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다니엘서

★다니엘서 6장 사자굴에 던지운 다니엘<박상훈 목사>

영국신사77 2009. 1. 8. 22:40

     ★다니엘서 6장 사자굴에 던지운 다니엘<박상훈 목사>

70     재69강 다니엘의 형통함(6:28)     관리자     2006.05.21     26  
  69     제68강 다리오 왕의 조서(6:25-27)     관리자     2006.05.21     26  
  68     제67강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의 결말(6:24)     관리자     2006.05.21     23  
  67     제66강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6:19-23)     관리자     2006.05.21     23

66     제65강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6:16-18)     관리자     2006.05.21     30  
  65     제64강 다니엘을 걱정하는 다리오(6:14-15)     관리자     2006.05.21     25  
  64     제63강 다니엘이 기도하더이다(6:11-13)     관리자     2006.05.21     24

 

 

 

                                  제59강 다리오의 신임을 받은 다니엘(6:1-2)

  6:1-3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바벨론이 멸망당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리오가 역사적으로 어떠한 인물이냐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레스 칙령을 반포해서 포로들을 고향 땅에 돌아가게 했던 고레스가 

바사 나라의 실제적인 임금이었고, 

다리오는 고레스 밑에 있는 사람으로 

특별히 바벨론 지역을 다스리도록 임명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또 다른 주장은 메대 사람 다리오를 고레스와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리오는 고레스의 별명이거나, 

하나의 관직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라고 할 때 "바로"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을 나타내는 관직명이듯이 

다리오는 관직이고 실제 이름은 고레스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아무튼 다리오는 나라를 얻게 되었을 때 

잠시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지역을 나누어서 방백들에게 맡겨서 통치하게 했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일백이십 명의 방백 위에 더 높은 관직으로 총리 셋을 두었습니다. 

"다니엘이 그중에 하나이라"라고 했습니다. 

다리오가 어떻게 다니엘을 그처럼 귀하게 세웠을까요? 

물론 다리오는 다니엘이 바벨론의 강력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 임금 시대에 

바벨론 전 지역을 다스리는 총리 대신이었고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벨사살 임금 앞에서 바벨론 나라의 멸망을 예언했고, 

또 벽서를 읽고 해석했을 뿐 아니라, 

해석이 잘 되어서 벨사살 임금이 자주 옷을 입혔고, 

금사슬로 목에 드리우고,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았던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오가 다니엘을 총리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총리 셋을 세운 이유가 2절 하반부에 나옵니다.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그러니까 총리가 하는 일은 방백들을 감독하는 일입니다. 120명의 방백이 있고 총리가 셋이 있으니까 한 사람 앞에 40명의 방백을 감독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방백들이 하는 주된 업무가 무엇이겠습니까? 각 지역에서 세금을 거두어 왕에게 바치는 일이 가장 주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방백들이 백성들한테 거둔 세금을 나라에 바치지 않고 중간에서 착복하지 못하게 감독하는 일이 총리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다고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에 의해서 각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직접적인 보고를 할 수 있는 귀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니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왕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얼마라고 했습니까? 예, 81세였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가 15세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43년을 통치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죽고 나서 23년 뒤에 바벨론이 멸망당했습니다. 다 합치면 81세가 나옵니다. 다니엘은 장수했습니다. 건강했습니다. 또 우리 이만수 장로님 만한 나이에 메대 바사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는 나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 제한 없이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면 얼마든지 쓰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발명왕 에디슨은 나이 90이 될 때까지 발명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J. C. 페니라고 하는 유명한 백화점 체인이 있습니다. 그 J. C. 페니 백화점을 창설한 사람은 95세까지 왕성하게 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나이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 새벽 제단에 나오신 승동의 모든 권속들에게 하나님이 장수의 복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건강의 복을 허락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또 아무 하는 일없이 오래 살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늘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이 15살 때부터, 청년 시절부터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 왕이 주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일평생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도 늘 하나님을 바로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수의 복, 건강의 복을 주시고 충성된 일꾼으로 귀하게 사용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제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소련에 가면 코카서스라고 하는 장수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80세 된 노인이 서럽게 울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운다는 것입니다. 나이 80세 된 노인을 회초리로 때릴 수 있는 아버지가 도대체 있을 수 있나 찾아봤더니 113세 된 노인이 80세 된 노인을 때릴 수 있는 기력을 가지고 살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13세 된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당신 아들을 때렸습니까?" 그랬더니 113세 된 아버지가 하는 말이 "저놈이 버릇없이 할아버지를 놀렸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0세를 때린 113세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 할아버지를 찾아보았더니 143세 할아버지가 정정하게 살아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100세가 문제가 아니라 143세까지 얼마든지 건강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 새벽 단잠을 깨고 나오신 사랑하시는 승동의 권속들에게 다니엘처럼 건강하시고 장수하시고 끝까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놀라운 은총이 있게 되시기를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0강 틈도, 허물도 없는 사람(6:4-8)

 

