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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 아카바/와디 람

영국신사77 2008. 8. 8. 12:33
요르단 : 아카바/와디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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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바(Aqaba) : 에시온 게벨

아카바와 에일랏은 홍해변에 자리하고 있는 쌍둥이 도시이며, 이 중 아카바는 요르단의 유일한 해변 도시로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항구 도시이다. 이집트에서 연결되는 배편이 이곳을 항해하고 있으며, 걸프지역에서 아프리카 지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항구이기도 하다.

아카바는 고대의 에시온 게벨에 해당하는 곳으로, 오늘날 이곳에는 고대 에시온 게벨에 있었던 솔로몬의 구리 제련소의 흔적이 있다. (신 2:8, 왕상 22:48)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에시온 게벨은 출애굽 여정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쳤던 지역이며, 솔로몬 때에는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 (민 33:34-35, 신 2:8, 왕상 9:26)  10세기 말엽 애굽의 시삭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아사왕 때에 에돔을 점령하면서 여호사밧왕 때에 이르러 다시 복구되어 해상 무역을 재개하였으며 주전 6세기까지 홍해를 통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고대에는 왕의 대로가 연결되는 교통로로 이용되었고, 로마시대 때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암만, 페트라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건설되어 이 길을 통하여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오가도록 하였다. 요르단이 아랍화된 7세기 이후에는 아카바 주교청이 자리하기도 하였으며, 십자군 시대에는 십자군들에 의해 요새화 되기도 하였으나. 1170년에는 살라딘에 의해 점령되었다. 1250년 마멜룩이 이 지역을 차지하였고 16세기에는 오토만 터어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후 아카바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평범한 어촌 마을로 자리하였다.

1차 대전후에는 아랍 혁명의  과정에서 이곳을 점령하여 오토만 터키의 세력을 몰아내나 곧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요르단이 독립한 후, 후세인 요르단 국왕에 의하여 1965년에 해안선이 조정되었다. 후세인 왕은 6000 sq km의 요르단 사막을 사우디 아라비아에 제공하는 댓가로 12 km 의 해안선을 요르단의 영토로 영입함으로 바다로의 출구를 확보하였다.  

요르단과 이스라엘간의 국경 지역 오른쪽, 아카바 서쪽에 자리한 '텔 엘칼리파'(칼리프들의 언덕)의 유적 발굴 결과 고대 에시온 게벨에 있었던 솔로몬의 구리 제련소의 흔적을 발견하였으며, 이곳에서의 구리 제련 작업은 기원전 10세기에서 5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현재는 홍해를 이용한 휴양 도시로 발달되어 있다.
관련 성경 : 민 33:34-35, 신 2:8, 왕상 9:26 

■ 와디 람(Wadi Ram) : 와디 룸(Wadi Rum)

와디 람' 지역은 아카바 북동쪽 35㎞ 지점의 위치한 사막 지역으로,  사막길을 따라 이어지는   경관이 빼어난 지역이다.

1917-18년의 아랍 혁명 기간에는 유명한 영국인 장교  T.E.Lawrence가 이곳에 잠시 머물며 활동을 벌이는데, 1960년대에 이 지역과 로렌스를 소재로 했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갖가지 모양의 바위산들이 기이하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사막을 장식하고  이 지역 사암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깔들이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곳곳에 샘물이 있어 아주 오래 전 부터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으며 이곳의 발굴 결과 기원전 4500년 경의 마을 유적뿐 아니라, 나바테안들의 흔적과  바위에 새겨진 문장과 그림들도 발견되었다.

사막 전용 지프를 이용한 여행과 요르단 군대의 낙타 부대에 의한 낙타 여행을 즐길 수 있으며, 베드윈들의 전통 식사 및 민속춤을 경험할 수 있다. 해질녘의 와디룸 지역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