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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는 바위사원(dome of the Rock), 또는 황금돔(Golden dome), 또는 오마르 사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영적으로, 그리고 육적으로 가장 치열한 다툼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원에 풀도 있고, 한마디로 성경(개역성경)에 있는 단어로 "황폐"한 느낌이 듭니다.
1875년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황폐라는 단어는 에스겔서 26:20절에 나옵니다.)
사진상으로 볼 때, 이때는 아마도 지금과 같은 치열함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래는 2004년 9월의 사진입니다. 풀도 없고, 그리고 가장 특별한 게 지붕(돔)의 색입니다. 물론 위의 사진들이 흑백이어서 그렇기는 하지만, 분명 윗부분에 맨질맨질한 금이 씌워져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의 지붕 노란색은 순금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원래 지붕의 재질은 납이었습니다. 그런데 납은 내구성은 좋지만, 무게가 엄청나기 때문에 건물의 구조에 미치는 하중이 엄청난 재질이 됩니다.
그래서 1958~64년에 구리와 알루미늄으로 지붕을 바꾸었지만, 내구성의 문제로 다시 93년부터
15개월간 공사를 하여, 지붕을 1,200장의 순금의 박막으로 씌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금 돔은
황금 돔인데, 정확히는 금박 돔이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황금색 칠을 하였다고 합니다.
요르단의 전 후세인왕이 650만 달러의 비용을 댔다고 합니다. "Encyclopedia of Judaism" 에 의하면, 처음에 건축하였을 때도 돔에 순금을 입혔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다 벗겨졌다고 합니다.
이 사원은 이슬람 사원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이슬람 사원이기 이전에, 이곳에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성전 이전에 이곳은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은 67년 이전까지는 요르단의 영토이었는데, 67년에 있었던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차지합니다.
모리야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던 곳이 바로 바위성전 안의 바위이며, 또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라고도 불리웠던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던 성전산(temple mount)이며, 특히 이 사원이 세워져 있는 이곳은 '성전 기단터(temple platform)'라고 하여, 다른 지역보다 약 2 m 이상 높게 세워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시면, 중앙 왼쪽에 박스로 그려져 있는 부분이 성전 기단터, 그리고 전체가 성전산이 되겠습니다.
위 그림의 왼쪽(서쪽) 아래 하얀 박스 위부터 그 위의 검은색 돌출부까지가 현재 유대인들의 최고의 성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이 되겠습니다.
성전산 둘레의 하얀 박스들이 성전산의 출입문들입니다. 그러나 남쪽과 동쪽문은 폐쇄되어 있습니다. 특히 동쪽(오른쪽)에 있는 단 하나의 문인 황금문(golden gate)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들어오실 문으로 무슬림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은 서쪽의 아래에 있는 문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른 문으
로는 들어갈 수 없읍니다. 그러나 나오시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문의 이름을 무어문(Moor's gate)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들어가서 문에 붙어있는 이름을
보았더니 다른 이름이더군요.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해서...., 왜 그런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통곡의 벽과 무어문으로 들어가서 찍은 무어문의 이름입니다.
통곡의 벽
무어문 [모로코문]-1
무어문으로 들어가서 찍은 무어문입니다. 붙어있는 이름은 "모로코 문" 입니다.
무어문 [모로코문]-2
현재의 성전산의 외형은 제2 성전 이라고 하는 헤롯 성전입니다.
<헤롯성전의 그림과 그 모형>
남쪽에서 본 조망도
남쪽에서 본 조망도 입니다. 왼쪽의 계단을 염두에 두시고, 아래에 있는 조망도와 모형을 보시
면 방향 감각을 잡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남서쪽에서 본 조망도
언제 무너졌는지는 모르지만 "로빈슨 아취"는 무너졌습니다.
"이렇듯 묻혀 있는 팔레스타인의 성서 지명에 대한 본격적인 지리학적 연구는 성서의 문자적
정확성을 입증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비교언어학적인 방법으로 무장한 한 미국인 목사에 의해
1838년 최초로 시도되었다.
1838년 예루살렘의 성전산을 탐사하던 미국의 로빈슨은 유대인들이 성지로 여기고 기도하는
통곡의 벽의 연장선에 있는 한 돌출부분을 발견하였다. 신약시대 헤롯 왕이 건설한 성전 뜰의
서쪽 축대의 한 부분인데, 사람들은 지진 때문에 성벽의 돌이 튀어나온 것으로 해석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된 튀어나온 부분은 뭐 발견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 같지않은 너무나 눈
에 띄는 돌출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과 로빈슨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그 돌출 부위를 보시겠습니까?