  6:4-5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기명들을 가져다가 술을 마시고 하나님을 모독하던 벨사살 임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술잔치를 벌이던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 나라도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때 나라를 얻은 다리오 임금은 바벨론 박사들의 어른이었고, 총리 대신을 지냈으며 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읽고 해석하였던 다니엘을 메대 바사 나라의 총리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함께 총리가 되었던 다른 두 사람과, 120명의 방백들 가운데 주로 바벨론 근처에서 일을 했던 일부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였습니다. 왕이 특별히 다니엘을 총애했기 때문에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니엘의 지금 나이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기들은 젊지 않습니까? 젊고 능력 있는 자기들보다 늙어서 활동도 제대로 못할 다니엘을 왕이 높이 세웠기 때문에 다니엘에 대해서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다니엘은 유다의 포로 출신이었습니다. 자기들 같은 메대와 바사 출신을 제쳐놓고 유다 포로 출신을 총리로 세웠기 때문에 더욱 시기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자제를 했어야 했는데 다니엘을 시기해서 음모를 세웠습니다. 단순히 다니엘을 지위에서 내쫓고자 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죽이고자 하는 무서운 음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들이 파놓은 함정에 자기들이 빠진 꼴이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쳐놓은 올무에 자기들이 걸려들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었지만 결국에는 자기들과 심지어는 처자들까지 사자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반대의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서 장대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르드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만이 그 장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라 남이 나보다 잘 되면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겨내야 합니다.

  다른 두 총리와 방백 중 일부가 다니엘을 시기해서 음모를 세웠는데 어떤 음모였는지 보십시다. 4절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대단한 찬사가 아닙니까? 다니엘은 총리 대신이므로 나라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 하는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또 그 밑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수많은 사람을 대하는 일 가운데 국사에 대해서는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시든지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 대해서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세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가 충성되어." 다니엘은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왕에게 충성하는 척하고 뒤돌아 서서는 왕에 대해서 불평하고 비판하고 왕의 흠을 잡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변함없이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아무 그릇함도 없고"라고 했습니다. 정직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안될 일을 눈감아 준다거나, 바로 될 일도 질질 끌어 안되게 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명정대하고, 사심 없이 정직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세번째로,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원문의 뜻은 성실하다, 게으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꾀부리지 않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철저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부지런했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다, 귀찮다, 다음으로 미뤄라"라고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 나라 공직자들이 모두 이런 마음으로 일한다면 우리 나라가 달라질 것입니다. 충성과 정직과 성실,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이렇게 되기를 기대하기에 앞서서 우리 자신이 먼저 충성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 5절을 보세요. 국사에서 다니엘의 흠을 잡아내려다 실패하고 나서 이 사람들이 두번째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번에는 종교적인 문제를 가지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다니엘로 하여금 갈등을 일으켜서 올무에 걸리게 하자는 책략을 세웠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다니엘의 신앙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은밀하게, 남들이 모르게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신앙이 철저한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다니엘의 신앙은 모든 사람 앞에 공개적으로 내놓은 신앙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돈독한 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예수 믿는 사람이더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을 숨기려고 합니다. 세상 짓 할 것 다 하고 부끄러우니까 드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인정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울러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왕명이라도 거부하는, 능히 하나님의 법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종교적인 음모를 세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된 충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참된 충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참된 충성을 바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째로, 시간적인 관문통과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임금 때나 벨사살 임금 때나 다리오 임금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길 때 시간의 관문에 걸려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룟 유다입니다. 약 2년 동안 예수님을 잘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3년째 넘어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데마는 어떠했습니까? 데마도 처음에는 사도 바울을 잘 따랐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시간의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이틀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주님 앞에 가는 그 시간까지 변함없이 하나님께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겠다고 서원했으면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새벽기도 잘 나오시다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지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 세 끼 밥 먹는 일은 안 지치느냐, 하루 24시간 숨쉬는 것은 피곤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말 안했습니다. 속으로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니엘처럼 끝까지 시간의 관문을 통과해야 할 줄 압니다.


 

  둘째로, 환경의 관문잘 통과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진짜 충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교회에 나와서 부르짖고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다가 좀 편안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신앙이 뚝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일이 잘 풀려나가면 잘 믿다가도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의심하면서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잘할 때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잘 못할 때는 "이놈!"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 대씩 올린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럼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인도하심에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으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까지 끌려갔습니다. 그렇다고 원망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이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크게 들어 썼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전적으로 다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따르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1강 금령(6:6-9)  

 

  6:6-9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메대와 바사의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국사에서 다니엘의 흠을 발견해서 고소하려 했지만 아무 틈, 아무 허물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음모를 세웠습니까? 다니엘의 신앙을 걸고 넘어지게 하려고 음모를 세웠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리오 왕이 메대와 바사에 총리를 전부 몇 명 세웠습니까? 세 명을 세웠습니다. 여기 6절에서 "총리들"이라고 할 때는 몇 명이겠습니까? 다니엘을 뺀 두 명입니다. 방백들은 모두 몇 명이었습니까? 120명을 세웠습니다. 그 방백들 모두는 아니고 일부였을 것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모였다고 했습니다. 단체의 힘을 빌린 것입니다. 혼자 와서 하지 못하고 단체의 힘을 빌려서,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나왔습니다.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에게 관례적인 인사를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7절에 자기들이 온 목적을 이야기하는데 거짓말을 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 거짓말을 했습니다. 7절 상반절 말씀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두 가지 거짓말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무슨 거짓말을 했습니까? 첫째는, "모든 총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가 빠져 있습니까? 다니엘이 그 음모에 가담하거나 그것을 결정하는데 찬성했을 리는 없습니다. 30일 동안 기도하지 말자는데 어떻게 찬성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 없이 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치 세 총리가 모두 합의한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


 

  두번째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라고 했습니다. 나라 전체의 모든 관리들이 다 합의한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 명의 총리와 극소수의 방백들이 생각해낸 것인데 마치 모든 관리가 다 이 일에 동의한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이 일에 동의한 것처럼 왕에게 허위 보고를 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보십시다.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했습니다. 율법을 세우는 것과, 금령을 정하는 것입니다. 강조하기 위해서 반복했습니다.


