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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레이놀즈(李訥瑞)의 부인 팻시 보링(Patsy Bolling)과 그 가족

영국신사77 2008. 7. 30. 12:39

             8-2. 레이놀즈(李訥瑞)의 부인 팻시 보링(Patsy Bolling)과 그 가족

 

 

 ◇ 현모 양처의 팻시 보링(Patsy Bolling) 선교사

 

  팻시 보링(Patsy Bolling) 선교사 1868년 9월 28일 미국에서 출생하였으며, 음악 애호가로 미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한국적 현모양처로서 대외 활동보다 가정에 충실했으며 남편을 위하여 피아노를 연주하고 손님 접대에 정성을 다했다.

 

 출생한 해에 사망한 W. D. 레이놀즈는 레이놀즈 부부의 맏아들로, 1893년 한국에서 출생하여 같은 해 사망하여 양화진(마-19)에 묻혔다. 


  ◇한국을 제1고향으로 여긴 존 볼링 레이놀즈(Reynolds, John Bolling, 李保璘, 1894~1970)

 레이놀즈와 팻시 보링의 둘째 아들로, 1894년 9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미국에서 공부한 뒤 1920년 남장로회 교육선교사로 내한하여 순천 광주와 전주 신흥학교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시립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1970년 3월 20일 테네시에서 75세로 별세하였다. 그는 평소에도 “미국은 제2고향이고, 한국이 제1고향”이라고 하면서 한국을 많이 사랑했다. 평생 김치를 좋아했고, 애국가를 매일아침 피아노로 연주했으며, 죽음이 가까워지자 畸뮈?묻히기를 간절히 원했다.

 화장한 유해를 그의 부인이 연로하여 한국에 올 수 없어 소포로 보내졌다. 우체국 검열과정에서 유해가 ‘화공 약품’으로 오해받아 함부로 취급되고, 유골이 흩어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선교사의 헌신을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그렇게 외롭게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마-20)에 묻혔다. 하관식에는 원일한(언더우드 3세) 장로 부부 등 몇 분이 참석하였다는 것을 이강필 소장의 증언으로 알게 됐다.


                                                                                                        필자 : 신호철 양화진선교회장(서교동교회 시무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