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사 · 신앙偉人/海外선교* 선교사

[스크랩] 칼 바르트는 포스트모던 신학자인가?

영국신사77 2008. 9. 21. 19:17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12)

  러시아 대통령 당선자 푸틴이 지난 달 26일(2000년 3월26일) 러시아 교계의 반발을 불러온 '신종교법'의 실행을 일 년 더 연장하는수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러시아 정부에 종교단체로등록하지 않은 상당수 개신교 교회와 교단은 당장의 퇴출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러시아 종교법의 쟁점은 기독교 선교에서 문화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보여주는 예이다. 추워서 동토요, 공산주의자들의 극심한 영적 박해 때문에더욱이나 동토였던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에서 1990년 가을에 아주 기이한광경이 벌어졌었다. 러시아정교회 지도자들이 러시아 복음화를 위해 빌리그래함 목사를 초청했으며,이 사상 유례 없는 전도대회의 성가를 붉은 군대의 장교들이 불렀던 것이다. 마치 70 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듯이, 공산 치하 70 년 만에 신앙의 자유가 선포된 모스크바에서 할렐루야 성가가 울려 퍼졌다. 갖은 핍박 속에서 부활 신앙을 지킨 러시아 성도들의 승리의 기쁨의 환성이요, 러시아를 위한 기도의 응답을 받은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의 찬가였댜.

  이씨 조선 왕조에서 세조와 단종의 관계, 연산군과훗날 중종 반정을 일으킬 그의 이복 아우의 관계는 한 왕권에 두 후계자가 있을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 때문에 빚어졌던 냉혹한 불화의 스토리로 유명하다.그리고 이와 유사한 이유로 공산주의 권력자들이 기독교 신앙, 특히러시아 정교회를 그토록 혹심하게 핍박하였었다. 러시아 왕정을 전복시킨 공산당은 러시아 사상계에서까지 왕권을 승계받으려 했기에 유신론과무신론 두 사상의 충돌은 불가피했으며, 정신 문화계의 단독 지배를 위해 공산당은 물리적 힘의 논리로 러시아 정교회지도자들을 가차 없는 피의 숙청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러시아에서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선교의 문이열린 자리에 이번에 문화의 장벽이 버티고 있었다. 처음에 서구화의 물결을환영하던 러시아인들 사이에 어느 틈엔가 그들 자신의 문화의 역사적 뿌리를찾으려는 대중 에토스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신종교법이그리스도인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지난 날의 앙숙이었던공산주의자들과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악명 높은 러시아 신종교법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자기네 문화의 안방을 외래문화에 내어주지 않으려는 러시아인들의 민족 정서를 엿볼 수는 있다.

  그런데 바르트는 서구 전통 기독교 사회에서모더니즘이 문화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았다. 기독교가 문화에, 문화가기독교에 너무도 동화된 나머지 사람들이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이런 기독교는 세속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는 커녕,니체가 힐난하였듯이, 또 다른 형태의 세속주의가 교회 내에 있었다. 무엇이문제의 씨앗이었던가? 칼 바르트에게 이 한가지가 분명하였다. 모더니즘의세계관이 결코 기독교의 세계관일 수 없다.

  앞의 글(지난 호)에서 우리는 근대주의자 기독교의교의학은 기독교 신앙을 대자연 등 광범위한 존재와 연계하여 이해하자고 함을살폈다. 그렇다면, 그 귀결은 기독교 교리를 과학적 탐구의 대상과 연계하여이해하여야 하고, 따라서 신학을 과학의 일반적 구조 법칙으로부터 연역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신학을 존재론의 한 영역으로 삼아야 하는것인데 그 귀결은 신학에 데카르트의 과학 철학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그 사유모형으로 출발하는 교리는 신앙의 교회의 존재와 인간 실존을 존재적 요소들로서의 믿는 존재(believing existence)로서 여기며, 따라서 존재론 혹은 인류학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이 특정한 존재적 요소가 사실상 한 사건으로 있었다 하며 그러기에 존재 과학의대상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실례를 드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대한 그 충격은 그들이 마침내 성경의 과학 비평을 위한 존재론적-존재적 토대에 의해제시된 규칙들을 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자연신학을 속칭 데카르트의신학(Cartesian theology)이라고 하는데, 바르트는 이런 신학의 서설에는“형이상학, 인류학 (쉴라이에르마허의 윤리학), 종교 철학과 종교 역사학에서따온 말들이 있으며, 더러는 순전히 방법론적인 토론”임을 지적한다.모더니즘의 도전을 받을 적에 우리는 “참으로 교회의 존재보다 우월한 존재의연계가 있으며, 따라서 교리학보다 우월한 과학적 문제의 연계가 있는지의 물음"을 물어야 한다고 바르트는 역설한다.

  그리고 현대 신학 속에 잠입해 있는 모더니즘을세속화 가라지의 뿌리로 여기며, 모더니즘의 한계를 벗어나는 신학 작업을하였기에 칼 바르트는 탈(脫)모더니즘, 즉 첫 포스트모던 신학자로 비쳐지기도한다.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분명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의창시자이다. 그러나 그는 세속주의 포스트모던 학자들과는 그 근본부터 전혀상반된 입장에 있다. 즉, 모더니즘이 성서적 진리에 기초하였던 기독교 세계관에 도전하였고, 세속 포스트모던 학자들은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사실 모두를상대화시키는 데 반해, 바르트의 신학은 성서적 진리관의 수호와 영원하신하나님의 말씀의 선교적 선포에 헌신되어 있다.

  오늘 우리가 세속화된 사회에서의 복음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모더니즘과포스트모더니즘의 양대 사조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는 현실에 부딪친다. 이런정황에 처해 있는 우리가 과연 우리 기독교인이 견지하여야 할 세계관은무엇이며, 또 이를 위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은 무엇일지를 물어보는 것은 몹시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문제들을 처음으로 신학적 체계를 세워토론하였다는 데서 바르트의 신학이 우리 시대에 가지는 큰 중요성이 있다.

  기독교의 신앙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나즘 양대 사조의 도전을 받으며, 세상 사조들에 지각 변동이 있으나 십자가의 도를 더욱 견고히 붙드는 우리에게 새 천년 대 첫 봄의 부활 신앙은 더욱 새롭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선교와 신학

청소년 문화

영어 신학 칼럼

미래한국 까페

온라인 성경

자료 검색실


출처 :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