그 다음에 금령으로 세울 내용이 나옵니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30일 정도면 충분히 다니엘을 곤궁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30일이 넘으면 어떻겠습니까? 메대와 바사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제사장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제사장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또 다른 신을 섬기는 열심 있는 신도들도 다 반대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30일 동안이라고 기한을 정했습니다.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신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이 무엇하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30일 동안 어떠한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기도를 금지시키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직접 구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신은 너무나도 초월적이어서 신에게 직접 구하기 어려우니까 어떻게 합니까? 제사장을 통해서 간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기 사람은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도 금지시키자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왕의 허영심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왕이여, 왕은 신과 같으십니다. 그러니 왕에게만 기도하고 어떤 신에게든지, 어떤 제사장을 통해서든지 기도하는 것을 금하시옵소서." 왕의 교만한 마음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뜻하는 바는 이런 것입니다. "왕이여, 우리 메대 바사는 세워진지 얼마 안되는 나라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왕이 주권을 강하게 행사하셔서 처음부터 신하들을 꽉 잡아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금령을 주장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입장에서 보면 30일 동안 기도 안 하고 살 수 있습니까? 아마 우리 같으면 30일 동안은 기도 안 하고 있다가 30일이 지난 다음에 다시 기도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30일 동안 호흡을 안하고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영혼이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은 이 계획에 찬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30일 동안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이 새벽 제단에 나오지 않고 어떻게 그 영이 맑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제직들, 주어진 기도의 사명을 다해야 할텐데 어떻게 하루의 첫 시간을 고요히 주의 전에 나와서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본을 보이지 않고 제직이 되겠다고 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승동교회에 복 주셔서 앞으로 장로님을 비롯해서 권사님, 집사님들이 먼저 기도의 본을 보이기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 승동교회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지요. 권사는 교회의 기도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이름만 기도의 어머니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차라리 권사 안 되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직들이 먼저 다니엘과 같이 기도의 본을 잘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선지자였습니까? 제사장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인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의 삶 속에서 변함없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다니엘은 목회자가 아니라 평신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해서 책망하는 것이니까 기도하는 일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8절을 보십시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금하는 법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글로 써서 확실하게 조서를 남기라는 것입니다. 또 조서에 무엇을 찍으라고 했습니까? 어인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메대와 바사의 법은 일단 정해지면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에 1:19을 찾아보십시다.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진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넘어가서 에 8:8을 보십시다.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음이니라."
메대와 바사의 규례가 있는데 그것은 정해놓은 법령은 다시 고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9절을 보시겠습니다. 다리오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신하들이 다리오 왕을 추켜세울 때 그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신하들이 자기를 높여주고 신처럼 떠받들어 줄 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교만했던 것입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금령 내린 것을 후회하게 되는 어리석은 결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급하게 빨리빨리하면 추진력 있고 잘한 것 같지만 잘못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입니다. 느린 것 같지만 다니엘처럼 무릎 꿇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그것이 더 확실합니다.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오늘도 엄벙덤벙 설치지 말고 다니엘처럼 차분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시고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잘 따라가서 위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또 여러분 하시는 일이 실패도 없고, 잘못됨도 없고, 그릇됨 없이 다 성공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2강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함(6:10)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임금의 조서 내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그 어떠한 신에게도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명령을 어길 경우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삼십 일 내에 어느 신에게든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다니엘이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평생 내내 기도해왔는데 한 30일 정도 참지. 30일 지나고 나서 기도하지."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남들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할 필요 있나? 아무도 모르게 침상에 누워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아마도 왕이 조서를 반포한 그때에 다니엘은 왕궁에서 자기 집무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이 끝난 후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그 방의"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방입니다. 늘 기도하던 바로 그 방입니다. 원문에는 단순한 방이 아니라 위에 있는 방, 다락방의 뜻을 가진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중근동 지방의 집은 우리 나라처럼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이 아니라 평평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그 평평한 지붕 위에 다락방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오더라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쉴 수 있고, 조용히 혼자 기도할 수 있는 작은 방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방의 공기를 환기시킬 수 있게 작은 창문도 냈습니다.

  다니엘도 늘 그 방에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바사의 총리 대신이므로 집이 컸을 것입니다. 방도 여러 개였을 것입니다. 아무 방에나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늘 자기가 하던 대로 그 방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다니엘은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믿음, 용기 있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정해놓은 방에 올라갔습니다.

