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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순교기념교회(The Fontana)

영국신사77 2007. 10. 6. 20:53

                                         ◐ 바울순교기념교회(The Fontana)

 

 

  사도바울이 네로황제의 기독교인 박해 당시 처형당한 곳에 세워진 기념교회로, 로마 서쪽 성문 밖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참수당할 때 머리가 세 번 튀었으며, 그 세 번 튀었던 자리마다 샘물이 솟았다고 전해 지고 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뜨거운물, 두번째 장소에서는 따스한 물, 세 번째 장소에서는 차가운 물이 흘어 나왔다 전해진다.

 

  교회 안에는 부조되어진 바울과 베드로의 성화가 마주하며 위치하고 있다.

 

 

  순교,,,,

  인간 누구에게나 한 번,,공평하게 찾아 오는 죽음이 누구에게는 치욕스런 죽음으로,,

  누구에겐 영광스런 죽음으로 ,,,,

 

  well-dying 의 차원을 넘어선,,,거룩한 죽음,,바울의 참수터를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숙연해짐은 어쩔수가 없었다.

  이곳까지 와야,,,바울의 선교여정이 끝나기에 꼭 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입   구

 

 

 

 

                                                              바울 순교교회

 

 

 

 

 

 

 

 

 

                                                             성전내부

 

                       이 날은 일본사람들이 성만찬을 드리고 있었다.

 

 

 

 

 

 

 

 

 

                                              바울이 참수당하는 장면

 

 

 

                                                    바울이 목이 잘린 받침대

 

 

 

                    바울,,,,세번씩이나 잘린 목이 튀었다는,,,,성전 안에 부조 된 모습,,,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고,,,,,나오는 길,,, 사도 바울의 목회를 생각하다.

 

  사도행전 28장에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사도행전 28장 23절,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30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어떤 상황속에서도 전도를 쉬지 않던 바울사도의 모습이 큰 도전이 되는데~~

 

 

 

 

 

 

 

                            샘물,,,성전에서 부터 연결해 놓았다는 바울의 샘물,,,

 

 

 

 

                          나오다 길 섶에서 만나 별꽃,,,,얼마나 반가웠는지,,,,,^^

 

 

 

출처 :

박하사탕  |  글쓴이 : 하늘향기내리 원글보기

 

 

 

 

 

 

                                   바울 순교기념교회

 

 


  바울 사도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2년 동안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어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칠 수 있었다.(사도행전 28:30-31) 그 후에 사도 바울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성경, 사도행전은 말이 없다. 그런데 초대교회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an 160-225년)은 “바울 사도가 황제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네로 황제의 기독교 대박해 때에 로마에서 참수 당했다”고 전한다.


 

 바로 바울 사도가 참수 당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장소에 바울순교기념교회가 서있다. 로마 서쪽 성문 밖 5㎞쯤 떨어진 곳이다.

  시 외곽지대라서 그런지 한산하고 조용하다. 우리 이외의 다른 순례객도 없다. 고대의 성문처럼 생긴 대문이 붉은 벽돌로 축조되어 아취 형태로 우리를 엄숙하게 맞아준다. 그 정문 전면에 넓은 공간이 있어 무료로 편안하게 주차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성지 순례중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던 점에 비추어, 이 곳은 어쩐지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울 순교기념교회 전경

 

 정문을 들어서자 200~300평 정도 되는 안뜰이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왼쪽에 트라피스트 수도원 건물이 있고, 오른쪽 약간 높은 지대에 예배당이 한 채 있다.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약 100m를 걸어갔다. 도로 양쪽에는 이름 모를 활엽수들이 비교적 울창하게 서있다. 그 길 끝에 미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소박한 모양의 예배당이 서있다.

 

 현관을 들어서자 바울 사도가 참수 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 좌측 벽에 부조되어 있다. 두꺼운 돌기둥 위에 바울 사도의 목을 늘여 받치고 있고, 어느 사람이 도끼로 그 목을 내리치려는 자세를 하고 있는 조각품이다. 실로 처절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예배당 안에 들어갔다.


