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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사료로 증명된 충격적인 성경기록의 사실성/ 구약의 놀라운 정확

영국신사77 2008. 3. 21. 00:39

   " 역사적 사료로 증명된 충격적인 성경기록의 사실성

                   / 구약의 놀라운 정확성(3)-Jeffrey Grant, "

                          구약의 놀라운 정확성(3)

                          요셉과 7년 기근
 7년 풍작에 이어진 7년 흉년사건에 대한 성경 기록 (창세기 41:29 – 30)을 확인해주는 흥미로운 기록이 19세기 사우디아라비아 남동부에서 발견었다. 현재 지명으로는 민주예맨의 하드라마우트 해안으로, 이 곳의 한 성곽의 대리석판에서 요셉 당시 기근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로 이 기록은 예수의 탄생 약 1800년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야곱과 열 두 아들에 관한 성경의 기록에 대응되는 시기이다. 슐텐스 교수가 이 기록을 아랍어로 기술하였고, 후일에 찰스 포스터교수가 영어로 번역하였다.
번역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 성에서 편히 거주하였다:
우리는 욕심도 없었고 포도원의 주인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다.
수 백마리 낙타가 매일 저녁 우리에게 돌아왔고
낙타의 눈에도 이곳은 쉼터로서 매우 좋은 듯 보였다.
우리 양은 낙타 수의 두 배 였고
느리게 이동하는 소도 흰 양과 같이 많았다.
우리는 이 성에서 7년을 아주 안락하게 살았다.
____그런 생활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가!
악마의 해가 스쳐 지나가는 그 때에 황폐한 시기가 들이 닥쳤다.
또 다른 해가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는 좋은 시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발이 있거나 굽이 있는 동물도 남아 있지 못했다.
하나님께 감사히 여기지 않고 먹는 사람은
삶의 터전에서 몰살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

  고대의 이 시는 풍년 뒤에 따른 기근과 흉작의 시기에 찾아든 황폐함을 기록하였다. 시는 기근이 7년간 계속된 것을 암시한다.

  고대 아라비아의 이 시는 이집트 총리로서 요셉이 정치하던 시기에 일어난 중동 지역의 7년 풍년과, 뒤이은 7년 흉년에 관한 성경적 기록의 정확성을 독립적 증거로서 확증해 주었다. 다가올 기근을 대비하여 풍년 시기에 남은 곡식을 수거하여 비축한 요셉의 현명한 정책을 모세는 기록하였다.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 중에 저장하매 (창세기41: 48).”

  또한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 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 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세기41:53–57 )”

  창세기에서 기술된 바와 같이 이집트에 7년 기근이 매우 심각하여 요셉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주변 국가의 모든 거주자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비축된 곡식을 양식으로 거래하는데 매우 신중해야만 했다. 요셉은 곡식이 동이 날 위험성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금과 은을 받고서 이집트 곡식을 팔 수는 없었다. 기근이 절정에 이르자 곡식은 금이나 돈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지난 세기에 벌였던 탐사로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확인해 주는 수 많은 흥미로운 고대 사료들을 중동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예맨 출신의 아랍인 에븐헤샴은 영국인 탐험가 크루텐던씨에게 창세기 41장에 씌어진 이집트 기근 시대에죽은 부유한 예맨 여인의 무덤을 보여 주었다. 심한 홍수로 1850년 경에 이 예맨 여인의 무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무덤에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한 부유한 귀족 여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시신의 목에는 7 색깔의 진주가 감기어 졌고 손과 발은 7개 팔찌,반지, 발목 장신구 등 비싼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그녀의 무덤에는 값진 보물로 가득찬 관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귀중한 보물은 그녀가 남긴 마지막 글을 새긴 석판이다. 이 글은 이집트의 7년 기근 시기에 남아있던 비축된 양식을 요셉이 얼마나 신중하게 처리했는지를 보여주어, 성경기록을 사실로 확증해 주었다.