  그 방에 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무엇이 있습니까?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부터 예루살렘 성전 쪽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되었을까요? 성경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왕상 8:35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나서 성대하게 하나님께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드린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이곳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넘어가서 38절을 보시겠습니다.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44절입니다.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한 군데 더 찾아보겠습니다. 48절입니다.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를 가든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해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 앞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을 보시겠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기도하던 습관을 바꾸지 않고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시 55:17을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유대인들에게는 저녁, 아침, 정오 이렇게 세 번 기도하던 관례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한 나라의 총리입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쁘니까 더 기도해야지요. 자기 힘으로 어려운 국사를 처리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을 시기한 사람들이 국사에 대해서는 고소할 틈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는데 어떻게 틈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은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을 보세요. 기도할 때의 자세는 어떠했습니까? "무릎을 꿇고." 간절한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지위가 얼마나 높았습니까? 총리였습니다. 충성되었고 그 삶이 정직했고 성실했습니다. 지혜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총명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잘난 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니엘을 더욱더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와 같이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런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여러분, 성 어거스틴이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기독교인이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했습니다. 겸손이란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다니엘서를 통해 죽 살펴보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벨사살 왕도 교만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다리오 왕도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어주니까 교만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겸손을 보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교만의 가장 좋은 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내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교만입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이 위기 상황에서 저를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시기하고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저들이 마음을 돌이키게 해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중요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사자굴 속에 던져질지도 모르는 극심한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않은 것이 바로 진정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압니다. 주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시옵소서. 이 환난 속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하는 다니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환난 속에서 드리는 감사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착고가 다 풀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회개하고 온 가족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시발이 되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려울 때일수록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욥이 얼마나 극심한 환난을 당했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기쁠 때도 감사, 즐거울 때도 감사, 어려울 때도 감사, 환난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도 감사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굳게 지키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용기가 저와 사랑하는 승동의 모든 가족들에게 언제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3강 다니엘이 기도하더이다(6:11-13)   

 

  6:11-13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리들이 모여서"라고 했습니다. 그 무리들이 누구입니까? 다니엘을 시기하고 모함한 자들입니다. 어디에 모였을 것 같습니까? 그들은 다니엘이 어디에서 기도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어디에서 기도했습니까? 자기 집 지붕 위의 다락방에서 늘 관례대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기도하는 다락방이 잘 보이는 이웃집 다락방에 올라가서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언제 모였을 것 같습니까? 먼저 다니엘이 기도한 시간을 생각해보십시다. 다니엘이 하루에 몇 번씩 기도했습니까? 세 번 기도했습니다. 언제 기도를 했습니까? 아침과 정오와 저녁에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모인 시간은 아침일 것 같습니까? 정오일 것 같습니까? 저녁일 것 같습니까? 여러분 생각에 언제일 것 같습니까?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러니까 아침은 아닙니다. 점심 아니면 저녁입니다. 그러면 정오이겠습니까? 저녁이겠습니까? 저녁 같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셨습니까?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아직 해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언제일 것 같습니까? 정오입니다. 저녁 같으면 이미 컴컴해서 "해가 질 때까지"라는 말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이것을 통해 다니엘은 정오 때도 집에 돌아가서 그날 오후에 할 일을 위해서 자기의 다락방에서 늘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리들은 다니엘이 정오 때 자기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것을 알고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고소하려고 합니다.

  11절을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도하고,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말이 반복되었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넓은 의미입니다. 광범위한 의미입니다. 기도에는 감사가 들어갈 수도 있고, 찬양이 들어갈 수도 있고, 회개가 들어갈 수도 있고, 간구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넓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고 주님과 더불어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리켜서 영혼의 호흡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늘 숨을 쉬고 있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인 교제를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이와 같이 넓은 의미이고 반면에 간구는 좁은 의미입니다.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그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것이 간구입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지금 하나님께 무슨 간구를 드렸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 이 어려운 환난 속에서 저를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늙은 몸이 생명을 구제하고자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말게 해주시고, 기쁜 마음으로 떳떳하게 주를 위해서 사자굴 속에 던져져 순교할 수 있는 일사각오의 신앙, 일편단심의 신앙을 저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이렇게 간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간구하는 것을 드디어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발견했습니다. 자기들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12절을 보십니다.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누구에게 나아갔습니까? 왕에게 갔습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왕에게 고소를 하러 갔습니다.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 내린 금령에 대해서 왕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다음에 금령의 내용이 나옵니다.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이 금령의 어길 경우 벌칙이 무엇입니까?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내린 금령을 어길 경우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한 것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리오 왕이 "왜 신하들이 이렇게 와서 이런 말을 할까?" 마음속에 궁금하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시인했습니다.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자기가 틀림없이 금령을 정해서 내렸었던 것과 그 다음에 그 금령은 취소할 수 없는 사실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이 소리를 듣고서 드디어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다니엘을 고소합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 가지로 고소했습니다.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첫째,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다니엘을 칭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국무 총리 다니엘"이라고 했습니까? 지금 다니엘은 총리 가운데 가장 왕의 총애를 받는 국무 총리였습니다. 그런데 총리 다니엘이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했습니까?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유다에서 사로잡혀온 포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다니엘은 자기네 나라의 총리 대신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그런 식으로 깎아내렸습니다.

  두번째,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시했다는 것입니까?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잘 지켜야 왕에게 충성하는 것인데 왕이 정한 금령을 어긴 것은 왕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히 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에 세 번이나 기도하는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세 가지로 다니엘을 고소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그 옛날 서머나의 교부였던 폴리갑이 생각납니다.  폴리갑의 나이가 다니엘처럼 80이 넘었을 때입니다. 핍박자의 손에 붙잡혔습니다. 핍박자가 보니까 폴리갑의 인품이 훌륭합니다. 그리고 나이도 많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핍박자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번만 말하면 내가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폴리갑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 일평생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도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신 적이 없는데 팔십이 넘은 이 나이에 어찌 이 목숨 구차하게 살리겠다고 예수를 모른다고 단 한 번이라도 부인할 수 있겠소?" 이렇게 말하면서 주를 위해서 평화스럽게 순교했습니다.

