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다시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오실 때, 악인들은 심판하시고 의인들은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십니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께 나아와 그 앞에 인도 되셨습니다. 무엇을 하시기 위해서 입니까?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 되신 예수님께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권세와 영광과 나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외우지요? 성부 하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성자 예수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단 3:7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니라."

  세상 사람들이 헛된 금신상을 섬겼습니다. 지금도 헛되게 부처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라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 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그 대신 사신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만왕의 왕 되신 우리 예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그때에 헛된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불못에 던지움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 날에 우리의 몸은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우리를 위해 예비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빛나는 면류관을 받아 쓸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앉을 왕좌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왕좌에 앉아서 수많은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면서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생명수 시내로 우리의 목을 축일 것입니다. 또 다달이 새로운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생명나무의 실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황금 보석으로 만든 집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면서 살 것입니다. 여러분!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구속의 은총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짐승의 권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짐승의 권세는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권세는 영원합니다.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않을 것이니라." 세상 나라는 다 폐합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폐하지 않고 든든히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영원한 나라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성곽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은 동편에도 세 개, 서편에도 세 개, 남편에도 세 개, 북편에도 세 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에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든지 다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들어갈 수가 있고, 영어를 하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고, 러시아말을 하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자는 다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에는 구약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기초석에는 신약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성도이든지 신약의 성도이든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저 영화로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우리 예수님의 은혜로우신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79강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7:15~18)   

  단 7:15~18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감격스럽고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무서운 광경들을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다니엘은 중심에 근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짐승들에 의해서 당하게 될 성도들의 고난, 핍박등을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특별히 네째 짐승은 아주 무섭고 놀라운 모양이었습니다. 다니엘이 한번도 과거에 본 적이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 짐승의 이름조차도 기록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번째 짐승의 머리 위에는 열 개의 뿔이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열한 번째의 뿔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뿔은 점점 자라서 기존에 있던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이 달려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 작은 뿔에는 입이 있어 큰 말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참람한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상의 뜻을 생각하면서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상의 뜻을 알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16절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그 곁에 모신 자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다니엘이 누구에게 나아갔다는 말씀이겠습니까? 천사이겠지요. 하늘 나라 법정에 성도들이 앉을 왕좌들이 놓여있고, 그 가운데에는 옛적부터 계신 이가 보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앞에는 천천의, 만만의 천사들이 모시고 서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또 성도들을 수중 들기 위해서 수많은 천사들이 모여 서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다니엘은 자신이 이상에서 본 모든 것의 뜻이 무엇인지를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천사는 다니엘이 꿈속에서 본 이상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에게 이상을 해석해 준 천사의 이름이 뒤에 나옵니다. 누구겠습니까?


  8:16의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9:21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다니엘에게 이상을 깨닫게 해주었던 천사는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마음 속에 근심이 있습니까? 담아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알리시기 바랍니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계십니까? 고민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다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우리에게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천사 가브리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셔서 좋은 소식들만, 반가운 소식들만 많이 듣게 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 가브리엘의 역할을 많이 하십시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노릇은 하지 맙시다. 가브리엘처럼 복된 소식만을 전해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이상을 어떻게 해석해 주는지 17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큰 짐승은 세상의 왕들이라고 했습니다.


  넘어가서 2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17절 말씀에서는 짐승을 "왕"이라고 했습니다. 23절에서는 짐승을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짐승은 "왕," 또는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왕이 없는 왕국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왕국이 없는 왕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짐승은 "왕," 또는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이상 가운데서 네 큰 짐승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차례대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나라와 그것을 다스리는 왕의 권세가 영원치 못하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헬라의 알렉산더 왕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로마의 시자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모두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형통하다고 해서 부러워하지 마십시다. 잠시 잠깐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반드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롬 8:18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은 일시적이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고난은 경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은 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영원하다는 말을 몇 번 썼습니까?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번씩이나 반복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메시야의 나라, 그 영원한 나라에서 왕이 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세세 무궁토록 다스리면서 왕노릇 하면서 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바로 우리가 왕좌에 앉아서 천사들을 다스리면서 영원토록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잠깐은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요16:33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편지 가운데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계 2:7의 말씀을 보십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계 2:11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17을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26을 보십시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3:5의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계 3:12의 말씀을 보십시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마지막으로 계3:21의 말씀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이라는 말씀이 계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이기는" 자가 만나와 흰 돌을 받습니다. "이기는" 자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습니다. "이기는" 자가 흰 옷도 입습니다. "이기는" 자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됩니다. "이기는" 자라야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인 우리들이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을 깨뜨리고자 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구겠습니까?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기쁨과 평강을 빼앗아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겨야 됩니다. 욥의 아내처럼 조금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잠시 잠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요한계시록에서 약속된 그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우리 주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모든 시험과 고난을 믿음으로 다 이기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복된 모습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80강 하나님이 신원하시리라(7:19~22)

