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사료로 증명된 충격적인 성경기록의 사실성/구약의 놀라운 정확성(1)-Jeffrey Grant "Signature of God"중에서 " |
구약의 놀라운 정확성(1)
비기독교 학자들이 1세기 이상 끊임없이 성경을 비판해 왔지만 성경은 역사상 씌어진 책 중 가장 정확하고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으며 아직 건재하다. 언론매체도 성경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비난해 왔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발굴된 역사적 문서와 사료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확증해 주었다. 성경에 기록된 수천 년 간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모두 다 입증할 수는 없지만, 소개되는 확실한 증거들로 이제는 지적인 독자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에 대한 신뢰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상세히 살펴보면, 성경의 저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데 매우 신중하고 정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경의 기자들은 사건을 기록한 시대에 실존한 인물들이었다. 지난 1세기 동안 진행된 성경기록에 대한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비교연구 결과로 이스라엘과 주변국을 통치한 41명의 왕의 존재가 파악되었다. 이 사실은 동시대에 발간된 다른 문서와 사료들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수 천 건의 진술과 인물, 사건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확인되어 졌지만 고대 문학작품에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증명된 역사적 기록들이 거의 없다. 지난 150여 년 간 대다수 성경비판가들은 모세가 창세기와 모세오경의 저자라는 성경적 사실을 부인하는 문헌비평(Documentary Hypothesis) 입장을 지지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창세기에 나타난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 여호와, 아도나이 등 )으로 보아 서로 다른 5명의 저자가 이 책을 구성했다고 하며, 비판가들은 예수 출현 약 600년 이전에 어떤 저자가 다섯 가지 기록물을 하나의 책으로 재 편집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의 역사를 주의 깊게 고찰하면 널리 가르쳐온 이 이론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종교와 역사에 관련된 어떤 주제도 재기와 의지를 갖고 심각하게 논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적적인 출애굽 사건을 기리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축일을 유대인 조상들이 기념하지 않았다면,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후대 유대인들이 복잡하고 힘든 그러한 종교적 규례를 지킨다는 것이 가능한지 자문해 보라. 국가적 축일은 시대를 거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어진 것이다. 만약 이집트로부터 기적적인 해방이 없었다면 이런 축일이 어떻게 전승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입법자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이집트로부터 구원한 기적과 행하신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 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나 저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징계와 그 위엄과 그 강한 손과 펴신 팔과 애굽에서 그 왕 바로 와 그 전국에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또 여화와께서 애굽 군대와 그 말과 그 병거에 행하신 일 곧 그들이 너희들 따를 때에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 멸하사 오늘까지 이른 것과 또 너희가 이곳에 이르기 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너희가 여화와의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목도 하였느니라 ( 신명기 11: 2 - 7, NKJV )
무명의 한 편집자가 천년 후에 5권 토라를 만들어, 이란에서부터 시리아 등 다양한 지역과 사회계층에 산재해 있는 유대인들에게 접근하여, 전에는 기리지도 않았던 축제일들을 적용시키려 했다면 그는 사기꾼으로 널리 소문이 났을 것이다. 유대 랍비와 학자들은 누구도 본적이 없는 그런 책의 출현에 반대하는 강력한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토론과 논쟁이 있었다는 어떤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명의 저자가 토라를 만들었다는 비판이론은 어불성설이다. 앗시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10개 부족에게 족쇄를 채워 앗시리아( 현재 이라크-이란 )로 끌고 갔다. 앗시리아는 바벨론 유수로 진공 상태가 된 지역의 인구를 복원시키려고 B.C. 700년경에 사마리아인들을 이스라엘의 웨스트뱅크로 유입 시켰다. 후일 사마리안들은 이스라엘의 중심부까지도 이동해 왔다. 예수의 사역기간에도 진행된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로부터의 귀환으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과 반목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사마리인은 오늘까지 수천 년간 이를 질투하면서 자신들의 토라판을 지키고 보존하면서 모세의 토라 5경을 사실로 인정한다 토라가 권위가 없고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면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을 증오하면서 토라의 역사적 정확성과 권위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유대인의 적수인 사마리아인들이 모세 5경의 진실에 동의하는 것은 우리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법 수여자 모세가 기록한 원본 판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비판가들은 예수 출현 5세기 전에는 기록방식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모세가 문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B.C 2000년 경 것으로 추정되는 함부라비 법을 기록된 유명한 흙석주를 포함한 수 많은 고대 사료들의 발굴로, 모세 이전 수 세기 전에 기록방식이 이미 널리 활용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였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자신의 저서 "Polymnia"의 section c 89에서 출애굽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이 민족(이스라엘민족)의 기록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의 해안에 거주하다가 시리아 해안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 지역은 모두 이집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렸다."
