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聖地 · 선교사/◆國內 선교사들&부흥회

★★가우처(Goucher, John F) 목사

영국신사77 2008. 6. 13. 19:48

                   가우처(Goucher, John F, 1845-1922) 목사

 

 한국 선교 가능성을 최초로 언급한 미국 감리교 목사.

 펜실바니아주 웨인즈버러에서 출생하여 1868년 딕킨슨대학, 1872년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볼티모어 연수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할렘파크(Harlem park), 스트라우브릿지(Strawbridge), 볼티모어 등지에서 목회하였다. 1888년에는 볼티모어 여자대학을 설립하였고, 그곳에서 20년간 학장으로 시무하였다. 볼티모어 여자대학은 그가 은퇴한 후 가우처 대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 외국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극동지구 특히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등에 선교비로 25만 달러를 희사하였다.

 

 그가 볼티모어 대학을 재직하고 있던 1883년 9월,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낮선 동양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최초의 방미 사절단으로 민영익을 비롯한 11명의 조선 특사(特使)들이었다. 가우처는 활기차고 애국심이 강한 젊은 청년들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로우엘(P. Lowell, 1855-1916)의 통역을 통해, 그들 특히 민영익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에 대한 지식을 얻게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아직 한국에 선교사가 파송되어 있지않은 것을 알고, 개척선교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한국선교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1883년11월6일, 미국 감리회 총회 선교위원회(The General Missionary Committee)에, "만일 은둔국인 한국에 선교사업의 정책을 세울 수 있다면 한국에서의 선교사업은 영구히 확립될 것이다"라고 건의하면서, 2천달러를 한국 선교희사금으로 희사하고, 1주일 후 다시 3천달러를 선교위원회에 송금했다.

 

 그러나 의외로 선교위원회로부터 승인이 나지 않자, 1884년 1월 당시 중국에서 25년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일본에 주재하면서 선교관리자로 있던 맥클레이(R. S. Maclay)박사에게, 한국에 직접 현지 답사하여 선교지 개척 가능성 여부를 타진해 보도록 하는 서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