  성경 한 군데만 찾아보고 마치십시다. 빌 1:20∼21을 찾아보겠습니다. 바울의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 같이 한번 읽으시겠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계속해서 살아남아도 좋고, 또 하나님께서 나를 순교의 길로 인도하신다면 언제라도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살아도 좋고, 주를 위해서 순교하면 더 좋다는 바울의 신앙, 다니엘의 신앙, 폴리갑의 아름다운 신앙이 우리 모든 성도님의 신앙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4강 다니엘을 걱정하는 다리오(6:14-15)

  6:14-15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14절을 보니까 "왕이 이 말을 듣고"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들었습니까? 다니엘을 모함하고 고소하는 하는 자들이 왕께 나와서 말했습니다. "다니엘이 왕이 세우신 금령을 어겼습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번씩 그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왕에 금령을 어겼으므로 사자굴에 던져야 마땅합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리오 왕이 왜 근심을 했겠습니까?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너무나도 사랑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총리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까? 또 왕은 이제야 비로소 신하들이 자기로 하여금 금령을 세우게 한 궁극적인 목적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신하들이 자기를 진정으로 세우기 위해서, 높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적이었던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금령을 만들도록 자기를 이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금령을 세우고 어인을 찍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충성스러운 다니엘이 올무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가 그 충성스러운 신하를 죽인 자리에 놓았구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히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을 보세요.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똑같은 말이 한번 더 반복이 되어 있습니다.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여." 같은 말이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왕은 바사의 율법사들을 다 불러 모아서 비록 자기가 세운 금령이라고 해도, 어인을 찍은 금령이라 해도 그것을 취소할 수 있는지 상의했을 것입니다. 또 취소가 안된다면 예컨대 죄를 지은 사람을 왕의 권한으로 사면할 수 있는가? 이런 것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과거의 전례, 판례가 어떤지도 율법사들에게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르렀다고 했습니까?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러니까 분명히 그 법령 속에는 죄 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날이 지나가기 전에 벌을 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그날 금령을 여겼으니까 그날 사자굴에 던져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 살펴보았지만 다니엘이 언제 기도하다가 발각되었다고 했습니까? 아침이 아니라 정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왕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정오부터 해 질 때까지 반나절입니다. 반나절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 보십시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다니엘을 왕에게 모함했던 무리들이 또 모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모였습니다. 제일 먼저 언제 모였습니까? 6절에 보니까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의 허영심을 부추겨 금령을 제정할 때 처음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언제 모였습니까? 11절에 보니까 "그 무리들이 모여."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습을 엿보고 왕에게 고소하기 위해서 또 모였습니다. 그리고 13절에 세번째로 모였습니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이 세운 금령과 법도는 절대로 취소하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다니엘을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이 왕까지도 다니엘을 죽이는 일의 도구로 이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성령님께서 이 아침에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이런 나쁜 사람들을 만나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처럼 나쁜 일에 이용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에, 선한 일에 쓰이면 참 좋을 텐데 사람이 단순하고 착한데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해서 꼭 나쁜 일에, 좋지 않은 일에 이용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런 자리에 이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의의 도구로, 의의 병기로 다 쓰일 수 있는, 우리 몸이 쓰임 받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5강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6:16-18)