을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 누구도 내리지 못했던 해
석을 로빈슨이 내렸기에 그것이 발견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위사원 (2) : 성전산 역사, 무슬림의 예루살렘을 보는 시각
http://blog.joins.com/gtkbest/3808689 2004-11-23 16:24:44 |
성전산(temple mount) 일부와 성전 기단터(temple platform) 의 모습
B는 바위 사원,
왼쪽 위의 C는 샘(이름은 알카스[Al-Kas]),
오른� 아래의 A는 '영들의 돔(dome of spirits)'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10시방향인 남쪽에 알악사 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12시 방향으로 무어문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위사원 (1)에서의 지도하고 같이 비교하여 보시면, 방향과 위치에 대하여 감을 잡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영들의 돔'(dome of sprits) 의 사진입니다.
영들의 돔'(dome of sprits)
돔 뒤에 있는 건축물은 아케이드(arcade)라고 불리는데, temple platform 경계에 사방으로 꽤 많이 있습니다. 각 방향에 따른 정확한 갯수는 맨위에 사진에서 세어보실 수 있으십니다.(동쪽 1개. 서쪽 3개, 남쪽 2개, 북쪽 2개)
아케이드는 이슬람의 건축물은 아닙니다. 비잔틴시대의 교회와 건축물에서 떼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돔은 죽은 모슬렘 성인들의 영들이 밤에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돔의 천장의 장식은 없습니다. 그냥 하얀 회칠만 되어있습니다. 아무것도 볼 것이 없지만, 어쨌든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돔의 천장의 장식.
북쪽면의 서쪽에 위치한 아케이드
남쪽면의 동쪽에 위치한 아케이드. 뒤쪽으로 보이는 돔의 이름은 '사슬 돔'(dome of chain)이다.
사슬 돔의 이름의 유래는 간단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됩니다.
이슬람의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서 다윗이 재판을 하였고 죄의 유무에 따라서 사슬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고 하는데, 전승중에서도 좀 시덥지 않은 전승이라서 그런지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식 명칭은 황금돔이 아니라 '바위 돔'
'바위사원'은 그 지붕의 빛깔로 인하여 '황금 돔'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정식명칭은 바위사원이 맞습니다.
사원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민감한 시기인만큼, 이교도들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전산에 들어가는데도 가방검사를 일일이 다하고, 가방에 있는 성경책을 보더니 이곳 안에서는 절대로 꺼내지 말라고 합니다.
성전산은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차지하려고 하는 땅일 것입니다(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성경에서 성전산은 ‘거룩한 산’ 또는 ‘성산’으로도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예: 시2:6, 48:1, 87:1~3; 사2:2~4; 미4:1~7; 슥8:1~3). 유대인과 일부 무슬림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이 이곳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것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며 바쳐진 장소 또한 메카나 예루살렘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곳은 '아라우나(삼하24)[오르난(역대상21)]의 타작마당' 이었는데, 재앙을 돌이키려고 다윗이 값을 치루고 샀던 곳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이곳에서 BC 957년에 건축에 들어갔고,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의 성전 역시 똑 같은 장소인 바로 이곳에서 BC 537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BC 20년에 헤롯이 이를 확장하고 아름답게 중수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AC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세번째 성전 역시 오직 이 자리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시온이라는 단어는 원래 모리아산을 뜻하나, 후에는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2장에서 예시되는 바와 같이, 구세주가 의로움으로 다스리실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아래와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왕상9:3)
에스겔은 환상으로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주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영광이 하나님의 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겔43:7)
사탄은 메시야가 다시 오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곳을 사탄 숭배의 중심지로 만들어, 이 땅의 다스림을 그가 쥐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땅에서의 적그리스도의 선두주자는 헬라시대의 안디오커스 4세[Antiochus IV] 였습니다. 이 자는 다른 정복지에서 해왔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올림푸스의 신인 제우스의 신전으로 만들었으며, 모든 사람이 이 제우스를 숭배하도록 제우스상까지 세웠습니다.
중동 지역의 싸움이 정치적인 분쟁에서 비롯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것은 단지 증상적인 곧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에 그 배경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엘리야 때의 갈멜산에서(왕상18)와 같이, 하늘의 선과 악의 세력간의 싸움인 것입니다.
