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는 도다"/ 로라 메이 피츠(Laura May Pitts)
2008.7.8. 천수경
바로 그 날 밤, 많은 한국 여인들이 그녀를 보려고 조그만 방으로 몰려 왔다. 그녀는 그들에게 한국말이 서툴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이 많은 한국 여인이, “하지만 그 대신 사랑을 직접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잖아요”라고 답했다.
예수병원 건너편 선교사 묘역에 있는 로라 메이 피츠(Laura May Pitts) 간호선교사
로라 메이 피츠(Laura May Pitts, 1879~1911;32세)는 1879년 미국 북 캐롤라이나주 콩코드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전문 간호사로 일하다가, 1910년 8월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 다니엘과 함께 예수병원에 간호 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녀는 가난한 시골 사람으로부터 부유한 양반, 선교사들에 이르기까지 차별하지 않고 극진히 간호하는 헌신으로, 모두에게 금방 존경과 축복의 존재가 됐다.
1911년 2월 13일 피츠는 선교 여행을 위해 에너벨 니스인과 새벽 6시 말을 타고 전주에서 광주로 향했다. 아침 9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 4시쯤에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로 변했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 떨며 길을 재촉하던 피츠는 어느 순간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몇 시간을 헤매야 했다. 비에 젖은 몸으로 또다시 매서운 눈보라를 맞으며 모르는 길을 헤쳐 나가는 2명의 여인, 상황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천원 근처에 도착해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 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말이 1.8m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그녀는 안장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말도 다치지 않았다. 그렇게 56km를 달려 정읍 천원에 도착했다.
전주와 광주 중간 지점인 천원은 100호 정도의 마을과 학교로 세워진 건물이 있어 선교사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은 후, 곧 따뜻한 방에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젖은 옷을 말리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 날 밤 동행했던 에너벨 니스인은, “새벽에 물을 마시기 위해 간이대를 지나다가 피츠의 손과 스치게 됐다. 그런데 그 손이 너무 차서 공포감을 일으킬 정도였다. 급히 성냥을 찾았지만 젖어 있었다. 그녀 이름을 부르며 얼굴과 목을 만져보니 싸늘했다.
벗은 발로 뛰어나와 눈보라 어둠 속을 헤매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겨우 네 번째 집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등잔불을 켜고 따뜻한 물을 사용해 한참을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고 정황을 소개했다.
피츠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동료 랭킨 선교사는 “한국에 있는 선교사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지난 주 우리는 전문 간호사 피츠 선교사를 잃었다. 내 나이 또래의 아주 예쁘고 좋은 여자였는데, 잠자다가 심장마비로 순직했다”고 소개했다.
지금 예수병원 선교사 묘역에서 영면하고 있는 그녀. 그녀가 죽기 전 예수병원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 부유한 여자 환자가 “왜 불쌍한 농부에게까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사랑으로 섬기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는 도다”라는 성구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나이 32세였다.
/고근 실장(예수병원 홍보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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