  6:16-18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16절 말씀을 보니까 "이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다니엘을 시기하고 모함한 사람들은 다니엘을 처치하라고 왕에게 계속적인 압력을 가했을 것입니다. "이에 왕이 명하매." 어쩔 수 없이 왕이 명했습니다. 법대로 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집어넣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을 끌어다가." 아마 다니엘을 참소했던 신하들이 다니엘을 묶어서 끌고 왔을 것입니다.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바사 나라의 사자굴은 아마도 아구가 위로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먹이도 집어던지고 사자 밥이 될 사람을 던질 때도 위에서 던질 수 있도록 아구가 위에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 넘어가서 23절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아마도 사다리라든지 줄을 밑으로 내리게 해서 그것을 잡고 위로 올라오도록 했을 것입니다. 사자 굴의 입구가 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자 굴에 다니엘을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보좌에 앉아서 "법대로 처리해라! 집어던져라!"라고 명령하는 것이 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사자 굴까지 친히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던져지는 다니엘을 보면서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다리오 임금은 다니엘의 삶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되 어떻게 섬긴다고 했습니까? 항상 섬긴다고 했습니다. 편할 때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이 위태롭고 사자굴 속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항상 섬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 변함없이 항상 섬기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 충성을 다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변함없이 섬기기 싫으세요? "아멘" 소리가 없습니다. "아멘"이라고 하시려면 확실하게 하셔야지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쓰시는 우리 승동의 모든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무슨 말입니까? "다니엘아 나는 너를 구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써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제는 너를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또 이 말에는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소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란다"고 되어 있지 않고 "구원하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언적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의 앞날을 예언적으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다리오 임금을 모시고 있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 때 바벨론 박사들이 느부갓네살 임금의 꿈을 해석하지 못해서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은밀한 것을 깨닫게 해주셨지 않습니까? 그 덕분에 다니엘도 살아남고 모든 바벨론 박사들이 다 살아남았습니다. 또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임금이 만든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아니했다가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를 친히 보내주셔서 그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셨던 이야기도 다니엘을 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더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들을 구원해 주셨던 역사적인 사건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진퇴양난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응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던 사건 등을 다니엘을 통해서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오 임금이 뭐라고 했습니까?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사자굴 속에서 구원하시리라는 예언적인 말을 했습니다.
계속 17절을 보십니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아까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사자굴 위에 아구가 있었습니다. 입구가 있었습니다. 돌을 굴려다가 그 아구를 딱 막았습니다. 막고 나서 그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입구 위에다가 돌을 놓고 그 틈에다가 진흙 같은 것을 발라서 봉했습니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그리고 그 진흙 위에다가 인을 쳤습니다.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옛날 사람들은 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왕도 반지를 끼고 있었고, 귀인들도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그 반지 위가 동그랗고 거기에 무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흙에 반지 위를 찍으면 그것이 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왜 거기다가 도장을 찍었겠습니까? 봉하고 도장을 찍었는데 허락 없이 돌을 옮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흙이 부스러지면서 찍어놓은 것이 흐려지거나 부서지게 됩니다. 왕과 귀인들이 도장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제 왕 혼자의 힘으로도 안되는 것입니다. 왕과 거기에 도장을 찍었던 귀인들이 다 뜻이 일치해야 비로소 돌을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사랑하는 자라고 함부로 다니엘을 구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설명이 조금 더 나옵니다. 17절 하반부를 보시겠습니다.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왕이 임의로 굴 아구를 막고 있는 돌을 치우고 줄을 내린다든지 사다리를 내려서 다니엘을 구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왕이 어찌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왕이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집어던지고 나서 궁에 돌아가서 밤이 맟도록 무엇을 했습니까? 금식했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다리오 왕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밤이 맟도록 기름진 것을 먹고, 또 밤이 맟도록 풍악을 울리면서 즐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맟도록 금식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고, 인간적으로 존경했던 다니엘입니다. 다리오가 왕이 되었을 때 몇 세였습니까? 62세였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81세였으니까 왕보다도 다니엘이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존경했던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그 다니엘이 지금 사자 밥이 되는데 어떻게 자기가 음식을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 맟도록 금식했습니다.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여자들을 불러다가 춤을 추게 하면서 풍악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폐했다고 했습니까? "침수를 폐하니라."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생각이 많았겠습니까? 사랑하는 다니엘이 사자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어져 사자 먹이가 될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찢어질 듯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자기가 좀더 신중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애꿎은 다니엘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기 스스로도 한탄스럽고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또 거기다가 다니엘을 모함했던 무리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이것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왕인 나까지도 감히 속였어." 부화가 치밀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등장 인물이 몇 사람 나옵니다. 다리오 왕도 나오고, 다니엘을 모함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다리오 왕처럼 신중하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허영심에 들떠서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는 자리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또 나쁜 일에 이용당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오늘 하루의 삶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다니엘을 모함하고 시기했던 그 사람들, 애꿎은 다니엘을 죽는 자리에 던지게 했던 사람들처럼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남을 시기해서 남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갖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을 죽이려고 던졌던 사자굴에 자기들과 자기들의 가족들이 다 던져져서 오히려 자기들이 사자 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침 뱉은 물은 결국 자기가 먹게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자기 올무에 자기가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을 해하려는 좋지 못한 마음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충성을 다하고, 또 다니엘처럼 사랑 받고 존경받고 남들이 우리를 아껴주고 또 귀하게 여겨주는 모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여러분에게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저는 알 수 없지만 문제 해결은 내 힘, 내 꾀, 내 재주를 가지고 안되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구원되었지만 자기 힘으로 올라왔습니까? 자기가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섬기는 일에 변함없이 충성할 때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도 사랑하는 성도님 모두에게 브니엘의 체험,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돌아가시는 놀라운 체험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차고 넘치는 복된 새벽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6강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6:19-23)

