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소아시아 일곱교회&밧모섬

소아시아 7개 교회를 가다] (3) 버가모 교회

영국신사77 2007. 10. 7. 23:59
[사도바울 발자취 따라 소아시아 7개 교회를 가다] (3) 버가모 교회
2007.06.26 22:04:24 이스탄불=국민일보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해발 400m의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도시 버가모에 들어선 순간, 2000여년 전의 고대로 되돌아간 듯했다. BC 400년쯤 형성된 버가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800년 동안 종합병원으로 사용됐던 아스클레피움 유적. 돌로 포장된 800m의 진입로에는 당시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환자들의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스클레피움 한가운데는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가 설치돼 있고 동쪽에는 지하 원형 치료소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환자들은 이곳에서 목욕과 진흙 마사지, 맨발 걷기, 약재 처방, 식사 조절 등의 치료를 받았다. 또 북쪽에 설치된 야외 극장에서 연극과 음악을 이용한 심리치료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병원 규모보다 더 놀란 것은 현지인들이 ‘크즐 아블루’(붉은 건물)라고 부르는 버가모 교회와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주님의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은 버가모 교회. 지금은 붉은 벽돌이 무너져내려 폐허가 됐지만 아직도 웅장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도 순교를 각오했던 초대교인들의 숨결이 생생히 느껴졌다. 이집트의 세라피스 신전으로 건축됐으나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버가모 교회로 사용됐다.

초대교회 당시 신전의 제사 연기 때문에 도시 전역이 자욱했다고 한다. 버가모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과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있던 우상숭배의 도시였다. 이 때문에 버가모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단지 입으로만 읊조리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삶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충성된 증인이라고 칭찬 받은 ‘안디바’란 인물은 버가모 교회 초대감독으로 추정된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2∼13)

반면 주님은 계시록 말씀을 통해 세상과 결합해 진리를 잃어버리고 세속화된 버가모 교회를 책망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15)

바울 사도는 제2차 선교 여행 때 버가모를 지나쳤으나(행 16:17∼18) 그곳에서 행한 일은 기록된 것이 없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고 교훈한 것을 보면 우상숭배는 버가모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초대교회 모두가 안고 있던 문제였던 듯하다.

입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또 일신의 안락만을 추구해 기독교를 다른 종교 중의 한 분파 정도로 전락시킨 우리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새 이름, 새 신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6∼17)

이스탄불=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