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대성당
예수님의 열두사도는 아니었지만 사도로 부름을 받았던 사도 바오로는 로마에 와서 당시로마의 황제였던 네로에게 재판을 받고 사도베드로와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64년에서 67년 사이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바오로 대성당
▶ 대성당의 역사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와서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네로에게 재판을 받고 순교한 시기는 64년에서 67년 사이라고 추정된다. 사도가 순교한 곳은 당시 로마 근교의 사형 집행 장으로 사용되었던 아쿠에살비에 지역으로, 현재의 트레 폰타네 지역(지금 이곳에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들어서 있음)에 해당되는 곳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도가 처형당한 직후 그의 시신은 당시 열렬한 신자였고 사도를 따르던 루치나 부인 가문의 소유지에 묻혔다고 한다.
그 후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과 함께 비밀리에 관리해 오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 사도의 무덤 위에 기념 대성당을 지었던 것이다.
현재의 대성당과 같은 규모는 그 후 386년 당시 열렬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테오도시우스 로마 황제와 그의 아들 아르카디우스가,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살루스티우스에게 사도의 기념 성당을 확장하도록 명했다. 이 결정에 따라, 건축 설계 전문가였던 치리아데에게 설계를 의뢰하였는데, 그는 대성당 내부에 다섯 군데의 통로와 80개(그 중 24개는 로마 공회당에서 가져왔음)의 기둥을 세우고, 성당 정면에 정원(10세기 이전의 성당들은 대부분 이러한 정원을 성당의 정면에 꾸미고 분수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의미는 세례성사의 중요성을 되살리기 위해 이곳에서 물로 죄를 씻고 난 후 성전에 들어가야 된다는 뜻임)을 포함하여, 마치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웠던 콘스탄티누스의 기념 성당과 그 구조나 모양을 비슷하게 설계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대성당의 규모는 1600여년 전에 지었던 규모 그대로이다. 대성당은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수 차례에 걸쳐 수난을 당했다. 그 중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461년 벼락으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 739년에는 롬바르크족의 침입으로 약탈을 당했다. 801년에는 지진으로 천장이 내려앉는 것을 보수했고, 847년에는 사라센인 들의 침입으로 또다시 약탈당했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피해를 입게 된 것은 1823년 7월 15일과 16일 밤중에 일어난 대화재였다. 이로 인해 십 수세기를 지탱해 오던 대성당은 하루 아침에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대화재로 말미암아 대성당 건물은 물론이고, 내부에 그려져 있던 벽화를 비롯하여 모자이크 등 역사적인 보물은 거의 다 손실되었거나 파괴되었다.
레오 12세는 교황에 즉위하자, 곧 바오로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전세계 교회에 특별 요청을 하였다. 그 당시 이름 있던 건축가 벨리, 폴레티, 베스피냐니, 칼데리니 등이 참여하여 원래 대성당의 설계도대로 복원하였고,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가 축성하였다. 원래의 대성당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전과 똑같이 건축된 성당의 길이는 132 m, 폭 30 m로서,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전세계 10대 대성당 중의 하나이다.
▶ 성당 소개
대성당 외부
정사각형의 형태인 회랑의 한쪽 길이는 70 m이고, 회랑에 사용된 화강암 기둥들은 사도 바오로의 강한 성격을 반영하듯 힘찬 모습으로 서 있다. 회랑 천장에는 복음 사가들의 상징과, 사도 바오로의 제자들의 초상,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상징들이 부조되어 있다.
이 회랑 한가운데 있는 정원에 우뚝 서 있는 사도 바오로의 대리석 조각상은, 피에트로 카노니카의 작품으로 1893년에 완성되었다. 이탈리아 대리석 중에서 그 질이 제일 좋기로 유명한 카라라의 흰 대리석으로 조각되었는데, 그 무게만도 자그마치 400톤에 달한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의 동상은 한 손에는 성서, 다른 한 손에는 양날이 선 칼을 들고 서 있으며, 석상의 받침대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만을 연설하는 이"라고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대성당의 정면 이 시간대에 대성당의 정면을 바라보면, 금을 입혀 제작한 모자이크에 반사되어 나오는 강렬한 빛의 아름다움에 어쩌면 눈이 멀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장관이다. 이 정면의 모자이크는 교황 요한 23세 때 카발리니가 제작 한 것인데, 대화재 때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원래의 것과 똑같이 복원한 것이다.
