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 선교사
중국에서 활동하던 미국 북장로회의 의료선교사 알렌(H.N. Allen)이 내한한 것은 1884년의 일이었다. 명성왕후와 인연을 맺게 된 알렌은 고종의 후원으로 1885년 4월 10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으로 곧 개명)을 설립하였다.
의학교육은 1893년 내한한 에비슨에 의해 크게 성장하였고, 1900년 미국의 세브란스가 기부한 기금으로 서울역 앞에 새 병원을 지으면서 이름을 '세브란스병원'으로 하였다. 이후 일제 지배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한국인이 중심이 된 의학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선도하는 한편 간호학 및 치과학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알렌 선교사는 중국 해안가에서 정착하여 의료선교사역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해안가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정착하여 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곳도 정착하기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 알렌 선교사는 8개월간 상해와 남경일대를 헤매고 다니다가 , 조선이 문을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조선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바로 미국 선교부에 편지를 썼다. 조선에 가기를 원한다는 편지 였다.
그가 1884년 6월에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의 조선 입국을 허락해 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단신이라도 들어가겠습니다."
그해 7월 22일 선교본부는 해저전신을 통해 입국을 허락했고 그는 1884년 9월 20일 드디어 제물포 항구에 도착하였다. 알렌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 주한 미국 공사관의 공의라는 직분을 가지고 조선땅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공의보다는 왕실의 시의가 되면 더 좋은 선교의 기회가 올 것을 알고, 고관들과 친분을 쌓아 가며 기도하며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조선 땅에 온지 2개월이 넘은 12월 어느날, 조선에 큰 어지러운 사건을 만나게 된다. 김옥균을 비롯해서 개화파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수구파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3일 천하 사건이라고도 불리워지는 갑신정변이다. 이 사건으로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아, 목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청나라 외교사절이 되었었고, 23살의 나이로 전권대사가 되어 미국을 거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인도 싱가폴, 홍콩을 둘러보고 온 야망에 찬 고관 민영익, 그가 칼에 맞아 중상을 입고 과도한 출혈 끝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14명이나 되는 한의사들은 전전긍긍 손을 쓰고 있었으나, 출혈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우왕좌왕 하기만 하였다.
알렌이 보기에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출혈이 너무 심했고, 시간이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알렌은 의료기기를 다루면서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였다. 그 결과 민영익은 소생하게 되었고, 민영익을 살해 모함한 개화파는 진압되었다 .
이 사건으로 알렌 선교사는 조정에 신임을 받게 되었고, 알렌은 왕실의 시의가 되었고 조선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민영익은 생명의 은인인 알렌 선교사에게 감사하여 십만냥을 주었고, 알렌은 이 돈을 기초로 병원을 마련하였는데 이 병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이 되었다. 그 후 이병원은 제중원이라고 개명하였고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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