B.C. 54년에 출생한 이교도 역사가이며 지리학자인 스트라보는 모세의 지도아래 단행된 유대민족의 출애굽과 유대인의 역사를 확인해 주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믿을 만한 거주자와 사원에서 보고한 많은 것 중 가장 신뢰성 있는 것은 이집트인들이 현재 유대인들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모세라고 불리는 사제는 하 이집트라고 지칭되는 지역을 통치하였는데, 유일신을 섬기는 대단위 집단과 함께 그 곳을 떠나 유대로 오게 되었다. ( Strabo, Geography, lib. Xvi., c.2 )" 라고 서술하고 있다. |
" 역사적 사료로 증명된 충격적인 성경기록의 사실성/구약의 놀라운 정확성(2)-Jeffrey Grant, "Signature of God" 중에서 " | |||
구약의 놀라운 정확성(2)
시나이사막의 식량과 식수 많은 비판가들이 시나이와 같은 건조한 사막은 출애굽에 기록된 것 같이 거대한 양 떼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1860년 W. Holland는 시나이반도 대부분 지역을 탐사했다. 그는 불모의 땅으로 황폐하고 건조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시나이 일부 지역에서 대단위로 양 떼를 축사하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기온이나 강수량이 약간만 바뀌어도 얻을 수 있는 목초의 양은 오늘날 조건에서 생산되는 것 보다 훨씬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금은 사막인 티고원의 북동부 넓은 지역이 예전에는 경작지였을 것이 확실하다. 수에즈만은( 수에즈만과 사해를 인위적으로 수로를 연결하였음 )
과거에는 현재보다 좀 더 북부쪽으로 거의 50 마일 정도 확장되어 있어서 팔레스타인의 산들은 수목으로 제법 �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상당한 양의 강우를 만들어 내는 지역이 존재했었고, 이는 시나이에 많은 이슬과 강우를 초래했을 것이다. 아마도 과거 시나이반도 자체는 좀 더 숲으로 우거졌을 것이다. 반도의 채소와 목초량이 현재도 너무 낮게 평가되어 있다. 현재 강우량보다 약간 많은 비가 내려도 거대한 양의 목초 생산이 가능해 진다. 나는 시골의 지표면, 특히 와디 지역은 한 줄기 비에도 놀랍도록 무성하게 변화하는 것을 여러 번 지켜 볼 수 있었다. ( W. Holland, Recent Explorations in the Peninsula of Sinai, 1869 ) " ( 느브가넷살, 벨사샬과 다리우스를 포함한 ) 과거 수세기 동안 고등비평에서 총체적으로 실존을 부인했던 수많은 성경적 인물들이 현재 역사적 혹은 고고학적 발굴로 믿을 만한 것으로 입증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과거에 성경의 정확성을 비판하는 시각은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사건-- 아브라함의 소규모 군대가 5인의 동방 왕들이 연합한 동맹군을 격퇴하는 이야기..을 경멸하며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비판세력은 이런 성경적 기록을 뒷받침 할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중동지역의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어 과거 사건의 상세한 부분도 사실로 입증되는 놀랍고 엄청난 증거들이 속출되고 있다.
넬슨 글룩박사는 현세기에 팔레스타인 고고학을 주도하는 학자로 인정 받는 사람이다. 히브리유니온 대학 총장이었던 그는 이와 관련된 탐사에서 새롭게 발견된 증거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동방 왕들에 의해 야만적으로 일소되기 전까지 또 다른 높은 수준의 문명이 B.C. 21세기와 19세기 사이에 번영했었다.