  6:19-23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제일 끝에 보면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문제 해결하고 나면 저 문제가 우리 눈앞에 다가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모든 어려운 문제를 다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잘나서 승리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승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힘있게 언제나 의지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 모든 시련을 다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아침에도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이 믿는 사시는 하나님, 여러분이 항상 섬기시는 하나님을 더욱더 의뢰하시는 이 아침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튿날에." 다리오 임금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던지고 나서 그날 밤에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이 살았을까? 과연 다니엘의 하나님이 그를 사자굴에서 구원해 주셨을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을 거야. 다니엘이 비록 사자 밥이 되었다 할지라도 내가 그 뼈라도 추려서 장례라도 치러주어야지." 그런 생각에 이튿날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아직 어둑어둑한 시간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다리오 임금이 다니엘의 생사,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관심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네 가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첫째로,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캄캄할 때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급히 사자굴로 갔습니다. 다리오 임금이 왕이 되었을 때가 62세였습니다. 젊지 않은 나이입니다. 그 나이든 몸으로 늙은 노구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잰 걸음으로 거의 달음박질해서 사자굴로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20절에 보면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굴에 완전히 이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네번째로, 그 근처에 이르러서 슬피 소리질렀다고 했습니다. 다리오 임금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무엇이라고 소리질렀는지 보십시다.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아직도 어둡습니다. 낮 같으면 위에서 쳐다보면 다니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새벽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리질렀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아마도 다리오 임금은 다니엘에게서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일러준 대로 그대로 다니엘의 말을 인용해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지 보십시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도 섬겼지만 사자굴 속에 던져질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네가 섬겼던 너의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물론 다리오 임금은 다니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의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번 경우에도 다니엘의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셨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마도 반신반의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21절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자기가 살아 있다는 뜻으로 왕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보통 사람 같으면 아주 크게 놀라면 기절을 합니다. 아주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기절을 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제 군대 동기가 비행기를 타고 첫 점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낙하산을 잘 조절해서 바람을 타고 해변가에 뛰어내려야 하는데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뛰어내려야 하니까 놀라서 기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떨어지는 바람에 바다에 떨어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파도에 휩쓸렸는데 구조대가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무서운 사자들 앞에서도 기절하지 않고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왕에게 신하로서 차릴 수 있는 격식을 그대로 차렸습니다. 덜덜 떨려서 말도 잘 못한 것이 아니라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정확히 말을 했습니다.
 또 보세요.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비록 왕은 나를 사자굴 속에 집어던졌지만 나는 왕의 신하로서 변함없는 충성을 왕께 드리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왕이여, 나를 감히 사자굴 속에 집어던지다니! 당신은 집어던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당신을 벌하실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아니했습니다. 신하로서 변함없이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 전날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집어던진 왕은 잠을 잤습니까? 못 잤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편안하게 단잠을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때린 사람이 편히 발뻗고 자겠습니까? 맞은 사람이 잠을 잘 것 같습니까? 맞은 사람이 잘 잡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뺨을 맞으면 더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십시다. 그러면 발뻗고 편안하게 잠잘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22절을 보십시다. 다니엘은 21절에서 자기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왕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22절에서는 자기가 어떻게 사자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날이 환했더라면 그 옛날 느부갓네살 임금이 풀무불 속에서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자유롭게 거닐었던 것을 보았던 것처럼 다리오 임금도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천사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어두웠습니다.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설명을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우리를 위해서 악과 싸우기도합니다. 또 천사가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는 다니엘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준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여기에 있는 사자들은 병든 사자들이 아닙니다. 또 늙은 사자들도 아닙니다. 또 이미 먹이를 많이 먹어서 배부른 사자들이 아닙니다.  

 

 24절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젊은 사자들이었습니다. 힘센 사자들이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해 주셔서 다니엘이 상치 않은 것입니다.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그러니까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뿐만 아니라, 왕 앞에도 떳떳했습니다. 왕에게 불충성했다든지, 왕에게 해를 끼치고자 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지켜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재미있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사자굴의 아구를 봉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누가 사자굴의 아구를 봉했습니까? 왕이 했습니다. 누가 사자들의 입을 봉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비슷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다리오 임금은 밤이 맟도록 음식을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자들도 다니엘을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다. 다니엘이 임금에게 해를 끼쳤습니까? 안 끼쳤습니까? 안 끼쳤습니다. 그러니까 사자들도 다니엘에게 해를 안 끼치지 않습니까? 이렇게 몇 가지 비슷한 점을 재미있게 찾아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23절을 봅니다.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왕은 밤새도록 다니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왕은 비로소 그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신하들이 사다리를 내렸든지 그렇지 않으면 줄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다니엘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응급조치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19를 부르고, 앰뷸런스로 병원에 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사자들과 함께 평안히 그날 밤을 지냈을 것입니다.
 "이는"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조금도 상치 않은 이유를 보십니다.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다니엘이 의뢰하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것을 의뢰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물질과 지식, 명예와 같은 것을 의지하지 말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 사시는 하나님을 더욱더 힘있게 의지하셔서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 받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으시는 이 아침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7강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의 결말(6:24)