실제로 적그리스도는 얼마간 성전을 더럽힐 것(마24:15; 단9:27,
예루살렘, 특히 이 성전산은 이 싸움의 중심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커다란 두개의 견고한 진 역시 당연스럽게도 성전산 위에 있습니다.
아래는 알-카스 샘의 사진입니다. 샘의 용도는 샘 앞쪽으로 보이는 알악사 사원과 바위사원에서의 예배를 드리기전에, 손과 얼굴을 정결히 씻기 위함입니다. 수도꼭지가 국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것이었습니다. 사진의 위쪽에 조금 보이는 것은 알악사(Al-Aqsa) 사원입니다.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중요시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루살렘이 코란에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을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번째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코란의 수라 17장[Sura]에서 무함메드는 어느날 밤에 하늘로부터 사자의 방문을 받고 나서 백마를 타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스크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무함메드는 예수를 포함한 몇몇 선지자들을 만나며 천국으로 올려져서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후 다시 땅으로 돌아와 메카를 마주하여 기도한 후에 다시 백마에 올라타고 메카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있는 무함메드가 갔었던 가장 먼 곳이라는 장소가 선지자들의 땅인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이후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에게 성스러운 곳이 되었으며, 이슬람의 기도 및 천국으로 올라가는 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 예루살렘 쪽으로 돌아섰었습니다. 그러나 무함메드가 유대인과 틀어진 후에 그 방향이 메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성전산은 아랍어로는 ‘Haram al Sharif’(Noble Sanctuary : 숭고한 성소) 이며 히브리어로는 모리아 산[Mount Moriah(from the root to teach : 가르쳐야 할 뿌리로부터)] 입니다. 무슬림의 통치 시대에 예루살렘은 행정적인 수도는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승리를 선포하시고 주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모든 뜻하심은 성취되며 그의 백성을 “치려고 제조된 기계는 날카롭지 못할 것”(사54:17)을 기뻐하십시요.
진리의 하나님 말씀(사46:5~10; 렘51:15~19; 출15:11)으로 무장하여, 신들이라고 칭해지는 가증하고 거짓된 것들에 대적하십시요. 아랍 사람들이 메시야의 초자연적 환상을 보았을 때, 예루살렘이 진실로 그들이 천국으로 가는 문이 되게 해주실 것을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Prepare the way for the King of Glory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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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중앙 아래쪽이 성전산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전산의 중앙에 성전 기단터가 있고 그 위에 바위사원과 사슬돔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 성전산의 왼쪽에 있는 것은 알-악사
사원입니다. 방위는 사진의 왼쪽이 남쪽, 아래쪽이 동쪽입니다.
위 그림은 예루살렘의 지도입니다.
Garden Tomb : 무덤정원(19세기 이후 새롭게 골고다라고 주장되는 곳)
Herod's Gate : 헤롯문
Damascus Gate : 다마스커스문
St Anne's Church : 베데스다에 있는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를 기념하는 교회
Lions Gate : 사자문
Mount of Olives : 감람산
Via Dolorosa : 비아돌로로사(슬픔/통곡의 길), 빌라도 법정에서 성묘교회(골고다)까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
Jaffa Gete : 야퍄(욥바)문
Citadel : 다윗성채
Western Wall : 통곡의 벽(성전산의 서쪽벽이라서 서벽이라고도 함)
Dome of the Rock : 바위사원
Al-Aqsa Mosque : 알-악사 사원
St. James Cathedral : 아르메니아 정교의 성 야고보 성당
Zion Gate : 시온문
Dung Gate : 분문(糞)
Mt Zion : 시온문
AD135년 유대인들의 두번째 반란을 진압한 후에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의 이름을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 로 바꿉니다. 'Aelia’는 하드리안의 성[姓]이며,‘Capitolina’ 는 신전이 바져친 주피터 신인 ‘카피톨리노스[Capitolinos]’ 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하드리안 황제는 성전산 위에 주피터 신전을 건축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신들에게 성스러운 지역들을 바치는 로마식 방법이었습니다. 이후 이 이방 신전은 헐린 것으로 보이는데(주: 역사적으로 이 신전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새겨진 하드리안 조상[彫像]의 기단부는 중문[Double Gate] 위의 남쪽 성벽으로 사용되어진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예루살렘으로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후에 성전이 없어진 것을 슬퍼할 수 있도록 일년중 하루만 그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한편 비잔틴 시대에는 성전산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있었던 자리는 저주받은 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전편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성전들이 있던 자리의 맨 위에 이슬람의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서 있습니다. 바로 바위사원과 알 악사 사원입니다.