고고학적 증거물에 의해 생명력을 갖게 된 성경기록에 따르면, 동방군은 아쉬타로이스에서 칼나임 시대에 트랜스 요르단을 전역을 관통하여 시리아 남동부 지역과 네게브에서 시나이의 가데시바니아에 이르는 모든 시와 마을을 약탈했다. (창세기 14: 17) (Nelson Glueck, Rivers in the Desert [New York: Farrar, Straus, and Cudahy, 1959], p 11 )." 글룩박사는 고고학적 기록을 위해 이스라엘 지역 탐사에 수년 간 시간을 바쳤다. 그는 많은 발굴 결과를 놓고 "증거를 탐사할 수 있는 곳은 어느 지역을 다 조사해도, 성경은 확실히 총체적으로 믿을 만 한 것이다. 사실상 어떤 고고학적인 발굴도 성경적인 참고가 필요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고고학적 탐사를 할 때 성경에서 정확하고 자세하게 언급된 곳이나 명확한 한계를 지은 곳에서 하나씩 결실을 보았다. 게다가 성경기록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따라 진행한 탐사는 자주 놀라운 발굴로 유도해 주었다. 이런 탐사는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한 성경의 역사적 기억으로 구성된 방대한 모자이크를 한 칸씩 구성해 가는 형세였다 ( Nelson Glueck, Rivers in the Desert [New York: Farrar, Straus, and Cudahy, 1959], p31 ). "라고 평가하였다.
지난 150년 동안 중동지역에서 펼쳐진 탐사와 발굴은 성경말씀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에 획기적인 빛을 던져 주었다. 추가되는 유물과 더불어 우리는 성경에 있는 놀라운 말씀에 새롭고 흥미로운 확신을 갖게 되었다. 2장에서는 이런 발견물 중 가장 비중 있는 것과 이런 증거가 주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의미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느브가넷살왕의 바벨탑 비문 아담과 이브 시대로부터 바벨탑사건으로 언어를 혼란 시킨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결행이 사람들을 흩기 전까지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더라 (창세기 11: 1 )"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지구의 모든 사람들 언어를 혼잡게 하셨다( 창세기 11: 9 ) 그래서 사람들은 이웃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구 전체로 흩어지게 되었다.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건축하려고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죄에 찬 자만심으로 운집했다. 이에 따른 하나님 심판으로 바벨탑 및 바벨론 시가 붕괴된 것을 모세가 기록하였다. 바벨탑의 잔재로 유리가 남았는데( 일종의 유리 원석을 형성하는 녹는 물체), 이는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자만한 인간들이 하늘까지 닿으려고 새벽에 세운 바벨탑을 하나님께서 붕괴시킬 때 거대한 양의 열을 사용하신 것을 암시한다.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은 지구 전체의 수 천 개 방언과 언어를 고대 과거의 언어기원에까지 거슬러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프레도 트럼베티교수는 모든 언어의 공통적인 기원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동양언어의 위대한 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막스 뮬러는 모든 인간 언어는 하나의 기원으로 역추적 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오토 제퍼슨 교수는 처음 언어는 하나님에 의해 사람에게 주워졌다고 주장한다 ( Joseph Free, Archeology and Bible History [ Wheaton: Scripture and Publication, 1969 ] )
프랑스 정부는 바빌론의 유물에서 발견된 설형 문자 기록에 대한 보고를 받기 위해 오퍼트교수를 파견했다. 그는 느부가넷살 왕이 쓴 긴 기록문을 번역하였다. 이 기록에서 느브가넷살왕이 갈대아 언어로 "언어탑"을 의미하는 발지파(Barzippa)라는 말로써 탑을 언급한 것이 보여진다. 헬라인들은 바벨탑의 멸망을 기술할 때 동일한 "언어탑"을 의미하는 단어로 볼시파(Borsippa)를 사용했다. 느부가넷살의 이러한 기술로 보아 볼시파는 창세기에 모세가 기록한 바벨탑과 명백하게 동일시된다. 느부가넷살왕은 당대 보다 16세기 이전에 바빌론의 초대 왕 니므롯에 의해 건립되었던 고대 바벨탑의 기초를 재건하기로 결정하였다.