  단 7:19~22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은 자신이 이상 가운데서 보았던 네 짐승들 중에서 특별히 마지막 네번째 짐승의 진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 이유가 19절 에 나옵니다.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네째 짐승은 다른 짐승들과 달랐습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았습니다. 둘째 짐승은 곰 같았습니다. 그리고 세째 짐승은 표범 같았습니다. 그런데 네째 짐승은 그 이름조차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 짐승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심히 무섭고." 과거에 본 적이 없는 엄청나게 무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는 철이요." 이빨이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7:7에 보면 "큰 철 이가 있어서"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이는 철로 되었을 뿐 아니라, 크다는 것입니다. 또 발톱은 무엇으로 되어 있었습니까? 놋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네째 짐승에게는 큰 철 이가 있고 발톱도 놋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얼마나 강했겠습니까?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나머지를 발로 짓밟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잔혹하고 사나운 모습이었겠습니까? 네째 짐승은 로마제국을 상징했습니다. 로마제국이 다른 나라를 잔혹하게 정복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로마제국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던 나라였습니다.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이것은 로마제국이 나중에 열 나라로 갈려질 것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열이라는 숫자는 완전 수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뜻을 정하고서는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들의 몸을 더럽히지 않고 그 대신 채식을 먹고 물을 마셨습니다. 삼 년동안의 훈련 기간이 지났습니다. 왕 앞에 나아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지혜와 총명이 다른 동료들보다 몇 배나 뛰어나다고 했습니까? 열 배였습니다. 여기서 열 배는 무엇을 뜻합니까? 다른 동료의 지능 지수가 백이면 그들의 지능 지수는 천이나 된다는 의미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열 배라고 하는 것은 훨씬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라는 말씀은 로마제국이 장차 수많은 나라로 갈려질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로마제국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금 세계가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로 갈려 있지 않습니까? 과거처럼 어느 한 나라가 세계를 다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여기서의 다른 뿔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작은 뿔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열한 번째 뿔은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이 작은 뿔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작은 뿔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살후2:3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작은 뿔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요일 2:18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여기서는 작은 뿔이 적그리스도로 표현되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네가지로 이 작은 뿔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째,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라고 했습니다. 작은 뿔은 주변에 있는 다른 세 뿔들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힘으로 정복을 했습니다. 그만큼 작은 뿔의 세력이 강하다는 말입니다.

 

  둘째, "그 뿔에는 눈도 있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지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합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만큼 간교하고 영악합니다.

 

  셋째로, "큰 말하는 입도 있고"라고 했습니다. 큰 말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 또 성도들을 핍박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참람한 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강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머지 일곱 나라도 결국은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에게 복종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면 세계 모든 나라가 다 그에게 복종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작은 뿔은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고난을 줍니다. 왜요? 성도들이 작은 뿔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를 각오하고 적그리스도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핍박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허용된 기간에 국한된 것입니다.


  7:25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때만 괴롭히고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세 때 반의 핍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주권자인 하나님, 세상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오신 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던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아울러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충성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빛나는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일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성도들은 그때에 나라를 얻게 됩니다. 성도들은 영원한 그 나라에서 빛난 면류관을 쓰고서 세세 무궁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 이것을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습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왕을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전하" 또는 "폐하"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전하로, 또는 폐하로 불리울 사람들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왕같이 귀한 분들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전하"라고 한번 불러보세요.

 

  이 영광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잠시 잠깐동안 고난이 있고 핍박이 있다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주께서 허락하신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지시고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81강 네째 짐승의 진상(7:23~25)

 

  단 7:23~25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네째 짐승에 관한 장면은 크게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 자체입니다. 무섭고 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에 보았던 다른 짐승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큰 철 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놋으로 된 발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큰 철 이로 먹이를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짓밟고 있었습니다.

 

  둘째 장면은 뿔에 대한 설명입니다. 짐승에게는 뿔이 열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장면은 열한 번째 뿔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뿔이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서 기존에 있던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달려 있었습니다. 또 큰 말을 하는 입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네째 짐승의 특이한 모습에 대해서 천사 가브리엘에게 그 진상을 물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설명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천사이겠지요. 그 천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는지 보십시다.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 나라는 어느 나라를 뜻합니까? 로마입니다.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기존의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바벨론과도 다르고, 메대와 바사와도 다르고, 헬라와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어느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세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입니다. 로마는 그 큰 세력으로 "천하를 삼키고"라고 했습니다. 짐승이 먹이를 삼키듯이 로마는 온 천하를 다 점령했습니다.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로마제국이 천하를 자기 발아래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바로 첫째 장면입니다.


  둘째 장면은 열 뿔에 대한 광경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라." 로마제국이 지나가고 나면 세상이 여러 개의 나라로 갈려집니다. 여기서 "열"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수로서 "굉장히 많다"는 뜻입니다. 로마제국이 천하를 통치하고 나서 그 뒤에 지금처럼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지 않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수많은 나라가 갈려져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둘째 장면이었습니다.