6:24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다니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했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을 의지한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사자의 입을 봉하게 하셨습니다.
 다음날 다리오 임금이 사자굴에 와서 다니엘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을 끌어올려 보니 살았을 뿐 아니라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다리오 임금이 어떻게 했습니까? "여봐라, 메대와 바사의 법은 변개할 수 없으니 다니엘을 더 무서운 사자굴 속에 집어던져라"라고 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번 실시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 비슷한 원칙이 있습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리고 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오늘 본문부터 마지막 28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니엘을 참소했던 자들이 대신 벌을 받게 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5∼27절은 다니엘의 하나님이 그 일을 통해서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28절에 보면 다니엘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은혜 속에 형통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이 대신 벌을 받는 내용입니다.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다리오 임금은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이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왕인 자기를 속이고 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메대와 바사 나라의 법은 변개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집어던지기는 했지만 굉장히 기분이 언짢고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을 끌어오게 했습니다. 그들을 사자굴 속에 집어던지기 위해서입니다.
 참소한 사람들이 몇 명쯤 되었을 것 같습니까? 우선 총리가 몇 명 들어갑니까? 세 명의 총리 중에 다니엘을 제외한 두 사람의 총리가 해당됩니다. 방백들이 모두 120명이었는데 그들 모두는 아니겠지요? 극소수의 방백들이 다니엘을 참소했을 것입니다. 총리 두 사람과 방백 몇 사람을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뿐 아니라 누구도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었습니까? 처자도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뿐 아니라 죄 지은 사람의 부인과 아들을 함께 죽이는 벌입니다. 옛날에는 죄인이 있으면 온 가족을 다 몰살시켰습니다. 살아남은 가족이 복수하게 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메대와 바사에도 이와 같은 관례가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갔습니까? 가족과 같이 들어갔습니까? 혼자 들어갔습니다. 왜 혼자 들어갔습니까?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다니엘은 가족이 없었다고 봅니다. 다니엘은 환관이 되기 위해서 끌려왔습니다. 환관은 일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왕을 받드는 내시입니다. 다니엘은 결혼을 하지 않고 일평생 독신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처자도 함께 사자굴 속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다.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로 볼 때 사자굴 속의 사자들은 굶주린 사자들이었습니다. 힘이 센 사자들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들어갔던 사자굴의 사자들은 병든 사자가 아니었습니다. 배가 불러서 먹이가 눈앞에 있어도 관심이 없는 사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사자들이었습니다. 힘센 사자들이었고 굶주린 사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보호해주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놀라운 일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감명을 받았겠습니까?
 제가 물어봅니다. 똑같은 사자인데 다니엘의 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은 같은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굴에 닿기도 전에 뼈까지 부숴뜨렸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났습니까? 23절 끝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니엘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꾀를 의지했습니다. 그들을 돌봐주실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자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다니엘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능력, 내 힘, 내 꾀를 의지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그것을 자기가 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누구에게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실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항상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사로이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잘못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스데반 집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평안히 잠들었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저들이 나에게 돌을 던진 것은 내가 저들의 감정을 격하게 만든 때문이다."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내 의견을 부드럽게 잘 전달했다면 유대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강하게 이야기해서 그들이 내게 돌을 던지게 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이 허물이 제게 있는 것이오니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언제나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처럼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리, 남을 시기하고 모함하고 죽이는 자리에 들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다니엘 한 사람 죽이려고 하다가 자기 뿐 아니라 죄 없는 자기 처자도 같이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심지 마십시오. 사랑을 심으시고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은 빛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충만한 그 나라에 가게 하옵소서." 사랑의 실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을 많이 실천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비로소 사랑이 충만한 그 나라에 가게 되는 줄 압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은혜 베풀어주셔서 사랑이 풍성한 이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8강 다리오 왕의 조서(6:25-27)  

 6:25-27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일어난 기적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하나님, 다니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다니엘을 깊은 사자굴 속에서 지켜주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 영광 받으신 하나님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 다니엘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더욱더 힘있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크신 영광을 나타내주실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다.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다니엘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은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렸습니다.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세 사람을 지켜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느부갓네살 임금도 그 놀라운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리오 왕도 조서를 내렸습니다.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 당시에는 글을 쓸 때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지와 인사말을 쓴다고 했습니다. 이 조서에서도 보내는 사람은 다리오 왕이고, 조서를 받아볼 누구는 모든 백성이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인사말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입니다. 바울도 편지를 쓸 때도 이 형식을 따랐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이 ○○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고, 인사말로는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편지를 쓸 때도, 조서를 내릴 때도 글을 쓰는 사람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그것을 수신하는 사람이 나오고, 인사말이 나오는 양식에 따랐습니다.
 26절을 보십시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조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입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죄짓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떨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리오 왕은 일곱 가지로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첫째는,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두번째로,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사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루나 이틀만 사시거나, 일 년, 이 년만 사시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시되 영원히 사시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넷째,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6절에 나오는 네 가지는 하나님은 사시되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27절을 보십시다. 다섯번째로,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택하신 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섯번째,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어려움 속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심지어 기적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기적을 베푸셨다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또 땅에서도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무서운 사자들의 입을 봉해주셨습니다. 일곱번째,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6∼27절에서 다리오 왕은 이렇게 일곱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제가 묻는 말에 믿으시면 아멘으로 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아멘."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 권세가 무궁한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는 여러분을 구원하고 건져내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여러분을 위해서 지금도 살아 계시면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여러분의 어려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언제나, 특별히 오늘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이 되어야겠습니까? 떨며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하루가 되셔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하나님 뜻에 거역하는 자리에 이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오늘 이 하루도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69강 다니엘의 형통함(6:28)

 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참소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살아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사는 날 동안에 형통하였습니다.
오늘 6장으로 그 동안의 다니엘서 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다니엘처럼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은혜 속에 늘 형통하게 되시기를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냥 "다니엘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그 앞에 아주 중요한 단어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다니엘은 어떠한 다니엘입니까? 다니엘서 1장에 보면 다니엘은 본래 유다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왔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뜻을 세웠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왕이 주는 포도주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서 전체를 다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 다니엘이 어떠한 다니엘인지 6장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충성스러웠습니다. 다니엘은 정직했습니다. 맡은 일에 성실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이 다니엘은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사람이었습니다.
넘어가서 10절 말씀을 보십시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되 그 극심한 환난 속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범사에 감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다니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항상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다른 사람들도 다니엘을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이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항상 섬기는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었다는 것을 남들이 인정해 줄 정도의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이 다니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2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 크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여러분은 다니엘의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다니엘의 모습 속에서 여러분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또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고 모든 일에 다니엘처럼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데 변함없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충성스럽고 신실한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더욱 힘있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고 아울러 다니엘처럼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크신 영광을 나타내시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러 가지 가운데 특별히 부족한 점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한 점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욱더 힘써 다니엘처럼 신실한 모습이 되셔서 다니엘이 그 사는 날 동안 형통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크신 복이 임하셔서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형통하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