 

 강대상 왼쪽 앞 부분에 바울 사도가 처형될 때 그 목을 받쳤다는 돌기둥이 있고, 머리가 잘려졌을 때 세 번 튀었는데 그 튀었던 장소에 각각 샘이 솟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세 샘터(Tre Fontana)라고 부르며, 그 샘터마다 대리석 제단을 쌓아 소중하게 보존하고 기념하고 있다. 바울 사도의 일생은 그 전 폭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생명의 은혜를 주는 삶이었기에, 죽어서까지 샘물이 되어 메마른 인생을 적셔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그 곳을 방문했을 때는 관리인을 부드러운 사람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친교를 돈독히(?) 한 덕으로 철창문을 열고 그 돌기둥에 접근해 내 목을 그 위에 늘여 놓을 수 있었다. 바울의 순교의 정신과 아득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득해 보려는 뜻에서였다. 동료 목사들이 웃는 바람에 해프닝으로 끝난 느낌이었지만 나의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눈물과 아픔이 스치고 지나간다.


“주님 저도 바울 사도처럼 살고 싶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죽고 싶습니다. 그런데 안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저의 죄악성과 이기심과 연약성에서부터 저를 구원하여 주사 복음의 좋은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출처:유성 감리교회 자료실

 

 

 

 

 

트레폰타네[세 개의 샘:바울 순교지]의 성 바오로 성당

 

<성당의 정면, 문 위에 그의 순교지라는 글이 씌어있다.>

 

 

 

 

  형집행자의 칼에 잘린 바오로 사도의 머리가 세 번을 튀었고, 그 자리에서 샘이 솟아 트레 폰타네(tre fontane/세 개의 샘)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바오로 사도의 순교지.

 

  교회를 박해하다가 사도가 된 생의 이력처럼, 바오로 사도는 죽음에서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분의 순교터에 '트레폰타네의 성바오로 성당'이 세워졌고, 그 성당 안에는 대리석과 철망으로 보호된 샘터 세 군데와, 참수형을 당할 때 목을 괴었던 대리석 기둥이 보존되어 있다. 그 기둥을 보고 있으면 그의 서간 한 구절이 떠오른다.

 

  디모데후서 4장 6절~8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이 기둥 위에 목을 올려놓고 사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테파노의 처형장에 있던 일,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만난 그리스도, 감옥 생활, 전도여행을 하던 세 차례의 바닷길.... 그의 온 생애는 사실 '그리스도를 따름'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빌립보서 1장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분께 온전히 '잡힌 바 된'(빌립보서 3장12절) 한 영혼의 삶.

  그 삶이 이곳 트레폰타네에서 기원후 67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마감된다

 

 

 

<바오로의 순교화, 둘째 샘 뒤편의 경당에 있다>

 

 

  죽음은 삶의 반대 개념이지만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그러하듯 죽음도 그러할 것이다"(Qualis vita finis ita)라는 경구처럼 죽음은 그의 삶을 설명해준다.

 

  일찍이 그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디아서 2:20)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도의 삶은 이 죽음을 예비하는 과정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 될까?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참수되었다는 이야기는 2세기 말 테르툴리아노의 기록에 처음 나타난다고 한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 역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바오로는 그(네로)에 의해 참수되었으며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들 하는데 베드로와 바오로의 이름이 지금도 그 도시에 있는 그들 무덤 위에서 읽힌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그 외에 로마의 주교 제피리노(199~217) 시대에 살았던 교회의 인물 가이오는, 카타프리지 파의 우두머리 프로클로를 반박하여 쓴 글에서 사도들의 유해가 안장된 장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네게 사도들의 전승기념물을 보여줄 수 있다. 네가 바티칸에 가거나 오스티엔세가에 가면 이 교회의 창립자들 전승기념물을 볼 수 있으리라."                               <에우세비오, 교회사 2, 25, 5~7>

 

  이 성당은 바오로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곳이지만, 성당 안에는 바오로 사도와 베드로 사도의 제대가 함께 봉헌되어 있다.

 

  두 사도는 교회의 기둥들로서,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일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바오로 사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를 드러낸다. 그래서 어디나 한 사도가 가는 곳엔 다른 사도가 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이 그렇고, 바실리카 성 바오로의 주 제단 앞이 그렇다. 이 성당 안에는 성베드로의 십자가형 장면과 성바오로의 참수장면이 좌우측에 각각 그려져 있다.

 

 

<성당 입구에 있는 조각, 유명한 거꾸로 십자형 모습>

 

 

 

                                                                                                                               출처:성바오로 수도회-세상과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