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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륜·이수정 기념비 세운다… 120여년전 첫 성경번역·교회설립

영국신사77 2008. 6. 7. 00:40

             서상륜·이수정 기념비 세운다… 120여년전 첫 성경번역·교회설립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6.05.16 17:35

 

  언더우드 아펜젤러 모펫 등 외국 선교사들과 달리, 한국 교회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아왔던 서상륜 이수정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본격화된다.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회장 박경진 장로)는 서상륜·이수정기념비 건립 등을 통해 두 신앙 선배들에 대한 신앙 뿌리찾기에 나선다. 성지순례선교회는 16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 회관에서 '한국기독교 선구자 서상륜·이수정기념비 건립 발기인대회'를 연 데 이어, 이수정 선생 전기인 '한국기독교 선구자 이수정'(진흥)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성지순례선교회는 경기도 용인시 총신대 양지캠퍼스내 소래교회 옆에 가로 150㎝, 세로 120㎝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17일 공사를 시작, 다음달 20일 오전 11시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서상륜 이수정 선생은 구한말 민족복음화의 기수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초석을 세운 인물이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들이 번역한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1878년 만주에서 매킨타이어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서상륜은 조선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다.
 
  1882년 제2차 신사유람단 비수행원으로 일본땅을 밟은 이수정은 기독교로 개종한 뒤, 성서 번역과 함께 유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도쿄주일학교 운동을 시작했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 벌써 서상륜과 이수정 선생은 조선땅에 복음을 전했던 믿음의 선진들이었다.

  김수진(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전문위원장) 목사는 "우리 기독인들은 성경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학생들에게 이들의 선구자적인 정신과 신앙을 널리 알려 신앙 선진들의 믿음을 본 받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기념비 건립 논의는 성지순례선교회 전문위원들이 지난해[2005년] 1월 한국기독교 유적지 탐방을 위해 일본과 중국을 방문한 데서 시작됐다. 이때 서상륜 이수정 선생의 불퇴전의 신앙 정신이 남겨진 곳들을 순례하며, 이들에 대한 업적을 기념비로 남길 것을 결의했다.

  이날 발기인대회에는 김수진 목사와 박경진 장로 외에 정영관(서울장로성서연구원장), 신세원(총신대 기독교박물관장), 백수복(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전문위원회 총무) ,김상길(국민일보 상무이사) 목사, 윤춘병(한국교회사가) 감독,
김경래 장로 등 교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했다.

  ◇서상륜 선생은… 1848년 평안도 의주에서 태어난 서상륜 선생은
쇄국정책으로 서양문화의 접근이 불가했던 시절에, 의주에서 고려문을 드나들며 홍삼장사를 했다.
 
  1878년 만주에서 활동하던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 그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쳐주었고, 함께 성경을 읽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됐다.

  로스 선교사와 함께 성서를 번역한 서상륜은 1882년 한글 '누가복음서'를 최초로 발간했다. 자신이 번역한 누가복음서를 가지고 고향인 의주로 잠입, 황해도 장연 소래에서 전도활동을 했고, 1884년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웠다. 1887년 서울
새문안교회를 세울 때도 큰 공을 세웠으며, 관서·관북지방의 권서로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1892년 44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이수정 선생은… 이수정 선생은 1843년 전라도 옥과에서 태어났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구한 공로로 그해 9월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의 농학자 쓰다센을 만나 예수를 영접한 그는, 1883년 야그사와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뜨거운 선교 열정으로 그는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해달라고 미국에 두 차례 편지를 보내는 등 '한국의 마케도니아인'의 역할을 감당했다. 이 편지는 미국의 선교잡지에 기사화됐고, 적지않은 미국 크리스천들이 조선 선교사를 자원하는 계기가 됐다.

  이 선생은 1884년 12월 일본에서 최초로 한글 '마가복음서'를 번역·출간했다. 이듬해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 성경을 들고 한국땅을 밟았다. 일본에서 전도활동을 펼쳐온 이 선생은 1886년 귀국하자마자 수구파에 체포돼 41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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