느부가넷살은 그것을 샤레즈 사원(Temple of the Spheres)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 탑을 붕괴 시킨 후 1천년 동안 탑은 원래 높이와 장대한 외관 면에서는 축소되었고, 거대한 기초 (460피이트 X 690 피이트)만 남은 채로 바빌론 외각에 269피이트 높이로 서 있었다. 오늘날 잔존물은 2,300 피이트 넓이의 평지 위에 약 150피이트 높이로 축소되어 있다. 느브가넷살은 금과 은으로 꾸민 장대한 외간을 지닌 바벨론시의 재건을 시도했다. 그는 갈대아신을 기념하여 가장 낮은 형태로 바벨탑을 다시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느브가넷살은 구운 진흙 벽돌의 딱딱한 표면 위에 막대한 재정을 들여 금, 은, 삼나무, 전나무 등으로 바벨탑 기초 부분을 새로 입히려 했다. 이런 벽돌에 느브가넷살왕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바벨탑 유물의 기초부분에서 발견된 이런 사료들을 통해, 느부가넷살왕이 수 천 년 전에 자신의 언어로 고대에 있었던 가장 흥미로운 사건을 확증한 것을 알 수 있다. 바벨탑에 서술된 느부가넷살왕 시 내가 발견하고 건립한 영원한 집인 탑이여 나는 은,금, 다른 금속과 돌, 에머럴드 벽돌, 전나무, 소나무로써 그 외관을 완성시켰다. 땅의 기초인 그 집을 나는 바빌론의 가장 고대적인 기념비로 지어 끝을 맺었다 나는 구리로 싸인 벽돌로 된 끝 부문을 높이 찬양한다. 이 건물은 이 땅의 일곱 빛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볼쉬파, 가장 기릴 만한 것이여 고대 왕이 그것을 세웠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고대에 사람들은 지시하는 그들의 말 표현이 없어서 완성을 포기해야 했다 그 때 이후로 지진과 천둥으로 태양에 말린 진흙이 다 분쇄되었다. 벽돌은 쪼개지고 내부 흙은 무더기로 흩어졌다. 메로다취, 위대한 신이 나의 마음을 동요 시켜 이 건물을 복원하게 하였다. 나는 위치를 바꾸지 않았고 기초를 옮기지도 않았다. 축복된 달에 상서로운 날에 나는 원래 벽돌 뭉치와 타버린 벽돌 주위에 주랑을 세웠다. 나는 둥근 형으로 개조해서 키틸 주랑에 나의 이름을 새기어 넣었다. 나는 끝나도록 손을 쓸 것이고 탑 끝을 찬양할 것이다. 고대에 그랬던 것 처럼 나도 그 완성을 찬양할 것이다. 이 기술문을 호퍼트교수가 번역하였고 윌리암 로푸터스씨는 그의 저서 Travels and Researches in Chaldea and Sinai (London; James Nisbet, 1857,p.29)에 이 흥미로운 비문을 번역했다 믿기 힘든 놀라운 기술로 창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를 기록한 성경의 정확성이 확인되었다. 이교도 왕인 느부가넷살은 스스로 "이전의 왕이 이것을 지었으나 그는 그 끝을 완성하지 못했다"라고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하나님이 바벨탑 최초 건립자들이 탑의 윗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게 했다는 성경 기록의 진실성을 확증해 주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느브가넷살 왕이 지적한 것으로, 고대 왕이 탑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유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라 점이다.
"고대시대에 사람들은 지시하는 그들의 말 표현이 없어서 완성을 포기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언어를 통제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바벨탑에 관한 성경적 기록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을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 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로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2 - 9 )." "고대의 왕이 그것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끝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이후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했다." 라는 느브가넷살왕의 진술과 창세기 11장 7절의 모세의 기록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와 비교해 보라. 좀 더 놀라운 것은 이교도 왕이 밝히기를 탑의 끝을 완성할 수 없었던 이유는 지시하는 표현이 없어서 탑의 완성을 포기했다고 밝힌 구절이다.
느부가넷살의 이런 표현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땅의 언어를 혼란케 하신 것과, 사람을 땅 위에 흩으신 것(창세기 11: 2- 9)으로 기록한 창세기의 역사적 사건을 명확하게 입증해 주는 것이다. 느브가넷살왕의 기술은 성경의 기록된 사건을 정확하게 기록됐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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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다락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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