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聖殿 지역

★★★ 통곡의 벽은 말하고 있다

영국신사77 2008. 8. 29. 14:56

                          

 

통곡의 벽은 말하고 있다

 

                                                                                                      애굽,이스라엘,요르단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문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것을 지시하고 설계도를 넘겨주고 있다
 


                             솔로몬 때에 지은 성전의 모형도와 시가지의 모습


         헤롯 성전의 모형도
 
 
히브리 대학의 아비 요나 교수는 이 모형을 제작하고자 여러해에 걸쳐 연구에 전력하였다. 이 모형은 주로 본래 건물들의 재료 - 예를 들자면 대리석, 돌, 구리, 나무 등 -을 가지고 제작하였다.

 

 빛나는 제 3성전은 주후 63년 성전산에 완성되어, 예루살렘의 장엄한 경관을 장악하고 있다.

 

 


    성전의 화려한 모습


                          솔로몬 성전의 구조. 열왕기상 6장의 설계도에 솔로몬 성전의 복원도 
 
 솔로몬의 성전은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하게 파괴가 된다. 
 
 그러나 70년 후에 다시 성전을 스릅바벨의 주도 하에 지어졌다. 성전 건축이 중단이 되었지만, 학개 선지자의  주도 아래 완성이 된다. 이 성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된다.
 

                            헤롯 성전                                 
 
 스릅바벨 성전은 그 모습이 초라하고, 또한 그후에는 여러차레 수난을 당하게 된다.
 
 그러다가 에돔 사람인 헤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을 얻기 위하여 46년간 성전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게 되는 데, 헤롯이 보수한 그 성전에 예수님께서 설교하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일을 하셨다. 그 당시의 성전은 헤롯이 리모델링을 하였기에 헤롯 성전이라고도 한다.
 
 


    여인의 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계단이 15개로 되어 있다.
 
 


모형도에 나타난 성전의 모습은 참으로 웅장하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 성전을 보라고 하실 때에
주님께서 다 무너질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은 유대인들이 오랜만에 세운 하스모니아 왕조를 종식시키고, 왕을 두어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렸다.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의 왕으로 임명된 이가 바로 헤롯(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영아 대박해를 저지른 장본인)이다.
 
 헤롯은 팔레스타인 남부에서 태어난 반(半) 유대인이었다. 로마에 대해서는 충성을 다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의 대대적인 증축을 통해 환심을 사려했다. 이른바 양다리 작전을 쓴 셈이다. 덕분에 당시 예루살렘은 정말 아름답고 대단한 도시로 발전했다.


헤롯이 지은 성전의 모형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2:19,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마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솔로몬 행각                               
 
(요 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행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행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는 모습

 요 2:13,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하여 성전이 무너졌다


모슬렘들이 성전 자리에 회교 사원을 만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성전이 있던 자리에 회교 사원이 있다


          시온산은 왼쪽에 있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힌놈의 골짜기와 맞닿는 기드론 골짜기에 이른다.
 

                                    황금문, 혹은 미문이라고 한다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행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헤롯에 의해서 세워진 성벽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오늘날 통곡의 벽은 두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남쪽)은 여자들 구역, 왼쪽(북쪽)은 남자들이 기도하는 구역이다. 남자 구역이 여자 구역보다 세배 이상 크다.
 
 통곡의 벽에는 키파라는 꼬깔모자로 머리를 가린 유대인들이 토라(모세오경)를 읽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24시간 개방되어 있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 해가 저물면서 시작되는 안식일부터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시간이다. 안식일에는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진 통곡의 벽 아래 부분은 당시 성전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통곡의 벽
 
 티투스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부숴버릴 수 있었던 로마의 힘을 후대에 보여 주려고 조금 남겨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통곡의 벽이다. 원래 이름은 ‘서쪽 벽’(The Western Wall)이지만, 오늘날은 ‘통곡의 벽’(The Wailing Wall)으로 더 유명하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이후,  이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의 최대 성지가 되었다.
 

 

 이 통곡의 벽 돌틈에는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 뿐 만 아니라, 순례객들도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두고 기도한다. 한가지 간절한 소망은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에도 서쪽 벽은 요르단이 차지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접근할 수가 없었고, 다만 정해진 날에만 방문이 허가되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히브린의 후예인 이스라엘은 서쪽 벽을 되찾았다.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을 공식적으로 되찾은 것은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약 1900년 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 유대인의 모습이 보인다

 

 성전이 파괴되고 불탄 자리에 로마제국은 제우스 신전을 세우려고 했다.  유대인들은 또다시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마저 진압한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바로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내좇아버린 것이다. 바로 로마가 세계사를 두고두고 말썽거리가 될 일을 저지른 셈이다.
 
 출애굽을 통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잘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그곳에서 내쫓음으로써,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묘사되어 있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내 거주가 금지됐다.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정한 동로마 시대에는 일년에 딱 하루, 즉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아브(Av. 여덟번째 달 8일)에만 예루살렘 출입을 허용했다. 아브날이 되면, 유대인들은 파괴된 성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쪽 기단 벽에 머리를 대고 통곡했다.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했다. 서쪽 벽은 유대인들의 통곡으로 늘 젖어있는 것 같았다. 점차 서쪽 벽은 통곡의 벽(Wailing Wall)으로 불리어 갔다.



                                               아이들이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