바위 사원은 689~691에 걸쳐서 압둘 말리크[Abd al Malik]가 건축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수차에 걸친 보수는 있었지만,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비례대칭 면에서 놀라우리만치 수학적으로 뛰어난 구조물입니다.
이 사원이 이곳에 있다는 그 자체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한편 건물의 내부 장식은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의 거부감을 대변하여 주고 있습니다.상징물들에는 비잔틴 황제들과 비잔틴 예술을 담고 있는 교회에 사용되었던 왕가의 보석들이 박혀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원의 위치와 내부 상징물에 관한 사실은 이슬람이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약탈하여 갔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칼리프 알 왈리프[al Walif]는 AD709~715 년에 걸쳐서 첫번째 ‘알 악사’ 사원을 세웠습니다. 사원이 세운진 후, 그 당시에는 이슬람 불신자들은 성전 지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바위사원과 달리 이 사원은 암반위에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진에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바위사원이 기념비적인 면이 있고 또한 개인적인 기도에만 이용되는 반면에, 이 사원은 무슬림들의 집단적 예배의 중심지 입니다. 이 알 악사 사원에는 모세와 예수님께 기도드렸던 장소들이 있습니다.
1099년 십자군이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십자가와 제단을 더하여 바위사원을 교회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알 악사 사원을 ‘솔로몬의 성전’ 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알 악사 사원은 왕궁이 되었으며, 1131년에 템플 기사단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1187년에 무슬림은 다시 이곳을 되찾았으며, 살라딘은 십자군들이 더하고 세웠던 것들을 초생달로 대치하며 그 흔적을 없앴습니다.
알-악사 사원-2
아래 사진은 알-악사 사원의 동쪽 측면입니다. 건물의 왼쪽으로 돔의 윗부분이 조금 보입니다.
알-악사 사원의 동쪽 측면.건물의 왼쪽으로 돔의 윗부분이 조금 보인다
다윗성에서 올려다 본 알악사 사원의 모습.
성전산의 남동쪽, 알악사 사원의 동쪽 터.
스 샘입니다.
아케이드위에 있는 해시계.
살렘을 다시금 차지하게 됩니다.
67년 6일전쟁때 이 해시계 아래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아래 사진입니다.
좀 더 가까이서 찍은 사슬돔의 모자이크 입니다.
돔의 재질은 그 색깔로 미루어 보아 부식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도 들어가서 기도하면 아주 좋은 공간입니다.
사슬돔의 바닥사진
위의 사진은 사슬돔의 바닥사진입니다.
이곳을 밟고 서있는데, 한 사람이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으로 자기 목을 스윽하고 베는
시늉을 내더군요. 제 주목을 끌려는 것 같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분 왈 "니가 지금
밟고 있는 것을 2000년전에 밟고 있었다면 너는 참수를 당하였을 것이다. (왜 참수냐? 고 하였더니) 니가 밟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상징인 다윗별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더군요.
그분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밟고 있었던 것은 다윗별이었습니다. 그분 말을 듣고 그래서 사진
을 찍었습니다. 물론 2000년전에도 다윗별이 이스라엘의 상징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다윗별
이 언제부터 이스라엘의 상징이 되었는지 조사를 한다 하면서 아직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
은 미국에서 귀환한 유태인이었는데, "이슬람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다. 성전터도 그리고 다
윗별도 다 빼앗아 갔다" 라며 불만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다윗별이 이 바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위사원의 벽면은 온통 다윗별이
며 이 사슬돔의 윗부분도 다 다윗별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
리켜가면서 쭉 설명하여 주더군요.
아래 사진은 바위사원의 벽면 사진입니다.
바위사원의 벽면 사진-1
바위사원의 벽면 사진-2
북쪽에서 찍은 바위사원.
예외는 바로 돔의 꼭대기에 있는 초생달입니다. 남쪽과 북쪽에서만 지금과 같은 모습입니다. 서쪽과 동쪽에서는 완전 일자가 되겠습니다.
성전 기단터 서쪽에 있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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