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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도에서의 바울 고별설교<박희민목사>

영국신사77 2008. 4. 11. 21:25
                         
                  밀레도(Miletus)에서-사도 바울의 고별설교[행20장17-25]
                                                                          -박희민 목사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여러 차례의 바울의 설교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기록된 밀레도(Miletus)
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소집하여 행한 설교는 다른 설교와 내용이 전적으로 다르다. 다른 설교는 모두 전도설교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기록된 설교는 바울의 목회설교이다. 또한 사도행전에 기록된 유일한 고별설교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감동적인 설교이다.
 
   22-23절을 보세요.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했다.
 

  무슨 말인가? 지금 바울은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강한 손길에 이끌려 예루살렘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곧 순교까지 당해야 하는 그러한 죽음을 향해 전진해 가고 있다는 고백이다.

 

  떠나가는 바울 자신만이 어렵고 험준한 길을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남겨 두고 가는 에베소 교회에도 외적인 박해와 시험, 내적으로 많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검은 먹구름처럼 다가오는 것을 바울은 바라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밀레도에 도착한 교회 지도자들과 봉사자들을 향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18절에 보니까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했다. 여기서 바울이 어떤 자세로 3년 동안 사역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일에 임한다.

 

  누가 성공하며 하는 일에 열매를 거둘 것이냐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영어에도 '태도가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사랑을 하든지,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봉사할 때도, 우리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의적인 자 세가 참으로 중요하다.

 

   누가 참 매력이 있는가?  어떤 이가 존재로 가득찬 사람이 가장 매력이 있다고 하였다. 존재로 가득찬 사람이 누군가? 자기가 하는 일에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하였는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그는 에베소에서 말로만 아니라 삶과 행동을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인가를 보여주었다는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3년 동안 에베소 교회를 섬길 때 어떤 자세로 섬겼는가를 고백하고 있다.

  

  (1) 첫째로 '모든 겸손'으로 섬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모든 겸손'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온전한 겸손을 말한다. 모든 일에 겸손함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말한다. 어떤 분은 자기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분에게는 납작 엎드린다. 아니 완전히 엎어진다. 그러나 자기보다 좀 못하다고 생각되면 목에 힘을 주고 큰 소리를 치며 군림한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에 겸손함으로 대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특별히 우리 한국인들은 겸손을 유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부탁하면 '제가 뭘 할 줄 아니요.' 잘 하면서도 은근히 사양하는 척하고 뺀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다. 가끔 보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에게 하는 말이 '차려놓은 것은 없지만 많이 잡수세요' 한다. 이것도 겸손이 아니고 외식이요 위선이다. 동양적인 겸손은 다분히 성경에 기록된 외식이나 위선에 가깝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미덕이 겸손의 미덕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겸손하신 마음이다.

  특별히 지도자와 봉사자들에게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더욱 필요하다.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것만큼 성장하고 높아진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심으로 모든 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영광을 받게 되셨다.


  (2) 둘째는 눈물로 섬기고 사역했다.

   바울은 어머니가 아기를 낳아 키우듯이 에베소 교인들을 양육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눈물 없이 키우지를 못한다. 온갖 정성과 사랑의 결정체가 자식이 아닌가? 저희 딸 아이가 아기를 키우는 것 보니까 좀 애처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자녀는 밥만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눈물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눈물에도 사실은 여러 종류의 눈물이 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눈물은 사랑의 눈물을 말한다. 진실된 사랑이 넘치는 곳에 눈물이 있다. 눈물을 분석해 보면 물과 소금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놀라운 힘이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아도(마 9:35-38) 방법이나 전략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영혼, 한 영혼을 민망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전도도 방법론이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다. 한 영혼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진실된 사랑의 눈물이 있을 때,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난다. 또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방법론이나 기술은 자연히 배우게 된다.

  

  (3) 셋째는 오래 참는 인내로 섬겼다.

  19절 중반절에 보면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참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참고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모른다. 그저 5분, 10분만 참았어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을 것을, 참지 못해 수포로 돌아간 적이 얼마나 많은가? 조금만 참고 인내했으면 깨지 않을 가정이 깨지고, 조금만 참고 견디었으면 해냈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조금만 참고 인내했으면 성공했을 사업을 실패로 돌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4) 넷째는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사역한 것이다.

     20절 이하에서 우리는 바울의 위대한 용기를 접하게 된다. 그는 과거에도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지만, 앞으로도 예루살렘에 가서 무슨 일 당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증거를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믿음의 용기를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에게 삶의 용기가 필요하다.

진실할 수 있는 용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 공의를 행할 수 있는 용기, 사랑할 수 있는 용기,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출처 칠봉 블로그 | karamos
원문 http://blog.naver.com/karamos/800505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