  셋째 장면입니다. 24절 후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열한 번째 뿔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뿔,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적그리스도는 이전에 있던 왕들과는 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그 세력이 막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대적하는 열 왕 가운데 세 왕이니까, 거의 1/3에 해당되는 나라들을 무력으로 정복시켜 버릴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나머지 7/10에 해당되는 나라들은 작은 뿔의 무서운 세력을 보고서는, 대항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복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의 특징이 몇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적그리스도의 첫째 특징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왜 하나님을 말로 대적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후2:3의 말씀입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말하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살후 2:4의 말씀입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적그리스도의 노릇을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5절의 말씀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둘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괴롭게 하겠지만, 또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적인 억압입니다. 


계 13:16-17의 말씀입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면 먹는 음식들을 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경제적으로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셋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먼저 때를 변개코자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력을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활절, 성탄절 등을 지키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달력에는 엿 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하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도 바꿔 버린다는 것입니다. 옛날 블란서 혁명 때에도 일주일을 칠 일이 아니고 십 일로 바꿔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9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때를 바꾸면서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또 "법"도 변개코자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법도 무시해 버리고, 세상의 법도 무시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말을 법처럼 강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살후 2:3에서는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불법의 사람"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그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을 무섭게 핍박할 것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특징을 보십시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가 적그리스도에게 허용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연히 적그리스도 보다도 더 권세가 많으신 분이실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얼마동안 붙인 바 된다고 했습니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면 전부 다 몇 때입니까? 세 때 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정기간 동안에만 성도가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기간 동안입니다. 끝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 때 반은 얼마를 가리킵니까?


  단 12:7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이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세 때 반만 지나면 핍박도 끝납니다. 그때는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세 때 반은 일천 이백 구십 일입니다. 3년 반입니다. 그러니까 3년 반 동안에만 핍박이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까? 모두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어려운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도 더 귀하게 단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울러 이 다음에 우리에게 더 큰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핍박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셨던 김익두 목사님이 "줄 알라"의 신앙을 가지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면, 면류관을 쓸 "줄 알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면, 그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받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때 반 동안의 핍박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높이 세워 주시고, 큰 상급을 주시고, 우리에게 빛나는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줄 알라"의 귀한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미 다 이겨 놓으신 싸움을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과 핍박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때 반으로 정해놓은 짧은 기간에 주어지는 고난일 뿐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살아가십시다. 길을 걸어갈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일을 할 때도 주께서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라도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82강 세 때 반의 고난(7:26~28)

  단 7:26-28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다니엘은 이상 가운데 하늘 나라의 법정에 관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왕좌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왕좌들은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할 성도들이 앉을 보좌들입니다. 그리고 한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 보좌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옷은 눈 같이 흰옷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머리털은 양털 같이 희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그 바퀴는 타는 불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서는 불이 강같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보좌의 앞에는 천천 만만의 수많은 천사들이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근거가 되는 행위의 책들도 펼쳐져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악인들을 심판하실 하늘 나라 법정의 광경을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 즉." 적그리스도는 세 때 반 동안에 온갖 권세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때와 법도 변개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세 때 반 동안에만 이루어질 뿐입니다. 


드디어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을 향한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세 때 반 동안 성도들을 핍박하고 또 참람한 말을 하던 적그리스도의 모든 권세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적그리스도는 철저하게 멸망을 당하여 두 번 다시 재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신상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마치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서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철저하게 망해버린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영원히 타는 못에 던지움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막 9:43에서 그곳에서 타는 불은 영원히 꺼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악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물론 세 때 반 동안에 적그리스도로부터 말로 다 할 수 없는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왜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핍박합니까? 본질적으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적그리스도를 대항해서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참람한 말을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는데 성도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를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그의 나라, 곧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성도들은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그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마지막 28절 말씀입니다.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해석을 듣고 나서 다니엘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빛이 변하였으나."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여러 가지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네 짐승이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열국의 흥망성쇠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 같은 눈이 달려 있고 또 큰 말하는 입이 달린 작은 뿔도 보았습니다. 이 작은 뿔에 의해서 성도들이 세 때 반 동안에 핍박당하는 광경도 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그런 광경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엄청난 번민과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이때 다니엘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절친했던 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입니다. 바벨론식 이름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다니엘이 오래 살았으니까, 그의 세 친구는 아마 세상을 이미 떠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절친했던 세 친구가 있었더라면, 다니엘은 자기가 이상 가운데 본 충격적인 광경들을 함께 나누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세 친구는 세상을 떠났기에, 다니엘은 이상에서 본 충격적인 내용들을 자신의 마음에 감출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음 속에 계속해서 간직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상을 통해서 다니엘과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역사를 움직여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벨사살 임금 때 첫번째 이상을 받았습니다. 벨사살이 얼마나 사악한 왕이었습니까? 그러나 그의 손에 세상의 역사가 달려 있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움직여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에게 이상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다니엘에게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세 때 반입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다시금 우리를 세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 때 반의 고난을 당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의 고난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입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고난과 무거운 짐을 대신 맡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세 때 반이 지나면 주께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신원해 주실 것입니다.


  세 때 반 동안의 어려운 시련에 처해있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고난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