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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 옥광석목사

영국신사77 2008. 4. 30. 16:57

              길      갈

 

 

2007-12-27 11:02:16  시카고 헤브론교회 옥광석목사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할례를 받은 장소다.

길갈은 요단강을 건넌 기적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열 두 돌이 세워진 기념비적 장소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광야의 모든 수치를 청산한 장소다.

길갈은 광야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앞에서 새로운 다짐과 결심을 한 결단의 장소다.

길갈의 뜻은 <굴러가게 하다, 자르다>는 말이다.





이후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입성한  이스라엘 초기 정복 전쟁의 본진이 되었다.

여리고성의 대승을 거둔 후에도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길갈 본진으로 돌아와 승리를 자축했다.

아이성의  패배 후에도 길갈 본진으로 돌아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작전을 세웠다.

아모리 족속과 예루살렘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에도 길갈의 본진으로 돌아왔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또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새로운 작전을 구상했던 역사적 장소였다.





야곱에게도 길갈이 있었다.

요단강을 건너 세겜성에서 딸 디나가 강건을 당했다.

야곱의 두 아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세겜성 모든 사람을 살해했다.

이 부끄럽고 추악한 사건으로 인해 세겜성 주변에서 더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세겜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으로 부터 길갈하기 위해 야곱은 처음 여호와를 대면한

장소였던 벧엘로 올라갔다.  벧엘로 올라가지 전에 야곱과 온 식구들은 세겜성에서

얻은 모든 장신구들을 땅에 묻어 버렸다. 세겜의 수치를 모두 길갈해 버렸던 것이다.





베드로에게도 길갈이 있었다.

그의 길갈은 갈릴리 바다였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쳐 버린 예루살렘의 수치로 고뇌하고 있던

베드 로를 찾아왔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번 동일하게 물으셨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는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길갈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였다.





길갈은 오늘날로 말하면 <골고다>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나 마찬가지다.

골고다 언덕위에서 그리스도는 온 몸을  찢으면서 인간의 수치와 죄를 대신 길갈하기 위해

할례를 받는 고통을 감내하셨다.

인간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골고다는 그리스도인에게 수치와 허물이 제거된 길갈이다.

골고다는 그리스도인에게 회복과 새로운 삶의  이정표가 된 기념비적 장소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와 실패에 상관없이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묵상하며 새로운 계획과 미래를 구상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갈임에 틀림없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전쟁을 방불케 한 한국의 대선도 끝났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교회가 들뜨고 흥분할 필요가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기도해 주어야 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증명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 정치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 대한민국만 그런가?

한국 교회는 올해 아프칸인질사태로 세상 앞에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송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시카고와 미국교포 교회에서 일어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사건들이 들여오기도 했다.





여리고성 승리의 기쁨보다 아이성 패배의 슬픔과 아쉬움이 많았던 교회의 모습이었다.

한 해가 지나기 전에 교회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길갈(잘라내야) 해야 한다.

잘라내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의 칼로 아픔을 감내하며 잘라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올 한 해 하나님과 사람앞에 행했던 수치와 부끄러움이 있다면

십자가 앞에 엎드려 반드시 길갈해야 한다.





교회는 길갈 본진으로 돌아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부끄러운 수치와 후회가 있더라도, 또한 예상하지 못한 승리와 기쁜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들떠게 만들고 흥분시켰더라도 교회는 2008년

이라는 새로운 미래의 정복을 앞두고 길갈로 돌아와 한 해동안

우리의 삶을 깊이 묵상하며 새로운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세상이 분주하고 혼란스럽고 들뜨서 만취된다고 해서 교회마저

세상의 분주함에 만취될 필요는 없다. 여리고의 승리에 만취되어서도

안될 뿐 더러 또한 아이성의 패배로  주눅들어서도 안된다.

우리 영혼의 본 진인 골고다 깊은 곳에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묻고

새로운 생각과 의식을 길러내야 할 것이다.





길갈 본진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새로운 작전도

미래도 계획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직 십자가 만이

우리의 낡아 빠진 구태의연한 의식과 세상에 만취된 아간의 탐욕을 잘라내게 만들것이다.

2007년 우리 의식속에 붙어있는 비계 덩어리를 길갈의 예리한 칼로 분명히 절단해야 한다.

아픔이 있더라도 말이다.

자르지 않고서는, 끊지 않고서는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새해가 시작 되기 전까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엄밀히 조사해 보아야겠다.

길갈해야 할 <2007의 수치> 가 없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