  요셉이 통치하던 당시 기근을 당한 예맨 사람의 기록

  하나님 당신의 이름으로,
함야의 하나님 두쥬 세파의 딸인 나 타야는
나의 종을 요셉에게 보냈습니다.
종의 귀환이 지체되어 나는 내 여종을 보냈습니다.
밀가루를 가져오게 하려고 은을 실려서:
식량을 조달 받을 수가 없어서 나는 금을 실어 여종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받지 못하여 다시 진주를 보냈습니다.
역시 식량이 도착되지 않아 그것들이 밀가루가 되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어서 나는 여기서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누구든지 이 소식을 듣는 사람은 요셉이 나를 불쌍히 여기도록 해주시오.
나의 장식물로 몸치장을 할 수 있는 어떤 여인도
나 같은 죽음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reported in Niebuhr’s Voyage en Arabie, PL.LIX. Translation by Rev. Charles Forster )

  이 고대의 비문은 금으로도 이집트의 곡식을 살 수 없다는 예맨의 아랍귀족여인의 애절한 불평을 잘 나타내고, 또한 이집트의 귀중한 곡식을 매매하는 대가로 금을 제시하는 이방인의 어떠한 호소에도 응하지 않는 요셉의 결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도덕성을 흔드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요셉의 청년기에 보여준 결단성을 상기시켜 준다. 기근의 비극적 역사는 적은 양이라도 식량을 구하려고 거래 댓가로 귀중한 금속과 사치품을 교환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출애굽사건을 증명하는 고대 사료
  이집트에서 보냈던 노예생활로부터 유대인을 초자연적으로 구출한 사건을 다룬 출애굽기의 성경기록은 가장 기적적이며 경이적인 사건의 하나이다. 기독교 목사나 평신도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대민족을 특별한 민족으로 창출한 주요 사건들을 입증하는 증거와 이를 확인을 해주는 많은 고대 사료와 역사적 기록들이 있다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해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외에 보해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중다한 잡곡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니(출애굽기 12: 37-38 ).”

  유대 역사가인 프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고대 제사장이며 학자인 메네소와 케레몬이 이집트 역사에서 요셉과 모세를 유대인의 지도자로 칭했다고 한다 ( Flavius Josephus, Jpsephus Against Apion. I., 26,27,32 ).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은 유대인이 부정하다고 믿어서 이들을 증오하였고 유대인들이 이집트 땅에서 집단 탈출한 전설을 기억한다고 하였다.

  메네소와 케레몬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신을 비롯한 이집트의 관습을 일절 거부했다고 기술한 것이 흥미롭다. 이교도 역사가들이 유대인이 유월절에 희생양을 잡는 표시로 희생물로써 동물을 잡는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 역사가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시리아 남동쪽”( 고대 팔레스타인의 이집트식 이름 )으로 이주해서 들어간 사실을 확증해 주었다. 메네토는 기록하기를 람세스 아들이며, 세토스의 아버지인 아메노피스가 제 18왕조 말기를 통치하였는데 그의 재위기간 중인 B.C. 1500년과 1400년 사이에 유대인이 갑작스럽게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하였다.

  이같은 기록은 출애굽 사건이 약 B.C. 1491년 경에 발생했다는 구약 성경의 연대기적 날짜를 사실로 증거해 주는 것이다.

  수년 전에 다각적인 조사를 끝낸 후에 나는 디오도러스 시큐러스 도서관에서 40권으로 된 한 질의 책을 발견하였다. 디오도러스 시큐러스는 B.C. 80년에 태어나 예수의 출생 약 20년 이전에 사망한 시실리의 아규리움 출신의 그리스 역사가였다. 그는 고대사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중동지방 전역을 여행하였다.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잊어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들을 자세하게 기록했는데, 그는 이러한 가치 있는 기록들을 재편집했다. 디오도러스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고대 이집트에 큰 재앙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재앙의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렸다. 그 하나님은 그 땅에 사는 이방인들 때문에 이집트인들을 벌하곤 하였다. 이 이방인들은 자신의 신을 예배할 때 그들의 의식과 예식을 거행했다.”

  이집트인들은 이방인들이 자신의 땅에서 밀려 나가지 않으면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 일에 관해 다른 저자들이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이방인들이 이집트에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떠나게 된 그 이방인의 가장 탁월하고 진취적인…….이집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시대에는 거주지가 아니었던 현재 유대라고 불리는 곳으로 물러난 사람들…..이런 이주민들을 모세가 이끌었는데 그는 지혜와 전술에 매우 능하였다. 모세는 이들에게 법을 주었고 그는 또 모든 것을 주장하고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유일한 하나의 신만 있다고 하여 신의 어떠한 이미지도 만들지 못하는 법을 제정했다 ( Diodorus Siculus, Library of History, lib.1., ap Phot ).”

  이 장에서 다룬 역사적 기록과 역사적 사료들은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을 입증해 주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벨탑과 이집트의 7년 기근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을 평가할 때, 이런 사료의 발견은 구약성경 기자들을 정확한 역사가로서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들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