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두아디라시에서 남동쪽으로 약 65㎞ 떨어져 있는 고대도시 사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의 로마식 대규모 목욕탕, 체육관, 유대교 회당,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교회 흔적을 보면서 당대 최고의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도시였음을 알 수 있었지만 마음엔 여전히 흙바람이 불었다.
거대한 두 개의 기둥만 남은 아르테미스신전. 한때 이 도시에 만연했던 우상숭배와 물질적 풍요, 그리고 처음은 뜨거웠으나 차갑게 식어버린 사데 교회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듯 고대 도시를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데 교회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유일하게 책망만 받은 교회였다. 이 교회의 영적인 상황은 서머나 교회와 판이했다. 서머나 교회는 처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차츰 영적으로 살아난 교회였다.
반면 사데 교회는 처음엔 뜨거웠지만, 나중에는 죽어가는 교회가 돼 주님으로부터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받았다.
4세기께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아르테미스신전은 교회로 사용됐다. 그러다 신전 남동쪽 구석에 소규모 교회당을 지어 예배를 드렸다. 점차 약화된 교회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현재 아데미신전 뒤편에 남아 있는 교회는 5개의 둥근 지붕 형태를 지니고 있다. 교회 외부는 장식용 벽돌로, 내부는 모자이크 무늬와 수채화로 그린 프레스코, 채색유리로 장식돼 있다.
무엇이 이곳 성도의 신앙을 꺾어버린 것일까? 근본적 원인은 돈과 세상을 사랑함에 있었다(딤전 6:10∼12). 사데에는 작은 시내가 흘렀다고 한다. 황금천이라고 부를 만큼 사금을 함유해 BC 560년께 크로이소스왕은 엄청난 양의 사금을 채취해 최대 부왕이 됐다.
이곳에서 금을 제련하던 도가니가 무려 300개 이상 발굴됐고, 도가니 밑바닥에는 금이 그대로 남아 있어 크로이소스왕의 전설적 부요가 역사적 사실임이 판명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데는 금산지로 유명했지만 성도들의 신앙은 정금같이 정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4-5)
당시 로마시대의 부와 권세를 상징하는 옷은 자주색이었으나 사데의 의인은 흰 옷을 약속받았으니 의미심장하다. 조금 남아 있는 그루터기 신앙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진리에 대한 내적 열망이 사라진 신앙이라면,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경건의 능력은 없기 마련이다.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가리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현대 교회도 형식주의적 신앙에서, 진리의 말씀을 처음으로 받았던 때의 감격을 기억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팀과 코넬 대학팀의 사데도시 발굴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도시를 떠나면서 주님은 물질과 우상을 숭배했던 성도들을 책망하셨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애통해하셨을 것이다.
이스탄불=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