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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38-베네스다와 아스클레페이온

영국신사77 2008. 8. 20. 15:06
                성지를 찾아서 38-베네스다와 아스클레페이온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중에서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요 5:2-18). 그 이유는 이곳에서 가끔 물이 동하는 신비스런 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베데스다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왜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중병 환자들이 모여있었는가? 이곳은 예루살렘의 환자 요양소 내지는 병원이었는가?

 1860년대 예루살렘의 성 안나 교회를 차지한 프랑스의 백의의 선교사회 신부들은 근처의 유적들을 부분적으로 발굴하고는 고대 기록들을 근거로 이 곳이 양문 옆에 위치했다는 요한복음서의 베데스다로 여겼다. 가까이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제사용 도살에 필요한 물이 많이 필요하고 여러 개의 저수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1957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서 길이 52m, 폭 40m 규모의 북쪽 저수지와 길이 57m, 폭 48m 규모의 남쪽 저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52년 쿰란의 제 3동굴에서 발견된 구리판에 기록된 한 두루마리 문서도 예루살렘의 양의 못이 두 개의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해 준다.


                           두 개의 저수지와 다섯 행각

 베데스다에는 다섯 개의 행각, 즉 스토아가 있었다(요 5:2). 스토아는 그리스 건축에서 기둥으로 이루어진 회랑을 의미하며 도시 한가운데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터인 아고라에 위치한 건물을 의미했다. 이 안에서 철학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견해들을 교환했다고 해서 스토아 학파가 유래됐다. 베데스다의 두 개의 저수지는 다섯 개의 회랑과도 그 구조면에서 일맥 상통한다. 두 개의 저수지 사이에는 폭 6m의 분리벽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의 모양은 한자로 날일자 형태를 띄고 있었다. 따라서 두 개의 저수지 가장자리에 회랑이 있었다면 사이의 분리벽까지 합해 모두 다섯 개의 회랑이 있는 셈이다.


                               천사가 물을 움직일때

 두 저수지 사이의 분리벽 아래쪽에서 물이 흐를수 있도록 한 통로가 발견됐다. 높은 곳에 위치한 북쪽 저수지로부터 물이 남쪽 저수지로 흐르게 고안된 것이다. 신약학자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이 장치를 가끔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북쪽 저수지에 일정한 양의 물이 찰때마다 병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남쪽의 목욕장으로 흘려 보냈다는 것이다.

왜 베데스다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는가? 발굴을 통해 베데스다의 유적은 서기전 200년경 최초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1세기에는 저수지와는 별도로 깨끗한 물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 급수대도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저수 시설은 단순히 성전 제사를 위한 도살에 필요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로마 시대 도시들에 널리 퍼져 있었던 종합병원 아스클레페이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데스다가 원래 히브리어로 베잇트 하스다, 즉 ‘자비의 전당’이라는 뜻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또한 서기 2세기 폼페이아 루킬리아라 불리는 한 로마 여인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그 대가로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이 이곳서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 밝혀졌다.


                             아스클레페이온(Asclepeion)

서기전 700년경부터 그리스 본토에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의학의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했고 서기전 6세기에는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클리닉이 세워졌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목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스클레페이온의 한 가운데는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와 저수장이 있었다. 피부병의 경우 진흙 맛사지를 받게 했고 태양볕 아래 맨발로 걷는 것도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였다. 음식요법으로서 포도주나 기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금식을 하기도 했다. 증상에 따라 필요한 약재가 동원됐고 간단한 수술이 시행되기도 했다. 한밤중에는 신전의 제사장이 하인들을 거느리며 환자들의 병상을 방문하여 상태를 확인하고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아스클레페이온에서 가장 중시하는 치료법은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연극과 음악감상을 통해 환자들의 안정을 유도하려는 심리치료가 일반적으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규모가 큰 경우에는 본격적인 운동을 위한 스타디움과 김나지움도 있었다.


                         페르가몬(버가모)의 아스클레페이온

 페르가몬의 아스클레페이온은 지중해 섬지역인 로도스의 것과 함께 그리스-로마 시대의 가장 유명한 클리닉 시설로 손꼽힌다. 도시로부터 병원까지는 820m 길이의 대로인 비아 텍타(Via Tecta)로 연결돼 있으며 이곳에 들어서면 회랑으로 둘러싸인 전체 면적이 14,000평방미터에 달하는 네모진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구조물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인 서기 130년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마당 한가운데는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가 있고 동쪽면에는 도서관, 프로필론, 신전, 그리고 지하 원형 치료소가 있으며 북서쪽에는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있다. 페르가몬 출신의 유명한 의사로서 서기 2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갈렌(Galen)을 들 수 있는데 해부학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페르가몬의 원형경기장 소속 검투사들의 전문치료사로 경력을 쌓았고 나중에 로마로 가서 황제들의 전문의로 활동했다.

 서기 5세기 중엽 베데스다를 방문했던 한 순례자는 이곳의 기념교회를 ‘불구자의 교회’로 명명했다. 또한 서기 6세기부터는 이곳이 마리아의 생가라는 전승이 생겨났고 다섯 개의 행각 중 하나에 이를 기념하는 교회가 건설됐다. 서기 1100년경 십자군들은 이곳에 마리아의 모친을 기념하는 성 안나 교회를 세웠고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십자군 시대의 건물로 손꼽힌다.

 예수는 안식일에 베데스다의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에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율법위반을 문제삼기 시작했다(요 5:16). 오늘날의 유대인들에게는 파쿠악흐 네페쉬라 불리는 율법의 예외 조항이 있다. 가장 엄격한 안식일 율법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생명이 좌우된다면 예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진 것을 구해내는 것 등이 피쿠악흐 네페쉬에 속한다(마 12:11). 양 한 마리의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구덩이는 물웅덩이를 뜻하기 때문에 양이 빠져 죽을 경우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성 교수 협성대·성서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