제일 위쪽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좌우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보이며, 바로 그 아래에는 에덴 동산 위에 그리스도가 어린양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또 그 좌우에는 각각 열 두 마리의 양들이 있는데, 이는 열 두 사도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앉아 있는 언덕에는 성서에서 언급한 네 줄기의 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물로써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죄에서 자유를 얻도록 하는 복음의 정신을 표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아래 창문이 있는 곳에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었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성당 중앙 청동 문
이 중앙 청동 문은 안토니오 마라이니가 1931년에 완성한 것으로서, 문 양쪽 위에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생애 중 중요한 사건들을 각각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부조하였다.
먼저 오른쪽에 있는 사도 바오로의 행적을 보면, 로마로 압송 당하는 사도를 영접하는 신자들의 모습과, 사도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 다마스커스에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사도의 모습, 백인 대장 고넬료의 회개 모습, 그리고 순교하는 모습이 부조 되어 있다.
왼쪽에는 사도 베드로의 행적, 즉 카타콤베에서 세례를 베푸는 모습과,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황청의 첫 창시자로서의 모습,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열쇠를 받는 모습(마태복음 16장 19절의 내용) 등이 있다. 또한 로마에서 박해가 심해지자 성밖으로 도망치던 사도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던 그 장면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모습이 부조 되어 있다.
이 청동문의 중앙에는 은으로 모자이크한 십자가가 부조 되어 있는데, 십자가의 가로대에는 4대 복음사가가, 세로대에는 열두 사도들의 모습이 있다. 또한 이 십자가는 전체가 포도 덩굴로 엉키어 있는데, 이는 요한 복음 15장 5절의 내용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를 형상화하여 새겨 넣은 것이다. 덩굴 사이로 복음 사가 들과 제자들을 새겨 넣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제자들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말씀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대성당 내부
대성당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의 중간 통로 좌우에 모두 네 개의 통로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80개의 화강암 기둥들이 우뚝 솟아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힘찬 모습이 마치 사도 바오로에게서 받는 그러한 영감을 느끼게 한다.
벽화의 내용은 주로 구약과 신약 성서의 중요한 내용과 사도 바오로의 생애로 되어 있고, 구 아래쪽의 둥근 판에는 제 1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에서부터 현 교황에 이르기까지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가 모자이크로 제작되어 있다. 특히 내부 장식 중, 제대 앞쪽의 계단 위로 보이는 모자이크는 5세기 때의 교황 성 레오(440-461) 재임 당시의 것이다.
모자이크 가운데에는 후광에 둘러 쌓인 그리스도가 왼손에 십자가를 쥔 채 오른손으로 강복을 주는 모습이 담겨져 있고, 그 양쪽으로는 4대 복음사가(오른쪽부터 요한, 마가, 마태, 누가)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아래쪽으로는 요한계시록 4장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에서 언급한 스물 네 명의 원로들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있다. 이 모자이크는 세기를 거듭해 내려오는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해오다가, 대화재 때 완전히 소실 되었다. 그 후 다시 재현하기는 하였지만, 원래의 아름다움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앙 제대
이 제대의 아래쪽에는 사도 바오로의 무덤이 보관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첫 번째로 그 무덤위에 제대를 세웠으며, 지금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무덤은 9세기 말경까지는 순례자들이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으나, 그 후 완전히 밀폐되었으며, 성당이 다시 건축된 후로는 그 자리를 표시하는 작은 등불만이 켜져 있다.
부활 촛대
중앙 제대 오른쪽 회랑 입구에 놓여 있는 이 부활 촛대는, 1170년 니콜로 디 안젤로와 바살레토의 공동작품으로서, 두 사람 모두 대리석 조각에서 당대의 명인들이었다.
이 부활 촛대의 겉 장식은 모두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촛대의 받침대는 몸은 사자와 양의 모습이고 얼굴은 사람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양과 사자는 성서적인 상징 동물로서, 양은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며, 사자는 내세로 들어가는 데 주저하지 않고 사자와 같이 용감하게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 중심 내용으로 조각된 이 촛대는 높이는 5m 60cm이며, 촛대의 중앙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승리의 개선 아치
이곳 반원형의 돔 안쪽에 있는 모자이크는 원래 5세기의 것이었으나, 이 또한 1823년에 대화재로 큰 손상을 입게 되었고, 그 후 재수리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승리의 개선 아치>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모자이크화 되어 있는데, 왼손으로는 성서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강복을 주는 모습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도의 오른발 아래에 재수리를 명한 교황 호노리우스 3세가 그리스도의 발가락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마치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사도 베드로와 안드레아, 오른쪽에는 사도 바오로와 '누가'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열 두 사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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