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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오히려 역차별 받아왔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

영국신사77 2008. 12. 19. 13:01

2008.12.18 00:22:08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개신교,오히려 역차별 받아왔다”


개신교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종교편향 비판에 맞서 "배타적 민족주의 때문에 오히려 개신교가 역차별을 받아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13일 서울대에서 '불교와 기독교, 갈등과 충돌'이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종교학회 학술대회에서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교회사)는 "개신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국가권력으로부터 편향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배타적 민족주의 때문에 역차별을 당해 왔다"며 "시대마다 다르지만 불교나 유교는 전통종교라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았지만 개신교는 서양종교라는 이유로 배척받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개신교가 타종교와 달리 국가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에게 복음을 전해 왔기 때문에 '교회=권력화된 종교집단' '복음주의=타종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종교집단'이라는 사회 일각의 프레임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제에 저항했던 종교는 기독교=박 교수는 한국 교회가 정교분리를 강조하는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권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신앙의 자유를 중요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세기 말 유교가 조선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자 불교가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으며, 일본은 조선에 일본불교를 이식시키려 했다"면서 "반면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기본으로 하고 타종교처럼 국가권력에 의존해 신앙이 전파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종교적 특성 때문에 당시 불교와 유교는 조선총독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개신교는 105인 사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의 견제를 받는 상황이었다. 박 교수는 "총독부가 불교와 유교에 대해선 보호정책을 사용했지만 일제에 대항하며 3·1운동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일으킨 개신교에 대해서는 견제정책을 사용했다"며 "이런 이유로 개신교는 일제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해방 후 교회는 미군정과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방향을 같이했으며, 1960년대 산업화·도시화를 거치며 성장했다. 박 교수는 "산업화 이후 한국 교회가 급성장한 요인은 산업화 과정에서 긍정적 사고와 희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배타적 민족주의에 오히려 역차별"=그러나 박 교수는 박정희 정권 이후 나타난 민족주의의 강조로 전통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후 민족주의적 사관은 미국과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는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좌파적 역사이해와 접목돼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처럼 미국과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전통문화 육성이라는 취지 아래 불교와 유교, 민족종교에 최근 5년간 86%의 정부지원금이 지원됐다"고 지적했다.

유요한 서울대 교수(종교학)는 "그동안 전통종교와 서양종교의 차이 때문에 기독교가 차별을 받았던 사실은 한국 교회 차원에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잘못된 주장에 대해서는 객관적 자료를 갖춰 비교종교학적 측면에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