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소아시아 일곱교회&밧모섬

[소아시아 7개 교회를 가다] (1) 에베소 교회

영국신사77 2007. 10. 7. 23:51

               [사도바울 발자취 따라 소아시아 7개 교회를 가다] (1) 에베소 교회

2007.06.26 22:04:24 이스탄불=국민일보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감미로운 한 순례자의 ‘주기도문’찬양이
BC 2세기에 건축된 에베소 원형극장에 울려퍼졌다.
산의 경사를 이용해 30m 높이의 돌계단을 설치한 객석 끝으로 뛰어올라 갔다.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차례의 대규모 지진 속에서도 에베소 원형극장은 95%가 보전돼 있었다.


원형극장에는 복음 전파에 온힘을 쏟았던 사도 바울의 심장 소리와
기독인들을 박해했던 바리새인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이 도시에 있었다는 것만 보아도
우상숭배가 얼마나 팽배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정집과 지하기도실 등에 숨어서 예배를 드렸다.
에베소 교회 지하에서 발견된 2,000여개의 등잔을 통해
초대교회 교인들의 예배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교회는 사도 바울 당시에 세워진 게 아니다.
기독교가 공인되자 바울과 함께 일곱교회를 개척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무덤 위에
4세기께 세워진 성요한교회이다.
성요한교회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에서
가장 넓은 안뜰과 현관, 본당, 예배당, 세례장 등을 갖추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세워진 셀수스 도서관의 외관은 웅장하고 화려했다.
1만5000권의 도서가 소장돼 있던 이곳에 서니
당시 지식인들이 토론을 벌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AD 49∼52년) 때
고린도에서 만난 브리스길라 부부와
이곳에서 3개월 동안 동역하며
유대 교회당, 두란노서원에서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이같이 두 해 동안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8∼10)


3차(53∼57년) 선교여행 때 바울은 

비로소 에베소의 유대인 공동체를 기반으로 

에베소 교회를 설립했다.

영적으로 성장한 교인들은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70여명이 순교했다. 

그러나 배교자도 많이 발생,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딤후 1:15∼18).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신앙생활에 힘쓰도록 권면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이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현대의 기독인들을 향한 울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영지주의가 만연되면서 

에베소 교회는 분열되고 사랑은 식어버렸다.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 교회였던 에베소 교회는 

결국 기능을 상실, 

계시록의 예언대로 교회의 촛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시록 2:1∼7)

분열된 한국 교회 역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어디로 옮기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스탄불=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